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1)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나는 일찍이 성경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었다. 성경을 자세히 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맛보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언어로 된 성전’, 곧 성경전서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기독교인의 삶의 표준인 성경 말씀을 통해 ‘진리’의 참됨(진)과 ‘착함’(선)을 배웠지만, ‘아름다움’(미)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 하나, ‘진리’는 아름답다. 서구 철학이 말한 진선미(眞善美)의 구도가 인간의 지성, 의지, 감정(심미성)의 조화를 목표한 것이라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시의 문장으로 지어져 예술성을 확장시키는 구약의 지혜서는 간결미, 상징적인 언어의 모호함과 함축미의 결정체다. 글의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현실의 사건들이 어울리는 그곳에 진리의 현실성과 예술성이 교차한다.


《모비딕》의 작가 허멘 멜빌은 전도서를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세대가 가고 오며 위대한 작가들은 성경의 진리와 그 진리를 담아낸 언어로 지어진 성전의 문학적인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오히려 구도자의 삶을 살아갈 신앙인들은 관심 없다. 무관심이 무지를 낳은 것일까. 필요한 성경구절을 뽑아 ‘주문’처럼 외우며 이용하는 것은 능숙하다. 그러나 총 66권 성경전서의 한권 한권의 영감 받은 말씀이 왜 그 순서에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는 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것은 명확한데, 왜 어떤 것은 모호하여 말의 숲을 헤매게 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궁금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거룩한 말씀 안에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질문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불신을 낳을 것이라는 자발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앙공동체가 가하는 무언의 억압 때문이었을까? 각설하고 왜 전도서는 진실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전도서를 대표하는 말, ‘헤벨’(한숨, 호흡, 헛됨, 허무, 덧없음, 무의미, 부조리, 모순)에서 찾았다.



코헬렛(전도자)은 갖가지 인생살이의 현실, 역설과 모순, 온갖 부조리를 한 마디로 발설했다. 모든 것은 ‘헤벨’이다(1:2). 단 한가지로 응축시켜 종합하기 어려운 총천연색의 현실은 어제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코헬렛은 의미 있는 것을 다루지 않고 그 반대의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들을 말해야 했을까. 인생의 변덕스러움과 부조리를 전부 이해할 수 없어서 지혜 선생 코헬렛은(12:9-12) 해 아래 모든 것은 ‘모순덩어리’(1:2; 12:8; “헛되고 헛되다”, 개역개정)라고 했다. 이 때문에 코헬렛의 지혜 말씀은 질문을 반기지 않는 종래의 신학과 신앙에 익숙해진 우리를 낯선 해석의 장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자주 ‘전제된’ 신앙과 신학의 울타리에서 질문하기를 꺼렸지만, 코헬렛은 인생의 너절함과 모순적인 현실을 묻고 발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서 그는 허점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내 인생에 깊이 들어와 삶은 ‘덧없으니’(헤벨) 먹고, 마시고, 노동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거듭거듭 당부한다(2:24-26; 3:12-13, 21-22; 5:18-20; 8:15; 9:7-10; 11:7-10). 이것은 삶의 즐거움으로의 부름이요, 때때로 의미 없고 너절한 일상의 반복도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는 역설이다. 코헬렛은 대중에게 환호 받는 위대한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마시는 일상을 가치 있게 여겼다. 삶의 위대함은 도달하기 어려운 무엇을 성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담백하게 찾아든 기쁨 때문이리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외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다. 그러나 극도로 심화된 빈부 격차와 특권화 된 계층을 위해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많은 이들을 불안과 박탈감으로 밀어 넣는다. 이럴 때 코헬렛이 발설한 모든 것이 ‘모순덩어리’라는 ‘헤벨’판단은 가장 적실성 있는 시대의 외침이다. 이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헤벨’이 발설되는 곳에서, 그러면 진짜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도록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전도서는 모든 것을 다 잃고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완고한 현실에 직면해야 할 근거와 가치를 마련해 준다.


전도서는 현실의 부조리에 회피와 방관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상상을 하도록 끌어들인다. 때문에 자본과 성공을 위대한 성취로 받드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는다면, 거기에 생명이 솟는다. 거기에 설령 슬픔과 비애가 머문다할지라도 삶의 진실을 배울 기회가 허락된다. 성취감 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다. 욕망의 성취가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성취감은 잠깐이다. 도리어 ‘허무’(헤벨)가 엄습해 오기도 하니까. 모순, 허무, 부조리의 세상에서 내 안의 자유와 진실함을 끌어내는 순간 절망은 사라지고 삶의 기쁨이 샘솟는다.


그러하여 세상 모든 것을 ‘모순덩어리’(1:2; 12:8, ‘하벨 하발림’)라고 표현한 한 마디 코헬렛의 말(1:1). 함축의 극치를 보여준 이 말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언어로 내게 왔다. 지나친 확신과 흥분에 찬 말이 아니어서, 위대함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어서 진실하다.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는 말이어서,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아 현재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말이어서, 그리고 모호해서 아름답다. 해 아래 모든 일은 ‘수수께끼’(헤벨)어서 인간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니 얼마나 진실한가. 이보다 더 진실할 수 있을까.


늦가을, 독서와 사색을 위해 좋은 계절이다.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전도서에서 ‘모순덩어리’ 인생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떤가.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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