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9)

 

남자화장실 청소를 왜 여자가 하죠?

 

 

독일 유학 중일 때였다.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 식당에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함께 식사하고, 커피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독일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 동양 아가씨들에 대해 묘한 판타지가 있어 매번 나를 다리로 하여 한국 여학생들과 접촉을 하려하던 상당히 전술적(?)인 친구이기도 했다. 하여간 이모저모 이 친구는 동양 아가씨와 결혼하고픈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과감히 한국어를 배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꿈(?)을 이루기 위한 이 친구의 노력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용기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1년여 짧은 어학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었겠지만, 나름대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한동안 젖어 있던 탓인지, 이 친구 다른 독일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각 잡힌 한국통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우연히 이 친구를 버스에서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어학연수를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의례적 인사로 한국에서의 경험이 어땠는가?”를 물으니, 이 친구 침이 튀는 무례함을 각오하면서까지 한참이나 생전 처음 경험한 이국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그때 그가 던진 말 중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이다.

 

이 친구는 한국에 와서 다른 것보다 다음 두 가지에서 생경함을 느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이 무언가 하니, 하나는 겨울철 너무도 자주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입마개였다고 한다. 추운 날 감기가 돈다 싶을 때면, 아니 그저 날씨만 싸늘해졌다 싶어도 어김없이 한국 사람들은 입마개를 하고 거리에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흔한 일상이 되어 있는지라 별 감흥이 없긴 하겠지만, 이 친구가 속한 사회에서 하얀색의 마스크는 지독한 전염병이 돌기 전에는 좀처럼 착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거리에 가득한 마스크의 등장은 이 친구에게는 상당히 생경했을 것이다.

 

 

 

 

나 역시 독일생활을 늦가을에 시작한지라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15명 정도가 속한 클래스에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추운 날 일본 여학생 하나가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가 온 강의실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일단 독일어 선생부터 무척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병이냐?”, “왜 그런 아픈 몸을 이끌고 수업하러 왔느냐?” 등등 연신 걱정스런 말투를 쏟아내었고, 다른 유럽 학생들도 그 친구의 곁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앉으려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이 일본 여학생은 유행성 독감이 아니라 단순히 감기에 걸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얀색 마스크가 그녀의 감기를 강력한 유행성 독감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그 사건 이후 강의실에 속했던 학생들은 그처럼 세계의 문화는 다양하다는 실제적 가르침을 얻게 되는 한 계기가 되었다.

 

흰색 마스크 외에 이 친구가 생경함을 느낀 또 다른 것은, 바로 남자 화장실 안에서 만난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사실 한국에서 화장실 청소는 대부분 여성들이 맡는다. 우리에게야 매우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 또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여성들도 연세 지극하신 분들이 대부분인지라 그런지 별 감흥 없이 이 난감한 사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 남자 화장실을 위풍당당하게 거닐고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남성들에게는 사실 상당히 당황스럽고 불편한 상황이라 하겠다. 성인 남성들이 죽 줄 서서 중요한 부위를 노출하고 용변을 보는 현장에 어쨌거나 여성의 몸을 한 이들이 당당히 활보하고 있다는 이 어색함! 게다가 종종 흘리지 말고 정확히 용변을 보라고 호통까지 치시는 여성들의 고압적 자세를 우리는 별반 거부감 없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사실 남자 화장실에 그처럼 여자들이 자유롭게 활개를 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유럽에서는 보통 남자 화장실은 남성이, 그리고 여자 화장실은 여성이 맡아 관리한다. 물론 여성이 남성 화장실을, 그리고 남성이 여성 화장실을 청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이용자가 없는 시간이거나, 화장실 입구에 그 사실을 공지한 후에야 가능하다. 하여 우리처럼 무자비하게 이용 중에도 불쑥 들어와 자신의 공무를 집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잘은 몰라도, 만약 외국에서 한국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여자 용역에게 성적 수치감을 유발시켰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에서 고소, 고발이 터져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경한 그림이 왜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먼저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떠올랐다. 대부분 화장실을 청소하는 여성의 나이는 폐경기를 지났음직한 중년 이상이 많다. 보통 50대에서 60대 초반의 연배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많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남자 화장실을 관리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화장실 청소에 남녀의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나이에 이른 여성들의 성적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무시하거나 제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자 화장실에 20~30대 젊은 여성을 투입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50~60대 폐경기에 이른 여성은? 어쩌면 그들은 여성이 아니라는, 혹은 그들을 여성으로 보지 않으려는 사회적 폭거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종종 외면하는 인간학적 질문이 파생되는 순간이다. 단순히 화장실 청소에서 성차별 폐지라는 취지에서 보자면, 당연히 20~30대의 젊은 청소용역들의 모습도 남자 화장실에서 볼 수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50~60대 여성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성차별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지.

 

우리 사회는 그처럼 폐경기가 지난 여성들에게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지위보다는 '어머니'라는 사회학적 신분을 주로 강요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여성성이 보호받고 강조되기 보다는 안락한 가정, 혹은 공동체 환경의 유지를 위한 용역 신분으로 고정된다. 따라서 화장하는 어머니, 멋진 드레스로 몸을 감싸는 어머니, 야한 영화를 보는 어머니, 황혼의 로맨스를 꿈꾸는 어머니들은 어머니가 아니라는, 어머니일 수 없다는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을 아무 감각 없이 자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니 남자 화장실을 활보하는 여성 청소용역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가진 또 하나의 폭력적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구별이 때로는 더 정직한 사회의 모습일 수 있다. 앞으로 남자 화장실에서는 남자 청소 용역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여자 화장실에도 남자 용역을 배치해 성차별이 사라진 확실한 사회상을 보여주든지.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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