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3)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沓沓)하여 잠잠(潛潛)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心靈)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戰爭)의 경보(警報)를 들음이로다”(예레미야 4:19).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던 날 예레미야는 가마가 끓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예레미야 1:13). 끓는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흐르고 있었다. 불길한 환상이 환상으로 그쳤다면 좋았을 것을, 마침내 환상은 현실이 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스라엘을 삼키려 하는 자들이 북쪽으로부터 몰려온 것이다. 적군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듯 몰려오고, 그 병거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밀려오며, 그 군마들이 독수리보다도 더 빨리 달려오고 있으니(4:13), 환상에서 본 가마솥의 끓는 물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두고서 어서 속히 방방곡곡에 나팔을 불어 알리라 하신다(5절). 깃발을 세워 지체하지 말고 도피하라 하신다(6절). 굵은 베옷을 입고 탄식하며 슬피 울라 하신다(8절). 왕은 용기를 잃고, 지도자들은 낙담하고, 제사장들은 당황하고, 예언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9절). 설마 하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돌이킬 수가 없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귀에는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성을 에워싼 적군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고, 예레미야의 눈에는 나부끼는 전쟁 깃발이 보인다.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예감하고 있었던 예레미야로서는 정말로 가마솥의 끓는 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현실로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듯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식한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가 없다”(19절)

“아이고, 배야. 창자가 뒤틀려서 견딜 수 없구나. 아이고, 가슴이야. 심장이 몹시 뛰어서, 잠자코 있을 수가 없구나”(새번역)

“아이고 배야. 배가 아파 죽겠습니다. 가슴이 떨리고 염통이 터집니다”(공동번역)

“아이고 배야, 배가 뒤틀리네! 내 심장의 벽이여 내 안에서 심장이 마구 뛰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나!”(성경)

 

‘슬프고 아프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내 창자여, 내 창자여’라는 말이다.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으면 ‘내 창자여, 내 창자여’ 했을까.

 

창자를 뜻하는 우리말에 ‘애’가 있다. ‘애’를 두고서 ‘애가 탄다’ ‘애가 끓는다’ ‘애가 끊긴다’ ‘애가 닳는다’ ‘애가 녹는다’ ‘애가 마른다’ ‘애가 저민다’ 등의 표현을 쓴다.

 

애(창자)는 몸의 속내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속내이기도 하다.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아프면 창자가 탄다고, 창자가 끓는다고, 창자가 끊어진다고, 창자가 닳는다고, 창자가 녹는다고, 창자가 마른다고 했을까만,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는 기가 막힌 일들이 우리에게는 찾아온다.

 

‘환장’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換腸’(환장)의 ‘換(환)’은 ‘바꾸다’는 뜻이고, ‘腸(장)’은 ‘창자’라는 뜻이다. 결국 환장이란 창자가 꼬이고 뒤집히는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며 창자가 끊어지고 속이 뒤집히는, 환장하는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와 백성들에게 닥친 위기를 보며 창자가 뒤틀리도록 아파하며 탄식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될 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발뺌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픔을 저만치 바라보며 해석하거나, 아픔의 원인이 죄였다며 꾸중하는 사람이 아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속이 다 뒤집어지는 고통과 슬픔으로 함께 겪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세월호의 눈물은 아직도 바다로 넘치는데, 우리의 눈물은 손수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 전에 말라버렸으니.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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