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35)


예수는 오늘도 여전히 길인가?

- 앨버트 놀런 《오늘의 예수》-


“예수의 하나됨 체험은 하느님 아빠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은 아빠이시고 공중의 새, 들에 핀 나리꽃,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돌보시는 창조주시다. 예수는 당신 자신을 자연과 자연 순환의 일부로 여겼음에 틀림없다. 예수는 자연과 자신과 하느님의 완전한 조화 속에 살았다.”(210쪽)


“예수가 바란 것과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 사이에 충돌이란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참자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근원적 자유는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자유이며,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기꺼이 창조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233쪽)


193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 타운에서 태어난 앨버트 놀런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라는 책 한 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신학자이다. 그 책을 통해 놀런은 예수가 펼친 선교 사역의 정치적 맥락을 강조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성과물이 많이 소개되지 않던 80년 대 초 그의 책은 신학도들에게 큰 충격과 도전을 주었다. 《세속 도시》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그 책을 가리켜 ‘역사적 예수의 생애에 대한 짧지만 가장 적확하고 균형 잡힌 서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앨버트 놀런은 자족적인 강단 신학자가 아니다. 자신의 신학과 신앙에 따라 말하고 실천하는 영성가이기도 했다. 때로는 예언자적 음성으로 그 시대를 질타하고, 때로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감싸 안았다. 그 결과 그는 2003년에 민주주의․인권․정의를 위한 투쟁과 아파르트헤이트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던 종교 도그마에 대해 도전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남아공 정부로부터 루틀리 훈장(Order of Lutuli)을 받았다. 이 훈장은 남아공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이었던 앨버트 루틀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남아공의 민주화운동 하면 우리는 넬슨 만델라나 데스몬드 투투를 주로 떠올리지만 앨버트 놀런도 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를 출간한지 30년 후에 내놓은 《오늘의 예수》는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를 천착한 후 그 예수의 길을 따라 살아온 한 노신학자가 내놓은 신앙적․신학적 고백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 거대 담론의 퇴조


앨버트 놀런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징표를 살피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정직하게 직면할 때라야 우리에게 만 건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앨버트 놀런은 먼저 거대 담론의 퇴조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근대화와 인류의 진보라는 이상에 감동하지 않는다. 이상에 대한 열정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불안이다. 전쟁, 살인, 학대, 구조적 폭력, 테러, 환경 파괴, 지진과 쓰나미의 공포가 사람들의 의식을 옭죄고 있다. 사회이론가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 세계의 특징을 ‘유동하는 공포’라는 말로 요약했다. 국민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사회통합과 안전을 꾀하던 ‘견고한’ 근대는 이미 사라졌고, 우리는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생존과 안전에만 매달리게 된다.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 언제든 쓰레기처럼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대인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는 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삶의 자리에서 쫓겨난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단 쓰레기로 분류되면 다시는 재활용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공포에 사람들은 가위 눌리고 있다.


과거에는 자기 나름의 문화적 전통과 관습, 그리고 종교에 기대 이런 불확실성과 공포를 타개해나갔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먹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은 후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은 해체되었고, 종교조차 구체적 삶에서 유리되면서 사람들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술과 약물에 의존하거나 재물과 소유를 통해 불안을 극복하려 한다. 어떤 이들은 의심할 수 없는 절대 진리를 제공하는 권위 아래 즐겨 복종한다. 이것이 근본주의가 득세하는 소이연이다. 어떤 이들은 영성에 탐닉한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 받거나,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뭔가 큰 힘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빚어낸 풍경이다. 앨버트 놀런은 서구의 자기도취적 개인주의가 빚어내는 폐해와 지구적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는 빈부 격차,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구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생태적 위기에 특히 주목한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의 조건들이 빚어낸 변종으로서의 에고 숭배에 주목한다.


그러나 절망의 조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로부터 분리된 영성의 추구는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고, 미국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세계화가 세상을 약육강식의 벌판으로 만들었지만 공감에 바탕을 둔 또 다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반전 평화운동, 모든 희생자를 향한 연민의 세계화 말이다. 오랜 동안의 해방 투쟁의 결과로 “현실에 엄존하는 새로운 목소리, 즉 여성, 흑인, 원주민, 노동자, 소작농, 빈자,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48쪽)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희망의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앨버트 놀런은 기계가 아니라 신비로서의 우주를 말하는 신과학의 등장을 반기면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기계론적 세계관이 쇠퇴하게 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다.


희망의 조짐과 절망의 조짐이 공존하고 있는 이 시대, 불확실성과 공포의 세계화가 연민의 세계화가 더불어 길항하고 있는 이 시대를 넘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데 예수는 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앨버트 놀런은 예수의 생애나 가르침보다는 그의 영성에 관심을 집중한다. 물론 이 둘을 칼로 베듯 가를 수는 없다.


• 예수의 영성


유다의 소농이었던 예수의 영성은 히브리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당대의 유대교나 시대정신과는 어느 정도 대척점에 서 있었다. 기존 질서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불온한 사람이다. 관습적 신앙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의 이면에 있는 지배의 욕망과 탐욕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가 선포한 “하느님의 다스림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 쫓겨난 이들, 갈릴래아의 비천한 이들에게서 솟아나오는 것”이다.(78쪽) 그런 열망에서 비롯된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는 이들로 구성된 새로운 인류이다. 예수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승리자가 아니라 희생자가 되기를 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갈릴리 소작농의 눈으로 시대의 징표를 읽었던 예수는 예언자의 전통 위에 서서 당시 사회와 종교 권력 체제의 관습에 대담하게 도전했지만, 그런 활동을 뒷받침한 것은 끊임없는 기도와 관상이었다. 관상을 통해 그는 자기의 에고의 뿌리를 잘라낼 수 있었고, 하나님과의 신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었다. 앨버트 놀런은 이것을 예수의 ‘아빠 체험’이라 요약하면서 바로 그것이 “예수의 지혜와 명료함과 확신과 근원적 자유의 원천”(95쪽)이라고 말한다. 예수에게 있어 정의와 기도, 예언과 신비는 분리할 수 없는 일체이다. 도로테 죌레도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죌레는 우리가 하나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려면 하느님 현존의 신비를 전할 수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혁명 곧 저항을 내포한 신비주의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항이 없는 신비주의는 자기 탐닉의 길로 인도하고, 신비 체험이 없는 저항은 메마른 경직성으로 인도하게 마련이다.


앨버트 놀런은 예수가 치유자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예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죄와 허물을 보기보다는 “상처와 낙심, 아픔, 혼란, 두려움을 보았다”(104). 그들은 길을 잃은 자들이었지 도덕적으로 단죄되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기득권자들의 위선과 독선을 나무라셨지만 그들을 인격체로서 사랑하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예수는 그가 이방인이라 해서 또는 로마인이라 해서 백안시하지 않았다. 그들도 치유와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예수의 치유 사역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은 피조물들의 신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고 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멀기만 한 변화의 길


예수의 영성에 대한 천착이 결국 수렴되어야 할 곳은 우리 인격과 삶의 변화이다. 저자는 ‘제3부’인 ‘인격의 변혁’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앨버트 놀런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영성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장애는 ‘분주함’이라고 말한다. 강박관념처럼 우리를 몰아붙이는 분주함은 삶의 실상과 대면하지 못하도록 한다. 저자는 예수를 따라 침묵과 고독의 장소로 가보자고 제안한다. 성찰과 기도를 통해 예수의 영이 우리 속에 스며들 때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교류에서 얻는 통찰도 비로소 창조적인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3부인데, 예수의 영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내용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고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든지,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든지, 삶의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이라든지,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이감을 회복해야 한다든지, 집착을 여의고 하나님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라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저자는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이야기를 왜 오랜만에 내놓는 책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느닷없이 깨달음이 장군죽비처럼 내 의식을 강타했다. 우리가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예수적 삶에 대한 이런 요약은 불필요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진부해 보이는 가르침일망정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개방성이다. 수도회에 들어간 지 50년이 넘어 예수라는 존재를 향한 순례의 여정을 거의 마무리해야 할 노사제가 내놓는 결론을 ‘아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교만이 아닐까?


• 하나됨을 향한 여정


마지막 장인 ‘제4부’의 핵심어는 ‘하나됨’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찢기고 갈라진 세상에서 공존과 소통을 넘어 하나됨을 추구한다는 것은 일견 공허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저자가 일치, 화해, 조화, 평화, 사랑이라는 말 대신 하나됨oneness이라는 단어를 택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치나 조화는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화해는 갈라진 것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반면에 “하나됨은 우리가 이미 하나였고 언제나 하나라는 의미를 내포”(172쪽)하기 때문에, 단순히 그 하나됨을 의식하거나 깨닫기만 하면 문제가 풀리게 된다.


앨버트 놀런은 ‘하느님과 하나됨’, ‘우리 자신과 하나됨’, ‘다른 사람들과 하나됨’, ‘우주와 하나됨’을 순차적으로 짚어간다. 하느님과의 하나됨을 강조하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아빠 체험’이 보여주듯 하느님의 신비 안에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발견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체험은 결국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와 부끄러움을 받아들여 자기 인격 안에 통합시킬 때 우리는 에고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참 자기와 접촉한 사람에게 남은 없다. 생명의 상호성을 알아차린 사람은 더 이상 사람들을 대상물로 다루지 않는다. 타인과의 동일시, 공감과 환대, 그리고 나눔은 그런 하나됨을 경험한 이들의 삶이 맺는 열매이다. 마침내 이런 일치가 당도하는 곳은 우주와의 하나됨이다. 삼라만상 속에 깃든 창조적 생명에 눈을 뜬 사람은 온 세상이 한 몸임을 자각한다. 그들에게 삶은 경이로움 자체이다. 오늘의 과학은 종교의 경쟁자가 아니다. 앨버트 놀런은 “과학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다루면서, 더 위대한 경이와 외경과 이해를 위한 창문을 열어 준다”(214쪽)고 말한다.


이러한 다층적인 하나됨 체험은 고립된 에고의 횡포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성공에 대한 미련, 주위의 평판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모두가 다 하나됨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시간 여행자로 살아가는 인생의 근본 속성은 ‘불안’이다. 사람들은 그 밑도 끝도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용물을 만든다. 그런데 그 대용물을 얻을 힘이 부족할 경우, 자기에게 결여된 힘을 얻기 위해 자기 외부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제도와 자기를 합일화하곤 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체주의나 근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의 길은 홀로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다른 이들의 체험으로부터 배우고 지지를 받을 때 자유에의 감수성도 자란다.


그런데 자유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유는 더 위대한 어떤 것, 즉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자명한 듯하면서도 모호하다. 그렇기에 오용되기 쉽다. 앨버트 놀런은 오해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공동선’으로 번역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놀라운 제안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동선이라는 용어도 오용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억압적인 정부 혹은 기업이 개인의 권리를 짓밟거나 묵살하기 위해 ‘공공의 이익’ 운운하는 일을 너무나 자주 봐왔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 마치 모든 사람을 위한 선인 양 제시되는 것이다. 저자가 어찌 보면 이미 낡아버린 그 단어를 꺼내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옮기는 데 이보다 더 나은 용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공동선을 “온 인류 가족이나 전체 생명 공동체, 광활하게 펼쳐진 전체 우주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한다(232쪽)고 정의한다. 오늘의 예수는 바로 이 지점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예수가 걸어간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위대한 예술 작업에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창조적으로, 더불어 손을 잡고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로, 근원적 자유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236쪽)


앨버트 놀런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하나님의 일은 매우 서서히 드러난다면서 미래는 안전하다고 말한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 도저한 낙관론에 쉽게 공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사제의 낙관론에 잠시나마 기대 쉬고 싶은 마음이다. 예수, 그는 여전히 우리의 길이고 구원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구체적인 삶으로만 할 수 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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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30)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


믿음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또는 누군가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받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신비지만 생각과 질문이 없으면 맹신과 미신에 빠진다. 질문이 제거된 신앙은 맹신에 빠지기 쉽다. 질문은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사유는 진리에 이르러 믿음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킨다. 묻고 답하기를 통해 서두르지 않고 참 진리로 이끄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신약성경에 있다.


예수님이 유대 지역을 떠나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했는데,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수가’라는 마을로 들어가셨다. 이곳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깝고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요한복음 4:3-5). 구약 본문에서 야곱이 우물을 팠다는 기록이 없지만, 그가 세겜 땅을 매입한 사실이 언급되었기에(창세기 33:19; 여호수아 24:32) 우물이 있었거나 팠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우물은 그리심 산 기슭에 있고, 수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님은 피곤했고, 우물곁에 앉았다. 낮 시간 중 가장 뜨거운 정오의 시간(6절), 예수님은 지친 여행자의 모습이다. 그때였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다(7절).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로 저녁 때 물을 길으러 우물로 나오곤 했다(창세기24:11).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은 더위를 피하는 시원한 시간일 테고, 음식을 만들거나 씻기 위해 물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뜨거운 정오의 시간, 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집안에 응급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적으로 자신이 이혼한 상태여서 현재 남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4:17)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처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뜨겁고 더운 시간을 택했나보다. 여자들이 우물가로 모여드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물을 길으러 온 여자에게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청했다(7절). 사마리아 여자는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독자는 기대감이 충족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우물가에서 물을 좀 달라는 요청이 뭐 그리 유별난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는 행위 자체는 뜻밖의 행동이다. 예수님이 돌출된 행동을 하고 있음이 사마리아 여자의 말에서 곧 밝혀진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달라고 말을 거는 예수님에게 분명하게 대답한다.


“당신은 유대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말씀하십니까?”(4:9)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겁니까?”라는 물음이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렇게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세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다(9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과의 반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주전8세기 앗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게 되었던 시점으로 소급된다. 앗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하고 정착하면서 생겨난 혼혈인이 사마리아인의 기원이 된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열왕기하 17:24-41). 사마리아 여자는 남북의 기나긴 반감의 역사적 배경과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알았던 터였다. 그러니 여자는 자신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 예수님이 사회적 관례를 위반했다고 말한 셈이다. 겨우 물 한 잔 달라고 했을 뿐인데. 여자의 말은 남북의 문화적인 배타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의 암묵적인 거절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 걸기는 멈추지 않고 물처럼 흘러간다.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더 요청하지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말을 맞받아친다. 한글번역은 상대방을 낮추는 말투로 번역했지만, 예수님이 우리말로 대화했다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와 어법을 취하지 않았을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과 당신에게 물을 달라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당신은 그에게 구했을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오.”(4:10)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답변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내포하는 “하나님의 선물”을 “생수”와 동일시했다. 물은 생명을 이어가는 절대적인 필수 요소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생수의 근원”(예레미야 2:13)이라고 표명하신 바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생수를 주는 자,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자임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여자는 의구심을 풀지 않은 채 질문한다.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길어 올릴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습니다. 당신이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습니까?”(4:11)


이 질문은 아직 예수님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터라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자의 질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야곱의 우물에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을 마셨는데, 예수님이 말하는 이가 야곱 보다 큰 자인가를 묻는다(12절). 여자는 우물의 긴 역사성을 말하며 “그가 야곱보다 큰 가”를 묻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과 자신이 주는 물을 비교하여 좀 더 근원적인 영역을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개역개정)


예수님은 질문하는 여자에게 하나님과 자신의 연결된 정체성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자기 자신을 고갈되지 않는 샘물, 곧 영생하는 물이라고 소개하셨다. 이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는 분(이사야 44:3)이라는 위로의 말씀과 겹쳐진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그 물을 내게 주십시오”(15절)라고 요청한다. 다급해보인다. 예수님이 처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주시겠소?”(4:7)라고 했던 상황이 뒤집힌 순간이다. 그녀는 삶의 갈증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바랬겠지만, 무엇보다도 다시 이곳으로 물 길으러 오지 않는데 관심이 있었다. 여자는 아직 예수님이 주시겠다는 선물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뜬금없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다. 그녀가 남편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그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던 것과 지금의 남편은 내연의 남자처럼 법적인 혼인관계로 묶이지 않은 것을 알고 계셨다(15-17절).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의 과거를 들추어 부도덕한 여자라는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의 태도에 진정성을 느꼈을 터. 그녀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제 보니 당신은 예언자셨군요.”(19절) 여자는 완전한 진리를 향해 한걸음 차근차근 다가서고 있었다. 희미한 깨달음이었다. 여전히 그녀의 궁금증은 멈추지 않았다. 여자는 적합한 예배 장소에도 관심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20절) 여자는 예수님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유대인들 중 한 사람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자에게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민족중심적인 배타적 태도를 벗어난 예수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오.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당신들이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를 것이오.”(4:21)


예수님은 나름의 역사적 정통성이나 민족적인 편견을 해체시키는 발언을 하셨다. 그럼에도 “구원이 유대인에게서”(22절) 온다는 것과 예배에 관한 선언적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3-24, 개역개정)


예수님은 구약 전통에서 매우 희귀한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다윗 왕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했을 뿐인데(시편 89:26), 예수님이 언약의 계보에 따른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사마리아 여자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자가 대답한다. “나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불리는 이가 오실 줄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25절) 사마리아 여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공유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순간을 포착하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라.”(26절) 예수님은 찬찬히 대화를 주도하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여자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키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 그것도 소외된 여자에게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이 중대한 시점,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아왔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27절). 랍비 저작들에 의하면, 당시 남성은 길거리에서 여성과 대화를 나누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자기 아내와의 대화도 금기시했던 사회적 분위기였으니 다른 사람의 아내와 대화하는 것은 타인들의 공론거리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노상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누구도 예수님께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라고 묻지 않았다(27절). 제자들 때문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때 사마리아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와서 보라! 내가 말한 사람이 그리스도 아닌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첫 마디였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로 갔다(30절).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하지 못했던 여자는 구원의 선물 “생수”를 그녀의 이웃들과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39절).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의 개인구원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발걸음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내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아의 변화까지 경험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자와 그녀가 속한 마을 공동체는 더 이상 예수님 사역 밖의 외부자들이 아니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남북의 오래된 배타적이고 민족적인 감정을 넘어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 탄생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뜨거운 한 낯의 열기 아래 질문을 멈추지 않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기꺼이 대답하시는 예수님. 우물곁에 있는 둘의 대화 장면이 상상되는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생수라는 것, 영과 진실함으로 드리는 예배에 더해진 배움이 있다.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는 민족적인 배타성과 사회적 통념을 깨는 만남이요, 서로 존중하는 묻고 답하기는 새로운 깨달음과 예수 공동체를 세우는 아름다운 발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맹신이 아니라 질문하며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요, 완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신학적인 증오와 대립을 혁파하는 본보기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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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누구이고 뭘 한 사람인가?(6)


용서의 시작과 완성

마태복음 6:14-15


먼저 사랑하는 사람과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런 일은 영화에서도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일이고 현실세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개는 먼저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그에 대해 태도를 결정하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갑이 먼저 사랑을 시작했고 을이 이에 대해 태도를 정해야 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여기서 갑과 을은 거래에서 사용되는 갑을관계와는 무관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갑은 왜, 어떤 이유로 을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게 됐을까요? 그리고 을은 어떤 경우에 갑에게 “나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게 되는 걸까요?


갑이 을을 사랑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게 외모일 수도 있고 성격일 수도 있으며 직업이나 인품, 가족배경일 수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사랑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보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에 대한 을의 반응입니다. 을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자기는 갑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서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나도 너를 사랑해.”라고 반응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로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그런데 나는 네게 관심이 없거든.”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사랑에 성공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일방적인 사랑이므로 실패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갑의 고백을 받은 을은 자존감이 상승할 겁니다. 자기가 갑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을이 갑의 사랑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은 갑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을이 갑의 사랑을 받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에 을이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나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을이 스스로 갑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자존감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경우 을에게 갑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나중에 오늘 하려는 얘기와 상관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로 ‘예언자는 누구이고 뭘 한 사람인가?’라는 주제의 시리즈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그 동안 두 번 연장했는데 오늘은 정말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서 말씀은 예언서가 아닌 복음서에서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어차피 대여섯 번의 설교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전체적으로 다룰 수는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에 집중했는데 그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용서에 대해서 얘기하게 되어 예수님에게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은 당대 사람들에게 예언자 계열에 속한 사람으로 여겨졌으니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역할 중에 예언자의 역할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예언자와 예수님을 연결하는 것이 이례적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죄의 용서라는 주제로 얘기할 때는 예수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굳이 죄 사함을 말씀하셔서....


마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는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어떤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데 그 소문을 듣고 몇 사람이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들고 집 앞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집 안팎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환자를 집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서 거기에 구멍을 뚫고 침상을 예수님 앞에 내려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여보시오, 그대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침상을 들고 온 친구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게 아니라 그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신 겁니다.


그러자 거기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느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아셨는지 그들의 속마음을 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습니까? 중풍병자에게 ‘그대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그대의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시오.’하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쉽겠소?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그대들에게 알려주겠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내가 그대에게 말합니다. 일어나서 자리를 걷어서 집으로 가시오.”라고 말씀하셨고 병자가 곧바로 일어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리를 걷고 나갔다는 겁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과 당시 유대교 권력자들이 왜 첨예하게 갈등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을 참칭했기 때문이고 더 구체적으로 마음대로 사람의 죄를 용서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지은 죄는 오직 하느님만 용서하신다고 믿었는데 목수의 아들이요 갈릴리 출신 떠돌이 주제에 감히 죄의 용서를 ‘남발’하니 유대교 권력자들은 그걸 참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교 권력자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행위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오직 하느님만 갖고 있는 용서의 권한을 스스로 행사한 것이고 둘째로, 용서 받을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줬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권력자들은 죄의 용서는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고 그조차도 용서받을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예수님은 두 가지 모두 그들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조차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얘기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현장에서 붙들려온 여인 이야기입니다. 간음은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 개입된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군중들은 왠지 여자만 데려왔습니다. 남자는 어디 갔을까요? 도망쳤을까요? 군중이 일부러 여자만 데려왔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여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군중에게 예수님은 한동안 아무 말씀도 않고 땅바닥에 뭔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군중들은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고개를 들어 그들에게 “그대들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자를 예수께 데려온 자들은 불특정 다수인 ‘군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대들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불특정 다수인 ‘군중’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익명성 속에 숨어서 집단적으로 가학을 즐기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개인으로서 홀로 서라고 요구하신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떠나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복음서 기자가 ‘하나하나’라고 전하는 데도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보내십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라고 물으셨고 여자는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도 그대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여자의 죄를 용서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하신 겁니다! 간음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을 예수님은 죄인으로 여기지 않으신 겁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간음은 죄가 아니란 뜻입니까? 이런 점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이 에피소드를 복음서에 포함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요한복음 사본에 이 에피소드가 제외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시지 않았습니다. 간음이 죄가 아니라고 여기셨기 때문인지, 이 여인의 경우에만 그걸 죄로 여기시지 않은 것인지 확실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대목은 예수께서 그녀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하시고 그녀를 보내셨다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신뢰를 봅니다. 이 점이 예수님에게 독특하고 비상한 점입니다. 예수님은 개개인이 갖고 있는 내면의 힘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계십니다. 심지어 간음현장에서 붙들려온 사람이라도 그녀의 내면에는 참회의 능력과 양심의 힘,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지향성이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의 죄는 오로지 하느님만 용서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믿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여럿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죄를 용서를 구할 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의 용서가 하느님뿐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용서’하는 게 권리나 권한, 권위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 또는 ‘의무’임을 보여주신 겁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대들이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그대들 하늘 아버지께서도 그대들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들이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들 아버지께서도 그대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란 하느님과 죄를 지은 사람 사이의 양자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죄를 지은 사람,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사도 관여된 문제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이를 테면 이는 양자관계가 아니라 삼자관계, 또는 그 이상의 다자관계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신애가 아들의 유괴살인범을 용서해주려고 교도소에 갔다가 그가 이미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졸도한 것도 용서는 하느님과 죄인 사이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하느님과 가해자와 피해자(때로는 제삼자)의 삼자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그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말라!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무관하게 인간관계 안에서 저질러진 죄든, 하느님이 개입된 다자관계의 죄든 용서의 과정에는 죄를 용서하는 쪽이 있고 용서를 받는 쪽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용서하는 쪽이 늘 도덕적으로 윗자리를 차지하고 용서받는 쪽은 낮은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곧 전자는 ‘갑’의 위치에 있고 후자는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관계는 용서가 이루어진 후에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용서받은 쪽은 긴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용서해준 쪽을 만나면 움츠려들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용서가 이뤄졌다고 해도 관계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저는 예수님이 이런 점까지 염두에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하는 쪽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점 말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성서는 “나는 너를 용서한다.”는 식으로 용서를 능동태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네가(또는 네 죄가) 용서되었다.”는 식으로 수동태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하느님이 주어가 되는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하느님을 입에 올리지 않기 위해서 수동태를 썼고 ‘하느님에 의해서’라는 말을 생략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 점은 신약성서에서도 지속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는 좀 다른 의미로 수동태를 사용하셨다고 봅니다.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를 고친 얘기에서도 예수님은 “그대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라고 수동태를 쓰셨는데 죄의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면 하느님이든 사람이든 용서의 주체를 가급적이면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곧 예수님은 용서하는 ‘갑’의 자리에 아무도 앉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누구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아야 용서에서 갑을관계를 없앨 수 있다고 보셨던 겁니다. 용서에서 갑을관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용서란 특정한 시점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저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시 한 편 소개하고 이 시리즈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지푸라기’라는 시입니다. 시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지푸라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깊은 영감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하느님과 용서를 묵상하는 우리에게 좋은 내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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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29)


절박했던 어머니 하갈, 하늘의 약속을 받다


살다보면 동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더러 끝내 헤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이 당당히 국가로 발돋움하기 사백년 전쯤(창세기 15:13),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12:2). 그러나 아브람 아내의 불임은 약속을 성취하는데 걸림돌이었다. 그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10년쯤 되었을 때다. 그는 아내 사래의 여종이었던 이집트 사람 하갈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한다(16:1-3). 사래의 제안이 먼저였지만, 사람의 계획이 어찌 자기 뜻대로 흘러가던가. 하갈이 임신하자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했다(4절). 아브람의 두 아내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갈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지 사래에게서 도망쳐 나온다(6절).


임신 중에 도망쳐 나온 하갈이 광야의 샘 곁에 앉았을 때였다. 여호와의 천사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어온다. 그는 여호와이며 하나님이셨다(9, 13절). 여호와는 하갈의 이름을 부르며 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시지만(9절), 아브람처럼 동등하게 대응해 주신다. 그녀의 후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10절). 약속의 내용이 아브람에게 주신 것과 비슷하다(12:2). 이뿐만이 아니다. 천사는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지어준다(11절).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16:11, 개역개정)


이른바 ‘수태고지’ 장면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주로 영웅 탄생과 관련된다. 이후 삼손(사사기 13:3-5), 요시야 왕(열왕기상 13:2), 예수님의 탄생이 그렇다(누가복음 1:31). 하갈은 어떤가.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처음으로 유일하게 여호와의 천사가 이름을 불러준 인물이다. 더욱이 족장 아브라함처럼 태어날 아들 이름과 신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하갈이 사래의 학대로 도망쳤지만, 그녀는 천사와의 만남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를 얻었을 테다.


그러나 약간의 긴장은 남아있었다. 하갈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의 ‘이스마엘’이 들 나귀 같아서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 것이라는 신탁의 말씀을 듣는다(12절). 약속과 신탁을 받은 하갈은 자신이 앉았던 샘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13절). 그리고서 그 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곧 “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자의 우물”이라고 지었다(14절). 그녀가 우물에 붙인 이름은 살피시는 하나님과 약속받은 아들 이스마엘에 대한 감사의 신앙고백인 셈이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아브람과 사래는 여호와로부터 약속의 확증과 함께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으로 개명된다(15:5, 15). 아브라함이 75세에 후손을 약속받았지만(12:4), 백세의 노쇠해진 몸이 되어 아들을 얻었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고지 받은 대로(17:19)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다(21:3). 그런데 하갈이 이스마엘 출생약속을 받았을 당시 신탁내용의 현실화 조짐이었을까. 약속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아브라함이 젖을 뗀 이삭을 위해 전치를 열었을 즈음이다. 아브라함이 86세 때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이(16:16) 이삭을 놀렸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청한다. 이 일은 아브라함에게 큰 근심거리였다(21:9-11). 사라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상속을 공유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이삭과 이스마엘은 동거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의 고민을 하나님이 아셨다. 하나님은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셨지만, 하갈의 아들도 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다만 여호와는 이삭이 아브라함 언약의 상속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21:12-13). 결국 다음날 이른 아침 아브라함은 빵과 물을 하갈의 어깨에 메어주고 이스마엘과 함께 내보낸다. 얼마나 떠나왔을까. 십대 소년 이스마엘과 하갈은 인적이 드문 ‘브엘세바’(맹세의 우물) 광야에 이르렀다. 가죽부대의 물은 바닥났다. 하갈은 아들을 관목 덤불 아래 있게 했다(14-15절). 흙먼지 날리는 건조한 땅에서 자라난 관목의 그늘이 뜨거운 한낮의 열기를 충분히 식혀주지 못했으리라.


하갈은 아이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다며 소리 내어 울었고, 하나님이 소년의 울음 소리를 들으셨다(16절). 아들이 죽을까 염려하는 절박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광야는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장소다. 해설자는 하갈의 울음만을 기록했는데, 큰 소리로 우는 엄마를 보며 아들도 울었나 보다.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들으심이 독자의 마음을 이완시킨다. 이때였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의 이름을 불렀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1:17-18, 개역개정).


하갈이 아브라함처럼 땅을 약속받는 것은 아니지만, 족장 아브라함이 약속을 재확인 받은 것처럼 하갈역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재확인 받았다(16:10; 21:18). 하갈이 아브라함 족장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약속의 담지자가 된 셈이다. 마치 여자 족장처럼 보이지 않는가?


바로 그때였다. 물을 찾지 못했던 하갈이 샘물을 발견했다. 하나님이 보게 하셨다. 위험한 광야길, 탈진으로 인한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이후 하나님이 소년 이스마엘과 함께 계셨고, 그는 바란 광야에 거주하면서 활 쏘는 자로 성장했다(20절).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 과정에서 신실하지 못했던 부부 때문에 발생했던 가족갈등의 문제를 결국 하나님이 해결하셨다.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이삭만큼의 동일한 수준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안에 살게 되었다. 하갈은 더 이상 사라의 종이 아니다. 자유인이다.


이후 하갈은 이스마엘을 위해 이집트 출신 여자를 아내로 얻어주었다(21절). 하갈은 구약에서 아들의 아내를 구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아브라함이 고향 땅에 자신의 늙은 종을 보내 이삭의 아내를 구한 것처럼(24장), 하갈은 아브라함 족장의 역할과 많이 닮았다. 더욱이 하갈이 머물렀던 브엘세바는 이후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왕이 서로 언약을 맺은 장소요(21:22-23),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한 장소가 된다(26:22-33; 46:1-5). 한 마디로 하갈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브엘세바’는 이후로 이스라엘 족장들이 하나님을 만나 약속을 받는 거룩한 땅이 된다. 하갈이 사라의 학대를 피해 도망쳐 나와 머물렀던 수르 광야의 ‘브엘라헤로이’도 마찬가지다(16:14). 이후 이곳에서 이삭이 머물게 된다(24:62; 25:11). 놀랍게도 비천한 노예출신의 하갈과 하나님이 만났던 장소는 이스라엘 족장들의 중요한 장소가 된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하갈의 인연은 간단치 않다. 하갈은 아브라함 집안의 자식을 낳아주는 대리모, 그 이상이었다. 하갈이 이집트인 종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내’(히브리말, “잇샤”, 16:3; 개역개정, “첩”)였다. 하갈은 위기 순간마다 찾아오신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거듭 받았으니 아브라함과 비슷하다. 하갈이 노예 신분으로 아브라함 집안에 들어왔으나 하나님은 그녀를 자유인으로 바꾸셨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린 광야에서 하갈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는 이스라엘 족장 역사에서 언약을 확증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남 경험은 지리적, 혈통적 경계를 넘어 이집트인 여종 하갈에게도 적용되었다. 하갈의 관점에서 약자의 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오롯하다. 하여 하갈 이야기는 노예, 추방된 자, 여자, 과부, 억울한 자들 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구속역사’라는 성경의 거대담론에서 단절과 소외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선의가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보여준 희망의 이야기다.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 모두의 공존이 허락되는 공존의 아름다움이 움트는 이야기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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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4)


순복음 포수(捕囚)의 종언(終焉)


-범(汎)이든 호랑이든 한국교회의 기독교인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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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두 가지 분류 외엔 없다. 정치적으론 대의제 장로교, 신학적으론 순복음이다. 우선 모든 교파가 장로(長老)를 세운다. 감독제인 감리교, 직접민주주의 회중교회인 침례교도 장로를 세운다. 왜 그럴까? 한국인은 세 사람만 모이면 회장과 총무부터 뽑는다고, 안 세워주면 그 교회에 안 붙어있으니까. 그러나 장로들의 의결로 목회의 의제들을 결정한다는 대의제라지만 실상 대의(代議)는 유명무실하다. 대형교회일수록 당회장 담임목사가 전제적 제왕으로 군림하며 비자금 유용, 목회세습과 같은 전횡과 불법을 자행해도 적절한 제재를 못할 뿐더러 대다수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근위장교나 거수기들에 불과하다. 신학적으로 순복음이라 함은 범복음주의권이라 불리는 보수적 기독교계가 80년대 이전 자신들이 이단(異端)이라 정죄하고 비판하던 순복음식 영성운동(방언, 은사, 치유 등의 신비주의와 오중 복음 삼박자 축복 등의 세속적이고 기복적인 축복관)을 교세확장과 성도교육등 목회의 기본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인상비평적인 판단이니 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럴만한 방증이 있다.)


그러니 결국 하나,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순복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시장(재벌, 삼성)에 넘어갔듯이 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순복음에 굴복해 통째로 넘어갔다. 왜 그랬을까? 교회성장이 절정을 지나고 성도수가 감소하기 시작한 90년대가 되자 교회는 더 이상 새신자를 영입할 전도의 동력을 상실하게 됐고 교회간 경쟁과 이동의 시대가 시작됐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농(離農)이 발생하듯 작은 교회에서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이 대거 이루어졌다. 아이러니이지만 전체교세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대형화 부흥화 경쟁은 치열하고 노골화됐다. 나는 전부터 대형교회들에게 성도의 전수조사를 실시해 볼 것을 권해왔다. 그들이 다들 어디서 왔는지. 한국교회가 뭐가 문제고 무엇을 회개해야 할 것인지 자연 알게 될 것이다. 


시장의 욕망이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물들였다. 금단(禁斷)의 과일 같던 성공과 번영 축복의 선악과(善惡果)를 맛본 성도들의 허영과 욕망을 만족시켜줄 더 큰 교회, 더 세련된 예배,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교회(신학적 목회적 내용의 질은 중요치 않다)를 향한 수평이동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순복음에 굴복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다. 여기엔 복음주의권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성공한 유명 목회자들의 공로가 크다. 그들은 누구보다 선구적으로 앞장서 순복음의 이단정죄와 교류금지를 철회함으로써 총회와 교단의 결의를 무력화했고 순복음과의 적극적 교류를 시작했다. 자신들의 목회에 오순절 운동(五旬節運動, Pentecostalism)방식을 차용하기 위해서였다. 변화된 목회환경에 발맞춘 그들의 변화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힘입어 조용기 목사는 갑자기 이단의 괴수에서 한국교회의 큰 목자이자 대표목사 교계의 우상으로 추대되었다. 그 다음은 장신 총신 고신 합신 심지어 한신 등 복음주의권이든 개혁주의권이든 자유주의권이든 가릴 것 없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도 없이 자고 일어나니 순복음 천지가 돼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조용기의 4차원 영성, 피터 와그너의 교회성장학과 신(新)사도주의(New Apostolic Reformation), 베니힌과 빈 야드 운동, G2와 알파코스의 금이빨 금가루 집회, 방언, 입신, 웃음, 예언, 축사(逐邪) 여기에 온누리를 필두로 한 <경배와 찬양>운동과 새들백 윌로우크릭의 훈련 프로그램들 등 수입산 오순절주의와 번영신학 복음주의의 성장 운동들이 한국교회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막대한 영향아래 교계를 지배하고 있다. 담임목사들은 한동안 자신들을 교회를 경영하는 CEO라 불렀으며 부목과 전도사들을 직원으로 격하시켰고 그들에게 경배와 찬양 처세술과 경영이론 심리상담 리더십 제자훈련 세미나 수업과 사역을 강요, 마침내 그런 혼합주의 영성들이 순수(?)한 복음을 완전히 대체하기에 이르렀다.(순복음은 일종의 대체된 복음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나오는 장로교 목사의 대사를 원용해 본다면 순복음을 쫓아간 다른 교파들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순복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콤플렉스들의 역동, 그림자의 역동,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망, 남보다 커지고자 하는 야망이 한국교회의 순복음 포수(捕囚)의 원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향후 한국교회의 지배적이며 본질적 정신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와 같은 세속적 변질과 획일화의 길을 반대하고 자기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간 선배들과 동료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순복음 일색 가운데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에 불과했지 부흥제일주의라는 전체적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하는 반(反)순복음주의 신학과 정치를 지향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순복음은 옛날엔 위험한 사이비 정도였지만 이제는 중세 가톨릭만큼이나 변질된 기독교의 수괴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신학 역시 순복음에게 점령당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자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목사)로서 늘 이런 점을 아쉬워했다. 누군가 순복음으로 대표되는 우리시대 교회와 목회지향에 반대하면서 자라나는 신학생들에게 포스트 순복음의 영감을 열어줄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교회와 목회자 모델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선배, 그런 후학들만이 희망을 가져볼 기회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가나안 성도’라든가 ‘탈(脫)교회’ 같은 제도교회와의 결별의 논의가 본격화 활발해지기 전이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그 길을 걸어가 그 문을 열어보기를 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자신의 목회가 거기에 부응할 효력 있는 메시지가 될 정도(규모)가 못됐음은 물론, 나보다 젊은 신학생들에게서 그런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어느 면에서 젊은 신학생들은 목회현실의 억압에 더 쉽고 무력하게 굴복됐고 흡수됐다. 정치가 그렇듯 교계의 자정을 선도할 대안 세력은 결집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 나의 고뇌와 갈등 역시 순복음 일색에 잠식돼 비교 경쟁적 부흥에서 낙오된 퇴출자의 굴절일 뿐이란 절망감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가까운 교우들에게 그런 절망감을 토로하곤 했다. 기껏 노심초사 애를 써 새로운 신자를 전도해 양육하면 무엇 하나. 그들의 99%는 이삼년 이래 대형교회로 흡수된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 자녀의 신앙교육, 대형교회 신자와의 결혼(그들은 신랑이건 신부이건 대형교회로 흡수돼 가는 걸 당연시 한다.), 스펙과 인맥을 위한 이동 등이다. 한마디로 그들 역시 다른 무엇이 아닌 매머드급 크기가 자랑하는 유무형의 선전적 구미(口味)에 압도되고 매혹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 누군가에게 대형교회는 개척교회의 설립을 환영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개척교회만이 새로운 신자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손 안대고 코푼다는 식으로 개척교회 목사가 고군분투 양육한 새신자들을 앉아서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개척교회들은 그 이삼년을 고비로 문을 닫는 경우가 태반이다. ‘목회 성공의 99.99%는 교회건물에 있다’는 탄식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젊은 부부들은 그들대로 자녀를 둔 부부들 역시 그들대로 중장년과 노인들 역시 그들대로의 욕망과 필요 허영과 만족을 위해 대형교회로 간다. 대형교회는 이제 한국교회의 못자리가 아니라 거대한 회랑을 지닌 무덤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환경에 저항하는 것을 나의 기치이자 목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설득되지는 않았지만 교우들에게 이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 기치와 목표에 따라오지 않았고 결국 나를 떠났다. 슬픈 위안이자 자랑이지만 지난 10년의 목회를 통해 목사인 나나 아내나 설교나 우리의 목회철학이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를 떠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나와 내 설교와 목회방식이 바람직하고 좋지만 그게 아닌 이런저런 다른 이유들로 교회를 떠났고 결국 강남과 그 주변의 대형교회들로 흡수됐다.(나는 이 점이 가장 절망스럽다.) 가끔 사석으로 모이면 어떻게 하면 순복음과 맞장 뜰 대형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면 대개는 내 사명을 확인시켜주고 포기하지 말 것을 격려해줌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개중에는 하나님이 내게 이러한 외로운 길을 원하시는 거라는 위로를 주는 건지 슬픔을 주는 건지 모를 말들을 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만 더 기꺼이 어리석은 목사가 되어 반대로 평신도인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그렇다면 저 순복음들은 무엇인가? 저들의 반칙과 전횡은 어떤가? 저들의 말도 안 되는 설교와 성경 해석들은 어떤가? 그럼에도 불구한 저들의 성공은 무엇인가? 저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그들의 권력화, 기득권화, 정치세력화, 복음의 변질, 진리의 왜곡, 기독교 가치관의 붕괴, 설득력의 실종, 전도의 종말… 그것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그러나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는 당신들은 무엇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지는 못했다. 그 점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어차피. 


예전엔 목회자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만든 책임 당사자들이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게 된다. 한국교회를 이 모양으로 전락시킨 장본인들은 성도들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 목사들은 단지 대중의 취향에 알맞은 설교와 서비스로 그들의 요구와 비위에 맞춰 따라갔을 뿐이다. 그것이 변덕맞고 욕심 많고 의미 없고 어리석고 무식하고 고집스런 그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D.L 무디는 평신도들을 양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라 표현했다는데 그건 정말 기막힌 진실이다. 그들은 필요할 땐 기꺼이 목자의 도움을 청하는 양 흉내를 내며 ‘매애애~ 매애애~’ 찾아오지만 원기를 회복하고 또 다른 필요의 욕망이 생기면 야성의 늑대의 성질을 곧바로 드러낸다. 나는 이제 그 두 가지 행동의 시작됨과 끝남은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하나님의 나라의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부른 까닭(요 6:26)’이라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어디까지인지.


목사가 아무리 제왕적이라 비판을 당하지만 사실 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 결과는 사람이 생긴 대로 살고 끼리끼리 놀 듯 서로 속고 속이며 서로의 뱃속과 입맛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게 호의를 표하는 다수의 평신도들이 내게 자기의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도 십 수 년째 그 교회를 다니고 있는 모습들을 신비롭게 본다. 그들이 그런 곳을 떠나 다시 그와 비슷한 교회들을 전전하는 사연들을 여전히 난해하게 듣는다. 그들은 늘 한국교회를 걱정하고 목사들의 인격과 설교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자신은 그럼에도 주님의 뜻(?)을 위하여 주님이 확실한 사인을 보내실 때까지(젠장, 무슨 사인을 원하는 건지) 그 자리에 충성스럽게 남아있는 매우 지성적이고 개념 있는 성도라 생각한다. 그들은 주님이 자기들을 방치해 두었거나 기대할 바가 별로 없는 자들로 치부해 놓으셨다는 생각은 절대 못한다. 자기들이야말로 위선자들이요 바리새인이요 저 비리와 추행, 전횡과 표절, 세습과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든든한 지지세력인 것을 모르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여전히 헤어진 지 십년이 넘은 나의 설교를 찾아 듣고 있으며 내 책이나 설교문을 남들에게 소개하고 돌려 읽기도 한다면서 여전히 나를 존경하고 하나님께서 언젠가 한국교회를 위해 목사님(나)을 크게 쓰실 거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럴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으로 비웃는다. 그리고 재빨리 마음 깊은 속에서 제발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고 주님께 기도드린다. 나는 지금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이다. 반(半)농담이지만 누군가 나를 여기서 꺼내준다면 그를 축복할지 아주 죽여 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그들 말대로 정말 내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목사가 됐을 때 그들이 나를 진짜로 다시 찾아줄 날이 온다면, 나는 ‘거짓되고 의리 없고 교활하여 이득에 밝은 무신(無信)한 병(病)신도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모른다. 내가 주리고 외롭고 지쳤을 때 당신들은 나에게 물한모금 준적이 없었다. 내 설교와 나를 칭찬했지만 진짜 필요한 내 사역에 돈 한 푼 도와준 바가 없었다. 당신들은 외롭고 곤란하고 근심이 가득차 위로와 격려 용기와 영감이 필요할 때는 나를 찾아오지만 그것이 다 충족된 다음 건강하고 안정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사람, 심지어 나의 대적이나 내가 적대하는 자들에게로 가버렸다. 나는 정말이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당하고 속아왔다. 제발 나를 아는 척 친한척 하지 말고 내 거절의 말을 새겨듣고 나를 떠나라.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시다.’라고. 곧바로 회개하긴 하지만 그들을 아주 개무시 박살내 주리라 결심하고 결심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교회라는 조직을 통한 교회내의 반(反)기독교(나는 이게 진짜 기독교의 적이라 여긴다)에 대한 저항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탈(脫)교회를 받아들였고 가나안 성도들의 시대가 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교회라는 조직이 거부된 시대 포스트 교회 시대 기독교 진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작금 순복음 일색의 조직과 제도로서의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류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대형교회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성공과 압도는 가라지의 번창과 같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대개 곡식보다 가라지가 벼보다 피와 깜부기가 더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전체를 잠식했다는 것은 주님이 더 이상 그것을 사용치 않으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성장과 번영은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이 포기하고 내버리신 것이다. 


추수 때가 오면 가장 먼저 뽑혀져 버려질 가라지. 이런 결론을 내리고 이런 말을 하게 되기에 이른 내 마음은 누구보다 쓰리고 아프다. 이것이 단지 그들과 같이 되지 못한 우울증에 불과하다는 짐짓 사려 깊고 점잖은 평가까지 포함하여.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 오늘날의 목회자 오늘날의 평신도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는 식의 착한 말은 더 이상 내게 위로나 반박이 되지 않기에 거부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나안 성도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단합된 제도로서 교회의 균열 외에 가나안 성도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당장은 아니겠지만 서서히 내가 깨달은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내가 장래 어떤 모습일지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명목과 무실(無實)인 교의신학의 독단성으로 유지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의 형태는 더 이상 아닐 것이다.




범(汎)기독교계의 홍준표 지지라는 성명을 보았을 때, 나는 이제 하나의 분투와 마침내 결별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탄핵국면 태극기 집회의 배후에서도 그들을 보았었지.) 이영훈과 조용기와 홍준표의 만남.(그들이 열거한 단체들이 있다지만 그것들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한국교회 최후의 몰골을 본다. 모든 내 스승과 선배와 동료와 후배와 믿음이 돈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당신들이 속한 범(汎)기독교인가? 제발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를. 그렇다. 나는 이들이 범(汎)기독교의 대표임을 인정한다. 이들이 우리 모두의 대표로 활동해왔고 활동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때문에 이제 나는 교회와 신학의 순복음 포수(捕囚)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회고하며 이제 그것을 청산 할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다만 그것을 다시 한국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기대하진 않는다. 한 사람의 탈교회 기독교인 한 사람의 가나안 성도로서 내가 청산하고 내가 결별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정말이지 종교개혁과 한 터럭도 상관이 없는 자들까지 개나 소나 루터와 캘빈 쯔빙글리(1531년 그는 카펠전투에서 8,000의 교황군에 맞서 2,000의 개신교 군대의 종군목사로 싸우다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를 들먹이며 비텐베르그, 제네바, 취리히 등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이 부패와 타락의 절정인 시대엔, 누구든 이제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청산하는 수순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의 책임으로! 나는 오늘부로 범(汎)이든 호랑이든 더 이상 저들의 한국교회에 속한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한다.(마음을 추스르려 쓴 글이니 부디 타박하지 마시기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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