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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4)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주 늦은 시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겨우 내려갈 때가 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한 한적한 밤길을 홀로 차를 운전하는 일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심신이 지쳐 적적함이 극에 달할 때면 나를 멈춰 서게 하는 붉은 신호등이 반가울 때가 있다. 지나치는 이 아무도 없는 도로 한 복판 신호등의 멈춤 신호지만 어김없이 그의 지시를 따른다. 언젠가 동승했던 친구가 나의 그런 행동에 칭찬을 보낸 적이 있다. 당연한 행동을 했을 뿐인데 칭찬을 받은지라 내심 몹시 쑥스러워 했다. 실은 법과 규칙을 떠나 텅 빈 공간에 종일 서 있다가 나의 길을 간섭하려는 신호등이라는 존재와 이야기하고 싶어, 잠시 멈추어달라는 신호를 기쁜 마음으로 따른 것뿐이라는 걸.. 2017. 1. 30.
마태 수난곡 No. 1 여정의 시작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1)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 수난곡 No. 1 여정의 시작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로 날아가 종교개혁의 현장을 천천히 순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기왕이면 독일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5월이면 좋겠습니다. 제게 있어 종교개혁의 성지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연관된 곳들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세바츠찬 바흐의 음악은 종교개혁이 진리와 진실의 힘에 이끌린 성공적인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며 종교개혁이 열매 맺은 가장 아름다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꿈속에 조금 더 머물자면, 라이프치히 시내의 집을 빌려서 잠시나마 바흐의 이웃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가 산책했던 길,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머.. 2017. 1. 27.
금식의 날은 축제의 날이 되어, 에스더(2)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0) 금식의 날은 축제의 날이 되어, 에스더(2) 하나님의 부재는 현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했던가. 때로는 보응의 원리와 도덕적 확신마저도 깨뜨리시며 철저히 자유로우신 하나님. 세상의 모든 일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유일한 원인자 아니신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시고,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분(이사야 45:7; 욥기 5:18),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다(사무엘상 2:6-7). 그 하나님이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아래 억압받는 소수민족 유대인의 남은 삶을 어떻게 이끄실 것인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교수대를 만든 그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궁중실록을 읽게 했다. 이때 왕은 자신을 향했던.. 2017. 1. 20.
인생의 비밀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3) 인생의 비밀 어린 시절 선친의 직업 덕에 자주 이사를 다녔다. 거의 3년마다 전근을 다니셨기 때문에 한 곳에서 오랜 기간을 지낸 적이 없다. 덕분에 농촌과 어촌, 산촌과 도시의 생활을 드문드문 맛볼 수 있었다.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종종 불평을 했지만, 성장해서 돌이켜보면 그 또한 인생의 한 가르침이었기에 감사를 드린다. 공자는 한 나라에 또는 한 지역에만 머물러 지내지 않았다. 55세 즈음부터 태어난 노나라를 벗어나 온 중국을 제자들과 돌아다녔다. 소위 ‘천하주유’를 하면서 엄청난 거리를 다녔다. 여러 나라를 거쳤고 여러 일들을 겪었다. 모든 국가에서 공자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군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찮게.. 2017. 1. 18.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 한종호의 너른마당(57) “이 땅을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 겨울이 난데없이 덮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겨울은 추워야 하고, 그러면서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 익어갈 겁니다. 여름에 자신을 한껏 자랑하던 초목도 겨울에는 겸손하게 몸을 털고 벌거벗은 존재의 본래 알몸으로 돌아가 하늘의 생명을 받아 새로이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겨울이 추운 것이 정상이라도 춥지 않은 겨울을 나고 싶은 것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입니다. 길거리에 내버려진 채 겨울을 나보라고 하면 누가 그걸 기꺼워하겠습니까? 누구도 돌보는 이 없이 찬 바닥에서 홀로 두렵게 잠을 자야한다면 그 또한 겨울의 잔혹함을 더욱 깊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궁성의 부” 역사는 강자가.. 2017. 1. 16.
백약이 무효이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0) 백약이 무효이다 “처녀(處女) 딸 애굽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乳香)을 취(取)하라 네가 많은 의약(醫藥)을 쓸지라도 무효(無效)하여 낫지 못하리라”(예레미야 46:1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신 말씀을 나는 이렇게 새긴다. 그것이 욕심이든 근심이든 등 뒤에 메고 있는 커다란 보따리를 내려놓지 못하면 들어갈 수가 없다고. 또 하나, 그 문은 단체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증명서 하나를 보이고 우르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니라고. 외국에 나갈 때든, 나갔다가 들어올 때든 공항에 내리면 입국심사라는 걸 한다. 여권을 내보이고 본인인지 아닌지, 입국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확인한다. 내 나라나 영토에 아무나 함부로 들여보낼 .. 2017. 1. 13.
에스더, 민족의 위기 앞에 침묵하지 않고 행동했다(1)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9) 에스더, 민족의 위기 앞에 침묵하지 않고 행동했다(1) 고대 이스라엘 포로기 역사 속에 ‘하닷사’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적인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별’이라는 뜻의 페르시아 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녀의 히브리 식 이름 ‘하닷사’는 팔레스타인이나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색 꽃을 피우는 화석류 나무를 뜻한다. 향을 품은 이 나무는 잎을 찧을 때 향기를 뿜어내는 허브 종류의 관목이다. 이 나무는 백향목, 소나무와 함께 종말론적 희망과 회복을 상징하는 식물로 언급되기도 한다(이사야 41:19; 55:13). 에스더는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주전486-464)의 왕후 와스디가 왕의 잔치 참여를 거부한 불복종 때문에 폐위당한 후 왕의 분노가 누그러지는 시점에.. 2017. 1. 12.
선생이 되려하지 말라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2) 선생이 되려하지 말라 시골 마을에서 선생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습득한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글을 모르는 노인들은 선생에게 가서 글을 묻기도 하고 심지어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해달라고 하거나 선거 즈음엔 정치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한 때 국가가 정부시책을 펼칠 인력이 부족하면 제일 먼저 교사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나의 외조부님은 인제읍내에서 내린천을 끼고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귀둔’이란 동네의 훈장이셨다. 외가댁은 그곳에서 대대로 훈장으로 지내시면서 마을의 유지로 지냈다. 외조부님은 마을의 온갖 일에 관여하시면서 마을 아이들에게 한자와 한글을 가르치셨다. 덕분에 나도 어릴 적부터 외조부님으로부터.. 2017. 1. 11.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5)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예레미야애가 4장 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 곧 “왕”을 달리 “우리의 콧김”(개역개정), “우리의 숨결”(공동번역)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루아흐 압페누”를 번역한 것이나 아무래도 석연하지 않다. 즉 히브리어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와 우리말 번역으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 “콧김”이라고 하면 그것은 콧구멍에서 나오는 더운 김을 뜻한다. “콧김을 쐬다”라는 말은 어떤 물체를 코 가까이 가져다 대고 거기에 콧구멍에서 나오는 김을 받게 하는 것이다. “콧김이 세다”라는 말은 관계가 가까워서 영향력이 세다는 말이다. “죽은 놈의 콧김만도 못하다”라고 하면 난로나 화로에 불기운이 없어져.. 2017.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