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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더 좋아진 노래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단강에 와서 새로워진 노래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단강에 와서 더 좋아진 노래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 있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단강에 와서 다시 좋아진 노래 - 1989년 2021. 7. 20.
편히 쉬십시오 당신 떠나시는 날 찬비가 내렸습니다.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흩뿌린 겨울비는 가뜩이나 당신 보내며 허전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질컥질컥 내리는 겨울비가 여간 궂은 게 아니었지만 어디 당신 살아온 한 평생에 비기겠습니까. 부모님 세대는 아무래도 불행한 시절을 사셨습니다. 일제며, 난리며, 보릿고개며, 이래저래 8년씩이나 당신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나무장사 품 장사로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아주머니의 설움과 눈물. 병상에서 아주머니 눈물 흘리며 지난 시절 말하실 때 “뭘 지난 일을 갖고 그려” 하셨던 당신. 초등학교 그만둔 자식들이 “엄마, 호멩이질이 모두 글씨로 보여.” 했다며 재주 많은 자식들 못 가르친 한(恨) 눈물로 말할 때 깊이 팬 두 눈만 껌벅이셨던 당신. 바튼 된 .. 2021. 7. 19.
숨 그리고 숨쉼 숨을 쉰다 숨을 쉰다 숨은 쉬는 일 숨은 쉼이 된다 너무 빨라지지 않도록 너무 가빠지지 않도록 숨으로 고삐를 매어 몸과 마음의 황소를 길들이는 일 숨을 쉬는 순간마다 숨은 쉼이 되는 일 숨은 몸에게 쉼을 준다 성성적적(惺惺寂寂) 깨어서 숨을 바라보는 일이 오늘 하루 나의 주업무 나머지 몸을 위해 먹고 사는 모든 일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업일 뿐 숨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숨이 중용을 잃지 않도록 숨을 쉬는 일 숨은 쉼을 준다 영혼의 탯줄인 숨줄에 매어 순간과 순간을 새롭게 살아간다 고요한 숨은 우리의 본래면목 숨은 우리의 하느님 숨을 쉰다 숨을 쉰다 2021. 7. 18.
손바닥만 한 사랑 주일 저녁예배, 오늘은 특별히 박종구 씨 가정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박종구 씨는 변정림 씨 남편인데 얼마 전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술에 의지해 살아온 박종구 씨, 술에 취하면 고래고래 큰 소리가 작실 골짜기에 밤늦게까지 가득하다. 얼마 전 동네에 결혼식 잔치가 있던 날, 몹시 춥던 날이었는데 그날 동상이 걸렸다. 한낮에 술에 취한 채 나간 박종구 씨를 밤 11시가 되어서야 윗작실 논배미에서 발견을 했다. 마실을 갔다가 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발견을 한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집배원 아저씨가 놀라 달려갔을 땐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짚단에 불을 놓아 한참을 녹인 다음에야 겨우 등에 업고 집으로 내려올 수가 있었는데, 그 사이 발에 심한 동.. 2021. 7. 18.
실컷 멀미를 하며 보건소장이 써준 소견서를 읽고 이리저리 부어오른 목을 살펴 본 의사는 너무 늦게 왔노라고 쉽게 말했다. 접수, 대기, 그토록 한참을 기다려 만났는데도 대답은 간단했다. 환자 먼저 나가 있으라고 한 후 나눈 이야기는 어두운 내용이었다. 방법은 수술뿐, 수술도 장담할 수는 없겠노라는 것이었다. 약으로서 치료나 병의 악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수술을 하면 얼마나 들까요? 의료보호카드가 있는데요.” “글쎄요 그걸 제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진찰비가 20-30만원, 수술비는 50-60만원 정도 될 겁니다.” 머릿속에 얼핏 100만원의 숫자가 지난다. “중요한건 돈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결정일 거요. 돈이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소.” “실은 저희들에겐 돈도 문제가.. 2021. 7. 17.
춤 그리고 멈춤 하늘과 땅 사이 숨으로 피어나는 춤 비와 바람의 북장단이 울리면 가슴이 들썩인다 발뒤꿈치에서 움터 손끝으로 흘러 춤으로 피어나는 숨 춤은 멈춤에서 시작하여 멈춤으로 끝나는 숨 춤을 찰라로 쪼개면 멈춤의 이어짐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 신에게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춤은 화목 제물이 되는 스스로 온전한 춤은 온전한 사랑 안에 머물러 비로소 쉼을 얻는 멈춤 바깥에서 헤매이며 구하기보다는 멈추어 안으로 시선을 거두는 기도 한 점 숨으로 머무는 고요 침묵의 기도와 사랑의 숨쉼 꽃과 나무의 춤 그리고 멈춤의 평화 사람의 본래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의 숨 2021. 7. 17.
가난하지만 작실속 속회, 유치화 청년 집에서 모이는 날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져야 일손을 놓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 그제야 씻고 저녁 먹고 하면 어느덧 시간은 저만큼이다. 일찍 모이자고 약속했으면서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치화 씨가 주변에 모임을 알리러 나간 사이 치화 씨 어머니가 툇마루에 촛불 하나 밝히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아직 유치화 청년 집에는 전기가 없다. 오랫동안 비어 있어 전기가 끊긴 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는 내력은 길고도 슬프다. 삶이란 저리도 기구하고 질긴 거구나 싶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며 흔들리는 촛불 앞에 둘러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불에 관한 이야기였다. “옛날엔 등잔불 아래서도 명주 올이 잘 보.. 2021. 7. 16.
열 감지기가 울렸다 열 감지기가 울렸다 가게 문 입구에서 37.4도 순간 나는 발열자가 된다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았던 것이 원인임을 스스로 감지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선풍기를 돌리고 창문을 조금 열어둔다 차 안에서는 뒤에 창문 두 개를 다 열고 보조석 창문을 반쯤 열고 운전석 창문은 이마까지만 내린다 비록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맺히더래도 여름인데 몸에서 땀이 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나는 가족들 사이에선 꼰대가 되기도 하고 밖에선 발열자가 되어서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인도 델리의 재래 시장인 빠하르간즈 5월로 접어들던 무렵의 무더위를 몸이 기억한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선 숨조차 쉴 수 없었던 무더움 그곳의 초여름 더위는 무더움을 넘어.. 2021. 7. 16.
단순한 삶으로의 초대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당신 옆에 앉을 은총을 구합니다. 지금 하던 일은 뒷날 마치겠습니다. (중략) 지금은 말없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 조용하며 넘치는 안일 속에서 생명의 헌사를 노래할 시간입니다.”(타고르, , 김병익 옮김, 민음사, p.18) 긴장된 시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지뢰밭 위를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합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아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합니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불편합니다. 함부로 지적했다가 시비에 휘말릴 것 같아 얼굴만 찌푸리고 재빨리 지나칩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마주 선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 일을 삼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는 자유는 위험합니다. 앞을.. 2021.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