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이야기(11)

 

바라고 바라던 왕이 되다!(2)

– 하지만 치러야 할 값은 컸다 -

 

1.

 

남은 얘기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어떻게 해서 다윗이 다스리는 하나의 나라가 됐는가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본래 이스라엘과 유다는 별개의 나라였는데 다윗에 의해 하나로 통합됐다. 잠시 헤어졌던 형제가 재결합한 것도 아니었다. 그 과정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고 크고 작은 전쟁도 벌어졌다.

 

아브넬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군대와 요압이 지휘하는 유다 군대가 기브온에서 맞붙었다(사무엘하 2:12-13). 설화자는 누가 왜 이 전쟁을 시작했는지 밝히지 않고 그냥 두 군대가 기브온에 진을 쳤다고만 한다. 전쟁은 목적을 갖고 벌이는 정치행위다. 목적 없이 치러지는 전쟁은 없다. 전쟁이 벌어지면 승패와 상관없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가 생기는데 누가 목적 없이 전쟁을 벌이겠는가 말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전쟁을 시작했을까? 이번에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우선 이스보셋을 생각해보자. 그에게 전쟁할 이유가 있나? 있더라도 그럴 힘이 있었을까?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고 왕과 왕자들을 잃었다. 이스보셋이 왕이 됐지만 군사령관 아브넬이 실권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과 전쟁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또한 아브넬에게도 전쟁 동기가 없었다. 나라 재건에 힘을 기울여야 할 판에 전쟁은 무슨 전쟁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다윗에게는 이때가 이스라엘을 ‘정복’할 절호의 기회였을 거다. 생각해보자.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고 왕과 왕자들은 전사했다. 이스보셋와 아브넬이 있다곤 해도 전력이 결정적으로 약해졌다. 다윗에게 이때보다 더 좋은 때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터이다. 블레셋도 전쟁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속국’ 유다의 승리는 곧 자기들의 승리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추측이다. 성서 어디에도 이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다.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 추측의 타당성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

 

중요한 대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설화자가 전쟁의 진행 방식을 상세히 전하는 건 엉뚱해 보인다. 설화자는 양편에서 동수의 젊은이들이 나와서 결투하는 방식으로 싸웠는데 공교롭게도 양편 젊은이들이 모두 죽었고 그 다음에는 치열한 육박전에 벌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얘기가 전쟁의 원인이 뭔지, 누가 일으켰는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을까? 혹시 설화자는 다윗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게 아닐까? 독자들의 관심이 더 중요한 얘기에 모아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아브넬이 지휘한 이스라엘 군대가 패해서 도망치는데 요압의 동생 중 ‘들에 사는 노루처럼’ 달음박질을 잘 하는 아사헬이 아브넬을 바싹 뒤쫓았다. 아브넬은 도망치면서도 아사헬에게 더 쫓아오지 말라고, 그러면 죽이겠다고 경고했지만 공명심에 사로잡혔던지 아사헬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쫓아가다가 아브넬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다(사무엘하 2:18-23). 아브넬이 아사헬에게 “내가 너를 쳐 죽여서 너를 땅바닥에 쓰러뜨려야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내가 너를 죽이고 어떻게 너의 형 요압을 보겠느냐?”(22절)라고 말했지만 아사헬은 듣지 않았단다.

 

그 후 양편은 휴전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아브넬과 요압은 원수가 되고 말았다.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두 집안 사이의 복수의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됐다. 요압과 그 부하들은 아사헬의 시신을 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옮겨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들은 밤새 걸어서 헤브론에 이르렀는데 그때 아침 해가 떠올랐다고 했다(32절). 요압은 아침 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피를 부르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을 결심을 했을까, 아니면 반드시 아브넬을 죽여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며 이를 갈았을까?

 

그 후로도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의 전쟁은 오래 지속됐다(사무엘하 3:1). 다윗 집안은 강해졌고 사울 집안은 약해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야훼의 영이 줄곧 다윗과 함께 했는데 말해서 뭐 하겠나.

 

설화자는 두 집안 사이에 벌어진 전쟁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다윗이 헤브론에 있는 동안 낳은 아들들이 누군지 밝힌다(2-4절). 아히노암에게서 암논이 태어났고 나발에게서 길르압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압살롬이, 학깃에게서 아도니야가, 아비달에게서 스바댜가, 에글라에게서 이드르암이 태어났단다. 모두 여섯 아내에게서 여섯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중 집안을 밝힌 아내는 마아가뿐이다. 그녀는 그술 왕 달매의 딸이란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압살롬이 이복형제 암논을 죽이고 도망쳤을 때 밝혀진다(사무엘하 13장).

 

 

<출처: http://www.exploretheway.org/2-samuel-discussion-notes/2-samuel-chapter-2>

 

 

 

2.

 

두 나라 사이의 오랜 전쟁은 이스보셋의 궁전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으로 인해 종지부를 찍는다. 사건의 발단은 아브넬이 선왕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한 일이었다(사무엘하 3:7). 그가 리스바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스보셋에게는 그런 행위가 왕권을 노리는 ‘정치적’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는 거다. 유약한 왕 그 일로 인해 아브넬을 비난하자 그는 도리어 화를 내며 자기가 사울 집안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충성했고 “임금님[이스보셋]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지도 않았”는데 “이 여자의 그릇된 행실을 두고 나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것입니까?”(8절)라고 말했다. 새번역 성서는 이 구절을 리스바가 그릇된 행실을 한 것처럼 번역했지만 원문에는 “이 여자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겁니까?”(you reproach me over a woman)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다. 새번역 성서의 번역원문이 맛소라 텍스트인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그릇된 행실을 한 사람은 아브넬이었는데 그게 리스바인 것처럼 표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발언은 그 다음에 나온다.

 

“야훼께서는 이미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다윗 편을 들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이 아브넬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셔도 좋습니다. 하느님은 이 나라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서 빼앗아 다윗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다윗을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으로 삼으셔서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9-10절)

 

정말 아브넬이 이렇게 말했을까? 이것은 아브넬의 말이 아니라 신명기 역사가가 자기 생각을 아브넬의 입을 빌려서 한 말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가진 군인이 어떻게 사울 집안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군사령관이었겠나. 다윗은 사울의 친척인데 말이다. 하지만 허울뿐인 왕 이스보셋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서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아브넬이 사울의 후궁을 험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을 수 있다. 그가 했다는 연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겠다는 아브넬의 말은 곧 이스라엘을 다윗의 봉신국(封臣國)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스바를 범한 아브넬의 행위는 사울 집안과 인연을 끊으려는 의도적인 행위였을까? 그가 이스보셋의 항의를 받아 화가 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려 했을까? 아니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려고 일부러 리스바를 범했을까? 둘 다 가능한데 어느 편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그는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와 언약을 세운다면 이스라엘을 그에게 바치겠다고 제안한다(12절). 다윗이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언약을 맺기로 약속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를 만나러 올 때 사울의 딸이자 과거 자기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 오라는 게 그것이었다. 안 그러면 자기를 보러 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 이혼 절차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다윗이 미갈과의 이혼에 동의했을 리 없으니 법적으로는 둘이 여전히 부부였을까?

 

다윗이 내건 조건은 아브넬이 리스바를 범한 것과 동기가 같다. 아브넬이 허약한 왕 이스보셋 대신 자기가 왕이 되려 했거나 실질적으로는 자기가 왕임을 세상에 보여주려 했던 것 같이 다윗도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음을 세상에 알리려고 사울의 딸이 미갈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이스보셋은 미갈을 데려왔다. 그때 그녀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의 아내로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발디엘은 졸지에 아내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그는 미갈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서 바후림까지 따라왔다가 아브넬이 돌아가라고 하자 그때서야 돌아갔다니 말이다. 권력자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불쌍한 사람이 여기도 하나 있다. 아버지와 본인 이름 밖에는 남겨진 게 없는 발디엘이란 사람, 그는 이 일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쓸쓸하게 혼자 살다 외롭게 죽어갔을까?

 

우리의 설화자는 발디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 번 일장 연설한 얘기를 전하는데 그 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여러분은 이미 전부터 다윗을 여러분의 왕으로 모시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제 기회가 왔습니다. 야훼께서 이미 다윗을 두고 ‘내가 나의 종 다윗을 시켜서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지배와 모든 원수의 지배에서 구하여 내겠다.’ 하고 약속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17-18절)

 

언제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윗을 왕으로 모시려고 애썼나? 그런 적이 있던가? 적어도 텍스트만 두고 말하면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더욱이 야훼가 다윗에게 한 약속을 아브넬이 언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아브넬이 그걸 무슨 수로 알았으며, 알았다면 왜 그 동안 그는 사울을 막지 않았을까? 사울의 행위는 야훼의 계획에 역행하는 것인데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됐단 말인가? 그럴 리 없다. 따라서 이 연설 역시 신명기 역사가의 말로 보는 게 맞겠다.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중지를 모아서 다윗에게 전달하려고 헤브론으로 갔다. 다윗은 그 일행을 환영하며 잔치를 베풀었단다. 잔치가 끝나자 아브넬은 모든 게 원만히 해결됐으니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 세우는 일만 남았다면서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여기서 일이 끝났다면 그런대로 헤피 엔딩이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브넬의 손에 동생 아사헬을 잃은 요압이 있었던 것이다(22-30절). 아브넬이 헤브론에 머물 때 요압은 거기 없었다가 나중에 아브넬이 거길 떠났다는 얘길 듣고 다윗에게 달려가 항의했단다. 어떻게 그를 그냥 돌려보낼 수 있냐고, 그는 다윗을 속이고 헤브론을 정탐하러 온 거라고 말이다. 설화자는 이에 다윗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하지 않는다. 이 침묵이 다윗의 것이든 설화자의 것이든 의도적으로 보인다. 안 그런가?

 

요압은 곧 사람을 보내서 아브넬을 데려왔다. 아브넬도 의심하면서 돌아왔을 거다. 요압은 아브넬과 조용히 얘기나 하려는 듯이 성문 안으로 데려와서 그를 찔러 죽였다. 아브넬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갔다. 사울이 죽은 후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고,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함으로써 실질적인 권력자임을 만천하에 보였으며, 다윗과의 협상을 주도함으로써 통일왕국에서도 고위직을 맡을 게 분명해 보였던 그가 이렇듯 허망하게 죽어간 거다.

 

그 다음에 다윗이 보인 행동은 상식적인 독자라면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아브넬이 요압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이렇게 외쳤단다.

 

“넬의 아들 아브넬이 암살당하였으나 나와 나의 나라는 야훼 앞에 아무 죄가 없다. 오직 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 아버지의 온 집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 요압의 집안에서는 고름을 흘리는 병자와 나병환자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다리 저는 사람과 칼을 맞아 죽는 자들과 굶어 죽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28-29절)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암살당했는데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야훼 앞에 죄가 없다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누가 뭐라고 했나? 다윗에게 책임을 물은 사람이 있었나? 이 말만 갖고 보면 누군가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말했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경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 그런가? 게다가 요압 집안에 퍼부은 극렬한 저주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아브넬을 죽인 게 잘한 일이 아니라 해도 그렇지, 요압 집안에 병자와 장애자가 끊이지 않을 거라니, 이건 ‘오버’도 보통 ‘오버’가 아니다.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돌아켜보자. 아브넬과 다윗이 한 약속에 따라서 다윗이 이스라엘과 언약 맺은 건 있을 법한 일이다. 사울의 죽음으로 국력이 약해진 이스라엘로서는 다윗의 봉신국이 되는 게 합리적이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와중에 아브넬이 왜,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점이다. 설화자는 동생 아사헬을 죽인 데 대한 복수로 요압이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는 다윗이 아브넬을 그냥 돌려보냄으로써 복수할 기회를 놓쳤다고 다윗에게 따졌단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군사령관 요압이 왕인 다윗에게 따지고 불평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말이다. 다윗이 이스보셋처럼 유약한 왕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더 이상한 점은 항의하는 요압에게 다윗이 호통 치기는커녕 한 마디로 대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침묵에 숨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다윗이 아브넬을 죽이려는 요압의 의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게 아닐까 말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아브넬의 존재는 다윗이나 요압 그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다윗에게는 이스라엘의 실질적 권력자인 그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나았을 터인데 이는 요압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군사령관 후보자가 두 명이 되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아브넬의 죽음을 다윗과 요압의 공모의 산물로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추측이긴 하지만 말이다. 설화자가 이 얘기를 마무리하면서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아브넬이 그들의 동생 아사헬을 기브온 전투에서 죽였기 때문이다.”(30절)라고 확인하듯 말한 것도 이런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일단 의심하길 시작하면 끝이 없다.

 

하지만 이와 반대의 추측도 가능하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말이다. 아브넬의 죽음은 다윗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자진해서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려는 사람을 뭣 때문에 죽이겠냐는 거다. 텍스트는 세 번이나 아브넬이 다윗과 만난 후 “평안히 떠나갔다”고 적었다(21, 22, 23절). 요압에겐 개인적인 복수심 이외에도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면 군사령관 자리를 아브넬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도 있겠다 싶다(S. McKenzie, King David: A Biograhy, 119). 이 또한 추측이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사울과 요나단 때처럼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라고 명령했다(31절). 그는 백성들과 함께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32절). 그는 시인답게 그를 위해서도 조가를 지어 불렀다. 백성들이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35절). 그래서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서 그 일을 좋게 여겼다. 다윗 왕이 무엇을 하든지 온 백성이 마음에 좋게 받아들였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에게서 비롯된 일이 아님을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깨달아 알았다.”(36-37절).

 

이게 다윗의 목적이었을까?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가를 지어 부르게 하고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이유가 이거였을까? 온 백성이 그의 행위를 좋게 여기고 아브넬의 죽음이 다윗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을까? 다윗의 맘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만 더 얘기하자. 다윗이 아브넬을 위해 만든 조가는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라는 말로 시작된다(33절). ‘어리석은 사람’은 히브리어로 ‘나발’이다. ‘나발’? 다윗에게 대들었다가 야훼에 의해 죽임당한 갈렙 족속의 유지의 이름이 나발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지 않았던가.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을 보통명사로 보면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가 되지만 고유명사로 보면 “어찌하여 나발인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가 된다. 이를 언어유희로 보면 설화자는 아브넬도 나발처럼 죽었음을 지나가듯 슬쩍 언급한 게 아닐까? 이 역시 추측이지만 말이다.

 

3.

 

이제 누가 남았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다 사라졌다. 한 사람, 이스보셋을 제외하면 모두 불귀의 객이 됐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실권자는 아니었을지라도 사울의 후계자로서 적법하게 즉위한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따라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적법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왕좌를 비워줘야 했다.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이 이스라엘에 전해지자 이스보셋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온 백성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단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까? 다윗과의 협상을 주도하던 아브넬이 살해당함으로써 협상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진행될까봐 두려웠을까? 아니면 다윗과의 협상이 깨져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될까봐 두려웠을까? 이스보셋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이유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자기를 보호해주던 군사령관이 왜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 ‘이젠 내 차례인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정작 그를 암살한 사람은 내부자였다. 이스보셋의 군대에 바아나와 레갑이란 이름을 가진 지휘관이 있었는데 이들은 림몬의 아들이었단다(사무엘하 4:1-2). 이들은 이스보셋을 죽이려 왕궁으로 갔다. 때는 매우 더운 대낮이었고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밀을 가지러 온 척하고 궁전에 들어간 후 잠자는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잘랐단다. 이 대목에서 텍스트는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6절에서는 배를 찔러서 죽였다고 했는데 7절에서는 잠자는 왕의 머리를 잘랐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골리앗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가 무릿돌을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가 곧 이어 칼로 머리를 잘렸다고 말하니 말이다.

 

그들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밤새 헤브론으로 가서 그걸 다윗에게 내놓으며 “임금님의 생명을 노리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를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야훼께서 높으신 임금님을 도우시려고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8절)라고 말했다. 아무리 사울과 다윗이 우호적이 아니었다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보상을 기대하고 한 과장된 말로 들린다.

 

바아나와 레갑에겐 ‘학습효과’라는 게 없었나 보다. 과거에 다윗은 사울을 죽였다는 아말렉 젊은이에게 보상은커녕 그를 죽이지 않았던가. 바아나아 레갑은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윗은 과거 사울의 경우를 얘기하며 바아나와 레갑을 죽이고 그들의 손과 발을 잘라낸 다음 그들 시신을 헤브론 연못에 매달았단다. 머리만 남은 이스보셋의 시신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묘지에 묻었다(9-12절).

 

여기서도 사울, 요나단 및 아브넬의 경우와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세 사람 모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방해되는 인물들이다. 사울과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요나단은 왕위 계승자였으며 아브넬은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거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사령관인데 그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그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사무엘하 2:8-9]). 다윗은 할 수만 있으면 이들을 제거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다윗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첫째 사울이 야훼에 의해 기름 부음 받은 왕이란 사실이었고, 둘째 이들을 처치했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들은 다윗의 손을 거치지 않고 ‘죽어줬다.’ 사울은 아말렉 젊은이가 죽였고 요나단은 블레셋 군인에 의해 죽었다. 아브넬은 요압이 죽였고 이스보셋은 바아나와 레갑이 죽였다. 다윗 손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인 아말렉 젊은이와 이스보셋을 죽인 바아나와 레갑을 죽였다. 요나단은 누군지 모르는 블레셋 군인에게 죽었으니 처벌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죽이지 않았다. 요압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고 다윗 생전에 내내 군사령관으로 재직했다. 왜 요압만 특별대우를 받았을까? 요압은 야훼의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은 아브넬을 죽여서 그랬을까? 이스보셋도 이스라엘의 왕이긴 했지만 야훼에게 기름 부음 받았다는 얘기가 없지 않은가. 요압은 다윗에게 중요한 인물이지만 나머지는 그저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글쎄…….

 

여기서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조얼 베이든은 이 모든 죽음에 다윗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본다(J. Baden, The Historical David, 136-137). 그렇게 추측할만한 여지는 있다다. 하지만 텍스트 상의 증거는 없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다윗이 요압에 대해 그토록 지독한 저주를 퍼부었지만 실제론 아무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그의 알리바이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정말 이들의 죽음과 다윗은 무관할까? 적어도 아브넬의 경우는 의심할 여지가 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에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블레셋이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이처럼 불안한 상황은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임금님과 한 골육입니다. 전에 사울이 왕이 되어서 우리를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다가 다시 데리고 돌아오신 분이 바로 임금님이십니다. 그리고 야훼께서 ‘네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바로 임금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사무엘하 5:1-2)

 

민심은 갈대와 같다지만 이건 지나치다 싶다. 그들은 “우리는 임금님과 한 골육”(we are your bone and flesh)이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스라엘과 다윗이 ‘한 골육’이 아니거니와, 다윗이 이스라엘의 목자(=왕)가 되리라는 야훼의 말을 믿었다면 그 동안은 왜 그를 옹립하지 않았단 말인가. 좌우간 그들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 외에 다른 게 없었으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1절에서 ‘모든 이스라엘’이 헤브론으로 올라갔다는 말이 무리하다고 여겼던지 3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으로 갔다고 말한다. 다윗은 이들을 맞아들여 함께 야훼 앞에 나아가 언약을 세웠다. 거기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3절).

 

이렇게 해서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첫 왕이 됐다. 들에서 양을 치다 사무엘에 의해 야훼에게 선택됐음을 알았고, 몇 명의 가족들 앞에서 기름 부음 받은 이래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광야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고 원수 블레셋의 용병 노릇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다. 그 동안 그는 야훼의 약속을 의심한 적이 없었을까? ‘의심’은 아니더라도 약속이 언제 성취될지 모르고 지체되어 야훼를 원망한 적은 없었을까? 중요한 점은, 그가 야훼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넋 놓고 기다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야훼가 자기 머리에 왕관의 씌워주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는 않았다. 야훼가 그런 방식으로 계획을 이룬다고 믿지 않았던 거다. 그는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 사람이다. 무기의 힘과 치밀한 계획으로 자기가 갈 길을 열어나갔다. 때론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그런 끈질긴 노력 끝에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됐다. 그는 지혜와 술수로,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런 다윗을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모세와 더불어 구약성서가 가장 높이는 다윗이 한 꺼풀 벗겨보면 이런 추악한 면이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게 다윗의 전부는 아니다. 다윗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이제 겨우 오르막길이 끝났고 내리막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다윗은 추락한다. 추락하는 그에게 날개가 있었을까?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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