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정담(15)

 

말씀전례’, 그리고 음악

- 북 콘서트 트루에 오르겔과 함께 하는 요한복음 산책곡목해설 -

 

 

모차르트(1756-1791)

아베 베룸’ K. 618

 

모차르트는 1783년 미사 C단조를 작곡하다가 중단한 후 8년 동안 종교 음악을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은 그가 죽은 1791617일 바덴에서 성체성혈대축일에 초연되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인생의 1/4에 해당하는 8년이란 긴 시간의 침묵 끝에 아베 베룸을 작곡하였고, <레퀴엠>을 작곡하다가 다 끝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물론 아베 베룸<레퀴엠> 그 사이에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27번 내림나장조, 오페라 <마술피리><티토 황제의 자비> 등의 작품이 탄생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베 베룸은 모차르트의 생애 또는 그의 종교 음악에 있어서 그 의미가 적다고 말할 수 없는 곡입니다. 라틴어와 한글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Ave verum corpus,

Natum de Maria Virgine,

Vere passum, immolatum

In cruce pro homine,

Cujus latus perforatum

Unda fluxit et sanguine,

Esto nobis praegustatum

In mortis examine.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성체께 찬미 드립니다

진실로 고통을 당하시고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체여

찔리신 옆구리에서는 물과 피가 흘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저희가 당신을 본받게 하여 주십시오.

 

 

 


 

아베 베룸46마디의 짧은 곡입니다. 연주시간이 4분을 넘지 않는 곡인데 모차르트는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소토 보체’, 부드럽고 여린 소리로란 단 하나의 악상 기호 이외엔 아무런 연주 지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반주 또한 오르간과 현악합주만 썼을 뿐 금관과 목관 악기 모두를 배제했습니다. 더 이상 덜어낼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쓴 것입니다.

 

라틴어 아베안녕하세요또는 찬미 드립니다라는 인사말이고, ‘베룸진실한또는 참된이라는 뜻이며, ‘코르푸스을 뜻합니다. ‘아베 베룸1300년경에 교회기도문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이후 다양한 버전이 생겨났습니다.

 

21세기 한국교회 교인들에겐 4성부가 동시에 움직이는 찬송가 스타일이 자연스럽겠지만 모차르트 시대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당시의 눈으로 보자면 천재이자 이미 대가 반열에 올랐던 모차르트가 아베 베룸을 대위법 기법을 일체 배제한 채 모든 성부가 함께 움직이도록 곡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주목을 끌었지 싶습니다.

 

1791년 봄에 모차르트의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바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모차르트는 아내를 보러 몇 차례 바덴을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친구 안톤 슈톨이 합창단 지휘자로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안톤 슈톨에게 헌정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세상에서의 사실상의 마지막 종교 음악으로 작고 소박한 아베 베룸을 남겼습니다.

 

바흐(1685-1750)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1> 사단조 BWV. 1001번 프렐류드

 

많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언제 작곡되었는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바흐의 자필 필사본(오리지널 악보가 아니라 바흐가 정서(淨書)한 악보)에는 1720년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는 1720년에 작곡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 정서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곡은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작곡되었는지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 곡은 요구하는 바이올린 테크닉이 너무 어려워서 당대 연주자들 중에서는 거의 연주가 불가능했습니다. 바흐는 젊은 시절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를 겸할 정도로 이 악기에 대해 정통했습니다.

 

 

 

 

 

바흐의 자필 악보는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소나타는 매우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는데 반해 파르티타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인데, 바흐는 이 둘을 교대로 배치하는 것으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파르티타는 원래 춤곡이었고, 아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로 구성이 됩니다. 후대 사람들은 그의 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과 함께 이 곡을 바흐가 남긴 음악사상 최고의 산물 또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신구약성서라고 극찬했습니다.

 

1번 소나타 사단조 BWV. 10014악장으로 구성됩니다. 3악장만 내림나장조이고 1,2,4악장은 모두 사단조입니다. 오늘 연주할 1악장 아다지오는 22마디의 짧은 아다지오 악장입니다. 이 악장에서도 바흐는 중음주법에 의한 화음과 분산화음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파르티타 2번 라단조 BWV. 1004번인데 이 중에서도 5악장 샤콘느는 따로 연주가 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부조니는 이 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였고,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음반을 남겼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명연으로는 이 곡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알린 요제프 시게티와 헨릭 쉐링, 나단 밀스타인, 요한나 마르치, 아루투르 그뤼미오 등을 꼽습니다.

 

바흐(1685-1750)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BWV. 867. 프렐류드

 

바흐의 24곡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오랫동안 초보자 교재로만 취급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흐가 학습 중인 젊은 음악도들이 유익하게 이용하고 숙달된 사람들이 소일거리로 삼을 수 있도록썼다고 악보에 명토박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바흐는 24곡의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을 1722년에 작곡했는데 20년이 지난 1742년에 시즌 2’를 발표합니다. 또 다시 같은 형식으로 24곡을 작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라고 할 때는 48곡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러나 실제 음반을 보면 1집과 2집을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바흐의 위대성은 학습 중인 젊은 음악도들의 교육용으로 작곡했지만 후대 음악가들이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유하면서 바흐의 48개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구약성서라고 치켜세울 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연주할 곡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의 제22번 내림나단조 곡인 BWV.867번의 프렐류드입니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

<성 크리소스톰의 전례> OP.41. 케루빔의 찬가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교회 출석을 빠지지 않고 하는 소위 독실한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끔 교회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러시아 정교회의 전례나 음악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3년 동안 그에게 막대한 지원금을 후원한 폰 메크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이 작품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믿음(신앙)은 매우 커다란 행복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해오고 잇습니다. 나는 종종 전례 의식에 참가하곤 합니다. 그리고 제 사견이지만 정교회에서 불리고 있는 전통적인 Liturgy of St. John Chrysostom은 위대한 예술 작품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전례에 가까이 참석한다면 영혼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1878년에 작곡을 시작한 <성 크리소스톰의 전례>15곡으로 구성됩니다. 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요한 크리소스톰(347년경-407)은 그리스 정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인 중 한 사람입니다. 사치한 사제들의 개혁을 주장했고, ‘황금의 입이란 애칭을 가졌을 만큼 그의 설교는 당대에 유명했는데 아직까지도 로마서를 비롯한 수백 편의 설교가 남아 있습니다. 그가 남긴 리투르기, 전례는 성 야고보와 바실리아의 것과 함께 러시아 정교회의 3리투르기라 부릅니다. 야고보와 성 바실리아의 것이 특별한 날에만 사용이 가능한 것에 반해 크리소스톰의 리투르기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미사에서 악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전통을 확립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현대 작곡가인 러시아의 그레차니노프 등은 모두 이 곡을 무반주 합창곡으로 작곡하였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성 크리소스톰 전례>는 디아콘의 선창이라는 교회의 전통 양식이 빠져 있고, 서구적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만 러시아적인 숨결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음악평론가 이순열은 이 곡에 대해 그지없는 경건함과 대지의 심저에서 빚어져 나온 듯 한 무한한 깊이 등 키예프 동굴 수도원에서 러시아 교회 음악의 정수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평음 남겼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러시아에 창궐한 콜레라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동성애 때문에 <명예법정>에 소환되어 5시간의 심리 끝에 자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는 사실이 1978년에 밝혀졌습니다. 그 기록은 그가 비소란 독약을 사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동성애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차이코프스키는 결국 그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결혼을 했으면서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했고, 게다가 교회까지 성실하게 다니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의 신앙과 음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성 크리소스톰이란 위대한 성인과 그가 남긴 리투르기’(전례)를 가지고 잊을 수 없는 명곡을 남겨 후대 사람들에게 그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들을 음악은 6째 곡인 Hymn of the Cherubim(케루빔의 찬가)입니다. 연주는 발레리 폴란스키가 지휘하는 The USSR Ministry Of Culture Chamber Choir1998년 녹음입니다.

 

세자르 프랑크(1822-1890)

생명의 양식

 

세자르 프랑크는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나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기 위해 프랑스로 귀화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는 1871년 댕디, 뒤파르크, 쇼송 등 이른바 프랑크파라 불리는 젊은 작곡가들을 이끌고 프랑스 국민협회를 결성하여 가벼운 오페레타에 경도되었던 주류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고전주의 순수 음악의 부활에 심혈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64살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교향곡 1번 라단조>, <현악4중주 라장조>, <피아 5중주 바단조>, <오르간을 위한 환상곡 다장조> 등이 유명합니다. 그는 바흐, 멘델스존, 브루크너 등과 함께 음악사에서 인정받는 독실한 신앙으로 살았던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매일 한 시간 동안 묵상을 했던 경건한 가톨릭교도였습니다. 우리에게 '파니스 안젤리쿠스Panis Angelicus로 유명한 이 말을 직역하면 천사의 빵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곡의 제목 생명의 양식은 의역인 셈입니다.

 

천사의 빵이 사람의 빵이 되었다.

천사의 빵으로 하여금 구약의 전표를 이룩하였도다.

아아, 감탄할 일이로다.

가난한 자나 비천한 자 주를 음복하고 받들고 있다.

 

-진회숙 엮음, 음악사를 움직인 100, p. 345.

 

 

 

 

 

물론 천사의 빵이란 성찬식에 쓰이는 그리스도의 몸(성체)을 가리킵니다. ‘생명의 양식은 그가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임명된 해에 하프,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반주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작곡하였습니다. 세자르 프랑크는 이 곡을 1860년에 작곡한 <3성을 위한 미사 가장조 Op. 12>5번째 곡으로 삽입하였습니다. 현재의 4성부 합창과 소프라노(또는 테너)로 편곡이 된 것은 1904년이었고, 편곡자는 칼 에드워즈였습니다.

 

바흐(1685-1750)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중 아리아와 제1변주곡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쓴 피아니스트 나우에는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10개의 곡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의 하머클라이버 소나타디아벨리 변주곡’, 쇼팽 소나타 2번과 네 곡의 발라드, 브람스의 파가니니 변주곡’,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Op.42-5,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등이 그것인데 가장 먼저 소개된 곡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습니다. 이 곡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당시의 2단 건반의 클라비어를 위해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주제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741년 또는 1742, 50대 중반이었습니다.

 

 

 

 

 

바흐가 죽고 52년 뒤에 포르켈은 바흐 전기를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바흐에 대한 첫 전기일 뿐 아니라 서양 음악가에 대한 첫 전기입니다. 그러나 이 전기의 어떤 부분은 사실 왜곡이 심해 거의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 중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포르켈의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아직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바흐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당시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 카이제를링크 백작을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바흐가 수면제 대용으로 작곡한 이 곡을 몹시 좋아해서 골드베르크란 쳄발로 연주자에게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연주를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빙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 음악계의 주장입니다. 이 변주곡이 작곡되었을 당시 골드베르크는 13살이었고, 바흐의 악보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헌정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리아에서 시작하여 30개의 변주곡을 거쳐 다시 본래의 아리아로 끝마치는 이 곡은 1725년에 작곡된 <안나 막달레나의 음악 수첩>에 처음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바흐의 가슴 속에 있었던 이 단순한 멜로디는 15-6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이토록 빼어난 음악으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사랑하게 만드는 데는 자신의 목소리로 이 곡을 새롭게 해석한 글렌 굴드의 영향이 컸습니다. 오늘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본래의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는 물론이고, 실내악이나 기타 등의 악기로도 자주 연주됩니다.

 

오늘 연주는 주제 아리아와 1변주가 되겠습니다.

 

멘델스존(1809-1847)

교향곡 2<찬양의 송가>

 

한국 개신교는 멘델스존과 썩 친하지 않습니다만, 그는 5개의 교향곡 중에서 2번과 5번을 <찬양의 송가><종교개혁>이란 제목으로 작곡한 독실한 개신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바흐와 헨델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대대적으로 알렸고, 그로 인해 우리가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지대한 공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멘델스존은 유대인이었다는 이유로 히틀러의 나치치하에서 말러, 마이어베어와 함께 쓰리 M’으로 낙인이 찍혀 모든 작품의 연주를 금지 당한 비운의 음악가였습니다.

 

멘델스존 가문은 당대에 가장 교양 있는 패밀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계몽 철학자로서 명성이 대단하여 현재까지도 많은 책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은행업자였던 부친 덕에 멘델스존은 부유했고, 그로 인해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베를리오즈, 바이올린 연주자 요제프 요하임, 페르디난트 다비트, 앙리 뷔에탕, 안론 루빈스타인 등의 음악가를 후원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괴테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멘델스존은 훗날 괴테와 셰익스피어 등에서 영감을 받고 <한 여름 밤의 꿈> <고요한 바다의 즐거운 항해> 등의 곡을 남겼습니다. 멘델스존의 두 가지 업적은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당대 가장 실력 있는 음악원으로 만든 것과 전문적인 지휘자의 시대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

 

 

 

 

멘델스존 교향곡 2Op.521840년 구텐베르크 400주년 기념 축제의 하나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그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멘델스존은 2번 교향곡에 <찬양의 노래>라고 제목을 붙이고, “성경 말씀에 의한 교향 칸타타란 부제를 달았습니다. 그는 이 교향곡 악보에 루터의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나는 예술의 행위를 주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으로 모든 예술을 특히 음악을 발견, 창작해 보려는 것이다.”

 

가사는 시편 150호흡이 있는 자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를 합창의 시작과 마지막에 배치하였습니다. 멘델스존은 2명의 소프라노와 1명의 테너 독창, 그리고 혼성 합창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도록 이 곡을 작곡했습니다. 오늘 듣게 될 곡은 제8번곡인데 새찬송가 66장에도 수록되었습니다. 멘델스존의 초연을 본 로베르트 슈만은 이와 같은 형식의 구성은 400주년 기념 축제를 위해 너무나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특히 합창부분은 가장 신선하고 매력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중략) 합창이 멈추고 2중창 나 주를 바리니 주 날 받아 주시고 내 간구 들어 주신다의 후에는 열광하는 큰 박수 소리보다 더 값어치 있는 조용한 감탄의 소곤거림을 청중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고 썼습니다. 당시 로베르트 슈만은 가장 빼어난 음악 평론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멘델스존은 오라토리오 <엘리야><사도바울> 뿐 아니라 시편 42편 등 여러 편의 시편을 텍스트로 합창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바흐(1685-1750)

모테트 <예수 귀한 보배> BWV. 227.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1723년에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예수 귀한 보배>는 작곡된 해가 1735년 이전으로만 알려졌을 뿐 언제 초연되었는지조차 기록이 없습니다. 모테트란 중세 이후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발전된 음악의 형식입니다. 예전엔 경문가(經文歌)’라고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모테트의 가사는 라틴어인데, 영국에서는 영어로 가사를 쓰고 앤섬(Anthem)이라 불렀습니다. 대표적 모테트 작품으로는 팔레스트리나의 사슴이 시냇물 찾아 헤매듯’, 모차르트의 알렐루야가 포함된 <엑슐라테 유빌라테>와 슈만의 슬픔의 골짜기에 있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op. 93, 브람스의 7개의 작품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 세자르 프랑크와 본 윌리엄스도 모테트 형식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모테트로 작곡을 할 때 정선율을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가져 왔지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작곡가들은 루터파 교회의 회중찬송가인 코랄을 사용하였습니다. 바흐도 이 전통을 따랐습니다. 바흐는 미사곡이나 오라토리오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모테트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 장르의 전통을 계승하기도 하고 혁신하면서 가사와 음악을 치밀하게 연결하였습니다.

 

<예수 귀한 보배>의 가사는 프랑크(Johann Franck, 1618-1677)의 것과 성경 로마서 8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연주될 이 곡의 주제 음악인 코랄은 17세기 대표적 찬송가 작곡가인 크뤼거(Johann Cruger, 1598-1662)가 작곡한 것입니다. 그는 멘델스존 교향곡 2번에 나오는 다 감사드리세’(새찬송가66)와 찬송가 152귀하신 예수의 작곡자이기도 합니다.

 

<예수 귀한 보배>는 모두 11곡으로 구성되었고, 소프라노1,2와 알토, 테너, 베이스를 위한 5중합창곡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바흐 연구가로도 유명한 슈바이처는 이 작품을 가리켜, “신비한 코랄과 사이사이의 로마서 8장 말씀으로 비할 데 없이 위대한 사상에 바탕을 둔 삶과 죽음에 대한 설교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편집자 주/청파교회에서 있었던 북 콘서트에서는 위의 프로그램 외에 가수 홍순관과 청파교회 남성중창단의 노래가 있었지만 곡목해설에는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