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비평 모음(2)

김홍도 목사의 '저주'로 끝난 설교

 

 

편집자 주/이 글은 ‘세습논쟁’이 한창일 때 쓴 글이다.

 

 

교회의 ‘세습문제’와 기독교 내부의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 사회적으로 불거지면서, 안팎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대한 김홍도 목사의 신학적 방어 내지는 반격이 설교의 형태로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이라는 제목으로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김홍도 목사는 이들은 바로 자유주의 신학의 신봉자들과 좌경세력, 공산주의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세습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들의 진의는 교회 파괴에 있고,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으려는 ‘적 그리스도 마귀’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나아가 김 목사는 이례적으로 이 설교 테이프를 전국교회에 발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설교는 다음과 같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저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요사이 제가 읽은 책이 있는데 컬크 커크라는 사람이 쓴 the devils alphabet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악령의 역사와 그 결과를 설명하는데,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난하는 냉소주의자들의 자손들이 나중에 두고 보면 불구자가 되고 정신질환자가 되어서 고통 당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그 부모가 사탄 마귀에 사로잡혀서 냉소주의자가 되고 교회를 핍박해서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세습 논쟁으로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탄 마귀에 사로잡힌 냉소주의자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며, 그 결과로 자손이 마땅히 육신적인 질고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매우 악랄한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신학적 논리는 우선, 어떤 눈먼 이의 현실을 두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구의 죄입니까?’라고 묻고 ‘그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하자 ‘아니다’ 하신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육신의 고통과 그 정신의 방황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아픔에 마음을 기울여 생명과 사랑의 손길을 펼치기보다는 사탄 마귀의 간계에 휘둘린 심판의 결과라고 보는 그의 마음속에는 세습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이 강렬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바로 되기를 절절히 바라는 이들을 냉소주의자로 몰아 부치면서 자신이야말로 교회의 진정한 수호자라고 여기는 것은 어찌해서 교회의 세습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지 그 까닭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또는 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그 뜻을 깊이 헤아리는데 필요한 성서의 말씀을 세습을 비판하는 세력을 비난하고 저주하며 공격하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신도들의 신학적 무지나 신학적 사고의 부족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성서적으로 포장하고, 교회의 순결함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이 된 이해관계를 방어하는데 힘을 쏟는다면 이것은 말씀에 대한 폭력이자 신도들의 신앙에 중대한 해악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의 설교가 어떤 문제와 모순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써 그의 신학적 관점이 오로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에 어떻게 주력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습에 대한 논쟁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세습에 대한 비판을 적 그리스도의 행위로 낙인찍고 그에 가담하는 이들은 모두 대를 이어 불구와 정신질환을 겪을 각오를 하라는 것은 다중에 대한 명백한 위협과 공갈 협박이며, 이러한 교설(狡說)이야말로 교회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왜곡

 

김홍도 목사는 일곱 촛대와 일곱별을 교회와 교회의 목자로 비유하면서, 이토록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조직과 그 지도자를 공격하는 것은 그 배후에 사탄의 음모가 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금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모습은 세상 교회를 돌보시고 주관하시는 것을 의미하며 오른손의 일곱별은 주님의 교회들에 세우신 하나님의 사자 혹은 목사들을 의미합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에서도 예수님이 교회와 교회에 세우신 종들을 얼마나 귀중히 보시고 사랑하시고 계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오른손에 붙잡은 종들을 해치려는 것은 예수님의 손에 손상을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현실은 초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핍박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무수한 신앙의 배교자(背敎者)들이 생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들은 로마제국의 탄압으로 신앙의 확신을 잃고 흩어졌으며 선교운동의 중심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요한 조차 밧모섬에 갇혀 더 이상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을 상실하고, 절망이 지배하는 세대에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밧모섬에서 놀라운 계시를 받게 됩니다. 지금 거센 힘으로 신앙인들을 위협하는 마귀의 세력은 곧 멸망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역사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말론’은 이 지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패배할 것을 예고하고, 이에 굴하지 말고 믿음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격려의 메시지를 신학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곱별과 일곱 촛대는 바로 이 풍전등화와 같은 시대에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들을 의미하는 상징입니다. 하늘은 어둡고 바람은 거세어 별은 보이지 않으며 촛불은 꺼질 것만 같은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별과 촛대를 손에 쥐고 계시니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별은 교회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요, 촛대는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영입니다. 그러니 김홍도 목사는 별을 자신과 같은 목회자로, 촛대를 교회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맥락을 완전히 잘못 읽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바로 이 수호천사들을 통해 교회에 보내는 형식을 빌고 있습니다. 이 일곱교회 가운데 오로지 핍박을 인내로 견뎌낸 빌라델비아 교회를 빼놓고는 모두 회개하라는 질타를 받았으며,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바를 들어라’라고 일갈하고 계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을 요한계시록은 무섭게 일깨우시면서 이 핍박과 혼란,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는 바로 된 믿음을 회복하지 않을 때에는 그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권위와 자격과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재벌 기업 못지않게 ‘거부(巨富)가 된 교회의 기득권’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일곱 별과 일곱 촛대는 교회의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성서적 상징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의 현실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치열하게 되돌아보도록 만들어 주시는 근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김홍도 목사는 일곱 별을 교회의 목자로 정의하고 자신과 동일시했고 그로써 자신에 대한 도전은 곧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 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이며 이들을 통해서 교회 전체에 질타의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교회가 귀중한 것은 강조하고 있지만, 교회가 바로 서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질책하고 계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초장(初章)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한 교회의 현실에 대한 뼈아픈 고발과 지적, 그리고 이로써 이루어져야 할 미래의 진로에 대하여 밝혀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홍도 목사가 요한계시록의 본문에서 취해야 할 바는 세습을 주장하는 교회의 현실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아닌가를 깊이 묵상하고 돌아보는 일에 있을 것입니다.

 

김홍도 목사는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교회가 많이 세워진 나라는 문명하고 잘 사는 나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가난하고 문맹자가 많으며 얼마나 폭력이 난무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이들 나라들이 기독교를 앞세워 가난한 제3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착취하면서 부를 모은 역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교회가 이들 나라를 잘 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이들의 부정한 부에 대해서 교회는 도리어 크게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그는 교회가 너무도 중요한 곳이기에 이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사탄 마귀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면서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사탄 마귀는 세상의 권세요, 이 권세에 아부하거나 빌붙어 본래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만드는 세력이며 따라서 세상의 부와 권력의 크고 강함을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실로 사탄에 투항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세습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세상적 권세와 기득권을 대를 이어 쥐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1대 목사가 뼈를 깎고 피를 토하면서 개척하고 키운 교회의 기득권을 다른 누구에게 상속하기는 내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습의 절차를 완료하는 순간, 그 교회는 제1대 목사의 집안에 의해 사유화(私有化)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교회의 거의 모든 중요한 결정이 바로 이 사유화된 체제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로써 교회의 진정한 기능은 날이 갈수록 왜곡되고 말 것입니다. 사유화된 체제의 기득권 세력의 이해가 앞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운명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던 교회가 세상의 욕망과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순간부터 중세 가톨릭 교회는 부패하고 무너져 내렸고, 종교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중추를 이루는 대형교회의 현실도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의로움을 위해 헌신하고 섬기는 모습이 아니라, 어느새 재벌 기업 못지 않게 '거부(巨富)가 된 교회의 기득권'을 놓고 주도권 쟁탈전에 빠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두고 일곱 별과 일곱 촛대를 손에 쥐고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실런 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녀사냥식 논리

 

김홍도 목사는 교회의 세습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하는 세력들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력을 모두 마귀로 몰아부치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회와 목사의 비판세력은 모조리 ‘빨갱이’인 데다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러한 신학적 개념도 잘못된 것입니다) 신봉자’로 낙인찍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개정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를 빨갱이니 공산주의자니 좌경분자니 하고 몰아부치는 것이 어떤 사회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우리의 분단 역사에서 마녀사냥의 비극을 낳은 냉전논리입니다. 김홍도 목사는 바로 이 냉전논리를 자신을 방어하는데 철저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목사를 비판해? 너 빨갱이지?’ 하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상대의 비판을 이해하는 자세는 실로 어처구니없을 지경입니다. 교회가 자신의 기득권을 대를 이어 상속시키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빨갱이들의 준동' 쯤으로 몰아붙이려 하는 것은 반대파를 빨갱이로 찍어 매장해 버린 과거 군부정권들의 독재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습을 통한 교권 독재를 실현하려는 판이니 다른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는 난데없이 공산주의 사상의 무신론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교회와 공산주의는 서로 상극인데다가 고생하는 작은 교회 목사들의 눈에는 대형교회가 곱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좌경사상의 음모를 모르고 편승하여 대형교회를 파괴하는데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대형교회의 모순과 비리를 고발하고 지적하는 일체의 행위는 공산주의 사상의 음모에 자기도 모르게 휘말려 들어간 결과라는 논법입니다. 광림교회를 비롯한 대형교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반 평신도들조차도 이러한 논법에 의하면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조종당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는 칼 마르크스가 ‘기독교가 시대의 아편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거론했는데, 마르크스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교회가 현실의 모순은 은폐하면서 죽고 나면 천국에 간다고 세뇌시켜 현실의 부정의에 저항하는 능력을 박탈해버리고 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도리어 우리가 새겨들어 교회가 그러한 아편장사가 되는 우를 범치 않도록 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대체로 독재에 아부해왔고,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적 현실에 침묵해왔으며 역사의 변화에 눈을 감아왔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들어온 신도들의 마음에 신앙이라는 이름의 아편을 놓아줌으로써 현실의 모순에 잠잠케 했고 이기적인 개인주의 신앙을 키워놓았습니다. 그래놓고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들의 소란’으로 몰아부 칠 수 있는 것입니까?

 

대형교회의 문제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은 좌경분자!

 

김홍도 목사는 교회를 비판하는 세력을 친북세력으로까지 몰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논법이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완수를 위해서는 ‘먼저 밥통을 잡으라’(경제 장악)하는 것과 ‘마이크를 잡으라’(언론 장악)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론기관에 좌경분자들이 많이 들어가 마이크를 잡고 있고 펜대를 잡고 있고 기회만 있으면 교회 특히 대형교회를 흠집내고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책상 위에는 한국의 대형교회와 목사의 이름이 있고, 교세까지 다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좌경분자들, 좌경 운동권 사람들의 타도의 목표물은 보수정당, 보수언론, 보수재벌, 보수교회입니다. 이들은 남한 공산화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대형교회의 문제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은 김정일을 추종하는 좌경분자가 되는 것이며, 남한 공산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교회부터 타도의 목표물로 정한 세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무슨 정신나간 논법입니까? '좌경언론과 운동권 사람들'의 책동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인데, 이러한 그의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사고가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이들이 적화통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래서 홍경래라든지 전봉준 등을 역사의 주류세력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경래나 전봉준 등은 역사의 주류가 아니라, 주류의 기득권에 저항한 세력이었으며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그 한 목숨 던졌던 이들입니다. 적화통일과 홍경래, 전봉준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들의 역사적 족적을 귀중히 여기면 그것이 바로 적화통일 분자가 되는 것입니까?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 전봉준이 감당했던 시대의 모순은 봉건체제의 수탈과 외세의 침탈이었습니다.

 

이것은 민족적 요구에 있어서나 역사의 진로를 바로 잡기 위해서나 모두 치열하게 대결해야 할 바였습니다. 그런데 전봉준을 거론하는 것이 곧 적화통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였다니 가공할 논리입니다. 게다가,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이 이들의 적화통일에 필요한 작업이라는 식으로 몰아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완전한 왜곡입니다. 김홍도 목사는 교회적 기득권을 유지할 방법으로 선택한 세습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이들을 위해 이렇게 반대세력을 좌경 적화통일 분자로 몰기 위해 거의 광분(狂奔)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여집니다.

 

좌경분자들이 교회를 까부수려고 하는 음모

 

김홍도 목사는 또한, 교회에 대한 비판세력은 교회를 파괴하는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신학 신봉자이자 이들은 마귀를 따르는 세력이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보태 가지고 교회를 비난하고 주의 종을 고소하면서 어떻게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세습에 진력하려는 이유는 은퇴 후에도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취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기득권이란 무엇보다도 거대한 돈입니다. 대형교회 가운데 자신의 예산과 수입지출 내력을 투명성 있게 공개할 수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재정문제에 목사가 전권을 행사하면서 사유재산처럼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는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것이 세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교회의 운영에 대한 주도권이 제3의 인물에게 이동하게 될 때, 기득권은 무너지고 말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습론자들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하여 그토록 세습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자신의 재정상태를 철저하게 공개하고, 재정문제에 대하여 목사의 권한이 배제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는 한, 사실 세습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 기득권은 주도하는 세력만 바뀔 뿐이지 구조적 모순은 여전히 유지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세습 반대 이유들에 대한 논박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는 오로지 세습대상이 되고 있는 후임자인 아들이 자격이 있다고 하는 점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교육받고 후임자가 된 것이 세습입니까? 이것이 좌경분자들이 교회를 까부수려고 하는 음모인 것입니다.’ 김홍도 목사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까부수고"라는 식의 저열한 단어를 설교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거니와, 세습 비판의 초점이 아들이 아버지의 후광, 또는 영향력을 업고 대형교회의 상속자가 된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그의 논리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세습논의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사탄 마귀

 

그토록 자격있는 아들이라면, 그도 개척교회를 통해서 성장하도록 할 것이며 목사 가족의 사유재산처럼 대를 이어 넘기는 식으로 그 아들의 명예를 이토록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아버지 목사로서 선택해야 할 길이 아닌가 합니다. 그 아들 역시, 분연히 일어서서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상황은 바로 잡혀 나갈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저주로 끝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교회의 세습논의를 비판하는 세력들을 얼마나 미워하고 적대하고 있으며 사탄 마귀로 몰아 징계하고 싶어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목사가 이래서야 안 되지요. 대형교회의 세습은 대형교회의 모순과 비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발상이라는 점에서 철저한 개혁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습과 상속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들의 사유물로 전락시키려는 세력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설교를 통해, 듣는 이들의 마음에 생명과 은혜를 주지 않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자기의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이 과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앞세우는 욕심은 자기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부디, 세습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추악한 문제로 내흥을 앓고 있는 교회와 목사들은 늦기 전에 이 모든 사태를 바로 잡고 더 이상 교회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신도들을 시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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