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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by 한종호 2017. 12. 8.

김기석 목사님께(6)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목사님이 쓰신 편지글을 읽으며, 지난 한 주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홀로 지내는 공간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셨다니, 수도자로서의 금욕이 목사님에게는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글 「움씨를 뿌리는 마음」 편에서 ‘‘흔들림’과 ‘젖음’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과 연결 시켜주는 촉매인지 모른다”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그것을 읽으면서 살짝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된 일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그 얘기를 서두에 놓습니다.



절망의 핏빛 노을


1967년, 초등학교 4학년 초봄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어떤 일로 홀로 귀가하던 중에 텅 빈 신작로 위에서 노을이 져 온통 붉어진 세상을 만났습니다. 미루나무가 촘촘히 늘어선 신작로 저 끝 지평선 아래에서 태양이 터져버린 것처럼 세상은 온통 붉었습니다. 생전 처음 본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무슨 계시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 뜻을 발견하지 못하면, 곧 내려질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뻘건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신작로 저만치 어딘가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나는 망연히 그 지평선 끝을 바라보며 서늘한 공포 속에 서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지, 그곳에 내가 가야할 집이 있기는 한 것인지.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물론 그 정경만이 자아낸 공포는 아니었지요.


저는 교회 옆집에서 자랐습니다. 교회와 우리 집 사이에는 호박돌을 넣어 흙을 빚어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토담이 있었습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 고풍스러운 담장이 어느 해 장마 때 기와 사이로 빗물이 스몄던지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담이 무너지는 큰 일이 벌어졌는데도 웬일인지 아버지나 어머니는 무심했습니다. 교회와의 사이에 있던 담이 무너졌으니 축복이었을까요? 담이 무너지고 난 뒤 그 흙더미가 치워졌을 뿐, 한동안 교회와 우리 집은 서로 트인 채로 지냈습니다. 그 전에도 담장 위로 떡 접시나 계란 꾸러미 같은 것이 넘나들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것들이 이제는 당당히 뒷마당을 가로질러 걸어서 넘어 다니게 된 것이죠. 아버지나 어머니는 교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네와는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담이 무너진 뒤 저는 간혹 트인 교회 쪽을 흘깃거리며 지냈는데, 어느 날인가 마당을 쓸고 계시던 목사님이 저를 보더니 넘어 오라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마 계시 받은 손짓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은밀한 손짓에 홀렸습니다. 그리고 넘어간 그 길로 ‘교인’이 되었습니다. 돌아올 때 제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신자가 아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한히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나쁜 짓은 못할 것’이라고 소곤거리시는 걸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손짓에 홀렸으므로 그것은 제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책임질 일 없는 손짓이었고, 손해 볼 일이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그 절망의 핏빛 노을 속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낮잠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마저 집에 안계셨으므로 아주 심각하게 늦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급했으므로 ‘어제’ 메고 온 가방을 그대로 멘 채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너무 일찍 온 모양이더군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여유가 생겼습니다. 게을러 지각을 밥 먹듯 하던 저로서는 그 망중한이 꿀처럼 달콤했습니다. 창 가득 들어오는 햇빛을 돋보기로 끌어 모아 습자지를 그슬리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해는 점점 짧아졌고, 습자지에 들이민 돋보기에서도 햇살은 멀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시간을 의식하자 어리숙한 영혼은 혼란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늪처럼 갈앉은 의식을 헤집어 가까스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 하나를 거두었습니다.


어두운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나의 의식을 가득 장악한 이 날의 ‘아침’과 ‘저녁’의 혼란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각한 것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간단했겠지요, 하지만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 동안 저는 여전히 그 ‘현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섭게 붉어진 노을을 마주하고서도, 아침에서 저녁으로 건너뛰고 낮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미망. 무엇인가가 닥쳐왔는데, 모른다는 것. 이것이 내게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을 보았고, 그것이 바로 ‘미망’이었습니다.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것. 목사님의 편지글을 읽다가 전율이 일었던 것은 그날 그 미망의 깊이가 주었던 두려움이 저의 존재의 근원과 연결시켜주는 촉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무슨 보상처럼 타지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일찍이 출가했던 누이들과 도시에 유학 중이던 형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설날이거나 추석이었으면 이해할 수 있을 일이었습니다.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


얘기를 하다 보니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활성화 신호를 기다렸던 억압된 기억’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 사건입니다. 그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입대를 앞둔 청년이어서 영장을 받아들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초입은 언제나 광주역이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광장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 서 있던 탱크를 보았습니다. 그걸 바라보며 서 있는데, 중년의 한 사내가 달려와 저를 낚아채 택시에 태웠습니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의 말을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창백한 정경들이 그것의 답이었습니다. 택시는 제가 가리킨 광주 발산의 누이 집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누이는 택시기사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저를 작은 골방에 밀어 넣고는 꼼짝 말고 거기 자빠져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누이의 명령대로 하룻밤은 꼼짝하지 않고 지냈지만, 여전히 그렇게만 자빠져 있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 광주천 뽕뽕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가니, 제 앞에 트럭 한 대가 와서 멈춰 섰습니다. 트럭 뒤에는 피투성이가 된 시신 두 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바로 뒤따라온 버스를 타고 도청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이틀을 더 있었고, 그곳에서 듣고 본 것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 5·18 광주 민주화운동 – 으로 저의 입대가 미뤄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온 저는 1980년 그 늦봄, 서울의 그 평화가 낯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낯설고 또 낯설었습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조용한지요?” 하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느라 가슴에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그 평화가 아니라 홀로 공포에 사로잡힌, 세상의 질서에서 비껴 앉은 저 자신이 아닌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교회 주일 예배에 앉아서도 저는 홀로 섬처럼 낯설었습니다. 1967년 그날 그 운동장에 깔리기 시작했던 땅거미처럼 두려웠습니다. 저는 낯선 그것과 맞서서 점점 더 큰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속에서 질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진실은 오래전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던 ‘아침’과 ‘저녁’처럼 멀리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공허만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핏빛 노을 속에 있었습니다. 미망迷妄입니다. 헤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령’이나 ‘부활’의 기호 안에서는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일이었으니, 그 안에 들어 있을 복잡한 질서들을 경외할 뿐이지요. 그것을 체험한 고백은 제게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들은 신앙을 자신들의 지배에 효율적이게 하는데 이용해 왔습니다. ‘믿고 받드는 마음’을 조작해 내는 데에 그 신비한 무엇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미륵이나 재림 예수까지를 말하지 않아도 작은 것들이 숱하게 우리 현실 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저지른 짓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에 견고한 무엇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그 미망을 깨는 일에 유용했던 것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생명의 신비》나 리차드 리킨의 《오리진》 같은 책이었습니다. 제 이십 대의 동반자들입니다. 그것이 질서를 잃어버린 나에게 준 것은 어떤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를 거기에서 읽었습니다. 미망을 걷어내는 데에는 그 메시지가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질서를 말하고 있었고, 그 질서와 질서 사이에 숨어 작동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을 제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 어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빛과 어둠이 있는 그 곳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빛과 어둠이 있는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아느냐?(욥기 38:18-21).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입니다. 내게는 그 빛이 그날의 아침이고, 그 어둠이 그날의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습니다. 오직 점이었습니다. 그 점에 관해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중략)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하나님이 칼 세이건을 통해 이 말을 제게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나고 강고한 질서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에 제가 겪었던 그 미망에 대응할 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입니다. 봄이 되어 한 포기의 풀이 자라고, 그것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는 질서가 주는 메시지를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족입니다만, 저는 위에서 1967년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 가득 가족들이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집에 어머니가 안 계셨던 것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둘째 형의 전사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러 가셨기 때문이었고, 가족들은 그 부음을 듣고 온 것이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렸던 그 낮 동안 ‘창백한 푸른 점’에서 벌어진 혼돈 속에서 형이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님께 드리는 제 첫 편지입니다. 목사님께 드리는 첫 편지에서 이런 신앙고백은 마땅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저는 이 표어 덕분에 무엇인가를 정해야 하는 판단을 앞두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제게 큰 축복입니다. 미망을 밝힐 등대니까요. 이 더위 속에서도 서재의 에어컨은 꺼져 있을 때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명행/소설가, 《대통령의 골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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