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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빈센트 반 고흐, , 신성림 옮김, 예담, p.82)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입추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달라졌습니다. 새벽이면 홑이불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렇게 보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뭇잎도 그 무성하던 초록이 조금 풀이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매미소리도 조금 애잔해졌습니다. 참매미, 말매미, 쓰름매미, 유지매미 소리가 뒤섞여 숲을 가득 채우더니 이제는 제풀에 꺾인 듯 소리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계절은 이렇게 어김없이 순환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 2021. 8. 12.
마음으로 통하는 한 언어 오후에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교장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소탈하신 분이셨다. 자신의 교육철학,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 은사와 제자라는 말, 교육자로서 갖는 보람 등을 말씀하셨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교장 선생님의 웃음은 유난히 맑고 많으셨다. 나이가 인간의 순박함을 지워간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쉬운 생각이지 싶다. 전교생이 80명이 채 안 되는 이 곳 단강초등학교. 이곳의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 문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 년에 한번쯤이라도 전교생의 글을 모아 하나의 작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 되겠지 싶다. 서툴더라도 건강한 글들이 실리리라. 어쩌면 농촌에 대한 가장 꾸임 없.. 2021. 8. 12.
해바라기 응달진 씽크대 주방 집기들이 아파트 베란다로 다 나왔다 물속에서도 물기를 머금을 줄 모르던 집기들이 모처럼 누워서 축 늘어져 해바라기를 한다 어떻게 햇살을 담뿍 머금었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뿜는 걸 아름답게 바라보면서도 해바라기 씨앗처럼 까만 점이 생길까 샛노란 꽃잎처럼 피부가 탈까 쓸데없는 걱정부터 앞서는 나는 아직 멀었다 살면서 해바라기 한 번 실컷 못하고서 그늘진 눈가에 실주름만 진다 해를 등에 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해바라기처럼 8월의 햇살에 익어가며 씨앗에게 자릴 내어주는 꽃잎과 밭고랑을 닮은 굵은 주름살 앞에 늘 부끄러운 마음의 골마다 주름이 진다 2021. 8. 12.
갓 태어난 송아지 신기하게도 송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다닌다. 오늘 지 집사님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영양부족인지 일어나질 못했다. 모두 일터에 나간 한낮에 송아지를 낳은 모양이었다. 저녁 어둘 녘에야 일터에서 돌아와서 외양간 오물을 치우면서야 송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우사에 가보니 어미 소가 열심히 핥아주고 있는데도 그때까지 송아지는 털이 마르지 않았다. 송아지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다 맘 속으로 대신한다. 신앙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너무 꾸민 몸짓 같았다. 다음날 원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사에 다시 들리니 송아지가 일어섰다. 일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송아지를 돌본 집사님의 정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겨우 일어섰을 뿐 엄마 젖을 찾을 줄도 빨 줄도 몰라 우유를 타서 줘야 한다. 추.. 2021. 8. 11.
무딘 나를 흔드는 것은 무딘 나를 흔드는 것은 스쳐 지나는 꽃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느라 머문 당신의 고요한 눈빛입니다 닫힌 귀를 열리게 하는 것은 간지럽히는 꽃노래가 아니라 우리 사이를 빈틈 없이 채운 당신의 평온한 침묵입니다 2021. 8. 11.
빼앗긴 들 김영옥 성도님네 잎담배 심는 곳에 다녀왔다.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 밭이었다. 요즘은 매일같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담배를 심고 있다. 그때마다 일터로 찾아가 인사를 한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일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건 수고한다는 빈말에 가까운 인사보다는 구체적으로 일을 돕는 일손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맡은 일의 차이를 인정하여 인사만이라도 거르지 말아야지 싶은 생각이다. 내가 할일을 사람들이 깨달으며 인정한 후엔 오히려 함께 일함이 쉬워지겠지. 밭에 가니 동네 거의 모든 분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담배는 참 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한 분씩 만나 뵈며 수고하신다 인사를 하며 몇 마디씩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도 반가이 맞아 주는 그분들이 고맙다.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일하는 밭 바로 옆 강가.. 2021. 8. 10.
니코스카잔차키스를 읽으며 어제 오늘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오 아름다운 크레타의 영혼’을 읽는다. 그의 작품들에서 인상적인 말들을 뽑아 엮은 책이다. 낱권으로 읽을 때의 신선함이 되살아난다. 거침없는 사고와 행동, 그러면서도 더 없이 맑고 투명한 영혼.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꾸밈없이 일궈내는 살아있는 언어들. 자유혼을 가져야만 얽매임 없이 내 사는 땅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그가 들려주는 여러 얘기들은 가르친다. 분명 그는 내게 커다란 산이다. 한 마디 말로는 규정할 수 없는, 우직하고 묵묵한 산. 니코스카잔차키스를 통해 확인한 건 초라하게 무뎌진 내 언어와 영혼이었다. 1987년 2021. 8. 9.
갈급한 마음 팀스피릿 훈련 중이던 군인 한 명이 예배에 참석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는 훈련 중 이곳 섬뜰에서 1박을 하게 되자 혹 오늘 예배가 없느냐 물었다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지난번 부임 심방 때 빠진 최일용 성도님 가정을 심방하기로 한 날이어서 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말씀이 그리웠다고 한다. 문득 군에 입대하여 첫 예배를 드리며 눈을 꽤나 흘렸던 옛 군생활이 생각났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여호수아 1장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종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던 카투사 이인철 병장, 그는 말씀을 듣고만 간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남기고 갔다. 말씀을 갈급해 하는 마음을 남겼다. 넌 언제 어디서 그걸 잃어버렸느냐고, 그가 묻지도 않은 물음이 안경을 쓴 그의 얼굴과 함께 그가 돌아간 뒤에도 내내 .. 2021. 8. 8.
작두질과 도끼질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 누워 계셨고, 머리맡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두 분은 마을에서 뚝 떨어진 외진 산중에서 산을 지키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촛농이 쌓이고, 시커멓게 그을린 등잔불,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서 두 분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이란 지금처럼 어둑하고 침침한 것이리라. 날짜와 요일을 몰라 예배드리러 내려오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땐,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깊숙한 주름마다에 패인 두 분 삶의 고독이란 얼마만한 것일지 모르겠다. 마당에 나와 소죽거리 만드는 작두질을 도와 드렸다. ‘써걱, 써걱’ 할아버지가 들이미는 짚단이 내리 밟는 작두에 잘려 나간다. 문득 스치는 생각들이 있다. 한 독립군이 일본군에 의해 작두에 목이 잘려 죽던 얼마 전 신문의 사진이 떠올랐다... 2021.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