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메시지를 감수할 수 있을까



예레미야서는 예언서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으로 통한다. 예레미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 중에 이 책의 내용이 뒤죽박죽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까지 말한 이도 있는 지경이다.


1장에서 25장까지는 운문이 주를 이루고 26장부터 52장까지는 산문이 주를 이루지만 운문 중에 산문이 섞여 있기도 하고 반대로 산문 중에 운문이 섞여 있기도 하다. 모빙켈이라는 구약학자가 1-25장의 운문은 예레미야가 직접 한 말(이른바 A 자료)이고 26-52장의 산문은 그의 제자이며 서기(scribe)였던 바룩이 쓴 예레미야의 전기자료(B 자료)와 예레미야서를 편집한 신명기사가의 기록(C 자료)이라고 구분한 이래 오랫동안 그의 자료설이 학계의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운문 내에도 일정한 통일성을 찾아보기 힘들고 산문의 경우에도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번갈아 등장할 뿐 아니라 서술이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도 않기 때문에 예레미야서는 해석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으로 ‘악명’이 높다. 근래에는 예레미야서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주제와 구조를 갖고 있는 통일된 이야기로 읽으려는 경향이 점차 힘을 얻고 있지만 예레미야서 전체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예레미야서를 한 절 한 절 읽어가면서 꼼꼼하게 해석을 가한 저자의 노력에 경탄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작업은 예레미야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하기 힘든 일임을 잘 알기에 더욱 경탄해 마지않았다. 저자는 맑고 밝은 눈으로 본문을 꼼꼼히 읽을 뿐 아니라 해당 구절과 연관이 있는 문학과 인문학 저자들의 글을 인용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이 쓰였던 때 한국사회의 현실을 말씀에 비춰보면서 진정한 예레미야서의 독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어떻게 내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런 성격의 성서해설서는 저자 자신이 본문을 깊이 읽을 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특정한 사회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올바르게 살고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성찰하며 살지 않으면 쓰일 수 없는 책임에 분명하다.



예레미야서는 오래 작업 중인 내 논문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특별히 26-29장은 내 논문이 다루는 주요 본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에 대한 본문인 23장과 26-29장을 다룬 부분을 집중해서 읽었다. 저자는 이 어려운 본문을 술술 읽히도록 쉽게 풀어놓았다. ‘메시지’ 부분에서는 다양한 예를 들어가면서 오늘날 참 예언자의 메시지는 어떤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거짓 예언자의 메시지는 어떤 것인지를 흥미롭게 서술했다. 이 책에서 이 부분을 가장 매력적으로 읽은 까닭은 비단 내 논문의 주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끊임없이 고뇌하고 때로는 하나님에게 속았다고까지 탄식했던 예레미야를 가장 괴롭혔던 게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본다. 자기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좀처럼 실현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자기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과 예언자들에게서 목숨을 위협받았을 정도로 정치적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물론 그는 이런 것 때문에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힌 사실은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전해도 결국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유다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하리라는 걸 예레미야는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그의 메시지는 ‘실패한’ 선언이 될 것이란 사실이 그를 괴롭혔으리란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너 세대 후에는, 또는 70년이 경과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이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게 만들어 주시리라는 희망이 그로 하여금 ‘실패한’ 메시지를 감수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는 자기 메시지가 ‘실패’하리라는 사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글을 박근혜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소의 심의가 끝나고 인용과 기각 여부를 결정하는 평결에 들어간 시점에 썼다. 예레미야서의 메시지에 비추어보면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포로시기’가 끝나감을 보여주는 징조일 뿐이다. 새로운 시작을 이번엔 실수 없이 하려면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메시지를 오늘날 어떻게 새롭게 되살려 낼 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얻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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