예언자는 누구이고 뭘 한 사람인가?(2)


그들은 안 보이는 걸 봤을까?

예레미야 23:25-32


교황에게 거짓 예언자는 누구?

오늘은 ‘예언자는 누구이고 뭘 한 사람인가?’ 주제의 시리즈설교 두 번째입니다. 흔히 예언자는 일반 성도들보다는 설교자에게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언자처럼 설교자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엔 그런 이분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사제들만 제사장이 아니라 모두가 제사장이란 뜻으로 ‘만인제사장’을 내세웠습니다.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굳이 중재자인 사제를 찾아가지 않고 스스로 참회하고 회개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개신교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만인제사장’ 시대가 아닙니까.


동시에 지금은 ‘만인 예언자’ 시대이기도 합니다. ‘만인예언자’란 말은 제가 만들어낸 말이므로 ‘만인제사장’처럼 많이 쓰이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언자인 시대인 겁니다. 따라서 예언자가 뭘 하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은 우리 모두가 답을 찾아야 할 물음인 겁니다.


지난 1월 11일 프란시스코 교황은 우상에 대해 잘못된 희망을 갖지 말고 환상을 퍼트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세속세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짓된 희망의 무용함과 그 모순의 민낯을 파헤침으로써 우리를 보호해준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거짓 예언자들은 돈과 권력자를 추구하고 거짓 이념이나 허망한 말을 일삼는다고 말하고 그것들에 기대서 헛된 위로를 추구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확실하고 위대한 희망을 바라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가 제 눈에 띤 이유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언급 때문이었습니다. 거짓 예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희망을 갖게 하고 환상을 퍼뜨리며 돈이나 권력자를 추구하게 하고 거짓 이념과 허망한 말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헛된 위로를 구하지 말고 주님의 복음이 주는 확실하고 위대한 희망을 바라보라고 교황은 말했는데 아쉽게도 ‘복음에 주는 확실하고 위대한 희망’이 구체적으로 뭘 가리키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사라서 그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교황이 말한 거짓 예언자는 구약성서, 그 중에서도 특히 예레미야서가 말하는 거짓 예언자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세 가지 부류의 예언자

지난 주일에 예언자에 대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참 예언자는 ‘하느님의 어전회의’(divine council), 요즘 말로 하면 ‘내각회의’ 또는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서 참석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논쟁했던 사람인 데 반해서 거짓 예언자는 그 회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야훼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참 예언자는 야훼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할 수만 있으면 회피하려 했습니다. 모세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느님은 ‘말 잘 하는’ 아론을 그와 동행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 내려가서는 말 잘 하는 아론은 잠자코 있고 말을 못 해서 부름을 거부하려던 모세가 이집트의 권력자들을 상대했습니다. 이 사실은 예언자에게 ‘말’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의미와 다른 독특한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언자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그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여부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하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걸 알면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의도적인 거짓 예언자’이고, 둘째는 실제론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데 자기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전하는 ‘의도하지 않은 거짓 예언자’이며, 셋째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전하는 ‘참 예언자’입니다. 그밖에 하느님 말씀을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고 믿고 전하는 사람도 논리적으로는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합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 중에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중요한 문제로 여겼던 대표적인 예언자는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5장 30-31절에서 “지금 이 나라에서는 놀랍고도 끔찍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라는 하느님의 탄식을 전합니다. 유다는 망하는 길로 치닫고 있는데 그 궁극적인 원인은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이라는 겁니다.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거짓 예언대로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백성들은 그걸 좋아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유다는 망하는 길로 치닫는다는 것이지요. 결국 유다 망조의 궁극적인 원인은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지 알면서도 그걸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의도적인 거짓 예언자’는 상대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대개 야훼가 아닌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자고 백성들을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자고 유혹하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므로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구약성서에서 야훼 아닌 다른 신을 따르거나 우상을 섬기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는 대부분 둘째 부류에 속합니다. 자기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지만 사실은 하느님 말씀이 아닌 말을 전하는 ‘의도하지 않은 거짓 예언자’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부류의 거짓 예언자들이 그들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직성’만큼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잘못은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자기가 꾼 꿈이나 본 환상이나 들은 음성을 하느님의 메시지로 착각한 데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예레미야 23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로 예언하는 예언자들이 있다. ‘내가 꿈에 보았다! 내가 꿈에 계시를 받았다!’ 하고 주장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이 예언자들이 언제까지 거짓으로 예언을 하겠으며 언제까지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꾸며낸 환상으로 거짓 예언을 하겠느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제멋대로 혀를 놀리는 예언자들을 내가 대적하겠다! 허황된 꿈들을 예언이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내가 대적하겠다. 그들은 거짓말과 허풍으로 내 백성을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하는 자들이다. 나는 절대로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예언을 하라고 명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꿈에 계시는 받았다느니 마음속에서 꾸며낸 환상으로 거짓예언을 한다느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며 제멋대로 혀를 놀린다느니 하는 행위는 거짓 예언자가 자신을 속여가면서 그렇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가 꿈에 계시를 받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자기들이 환상을 봤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믿었던 겁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은 그것들은 당신의 계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이 착각했다는 것이지요.


이번 시리즈설교를 준비하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요즘 터무니없는 얘기를 쏟아놓는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정말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을까 하는 의문이 그것입니다.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라고 부르는 단체의 주축인 대형교회 목사들이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 최초 감리교회인 정동제일교회에 모여서 가칭 ‘한국교회총연합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19대 대선에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연합기관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므로 천만 성도는 이에 순종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들이 새 연합단체를 결성하려는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해온 기존단체 한기총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자 새 옷으로 갈아입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연합기관 결성이 ‘하느님의 명령’이므로 천만 성도는 이에 복종해야 한다는 자기들의 주장이 진정 하느님에게서 비롯됐다고 그들은 믿는지가 궁금합니다. 물론 저는 믿지 않는데 그들은 그게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믿는가 말입니다. 혹 자기들도 안 믿으면서 자기들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의도적으로 하느님을 끌어들인 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저를 속였습니다!

예언자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가리려면 두 가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첫째로 예언자 자신이 자기가 들은 음성이나 본 비전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예언자의 메시지를 듣는 청중 입장에서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가 하느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그가 하느님 말씀이라고 착각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첫 번째 경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두 번째 경우가 절대적으로 쉽다는 얘기는 아니고 단지 첫 번째 경우와 비교해서 쉽다는 뜻입니다. 구약성서는 예언자의 행실을 잘 살피라고 말합니다. 그의 행실이 도덕적, 윤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덕스럽지 않다면 그가 하는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고 하느님 말씀처럼 들려도 그는 참 예언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예언자가 자기 말이 하느님 말씀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예레미야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예레미야 20:7-9).


예레미야의 말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하느님이 그를 속였답니다. 하느님에게 속았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부름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에게 설득됐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그를 어떻게 설득하셨을까요?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그가 할 말을 그의 입에 넣어주시겠다는 말로 설득하셨습니다(1:9-10). 그런데 그가 전할 말은 심판과 파괴, 멸망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야훼의 계명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은 예레미야를 위협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름 받았을 때 받았던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당신의 말씀을 넣어주시겠고 함께 해주시고 지켜주시겠다는 약속 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주님이 약속을 안 지키셨으니 말입니다. 그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다짐해도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더 이상 주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반복해도 그의 가슴은 다짐과는 무관하게 주님의 말씀으로 불타오르는 겁니다. 주님 말씀이 그의 심장을 불태우고 뼛속까지 타들어가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백성들에게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의 가슴을 불타게 했을까요? 어떤 점에서 주님의 말씀이 그의 가슴을 불태웠는가 말입니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가슴속을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걸 그가 봤기 때문이란 얘기입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갔으므로 그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예언자는 누구이고 뭘 한 사람인가?(1) 왜 하필 저입니까?http://fzari.com/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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