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이길용의 말씀 안으로(10)


말세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가 13:3~13)


요즘 들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기상이변 현상이 자주 반복됩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엄청난 자연재해가 반복적으로 현대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현 세계 최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미국도 지진과 허리케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만 갑니다. 지난 1989년 진도 6.9로 캘리포니아 지역을 강타한 지진은 2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지라 전국토의 초토화는 없었지만, 당시 미국인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자연의 거대한 용트림은 진지한 공포가 되어 그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편승한 언론들은 앞 다투어 지진의 피해로 지쳐버린 가련한 국민들의 마음에 더 큰 양념의 공포심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서부지역의 강진이 지나간 후에, 이제 금세기 안에 내지는 수십 년 안에 미국대륙은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남부와 북부가 동강 나누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그 당시 3류 공포언론의 주제였습니다.


당시 그리 긴 시간이 흐르기 전에 미국인의 공포가 아시아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바로 일본 열도에 떨어진 날벼락 같은 자연의 경고였습니다. 바로 1995년 고베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었습니다. 당시 황색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이제 일본 열도가 해수면 밑으로 잠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몰락>이라는 종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고베 지진은 일본인을 멸망의 공포로 몰아넣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엎친대 덮친 격이라고 그 당시 유럽은 전후 최대의 홍수사태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2008년 스촨성 대지진, 2011년 일본 해일로 인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2015년 네팔 지진, 그리고 요즘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지진 현상까지... 이런 사고의 연속은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또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자기이해를 강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상이변의 원인은 엘니뇨(El Niño)현상 때문이니, 혹은 라니냐(La Niña) 때문이니 하며 사계 전문가의 다양한 고견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가들의 견해 못지않게 이런 유의 사고가 날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또 다른 설명이 있습니다. 바로 ‘말세’라는 종말론적 시각입니다. 이런 자연 재해와 엄청난 사건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이렇게 소리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거봐라! 말세여! 두말하면 잔소리지, 말세란 말이야! 성서를 봐! 성서를 보란 말이야!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다고 했고, 또 노아의 홍수를 생각 허면 이건 분명히 말세의 징조란 말이지. 이제 끝장이야! 새로운 시대가 온 거란 말이지!”


그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분명 말세는 지진과 기근 같은 실제적 표상과 함께 도래하며, 또 그런 내용이 성서에 들어있긴 합니다. 오늘 그분들이 인용하는 성서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성전 건너편 올리브산에 앉아 성전을 바라보고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찾아 와서,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다 이루어질 무렵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장차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하고 떠들어대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 여러 번 난리도 겪고 전쟁 소문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아라.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날 터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또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흉년이 들 터인데 이런 일들은 다만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너희는 법정에 끌려 갈 것이며 회당에서 매를 맞고 또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우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를 붙잡아 법정에 끄고 갈 때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그 시간에 일러주실 것이니 그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제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들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가의 이 구절은 복음서에 기록된 말세에 대한 내용 중 원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마가복음 13장은 장 전체가 하나의 작은 묵시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묵시문학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세기 사이에 이스라엘 사회에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묵시문학이 유행을 타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시리아 정권의 박해와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수많은 유대인이 고통 받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환경과, 또 그에 따라 깊은 체념 속에 절망하고 있는 유대 동족을 위해 종교적 희망이나마 전해주고자 했던 당시의 묵시 문학가들은 새로운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묵시 작품들입니다. 


그들의 역사관은 지금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이분법적인 구조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발붙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철저한 비하를 감행합니다. 이 세상은 아담이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취했을 때부터 이미 죄악과 타락으로 그득한 세상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계속해서 죄악으로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악이 넘치는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고 이런 생각은 그들이 남긴 묵시문학 작품 속에 수시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당시의 묵시문학적 분위기는 예수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오늘 읽은 마가복음의 말세 예언에 관한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흔히 사용하시던 빈번한 주제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도 실상은 묵시문학계통에서 즐겨 쓰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분이 사용하셨던 ‘죽은 자의 부활’, ‘심판’, ‘영생’, ‘영벌’ 등도 역시 묵시 문학계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묵시문학의 용어들을 빌려 오셨지만 내용만은 자신의 색깔로 채우셨습니다. 대부분 묵시문학적 전통 하에 서있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다가올 종말의 날에 대한 엄정한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오늘 당장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곧 그들의 역사관 속에서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의 종말에는 따뜻한 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심판과 종말의 가르침에는 늘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에게는, 심판이란, 종말이란 끝장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요청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분의 우리를 향한 연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둔다면 마치 자신의 날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큰 목소리로 “말세!”를 외치는 이들의 그림은 왠지 낯설어 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예수의 말세관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오늘 읽은 성서로 돌아갑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서를 살펴보면, 말세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 역시 자연의 재해와 기후의 이상 현상 등을 종말의 징조라 읽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세 읽기는 거기에서만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거짓 구원자가 등장하고, 전쟁이 소문이 들리며, 민족과 나라가 서로 싸울 것이며,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조짐일 뿐. 말세의 본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의 말세 인식은 후반부에 보다 정확하게 등장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주고 아비도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 또한 부모들에 들고 일어나 부모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가 이해한 말세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의 눈에 자연의 재해와 이상 현상은 말세의 본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바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수는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갈 때, 서로에게 있어야 할 신뢰가 파괴되었을 때, 바로 그 때가 말세의 절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마태는 보다 정교한 언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 24, 4-12)


마태복음에 연속해서 등장하는 예수의 종말 읽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막판에 열쇠가 있음을 눈치 채게 돕니다. 즉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말세의 본모습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바라 본 종말은 자연이 아니라 ‘인위의 재난’입니다. 인위의 재난이 자연의 재난보다 더 파괴적이며 무서운 것이고 이 세상의 종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예수는 분명히 읽고 있습니다.

“추락한 인간성이 종말을 재촉할 것이다!”


예수의 선포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재난은 종말의 서론이고,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좋아 날뛰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사이를 갈라버리는 파괴적 이념으로 무장한 이들이 출현하는 것, 그것이 종말의 본론인 셈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 여러 자연 재해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속히 생의 희망을 얻어 재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절망치 않고 함께 힘을 모아 재난의 때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람이 있습니다. 제발 이런 저런 재해 속에서도 힘겹게 일어나 재기하려는 민초들 머리 위에 말세의 저주를 퍼붓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하나 희망하기는 우리 기독인들이 그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들 옆에서 말세의 언성으로 훈수드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상처 난 가슴을 위로하며 힘을 보태는 동료의 모습, 즉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리고 참 위로를 주는 친구 같은 기독인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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