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7)

 

우리가 당신을 낳을 성스러운 태(胎)라니요

 

하나님은 그 속에 오로지 하나님만을 모신 영혼,

곧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영혼을 찾아

그곳에서 낳고 싶어 하십니다.

 

아, 그렇군요. 하나님, 당신께서는 여전히 가임(可姙)의 욕구를 지니고 계시군요! 그렇겠지요. 당신께선 늙음이나 쇠락을 모르는, ‘영원한 젊음’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오늘, 지금 이 순간도 당신께선 당신의 형상을 가장 쏙 빼닮은 사람을 통해 ‘당신 자신’을 낳고 싶어 하신다지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분주하여, 낳고 싶어 하시는 당신의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듣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짓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당신을 모실 여백이라곤 없답니다.

 

 

첨단의 기계를 다루는 일에 능해진 인간의 기심(機心)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어디서나 손가락 하나로 숫자를 눌러 사통팔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도 많아졌지만, 오늘 우리의 삶은 당신을 아는 ‘불멸의 지식’을 섭취하는 일엔 한없이 게으르고, 소멸할 지식을 쌓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형국이지요.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잠언 1:7)

 

당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본(本)이고 나머지는 말(末)인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그 본말이 뒤집혀져 있지요. 피조세계에 대한 숱한 지식은 당신을 아는 일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데 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피조세계에 대한 앎과 단(斷)해야 한다는 거지요.

 

단(斷)! 우리 영혼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조세계의 것들을 당신을 아는 지식의 칼로 단호히 잘라냄(斷)으로서 우리 속에 하나님 당신이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을 넓혀야 하는 데 말입니다. 그런 ‘순수해진 영혼’의 터라야 비로소 당신은 당신 자신을 낳을 수 있는 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당신이 곧 우리의 ‘참 모습’(眞我)이지요. ‘영으로 난 것이 영’(요한복음 3:6)이란 말처럼 전적으로 새로 난 생명인 것이지요.

 

이 신생(新生)의 기쁨,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불완전하고 허물투성이인 우리가 당신을 낳을 성스러운 태(胎)라니요. 아, 우리 속에 당신이 태어나시다니요.

고맙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는 당신을 아는 일 말고는 세상에 대한 그 숱한 앎이 아무 소용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도 말했지요.

 

“진정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삶이 불안정한 가운데 세밀하고 파멸하지 않는 존재이니, 이제 학문의 그물을 버리고 참(진리)에 대해 명상하라.”

 

고진하/시인,한살림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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