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3)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어요

 

도엽을 다시 만났을 때 도엽의 표정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평온해 보였다. 통화나 문자로 자주 접촉해서 그런지 그는 첫 만남 때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다. 모자를 벗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모자를 벗으니 약간 곱슬한 머리카락들이 땀방울처럼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첫 만남 때 도엽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 몇 가지를 잘 담아 왔었다. 그중 하나가 모자 이야기였다. 그것도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 물론 실명 전의 일이었다. 작년 1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하고 나서 3개월 만에 암이 재발된 후 어느 여름날, 그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근처 강에서 플라이피쉬라는 수상기구를 탈 수 있었다.

 

그땐 강한 항암치료를 거친 직후라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모자를 쓰지 않는다면 환자라는 것이 눈에 띌 테니, 물놀이를 하면서도 엄마는 도엽이의 비니를 챙겼다. 그래도 남들 눈엔 건강하게 보여서 도엽이 사람들의 예의주시하는 시선 때문에 상처 입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도엽은 물놀이장에서 비니를 쓰고 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슴에 꽂고 있는 정맥관 때문에 안전조끼도 불편했다. 잠시 엄마와 투닥거리고 있는데 이내 모터보트에 달린 커다란 고무보트가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나게 달리는 고무보트 위에서 도엽의 머리를 덮고 있던 비니가 휘리릭 하고 날아가 버렸다. “나 간다~” 하고 로켓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엔 반원 모양의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었다. 도엽의 머리에서 이륙하여 빙그르르 돌아 하늘로 날던 비니는 어느 지점에 이르더니 수면 위 어딘가에 제멋대로 착륙해 버렸다. 도엽은 웃음이 났다. 너무 웃음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시원하게, 통쾌하게, 하하하하, 웃음을 내질렀다. 바람에 날릴 머리카락도 없는데, 버릇없는 비니는 도엽의 머리를 다 드러내 놓았는데, 도엽은 외려 웃음이 났다. 엄마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잃어버린 비니보다 자식의 초라한 머리가 안쓰러웠다. 감춰 주려 애썼는데 저리도 허탈하게 날아가 버렸다.

 

 

 

              바닷바람, 파도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을 즐기다

 

 

도엽의 중대한 약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노출되고 만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하지만 도엽은 짓궂은 모양으로 날아가 버리는 비니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후련했다. 늘 압도하듯 짓누르는, 무게가 산만 한 그 무언가가, 이거 보라는 듯, 별 게 아니라는 듯 가볍게 떨어져 나가 버리는 것 같았다. 물놀이장에서 비니를 쓴 어색한 자신보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자연스런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좋았다.

 

무엇보다 그때 그 상큼한 강바람, 시원하게 내달리던 속도감, 마음속 알 수 없는 희망을 안겨 준 무지개, 비니가 로켓처럼 날아가 버리는 모양새,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도엽의 머릿속에 흔적을 남겼다. 지금도 가끔 그 이미지를 생각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곤 한다. 이미지. 아름답고 선명한 이미지는 도엽이 눈을 잃은 이후 꼭 붙들어두고 싶은 것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그는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단지 육체의 눈이 사라진다 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붙들어두고픈 특별한 기억이 아닌데도 실제로 이미지가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의 창문이 보이기도 한다. 가로로 넓은 나무틀을 가진 창문. 눈이 보였을 땐 유심히 보지도 않았던 창문이다. 그런데 창문이 보인다. 익숙했던 집안 물건들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앞은 칠흑으로 뒤덮인다. 질병이나 사고로 시각을 상실하면 뇌는 갑작스런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 없는 상을 만들어내는데, 그런 뇌의 활동이 빚은 결과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뿐,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모든 감각을 쉬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뇌도 평생 해 오던 일을, 순식간에 멈출 수가 없다. 환시는 뇌의 관성인 셈이다.

 

몰입이라는 삶의 기술

 

뇌 자체도 평생 해오던 일을 멈추기가 힘든데, 뇌를 지닌 사람은 어떨까. 생의 가장 강력한 수단을 잃고 행동반경이 현저히 축소된 사람의 욕구는, 평생 해오던 일을 멈춘 뇌가 계속해서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를 훨씬 초과할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해질까,라고 생각하면 끝도 없어요.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세상은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작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살아 있는 게 다행인 세상이더군요.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세상이었던 거였어요. 알지 못했던 것뿐이죠.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잖아요. 다른 사람이 볼 때 어떤 사람의 삶은 남부러울 것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쁜 일도 많잖아요. 그걸 받아들이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보다 행복한 사람 훨씬 많죠. 그래서 가끔 우울하고 나쁜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많아요. 그런데 사로잡혀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풀려요. 아예 우울하면 저 자신을 놓아 버릴 텐데, 성격이 그렇게 놓아두지 않는 것 같아요.”


도엽은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그 어떤 대단한 투지를 의지적으로 끌어들인 게 아니다. 어쩌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길을 걷게 된 사람이 지닌 현실주의 덕분인지도 모른다. 알렉상드르 졸리앵의 말처럼, 인생엔 어쩔 수 없이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쉽게 낙담하지 않고 전투의 필연성을 잘 되새기면서, 잔혹한 맞수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좀더 수월하게 피해가는것인지도 모르겠다인간이라는 직업», 36-37).

 

이미 도엽은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쉽게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억에도 없는 유년 시절의 오른쪽 안구 적출 때문에 20여 년을 한쪽 눈으로 살았던 그가 나는 왜 외눈으로 살아야 할까?” “두 눈으로 본다는 건 무엇일까?”를 묻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더하여, 사춘기 때까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남몰래 간직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출발했다.

 

그는 좀더 자신의 특별한 취향을 존중했고, 하고 싶은 것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여유 있게 했다. 건강하게만 커 달라는 엄마의 소원대로 그는 다른 욕심 없이, 유유히, 건강하게 자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글씨를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단 한번 공부에 손을 대자 성적은 일취월장했다. 재수를 할 때는 전액장학금을 받고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천체 현상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더운 여름날 보충 수업이 있는 시간, “일식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수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일식을 보러 나갔다. 어느 겨울날은 월식을 보기 위해 친구를 새벽 3시에 불러내어 덜덜 떨며 구경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혜성이 온다고 해서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누나와 함께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오로라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꿈도 쟁여 놓았다. 그는 세상에서 대단해 보이는 무엇이 되는 게 꿈이 아니라 극지방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큰 고래와 오로라를 보는 게 꿈이었다. “고통, 공허, 위협이 엄습해 오는 것에 맞서 기쁨을 쌓는 일”(위의 책, 38)을 어려서부터 별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현재 자신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보통의 말기암 환자들처럼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과 그래도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 사이를 분주하게 걸어 다니기도 한다. 실은 모든 사람이 직면해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두드러진 현실, 바로 일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도엽과 일반인의 차이다. 또한 치료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정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의미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보내려 하는 것이, 불안에 떨며 병원을 떠날 줄 모르는 많은 암환자들과 도엽의 차이다.

 

희망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가족들이랑 산책할 때나 웃을 때,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하면서 웃을 때 정말 행복해요. 저도 참 신기해요.”

 

 

 

             골육종 발병 전 가족들과의 단란한 산행

 

작년, 이식이 끝나고 두 번째로 암이 재발했을 때, 도엽도 가족들도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TV에서 암환자들이 산에 열심히 올라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서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도엽도 엄마와 함께 집 앞 북한산을 올랐다. 가끔 누나들도 함께했다. 하루 두 시간 정도 산에 오르고 나면, 얼마나 힘들었던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지곤 했다. 항암치료를 한 직후 민머리에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산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파란 하늘과 내려다뵈는 풍경을 바라보며 엄마랑 누나들과 함께 과일을 먹으면 그것만큼 기분 좋고 상쾌한 경험이 없었다. 큰누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그 높은 곳에서 무섭다고 울상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엄마와 도엽과 작은누나는 배꼽을 잡고 웃곤 했다. 도엽은 아프다고 주눅 들긴 싫었다. 한 번에 1알 먹던 진통제를 이제 9알로 늘렸어도, 코를 이미 점령해 버린 암세포 때문에 자주 코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닦아내야 해도, 그는 순간순간 웃고 행복해한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이 남기고 싶은 글의 주제들을 생각해 내고 나에게 보내 놓는다. 아빠 공항, 기타, 별명, 강동 일식, 할머니, 별똥별, 소설, 귀신, 누나 언니, 영양제, 독립심.

 

그를 버티게 해주는 건 투지가 아닌 몰입이었다.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고, 지나치게 냐고 묻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삶의 기술이었다. 온 감각을 곧추세워 살아갈 시간은, 지나간 시간도 앞으로의 시간도 아닌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일깨우고 있었다. 그러자니 지금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우울하고 찡그린 채로 살기도 싫었다. 죽음의 위협 앞에 위축되기도 싫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몰려와도 나룻배에 태워 떠내려가도록 했다. 숨을 쉬는 동안만큼은 우울하고 고통스러워할 만한 기억과 정서에 붙들려 있기보다는 즐겁고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발견해 내려 노력했다. 그것은 삶의 유한성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대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각성된 눈 때문이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세계적인 죽음 연구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기암 환자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퀴블러 로스가 만난 환자들 중 모델 출신의 베스는 마흔둘에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었다. 암에 걸리기 전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암세포의 파괴력은 더욱 놀라웠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들과 소모적인 투쟁에 소중한 에너지를 모두 써 버리지 않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죽음을 긍정하고 수용하여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베스. 그녀가 남긴 시를 읽으며 나는 도엽의 몰입, 도엽의 삶의 기술을 떠올렸다. 햇살 속 산책, 친구와의 농담, 가족과의 웃음, 작은 친절,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 주어진 과제에의 몰입. 모두 이미 가질 수 있고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만 더해진다면.

 

눈부신 햇살 속을 거닐다 보면

살아서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합니다.

 

미용사와 약속이 있고

의사와도 약속이 있어요.

미용사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겠죠.

의사를 만나면 어떨지,

그건 잘 모르겠군요.

 

내 삶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 거겠죠?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요?

 

- 베스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중에서)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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