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5)


BWV 244 Matthäus-Passion/

마태 수난곡 No.6 거룩한 낭비


장면이 바뀌고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 열립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이를 보고 분개합니다.


폴 틸리히는 이 여인의 행동을 일컬어 ‘거룩한 낭비(a holy waste)’라 하였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계산에 있어서는 합리적이었고 상황에 있어서는 분석적이었습니다. 좀 멀찍이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제자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표준으로 삼고 있는 상식적이고 균형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국교회가 과도하게 기적을 구한다고 비판 받지만 솔직히 기적 없는 종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기적, 가장 위대한 기적은 희생입니다. 십자가가 인간에게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기적이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희생의 기적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몰상식이 믿음으로 포장되고 육신적이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의 노력 없는 획득이 기적으로 취급받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이런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상식과 합리성과 균형은 미덕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교회의 타락에 열을 올리고 상식과 합리성과 균형을 내세우는 가운데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가장 아름다운 기적, 가장 위대한 기적인 ‘거룩한 낭비’ 즉 ‘희생’을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스스로 합리적이고 균형 있다고 생각하며 비판하기 좋아하는 신앙인들의 실루엣을 봅니다.



마태수난곡 1부 6번~8번

(마태복음 26장 6절~13절)

6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6. Da nun Jesus war zu Bethanien, im Hause Simonis, des Aussätzigen, 7. trat zu ihm ein Weib, das hatte ein Glas mit köstlichem Wasser, und goß es auf sein Haupt, da er zu Tische saß. 8. Da das seine Jünger sahen, wurden sie unwillig und sprachen:

6.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7

대 사

제자들

8. Wozu dient dieser Unrat! 9. Dieses Wasser hätte mögen teuer verkauft und den Armen gegeben werden.

8.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8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10. Da das Jesus merkete, sprach er zu ihnen: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8

대사

예수

10. Was bekümmert ihr das Weib! Sie hat ein gut Werk an mir getan. 11. Ihr habet allezeit Armen bei euch, mich aber habt ihr nicht allezeit. 12. Daß sie dies Wasser hat auf meinen Leib gegossen, hat sie getan, daß man mich begraben wird..13. Wahrlich ,ich sage euch: Wo dies Evangelium geprediget wird in der ganzen Welt, da wird man auch sagen zu ihrem Gedächtnis, was sie getan hat.

10.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함께 들어보실 부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제자들의 대사를 담고 있는 합창곡인 7번곡입니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는 가사인데 마태 수난곡에 쓰인 1545년 루터 성경은 제자들의 대사를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개혁의 선상에 있었던 루터가 이 부분에 감정이입을 과하게 한 것 같습니다.

‘Wozu dient dieser Unrat!’은 번역하면 ‘이 쓰레기를 이제 어디다 쓴단 말인가?’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귀한 향유는 소비된 순간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고 하는 말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돈으로 환산하는 그들의 본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 향유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향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이 이야기가 기억되는 곳에서 여전히 그 향기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볼 때 바흐는 매우 기발한 방법으로 이 부분을 표현합니다. 먼저 앞서 언급한 Wozu dient dieser Unrat!’라는 가사의 합창은 에반겔리스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한꺼번에 갑자기 튀어나오는데 이는 제자들의 흥분되고 분개하는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어지는 제자들의 대사 ‘Dieses Wasser hätte mögen teuer verkauft und den Armen gegeben werden /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는 한 파트씩 시간차를 두고 등장하는데 마치 베버(Carl Maria von Weber)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의 1막에서 사람들이 주인공을 조롱하는 장면처럼 ‘이것(향유)’을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이 부분을 부드럽게 넘기지만 칼 리히터는 그의 음반에서 바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여 이 부분을 한 음 한 음 끊어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삿대질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의 대사가 나옵니다. 26장 10절부터 13절입니다. 두 번째 등장이긴 하지만 첫 번째 대사(2절)가 너무 짧았기에 예수의 본격적인 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일전에 마태수난곡 음반을 선택할 때 지휘자와 에반겔리스트 그리고 예수역할을 누가 부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칼 리히터의 첫 음반의 아쉬움을 굳이 꼽으라면 예수역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성악가의 역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만으로 따지면 칼 리히터 음반에서 예수를 노래한 키스 엥겐(Kieth Engen)이 가장 뛰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에는 키스 엥겐의 노래는 너무 무겁게 들리고 고난 받는 어린 양 예수가 아니라 완벽한 예수를 그려 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녹음 당시의 보편적인 예수상이 반영되었고 원전연주로 녹음한 다른 음반과 달리 반음 더 높게 불러야 했기에 더 부담스럽게 들린 면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입니다. 청년 예수는 저음이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일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써 아버지의 뜻 앞에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가 감당해야할 십자가의 잔 앞에서 흔들리는 목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레온하르트 1989년 음반에서 막스 반 에그몬트(Max Van Egmond)는 가장 이상적인 예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장면에서도 키스 엥겐의 예수는 덩치가 크고 남성다운 완벽한 모습의 예수께서 제자들을 혼내는 목소리로 들립니다. 반면 반 에그몬트의 노래는 여인의 정성과 희생에 감동하는 마음과 자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떨림 그리고 제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뒤섞인 청년 예수의 목소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zhzNL7LBkQc



저만의 상상이긴 하지만 가끔 마태 수난곡 녹음의 드림팀을 구성해보곤 합니다. 칼 리히터가 원전 연주로 지휘를 하고 에반겔리스트는 프레가르디엔과 헤플리거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 후에 헤플리거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예수 역할은 당연히 막스 반 에그몬트이며 소프라노는 바바라라는 이름의 두 명의 성악가를 다 부르고 싶습니다. 바바라 슐릭과 바바라 보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Erbarme dich mein Gott’은 캐슬린 페리어의 목소리여만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마태 수난곡과 함께 복된 사순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음악공부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고 이후 국립합창단 단원을 역임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의정부 낮은자리 믿음교회 담임으로 목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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