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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4

왜 세인들이 성직을 깔볼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50) 왜 세인들이 성직을 깔볼까 여러분이 의로우면, 여러분의 행위도 의로울 것입니다. 거룩의 바탕을 행위에 두지 말고, 존재에다 두십시오. 왜냐하면 행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위를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어떤 직분이 우리를 의롭게 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나 장로, 그런 직분이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어주던가. 오히려 우리의 의롭고 거룩한 삶이 우리의 직분을 드높여주는 것이다. 총회장, 감독, 아니 교황이라 하더라도 그런 대단한(?) 직분이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해줄까. 그런 직분을 맡은 이의 삶이 의롭고 거룩하지 못하다면, 도리어 그의 삶이 그 직분을 더럽히고 그 직분을 맡은 이를.. 2016. 4. 8.
깨어질 수 없는 약속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2) 깨어질 수 없는 약속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臨)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能)히 낮에 대(對)한 나의 약정(約定)과 밤에 대(對)한 나의 약정(約定)을 파(破)하여 주야(晝夜)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言約)도 파(破)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人) 제사장(祭司長)에게 세운 언약(言約)도 파(破)할 수 있으리라 하늘의 만상(萬象)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測量)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子孫)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人)을 번성(蕃盛)케 하리라 하시니라”(예레미야 33:19-22). 낮에 대한.. 2016. 4. 7.
불공평한 하나님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2) 불공평한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참 착하게 살았구나. 아주 잘 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었으며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위로를 주었으니 내가 주는 상을 받아라. 이제부터 너는 내 앞에서 내가 주는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하늘의 황홀한 음악을 즐기며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하여라.” 그러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황송무지로소이다. 생각컨데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준 기억이 없습니다. 더구나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다니요, 결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니신지요. 황송하옵니다.” “아니다. 내가 어.. 2016. 4. 5.
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 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 따끔이 속에 빤질이, 빤질이 속에 털털이, 털털이 속에 얌얌이, 이게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따끔이, 빤질이, 털털이, 얌얌이, 각각의 의미도 짐작하기 쉽지 않은 터에 그것들이 서로의 속에 있다니 마치 말의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다. 정답은 밤이다. 캄캄한 밤이 아니라, 가을에 익는 밤(栗) 말이다. 밤을 먹기 위해서는 따끔따끔한 가시를 벗겨야 하고, 두껍고 빤들빤들한 겉껍질을 벗겨야 하며, 그 뒤에는 작은 털이 달린 껍질을 다시 벗겨야 하고, 맨 마지막으로는 떫은맛을 지닌 속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마침내 고소하고 오들오들한 밤을 얌얌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 2016. 4. 2.
너의 목소리가 들려 구약성서의 대량학살(2) 너의 목소리가 들려- 출애굽기 34:1-9 - 성서에도 토론과 논쟁이 있을까? 제가 고국에서 처음 선거권을 가졌을 때는 TV 토론이란 게 없었습니다. 그때는 후보자가 TV 시청자가 아니라 광장에 모여 있는(또는 동원된) 인파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 때 어느 학교에서 열린 유세에 구경 갔던 게 기억납니다. 야당 총재였던 분이 당시 대통령이던 사람 이름을 존칭도 없이 부르면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내던 걸 직접 제 눈으로 봤습니다. 그 후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대규모 청중유세가 아니라 TV 토론이 대세가 됐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 눈에는 토론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기 미국에 오래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일찍부터 .. 2016.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