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

 

경을 치다

 


경을 친다는 말은 종을 치듯 정신이 깨지도록 혼쭐을 낸다는 의미가 담긴 상징적 언술로 들리지만 실제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형(黥刑)은 죄인의 이마나 얼굴에 먹줄로 글씨를 새겨 넣는 형벌이다. 종이 위에 매난국죽을 치듯 얼굴에 먹물을 들이기 때문에 친다고 쓴다. 문신을 새겨 죄인 됨을 공개하는 것은 머리를 베거나 목을 매달거나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형벌 보다는 가벼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경형이란 경을 친 다음 그 때부터 형벌의 목적이 발효되는 진정한 상징적 언술이 된다. 이마에 각인된 주홍(검은)글씨는 죄인의 일생을 두고 경을 친 의미를 확인시켜줄 것이다.

 

나는 왜 이 시점에 꼭 경을 칠 놈이 아니라 경을 칠 년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모름지기 역사상 경을 쳤대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이 쳤을 것 같다. 그러나 귀에 익숙해 자연스러운 것은 경을 칠 년이다. 사극을 보면 상투머리를 산지사방 흩뜨러뜨리고 함거에 실려 귀양 가는 양반님네를 자주 본다. 혹 몇 년 유배 살다 정계에 복귀하는 운 좋은 역적도 있겠지만 한번 컨베어벨트에서 밀려나면 세상이 다 그를 적대하기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당사자는 물론 그의 일가 전체가 경을 친다. 어제까진 귀족마님으로 양가집 규수로 부잣집 도련님으로 뭇사람의 대접을 받으며 고상하고 고결하고 품위 있고 세련되고 도도하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으로 굴었어도 다 용납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부턴 관청의 노비나 공신댁 종으로 근본부터 자기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싫다면 산간에 도망쳐 화전민이 되거나 산악으로 도주해 군도(群盜)’에 가담하거나 다리 밑으로 도망쳐 각설이패가 되는 수밖엔 없다. 태생적 고결한 양반으로 금지옥엽 세상이 다 그런 줄 알고 살아온 처지가 당할 삶의 비참과 난센스와 아이러니 말해 무엇하랴.

 

이것이 바로 경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경을 쳐도 가장 경 침을 받은 사람들은 여자들이 아닐까. 내 귀에 경을 칠 년이 자연스러운 것은 그런 이유. 또 그런 이유로 특히 미성숙한 어린여자들을 경책할 때 니가 경을 친다는 게 어떤 것인 줄 알어?’ 하는 가학과 피학의 기나긴 세월 무시무시한 공포가 욕설이 되어 나온 게 아닐까. 솔직히 나는 세상이 무섭다. 딸만 셋 가진 아비로서 나뿐 아니라 내 딸들이 살아갈 세상의 두려움까지 합쳐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딸들을 위해 내가 이 세상과 싸워 능진히 이겨줄 자신 없음이기도 하다

 

 

(출처: https://flic.kr/p/nn8FsV)

 

그런데 이 경을 칠 년이라는 욕설엔 아직은 유예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아직 경을 치진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권력자의 따님으로 귀족마님으로 재벌기업의 부사장으로 뭇 미생(未生)’들 위에 꼬마 대장동지 김정은처럼 방정을 떨고 군림하며 고상하고 고결하고 품위 있고 세련되고 도도하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으로 굴어도 다 용납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일이 잘 되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수 있는 하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만 사유와 사고의 틀이 태생적 한계이자 행운으로 주어진 사람들이 있음도 본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경을 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경이 어떤 경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경을 치진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진짜로 경을 치게 된다. 적어도 나의 신학과 믿음에 따른다면 이 세상에선 경을 칠 일 따위 전혀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직접 경을 치신다. 하늘이 사람에게 경을 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높은 마음. 하느님은 다 봐줘도 아니꼽다 못해 가증스러운 사람은 끝내 못 봐준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엔 태생적으로 아니꼽고 가증스럽게 높아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이루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런 듯 군다. 경을 칠 놈이든 년이든 하늘이 치는 경이 조속히 쳐지질 않아 그것을 담대함으로 여기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작금 한 여자가 경을 칠년이라 전 국민의 욕을 먹는 이유를 그녀는 억울해 할 필요가 없겠다. 그녀는 모름지기 모든 경을 칠 연놈의 대표가 아닌가. 아직 앞길 창창 계속해 누군가 미생(未生)위에 군림하실 분이고 보면 부디 이제라도 자기를 쪼금이라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진짜 경을 치기 전 이마에 먹을 먹이듯 따끔하게 경을 쳐보는 것 그에 비하면 나쁜 일도 아니다.

 

해마다 1231일이면 서울시장과 및 유수한 인사들이 참여하는 종로 광화문앞 보신각 타종행사를 한다. 제야의 종이라 33번을 울린다. 유감스러운 것은 길게 울리는 서른 세 번의 청승맞은 종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역사의 한 구비를 넘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만 한 해 동안 외쳐댔던 고통도 억울함도 정의도 그 모든 군중의 함성을 쇠투구 철항아리처럼 찍어 누르고 있는 요지부동도 체념 가운데 넘어가 버리는 듯하다. 김수영(金洙暎, 1921~1968)<거대한 뿌리>에서 1893년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英國王立地學協會會員)으로 조선을 처음 방문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Lucy Bird, 1831~1904)의 여행기를 인용하여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世界)/ 화하는 극적(劇的)인 서울을 상기시킨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누추한 기록 속에서 시인은 오히려 보잘 것 없는 일상(日常)들의 극적인 승리를 발견한다.

 

전통(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거대한 뿌리> 부분, 1964)

 

이 시대의 경은 누구를 위하여 치는가. 역사는 도무지 패배할 줄 모른다.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 놋주발보다 쨍쨍 울리는 우리들의 역사는 패배주의가 아니다. 온통 가학과 피학의 역순환과 악순환 속에서도 지혜여 속속히 오시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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