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5)

 

민족의 성 금요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누가복음 11:11-34).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기네의 운명에 무엇인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음을 예감하였다. 스승 가까이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불안한 시선으로 주님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성지 주일의 열띤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전에 사도들이 들은 말씀은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그 한마디였다.

 

 

 

 

그 다음은? 아무것도 모른다. 이 민족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정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의 눈앞에는 희망에 찬 미래가 열릴 것인가, 아니면 비극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그에 따른 내 일신과 내 가족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역사라는 것은 전진하는가, 퇴보하는가? 지금은 초저녁인가, 한밤중인가, 새벽녘인가? 어느 닭이 있어 시대의 징표를 알려 줄 것인가? 우리 중에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이들은 이런 의문들을 가질 만하다. 이 민족은 어제도 오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오늘 첫째 복음의 첫 구절이다. “이 말씀을 마치셨다”는데 무슨 말씀을 마치셨다는 것인가? 달란트의 비유로 말씀을 끝내셨다. 하느님은 인간과 그 집단들에게 자신들의 운명과 역사를 책임질 달란트를 맡기셨다. 그 역할을 거부하는 인간과 민족공동체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어 있다. 인간다움을 지킬 의지와 용기가 있는 민족만이 살아남는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거기서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예언자가 기록한 모든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의 아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사람의 아들들”에게도 이루어질 것이다. 배달민족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 짓밟히고 수탈당하고 이방인이 시키는 대로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이 과거처럼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앞장서서 가신다.” 이 민족의 선구자, 작은 예수들은 언제나 민족의 역사를 앞장서서 나갔다. 우리는 그 뒤를 조심스럽게, 겁먹은 얼굴로, 저만치 떨어져서 따라왔을 뿐이다.

 

부활은 온다. 우리 민족의 하느님은 살아 계시며, 이 민족은 생존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겨레에게나 민족사의 성 금요일이 있는 법이다.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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