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0)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善)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行)하라 너희 심령(心靈)이 평강(平康)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對答)이 우리는 그리로 행(行)치 않겠노라 하였으며”(예레미야 6:16)

 

신학생 시절, 친구가 살던 한남동을 찾을 때마다 자주 들르던 찻집이 있었다. 2층에 자리 잡은 ‘태’(胎)라는 이름의 작은 찻집이었는데, 창가 쪽에 앉으면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순천향대학병원 정문이 마주 보였다. 붉게 물든 사람 얼굴만 한 플라타너스 잎이 툭 툭 지는 모습을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찬비 내리는 늦가을의 정취가 특히 뛰어난 곳이었다. 후덕한 인상의 찻집 주인이 연극배우였는데 그래서 그랬을까 나눌 이야기도 많았고, 말도 잘 통했다.

 

당시만 해도 대개의 찻집에는 손님들을 위해 성냥이 준비되어 있었다. 촛불 켜는 것을 좋아하던 내게는 유용한 물건이었다. 찻집 ‘태’의 성냥갑에는 한문으로 된 시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居惡在 路惡在’란 글자였는데,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모르는 글자는 없었지만 뜻은 짐작되지 않았다. 뜻을 헤아리느라 나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한계, 마침내 항복을 하듯 주인에게 뜻을 물었다.

 

나는 읽는 것부터 잘못 읽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거악재 노악재’로 읽었는데, ‘惡’은 ‘악’이 아니라 ‘오’로 읽어야 했다. ‘惡’을 많은 경우 ‘악’으로 읽지만 ‘증오’(憎惡) ‘혐오’(嫌惡) ‘오한’(惡寒) 등에서 보거니와 ‘오’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그 구별이 어찌 쉽겠는가만, 마음과 관련된 글자일수록 ‘오’로 읽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거오재 노오재’는 선시의 한 구절로 ‘머물 곳도 마땅치 않고, 갈 길도 마땅치 않다’는 뜻이었다.

 

찻집 주인을 통해 성냥갑에 적힌 글의 뜻을 들었을 때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짧은 말로 우리 삶의 풍경을 그리도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다니, 그것도 우리 마음속 복잡한 속내를 그리 명쾌하게 짚어 내다니, 감탄스러웠다. 잡다한 말이 사라진 곳에 명징한 생각이 오롯이 자리를 잡는 것이구나, 그윽한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길’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마음과 영혼이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했지만 어처구니없이 잃어버린, 마음속 평화를 누릴 길을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개역개정>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새번역>

 

“나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네거리에 서서 살펴보아라. 옛부터 있는 길을 물어보아라. 어떤 길이 나은 길인지 물어보고 그 길을 가거라. 그래야 평안을 얻으리라고 하였지만, 너희는 그대로 하기 싫다고 하였다.”<공동번역 개정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고 옛길을 물어보아라. 좋은 길이 어디냐고 물어 그 길을 걷고 너희 영혼이 쉴 곳을 찾아라.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하였다.”<성경>

 

“다시 하나님의 메시지다. 갈림길에 서서 둘러보아라. 옛길, 이미 검증된 길이 어느 방향인지 묻고, 그 길로 가거라. 너희 영혼이 살 수 있는 바른 길을 찾아라. 그러나 그들은 말했다. ‘아니, 우리는 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메시지>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영혼이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가던 길을 멈춰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멈춰 서는 것이 우선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일부러 멈춰 선 뒤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 바라본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려 미처 자신의 영혼이 뒤쫓아 오지 못했을까 기다리는 것이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언제 어디에다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일과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는 맞다, 멈춰 서는 것을 잊어버렸다. 방향도 헤아리지 못한 채 다만 질주할 뿐,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은 멈춰서라 하신다.

 

멈춰 선 다음에는 옛부터 있던 길 중에서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를 물어야 한다. 옛길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누군가 먼저 걸어감으로 생긴 길이 옛길, 얼마든지 반면교사가 될 수가 있다. 잘못 걸어간 이의 발자국을 따르는 것은 오래 전에 토한 것을 도로 삼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얼른 피해야 한다. 옛길을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편한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이다.

 

충분히 검증이 된 좋은 길을 찾았다면 그리로 가야 한다. 길은 구경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은 걸으라고 있다. 바른 길을 찾았으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바른 길을 두고도 딴 길을 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 따로 걸음 따로, 믿음 따로 길 따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가리켜 길이라 부르면서도 길을 잃은 까닭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모습이 ‘거오재 노오재’가 된 것 또한 같은 이유 아닐까?

 

당신의 백성들을 평강의 길로 이끌기 위해 세세하게 이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말이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라면 그야말로 깜깜절벽, 더 이상 남아 있는 길은 없는 것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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