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6)

 

요단강의 쇳소리

 

 

“당신은 누구요?” “나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이의 소리요”(요한복음 1:19-28).

 

“당신은 누구요?”

 

예루살렘 제관과 레위지파 사람에게 광야에서 서성거리는 미치광이의 대답은 중요치 않았다. 사실이냐 아니냐,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자가 자기들의 법망에 걸리겠느냐 아니냐가 문제였다. 그자가 누군인들 무슨 대수인가? 요컨대 어떻게 저자의 입만 다물게 할까 그것이 전부였다.

 

지난 30년, 한국 교회에는 많은 소리가 있었다.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있었다. 마치 양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목자는 코를 골고 있다며, 목자 대신 싸움을 벌이던 개들의 소리와 같았다. 얼어붙은 강토를 스산하게 휩싸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놀라 달빛타고 짖어대는 늑대의 울음처럼 고독하기도 했다. 우리들 모두 소름이 끼쳐 이렇게 수군거려왔다.

 

“정치라면 신물이 나니 밖에 나가서 하시구려. 우리야 하느님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을, 달콤한 위안의 말씀을,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데, 당신 도대체 무슨 권리로 정의니 평등이니 가난이니 통일이니 하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성당까지 끌고 들어와 우리의 심사를 거북하게 만들죠? 어째서 미움과 원한과 피냄새가 배인 불길한 쇳소리로 우리 소박한 교우들을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드느냔 말이오. 성모 어머님께, 성령님께 올리는 뜨거운 우리 기도에 왜 초를 치느냔 말이오. 당신들 소란 때문에 입교하려던 예비자는 다 내빼고 대신 불순분자만 우글거린다 말이오!”

 

 

 

요한이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누군가 왔다! 큰일이 닥치고 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신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

 

하지만 우리 중 아무도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신들이라니 누구 들으라는 소린가? 우리? 우리가 어때서? 뭐가 어때서? 우리는 바른 길에 서 있다. 나사렛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다! 우리는 세례를 주는 사람이지 회개하는 표로 세례를 받아야 할 죄인들이 아니다!”

 

놀라운 맹목! 마음의 눈이 멀면 실체가 아닌 겉모습을 실체로 여긴다. 본질 대신 자기 신념의 허깨비를 보려 한다. 그것을 그리스인들은 우상 숭배라고 불렀다. 우리 역시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드뤼박의 말처럼 말이다. “정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결별하는 것이며, 하느님 예배를 우상숭배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다만 빛을 증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던 요한마저 꼬투리를 잡아 없애려던 사람이, 빛이신 그분을 알아볼 리 없었다. 요한은 그분의 신발 끈이라도 풀어 드리는 게 희망이라는데, 예루살렘 고위층은 그분을 때려죽이는 게 바램이요, 소원이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세례를 베푸는 거요?" 당신들더러 가톨릭이라는 명칭도 천주교라는 간판도 쓰지 말라는데 왜 천주교인 행세를 하는 것이죠? 어떻게 신성한 가톨릭을 등에 업고 마땅찮은 언행들을 하는 거요?

 

먼 옛날 유다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내세워 하느님의 아들을 배척했다. 지금은 그렇게 배척당한 그 분의 교회가 교회법을 내세워 하느님의 백성을 배척하고 있지 않는가?

 

"성서를 연구해 보시오.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일어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7:52). 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분에 대제사장이 성서를 완성하러 오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듯이, 논리정연한 신학지식이 하느님의 예언자를 알아보지 않고 화형에 처했던 저 무수한 범죄를, 교회 역사는 증언하지 않는가?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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