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25)

 

메르스! 모르쇠?

 

 

메르스(MERS-CoV: 중동호흡기 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이 한국사회를 녹다운 시켰다. 방역체계가 뚫리고, 거대 유명 병원이 그 확산의 진원지가 되도록 정부는 모르쇠하다시피 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되었다. 사망자와 환자들이 늘어나고 급기야는 임산부까지 확진명단에 들어가고 말았다. 농경사회에서 태어난 말인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미 세월호 참사를 통해 깨달을 대로 깨달았으리라고 여겼지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부관료들은 우왕좌왕과 대응능력 빵점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필귀정이다. 관심이 딴 곳에 있었는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순위일 리가 없었다. 결국 당하는 것은 힘없는 백성이고 그 뒤처리까지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메르스는 괴질이 아니다. 게다가 방역망을 뚫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인 정부의 진면목이 드러나자 국민들의 시선은 차가와졌다. 결국 대통령 박근혜의 방미도 연기될 정도로 민심은 바닥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을 지시라고 주절주절 하는 것을 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다.

 

초동단계의 무능만이 아니라, 이후 정보공개부터 시작해서 국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드러나자 도대체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자 존재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에 대해 책임지는 자도 없고, 해결의 틀을 구조화시키는 움직임도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신뢰의 추락과 함께, 정부는 국민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었다. 이 와중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처가 주목받자 이에 대해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했으며 이후 보수 언론들은 호들갑 운운으로 깎아내리는 일에 몰두했다.

 

 

 

 

이런 상황 모두를 종합해서 보자면, 현 정부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관심있는 것은 오로지 권력 강화에 정적(政敵) 핍박이다. 이것은 오랜 독재정권의 습관이었고, 그 연장선에서나 이해할 수 있는 사태다. 따지고 보면, 메르스 확산도 민주주의의 실종이라는 현실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국민들의 처지를 살펴보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더군다나 정보통제에 익숙한 권력이 국민들의 알 권리, 자기보호의 권리를 존중할 리가 없다. 국민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는 워낙 민심이반이 심각해지니까 아이구, 이거 안 되겠구나 하고 일정한 태도 수정도 했지만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공학적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모르지 않는다. 이 와중에 황교안 청문회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치러졌고,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메르스 사태 대응의 무능으로 정치적 현안을 덮고 간 셈이 되었다. 이건 더 나쁜 일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을 더 큰 사건으로 은폐하는 버릇은 권력의 고약한 습성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메르스 공포로 떨어야 했고, 무능에 대한 비판은 있으나 정작 자신들에게 향하는 칼날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게 되었으니 크게 밑질 일은 아니라고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도 겪다보니 국민들도 이골이 나서, 척 하면 척이다. 당장에는 메르스 공포가 지배하지만, 이러면서 무엇을 슬쩍 덮고 갔는지 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염려는 깊어간다. 정치가 하도 이러다보니 정치는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은 되고 있으나 진지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큰 줄거리로 보자면 가장 큰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정치는 혐오스러운 자들의 손에 맡겨지는 꼴이 되고, 그 정치를 바꾸고 싶어했던 이들조차 점점 더 좌절하고 무관심해지게 된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권력이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만 되면,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만들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고 동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일제 식민지 체제의 노예 교육의 유산이 이토록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나 싶기도 하다. 권력에 대해 비판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게 하는 교육은 이후 해방된 나라에서 그대로 답습되고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더더욱 강화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으로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비판적인 성찰의 능력을 박탈하고 있는 교육인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 교육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도 다 그런 유산의 되풀이다. 말은 공부의 부담을 줄인다, 고대사와 중세사 교육도 중요하다, 근현대사는 논쟁점이 많다, 어쩌구라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으나 그건 다 호도다. 진짜 이유는 근현대사의 진상을 알게 되면, 역사와 현실의 진실에 대한 의식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행적과,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비교되고, 그런 가운데서 불의한 권력과 현실에 저항하고 바로 잡으려는 인간형이 길러지면 권력의 지배가 도전받기 때문이 아닌가?

 

어찌 보면 이것은 조선시대 노론세력이 지금까지 모습만 바꿔서 이 나라를 지배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에 붙어 사대하면서 온갖 권세를 누리다가 일본 식민지 체제에 아부하고 이후 미국으로 입신의 근거를 바꾸면서 지금까지 세도가들이 된 자들의 손에 교육이 맡겨진 결과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가장 중요하게 혁파해야 할 곳은 교육이다. 제대로 선 교육이 있게 되면 제대로 된 미래 정치가 가능해진다. 그에 더하여 제대로 된 미래정치의 주체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교육혁명이다. 그것은 의식혁명이고 세계관의 변화이다. 정의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일이며, 그것을 위해 공적 임무에 헌신하는 이들의 출현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뜻한다.

 

예수께서 하신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자들을 길러 세상을 달리 보는 방법을 일러주시고 각자가 자신의 주체적인 존재로 커가도록 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각자의 내면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실과 미래라는 일깨움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의식혁명이었다. 그것은 외부의 권위에 굴종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영혼에 일깨워진 새로운 가치관을 용기 있게 들고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이야말로 혁명의 구호다. 새 부대는 새로운 교육 방식, 제도, 법, 정치, 사회의 재구성이다. 새 술이 본래의 맛을 더더욱 낼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에서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마치 자기가 새 술인 척 하려고 부대는 바꾸지 않고 헌 부대를 쓰면서 그 안에 수혈이요, 뭐요, 하면서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려 든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새술마저 악취가 나도록 만드는 일을 벌인다.

 

기가 막히게도, 진보적인 지식인까지도 이런 식의 정치공학을 야당도 이기려면 배우라고 난리다. 그럴까? 부대는 바꾸지 않고 바꾼 척 하라고? 새 술이 담겨 있으니 와서 마시라고?

 

이런 식의 생각이 낡은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가 바로 헌 부대를 존속하게 하는 사고다. 그래서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판치게 하는 사기술이다. 그걸 배우라고?

 

우리는 근본을 치고 나가야 한다. 진실을 향해 육박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진실과 거짓이 드러난다. 여기서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다.

 

메르스 대책의 무능만이 아니라 이후 벌어지는 그 모든 정치적 사기술을 관통하는 헌 부대의 술책에 이 사회가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진실에 대한 의식이 바로 서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똑바른 발언들이 여기저기서 나올 뿐만 아니라, 교육혁명이 그 근본에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음을 일깨우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혁명을 향해 가는 용기가 그 밑바닥에 넘쳐야 한다.

 

메르스 앞에서 계속 헛다리 짚는 권력을 우린 이제 버려야할 때가 온 것 아닌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모르쇠 하는 권력이 존속하는 것 자체가 위기요, 위협이다. 이제 이만하면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현명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가려내는 법이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