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7)


별을 헤아리는 까닭


안개가 짙게 낀 도로를 운전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몇 미터 앞만 겨우 보이는 상태에서 길을 더듬어 운전을 할 때면 지금 죽음의 언저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심장을 파고 든다. 안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갈 길의 앞을 조금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두렵다. 알 수 없음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은 ‘알지 못함[無明]’으로부터 온다. 다음에 닥쳐올 위험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다면 아무리 큰 위험도 두려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작은 사건일지라도 미리 ‘알아차림[正念]’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다가오면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긴장(Suspense)과 놀람(Surprise)의 차이는 앞으로 닥쳐질 일에 대한 정보인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깊은 산중의 길이라도 어디로 뻗어있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 두렵지 않다. 가벼운 길도 눈비가 심하게 오거나 나무가 우거져 한치 앞도 분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심각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때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두려움을 느낄 때, 익숙한 낯을 하나라도 본다면 마음이 편안하다.


아주 먼 유목시절, 인류는 별을 보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태양은 매 시간마다 위치를 변화시킨다. 달은 모양과 머무는 시간이 주기를 가지고 변화한다. 그러나 별은 적어도 계절이 바뀌기까지 큰 변화가 없다. 북극성이나 북두칠성 경우에는 일 년 내내 위치나 크기의 변화가 없다. 일 년 단위로 이동을 해야 하는 유목인들에게 별은 안정적인 푯대(Pole)이다.


역(易)은 농경민으로 정착하던 청동기시절 이전부터 존재하던 인류의 가장 오랜 철학이다. 만물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 ‘패턴(pattern)’을 파악하려 했던 역(易)철학은 적어도 신석기 시대를 훨씬 거슬러 오르는 사상이다. 중국의 주(周)나라가 자신들의 통치 이념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역(周易)》이란 책으로 편집하여 독점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인류의 핵심 사상이었다.


공자의 주역 해석서로 알려진 〈계사전(繫辭傳)〉은 역(易)사상이 어디로부터 출발했으며, 어떤 방법론에 입각하여 논리가 수립되었는지, 또한 장차 무엇을 탐구하기 위해 발전시킨 개념인지를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다. 공자는 역(易)을 통해 온통 복잡하게 뒤얽힌 정치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조와 역학관계 그리고 이들을 작동시키는 근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러러서 천문(하늘 무늬)을 관찰하고, 구부려서 지리(땅의 이치)를 살핌으로 보이지 않는 은밀한 것과 밝히 드러난 것의 원인을 안다(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知幽明知故).” - 《주역》, 〈계사전 상〉 4장 2절


찬찬히 문맥을 살펴보다보면, 자연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엄연히 규칙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설명이 마치 ‘카오스 이론(混沌理論, Chaos Theory)’과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미세한 사물의 작동원리가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와 같은 패턴과 방식이라는 면에서 ‘프랙탈 이론(回文, Fractal Theory)’과도 무척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하늘을 보는 것은 일정한 패턴[文]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신석기 수천 년을 지내온 인류는 하늘에 대한 움직임을 후대에게 구전으로 전승시키면서 통계를 축적시켜왔고, 어느 정도의 정보가 확보되자 이들을 분석하여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수천 년을 지나오는 동안 앞서 파악한 패턴을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정교함까지 갖추게 하여 도식화한 것이 64괘이다.




유목민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농경민인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이나 이집트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경계했다. 요셉의 공로로 야곱과 그의 식구들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바로가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야곱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다(창세기 46장 34절)”고 답한다.


농경민인 이집트인들이 목축을 가증이 여겼기 때문에 고센 땅에서 살게 되었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야곱과 그의 후손 역시 이집트에 살아감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농경문화에 젖어들까 몹시 경계했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아브라함의 경우도 동일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한 곳에 고착시키는 것을 즐기는 정주(定住)문화를 매우 위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그(아브람)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창세기》 13장 14-15절, 15장 5절


‘하늘을 우러러 별을 세어보라’는 것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는 예수의 비유만큼이나 유목인에게는 익숙한 문장이다. 하늘의 패턴을 읽는 것은 지상의 복잡한 사건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원리를 터득하기 위함이다. 수학적으로 정교한 해, 달, 별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원칙 없어 보이는 세상의 다단(多段)한 일들을 간파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조카 롯과 마음 아픈 헤어짐을 경험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이끌고 나가 사방을 보라고 말씀한다. 앞이 막막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밝히 파악하는 능력을 부여하셨던 것이다. 사방을 관찰(觀察)하게 함으로 그것으로부터 매이지 않게 하셨고, 아무 것도 매이지 않음이 곧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것임을 깨닫게 하셨다.


또한 롯이 거하는 성의 인근 성주들이 전쟁을 벌였을 때, 아브람은 훈련된 이들을 이끌고 나가 끌려간 롯과 그 성 사람들을 구출해온다. 전쟁 후 찾아올 수 있는 허탈함에 아브람이 젖을까봐 하나님은 그의 손을 이끌고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게 하신다. 별을 세어보라고 하시면서 하늘의 별들처럼 너의 후손이 이러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물론 여기서 말씀한 별의 일차적 기표는 아브람 후손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아브람 후손들의 숫자를 의미한다. 이것을 메타적으로 분석하면 아브람의 후손은 유목민을 가리키는 기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별처럼 수적으로 많을 것이라는 의미 심층에는 별처럼 규칙적인 패턴을 가진, 즉 문양(文樣)을 지닌 후손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끝없이 반추하게 하였다. 반드시 그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공간에 대한 패턴의식이다. 유목민이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떠돌아다녀 자칫 방황할 수도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어디든 떠날 수 있지만 반드시 일정한 장소로 돌아와야 한다는 공간에 대한 패턴의식을 훈련시켰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일 규정을 만들어 일주일이라는 개념을 알려줌과 동시에 시간에 대한 패턴의식을 심어주었다. 하루와 일주일이라는 미시적 시간패턴과 절기와 안식년이라는 거시적 시간패턴을 규정하여 이것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공간과 시간에 대한 패턴의식으로 하여금 복잡한 세상의 사건들을 명료하게 간파하는 핵심원리로 작동하게 하셨던 것이다.


세상 일이 어지러울 때면 홀연히 별이 쏟아지는 밤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하늘 가득 흐드러진 별들을 헤아리다보면 별들이 지닌 무수한 은유를 유추해낼 것이다. 사건의 원인과 방식을 일정무늬로 구성하여 보여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일들은 스스로 해결방식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가 가끔 별을 보아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정배/좋은샘교회 부목사로 사서삼경, 노장, 불경, 동의학 서적 등을 강독하는 ‘연경학당’ 대표이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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