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종교를 묻다

 

트럼프의 당선에 세계는 당혹했다. 개신교를 믿는 백인이 세운 나라가 미국이다. 트럼프가 주목하고 배려한 대상도 백인 개신교도다. 반면 힐러리는 다양성으로 다가섰다. 미국의 투표제도를 잘 이해하고 목표를 명료하게 밝힌 트럼프의 승리는 당연했다. 미국 내 문제만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승리할 것인가? 한국은 사회적 경직성에 비해 종교적 조건은 무척 다양하다. 미국처럼 단순 명확하지 않다. 사실 개신교, 불교, 유교 게다가 샤머니즘까지 공존하는데도 경직된 사회란 당황스럽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려면 사회적 관용도 커져야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관용이란 진귀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종교를 넘어 사회를 굳히는 콘크리트가 있다는 말이다. 종교 위에 또 다른 종교가 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퀴즈를 풀어보려는 노력이 바로 이 책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다.

 

 

태초에 통계가 있었으니, 책은 통계로 시작한다. 개신교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불교, 가톨릭 순이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종교인 숫자는 종교의 영업방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는 개신교는 ‘자영업’에 가깝다고 보았다. 맞다. 한국에는 치킨집과 교회가 가장 많다. 반면 가톨릭은 맥도날드 햄버거나 스타벅스 커피점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본사의 지원이 빵빵한 프랜차이즈라는 말이다. 반면 불교는 공무원 조직과 유사하다. 앉아서 염불만 외워도 먹여준다. 그렇다면 공무원 시험에도 스님을 넣을 일이다. 9급 스님, 7급 스님 시험이나 스님 행시에 붙은 5급 스님까지.

 

저자가 주목한 종교 뒤에 콘크리트는 바로 ‘민족주의’다. 교리는 “꿈은 다시 이루어지고, 한국은 다시 세계 4강이다!”이다. 아무 내용도 형식도 없는 황당한 구호지만 모두를 하나로 엮는 신앙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여러 종교들이 각기 역할을 담당한다. 중앙관청은 유교다. 유교가 정한 시행령 안에 인허가를 받은 자영업에는 개신교가 있고, 대리점인 가톨릭이 성업 중이며 공사(公社)기업인 불교가 게으르게 “관세음보살”을 외운다. 참고로 점집 및 무당이 개신교와 아웅다웅, 티격태격 싸우는 이유는 이들도 자영업자이며 업태 및 서비스가 겹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종교의 자유란 민주를 먼저 믿고 나서 생긴다. 하지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교리가 말해주듯 민족이 먼저다. 민족주의는 믿을 때 무릇 “민족성령”을 먼저 받아야 한다. 민족성령에는 유교가 주장하는 왕조 이념이 스며있다. 위아래도 모르는 싸가지 없는 불효자에게는 민족성령의 불을 내려주지 않는다. 즉 민주 위에 유교 이념으로 충만한 민족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일제 때 민족은 황국신민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느 종교도 이 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때문에 일제 때는 총독부 입속의 혀처럼 굴고 유신 때는 유신의 앞잡이였다.

 

유교는 위아래의 위계에만 관심이 있다. 일단 줄 세워서 제일 앞에 놈이 쌔고 쌘 놈이 항상 올바르고 가장 우선이다. 왕 다음은 한 줄로 선다. 왕은 타고나니 따로 직업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지금 대통령이 바로 그렇다. 다음부터는 연줄, 가문, 그리고 공부 순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진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바로 수능이다. 때문에 연줄도 가문도 없으면 수능만이 도(道)이자 있는 신앙이다. 출세만이 깨달음이고 도이니 마땅히 수능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따라서 높은 순위의 대학은 더 많이 구원 받았다. 지잡대 출신이면 하층민이고 진리를 벗어난 고졸은 악(惡)거나 노숙자일 수밖에 없다.

 

민주의 가면을 쓴 왕조사회는 왕과 공무원 그리고 시민이 아닌 충실한 신민(臣民)으로 이루어져있다. 저자는 사회적 트라우마 역시 왕조라는 종교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세월호나 메르스(Mers)가 바로 그렇다. 그들은 줄을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조에서는 소외되고, 배척받으며,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란 값 싼 동정이나 배제의 대상이다. 게다가 유교주의 왕조에서는 약자의 고통과 희생은 필요하다. 서열에서 배제된 자의 고통은 선택받아 줄 안에 서 있는 자들에게는 위안이기 때문이다. 위안이야 말로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달콤한 선물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탁월한 통찰은 우리 종교,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가는 신념과 사회의 종교적 구조의 민낯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개신교 치맥집’ 출신이라 유사 자영업인 ‘샤마니즘 분식점’이 지니는 지대한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듯하여 아쉽다. 물론 그가 “한국 교회는 편한 마음으로 샤머니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혹은 희생타로 이용해 왔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라고 고백하지만 마치 ‘김밥 천국’이나 ‘죠스 떡볶이’도 먹을 만 하다고 말하는 듯할 뿐이다. “타산지석”이라 하지만 개 닭 보는 것 같단 말이다.

 

하지만 보라. 전국적으로 등록된 무당, 점집은 개신교 목사의 3배에 가까운 30만이다. 그들은 한국 종교문화의 다수다. 니체는 신의 시체를 발견하고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 그가 버리고 떠나간 신의 시체에서는 여러 벌레들이 들끓고 결국에는 해골이 남았다. 신의 시체에서 생겨난 벌레와 해골이 바로 민간신앙(Pagan Religion)과 샤머니즘이다. 유럽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그렇지 않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저자는 결론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른 색에 대한 관용을 잊고 지낸다.”라고 하며, 이 하나의 색을 민족주의로 보고 다양한 종교 안에서 개인적 가치를 찾을 것을 충고한다. 종교학자로 바람직한 얌전한 그림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민족주의일 뿐만 아니라 왕조의 붕괴다. 이런 점에서 저자도 실은 얌전하지 않다. 그에게도 승리가 관건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다음 책은 <종교로 승리하는 한국사회>이기를 기대한다.

 

이호영/철학박사, 중앙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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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를 대하는 한국 종교의 호들갑과 사회적 뻘짓

 

성탄시즌이 시작하기 직전 통계청에서 2015년도에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를 발표하였다. 물론 이 자료에는 종교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10년마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내놓는 자료인지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이번 결과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신도수 순위가 많은 이의 예상을 빗겨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신도수 순위에서 1위를 달리던 불교가 이번 조사에서는 인구수 대비 15%정도인 760만 여명 정도로 960여만 명을 기록한 개신교에 이어 2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이 수치는 2005년 조사에 비해 120여만 명이 늘어난 것이라서 계속 신자들이 줄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입장에서는 좀 뻘쭘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005년 신도수 5백만 명을 넘으며 기염을 토했던 천주교는 380여만 명으로 백여만 명 이상의 신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뚱맞은 각 종단의 호들갑

 

이런 결과가 나오자 각 종단별로 난리 났다. 1등에서 밀려난 불교계로서는 조사 결과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급기야 조사방식의 형평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전의 전수조사와는 달리 이번은 국민 대비 20%의 표본조사이고, 그것도 방문조사와 자발적 인터넷 참여조사를 병행했기에 상대적으로 노령층 신도가 많은 불교로서는 통계 왜곡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황스럽기는 1위를 차지한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무려 120만 여명의 신자수 증가는 개신교에게는 뻘쭘한 형국을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2005년 조사결과 발표 이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개신교는 실제 교회 현장에서도 신도수의 감소를 피부로 점감하고 있던 터라 백만 명 이상의 신자수 증가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통계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들이댄다. 2015년 통계에는 가나안 교회 성도가 포함되었다느니, 이단의 통계도 포함되어서 그랬다니 등등. 그러나 가나안 성도나 이단의 수치가 전체 통계에 영향을 주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만약 개신교 통계에 이들이 반영되었다면 비단 2015년도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단 신도들이나 교회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굳이 통계에서 개신교를 선택할 필연적 이유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겠나. 따라서 개신교 신도수 변화에 가나안교인이나 이단의 수는 상수라 보기 힘들고, 함수라 해도 그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천주교의 대응은 차분한 편이다. 물론 천주교 관련 몇몇 미디어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회의 선교 관심을 높여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을 펴는 곳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두 종단과 달리 천주교의 대응은 침착하다고 할 만하다. 아무래도 자체 내 통계에서 이미 지금의 수치를 가늠했던 탓이 아니었겠는가.

 

 

종교학자의 눈에는 이번 통계결과 발표에 보이는 각 종단의 호들갑이 오히려 더 생뚱맞아 보인다. 우선 불교의 경우, 언제 불교가 신도수 중심의 종교였던가? 입만 열면 수행의 종교라 하면서 왜 이럴 때는 정량적 수치에 급급해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이미 깨달음은 확보되었기에, 그 다음 수순으로 숫자 놀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불교는 기본적으로 출가자 중심의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적 수행과 절차, 의례에 매진하는 경우도 재가자보다는 출가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불교는 신자 수의 많고 적음에 그리 집착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다. 그들이 보다 투명하고 올곧게 자신들 수행에 집중하면 될 뿐이다. 그러니 불교로서는 신도 수의 증감에 그리 예민하게 굴 필요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번 순위에 집중하는 불교의 태도는 잘 요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스스로의 종교적 수행과 열정에 기대기보단 공적 자금과 기부에 의존하려는 불교의 오랜 습성이 남아있는 탓인가? 불교는 신도수 순위에 집착적 관심을 보이기보다 되려 주간 종교 활동 참여도 6%라는 참혹한 수치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이 수치는 설문결과 아무리 불자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제대로 된 불교신자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 1회 예배나 미사, 그리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참된 신자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6%의 참여도는 전체 불자의 수에 집착하는 종단의 행태를 머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따라서 불교는 무엇보다 소속된 신도의 종교적 활동 독려에 보다 더 신경을 쓰고,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고민할 때이지 순위가 어느 종단에 밀렸다고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교회와 관련된 화려한 사회적 뻘짓(?)

 

개신교의 경우는 이번 통계의 결과를 신도수의 증가로 봐야하나 고민스러울 것이다. 계속 진행 중인 교회와 관련된 화려한 사회적 뻘짓(?)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도 신자수가 늘었으니 진보측이나 보수측이나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를 간단히 ‘교회 성장’ 혹은 ‘부흥’으로 이야기하자니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있고, 또 받은 평판이 있으며, 게다가 현장 교회에서 올라오는 보고도 있는데 차마 그렇게 까지 포장하지 못하는 보수 쪽 입장도 있겠고, 2005년도에 비해 무려 120여만 명의 성장을 정상적인 것이라 인정할 수 없는 진보 쯕의 경직된 이념지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다시 보면, 개신교의 신도수는 그리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이른바 ‘1천만 신도’ 운운할 때가 언제인가?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천 2백만 신도라 목소리를 높혔고, 그때가 이미 80년대 아닌가! 그에 비한다면 지금 960여만 명 신도는 오히려 백여만 명 이상 감소한 셈이다. 물론 2005년 통계에 비해서 증가한 것은 확실하지만, 20년 전인 1995년도 19.4% 비율과 비교해 보면 2015년의 19.7%는 거의 제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큰 흐름에서 보면 개신교 역시 신도수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감소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다만 기존 통계청의 가택 방문조사가 가져온 ‘통계 착시’ 때문에 2005년도 결과가 심하게 왜곡되어 지금을 증가로 보게 만들고 있는 것뿐이다.

 

예서 잠시 이번 통계방식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보자. 전에는 에누리 없이 가택방문 전수조사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적지 않은 통계적 오류가 끼어든다. 이전 전수조사 방식은 설문의 대상이 특정 계층, 연령대, 성별대로 제약된다는 단점이 있다. 즉 오전이나 오후 직장이 아닌 집에 머무는 이는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술에 의해 가족 구성원의 종교를 일괄 조사하는 방식으로는 실제에 가까운 통계결과를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에 제대로 대면조사를 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기에 결과의 엄밀성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부터 보완한 방식이 ‘등록센서스’와 ‘표본조사’이다. 등록센서스는 기존 공적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수치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고, 이를 다시 20% 표본 전수조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2015년부터 도입된 조사 방법이다. 표본조사라 해도 20%에 해당하는 1천만 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그 결과치의 신뢰도는 상당한 수준이라 하겠다. 다시 표본조사는 가택 방문조사와 인터넷 조사를 병행하여 응답의 신뢰도를 높였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이번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결과는 이전의 어떤 통계보다 사실에 가까운 결과치를 보였다고 믿는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한국의 종교지형도에서 신도수로 나누는 순위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런 식의 응답으로 잡히는 신도수가 해당 종단에 유의미한 통계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인구조사를 통한 종교인 수 집계는 그냥 대강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종교인의 수를 그런 식의 설문으로 다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따라서 이는 그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그 결과로 전혀 일비일희할 필요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어쩌면 각 종단이 통계청의 발표에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한국의 종교들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단별로 신앙인 내지 신도수 통계는 매년 실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누구보다 종단본부 스스로 조직에 속한 신자수의 변화 추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통계청의 발표에 그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 조직의 통계를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게 관리해 왔다는 반증이라 하겠다. 이는 스스로 말하는 종교적 가치에 전면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도수에 대한 예민한 반응 자체가 한국 종교의 문제이면 문제이다.

 

사실 종교적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통계는 따로 있다. 구름 잡는 식의 전체 신도수가 아니라 바로 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직자의 수이다. 교직자라 함은 해당 종교행위를 통해 종단에서 녹을 받고 생활을 하는 ‘종교 직능인’을 말한다. 이들은 신도수보다 더 분명히 통계에 잡히고, 그 흐름도 상대적으로 명확히 추적할 수가 있다. 난 오래전부터 이 교직자수와 다른 몇몇 통계를 기초로 한국의 종교적 영향력은 인구센서스 조사와는 달리, <개신교-불교-천주교> 순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이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교직자 수를 보자.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체육관광부 발간, 2012) 개신교의 교직자 수가 14만 여명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이어 불교 4만 6천명, 천주교 1만 6천여 명이다. 교직자수를 통한 교세와 영향력 평가를 보완해주는 것이 교당수 통계이다. 이에 대한 수치도 개신교가 7만 7천여 개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만 6천여 개의 불교, 그리고 천주교는 1천 6백여 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또 한 가지 내가 유의해서 보는 통계는 온라인 포털에서 활동 중인 종교별 카페의 개수다. 예를 들어 카페활동이 가장 활발한 포털 서비스 업체인 다음(http://daum.net)의 경우, 총 종교 카페 수는 317,538개인데, 그중 개신교 관련 카페는 238,426으로 무려 75%의 점유율을 보인다. 반면 불교와 천주교의 경우는 각각 2만여 개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실제로 한국에서 정량적으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종교는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불교가 아니라 개신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 결과로 나온 종교인수의 순위 개신교-불교-천주교는 이전의 통계적 왜곡을 넘어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한계에 다다른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수명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난 신도수의 증감에 관심이 가겠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이전 조사보다 대폭 늘어난 비종교인 수가 더 크게 들어왔다. 2005년 47%에 머물던 비종교인의 수가 2015년에 들어 56%를 기록했다. 그중 남자 비종교인의 수는 이미 60%를 넘었고, 여성의 비율도 51.6%에 달했다. 이번 통계에서 주시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인의 비종교인 비율은 2012년도 <퓨 리서치센터>의 ‘세계종교 현황’ 보고서에서 발표한 세계 종교인 수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세계 인구 69억 명 중 대략 58억 명 정도가 종교인이다. 이는 인구 대비 84%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56%가 비종교인이다. 이 말은 한국의 세속화 정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차세대의 비종교인 비율을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이미 우리사회 40대 이하의 비종교인 수는 60%를 넘나들고 있고, 이중 20대가 64.9%로 가장 높다. 이제 한국에서 종교인이라 하면 5~60대 이상의 노인세대의 전유물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 결과치는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종단들은 종교에 비호감을 드러내고 있는 차세대를 위한 대비나 배려, 그리고 지원에는 무심하다. 그러니 종단별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법으로 바꾸고, 그들이 선호하는 매체에 담으려는 노력은 매우 더디고 드물 수밖에! 이는 특정 종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종교 대부분 그렇다! 그러니 청소년들의 눈에 종교 활동만큼 ‘구리고’, ‘후지고’, ‘재미없는 것’도 없다. 종교 말고도 차세대가 즐기고 누릴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은 쌔고 쌨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제 종단은 짙은 색 슈트에 감싸인 60대 남성들의 일방적 대변자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신들이 미성숙한 차세대를 관리하고, 훈계하고, 지시해야만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니 차세대가 그런 꼰대들의 종교에 관심이나 기울일까?

 

이런 점에서 이번 통계가 한국 종교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엄중하고, 지엄하고, 절망적이다. 통계가 웅변하는 바는,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수명은 거의 다되어감“이기 때문이다. 56%의 비종교인 비율이 주는 메시지가 그렇다. 그러니 신도수 순위에 호들갑 떨면서 난리칠 때가 아니다. 지금은 한국 종교들 스스로 제 몸을 살펴 종교로서 본질적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따져 물을 때이지, 한가한 순위 놀음에 일희일비 할 때가 아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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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8)

 

왕의 권력을 조롱한 왕후 와스디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권력의 드라마는 그 권력 아래서 대항하는 행위와 증언으로 나타나곤 한다. 권력과 관련한 구약의 이야기들은 약한 타인을 희생물 삼아 특정 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힘의 과시에 두지 않고 섬김을 그 바탕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제국의 역사 어디를 들여다봐도 권력은 힘의 과잉을 추구하고 축적하여 민중을 억압했을 뿐이지 섬김의 지도력은 아니었다. 구약성경은 창조사건 이후로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고대근동의 작은 도시국가들과 제국들과의 각축전 속에서 펼쳐지는 구속 역사의 드라마다. 이 거대한 드라마에 작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장차 정치적 음모와 권력의 칼끝이 유대민족을 향하는 학살의 위기가 닥쳐오기 전, 왕의 권력에 불복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 이야기다.

 

때는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이 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던 때였다(에스더 1:1). 왕이 즉위한지 3년 된 시점(주전 483년), 왕은 수산 궁에서 지방의 귀족들과 관료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잔치는 180일 동안 이어졌고, 왕은 왕궁의 부유함과 위엄, 그리고 혁혁한 공로들을 자랑하려고 보물 전시회까지 열었다(3-4절). 도성의 주요 인물들을 소집한 것은 통치 기반의 기초를 다져 세력 강화를 꿈꾸는 왕의 열망과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셈법으로 보인다.

 

이후에 왕은 왕궁의 뜰에서 귀천을 막론하고 수산 도성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위해 7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5절). 고급스러운 청색의 휘장을 비롯해 대리석 기둥, 금과 은으로 만든 의자들, 진귀한 갖가지 돌로 만든 모자이크 바닥위에서 왕의 호사스러운 잔치는 계속되었다. 금과 은으로 만든 잔, 끝없이 오가며 건네지는 왕의 술잔, 손님은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셨다(6-8절). 사치와 향락이 물씬 베어난 왕의 잔치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거둬들인 조공과 조세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때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 와스디 역시 왕궁에서 여인들만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9절). 왕은 술에 취해 왕실의 내시 7명에게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가 왕후의 관을 쓰고 왕 앞에 나오도록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왕은 자기 왕후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과 지방 관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9-11절). 잔치에 취해서 자기도취적 영광에 흠뻑 빠진 왕은 지금껏 자신의 위대함을 자랑한 것처럼 왕후 역시 자기 소유물처럼 자랑거리로 삼으려 했을 터. 그러나 상황은 왕이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왕후는 왕이 벌여놓은 잔치참여를 거절한다. 그러자 왕은 와스디 왕후의 불복종에 격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왕은 “마음속이 불붙는 듯 했다”(12절).

 

본문은 왜 와스디 왕후가 잔치를 따로 열었는지, 왕의 명령에 불복종 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왕후의 거절은 사치와 쾌락으로 버무려진 왕의 잔치에 찬물을 쏟아 붓는 역할이 되고 말았다. 왕후의 불복종은 제국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왕보다 위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제국의 왕이 왕후의 불복종 때문에 조롱받게 된 셈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자만과 영광을 자랑하려는 잔치였지만, 도리어 술에 취해 앞뒤분간 못하는 경박한 왕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제국의 영광을 자처하는 왕의 권위가 왕후의 불복종 때문에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제국의 권력이 주는 단맛에 흠뻑 취해있던 왕은 왕후의 거절과 불복종에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서 왕은 전례에 따라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을 듣기 위해 현자들을 불렀다. 이들은 행정을 돕는 학자적인 보좌관들인 셈이다. 왕은 그들에게 왕명에 복종하지 않은 왕후 와스디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었다(13절). 이때 왕의 기색을 꼼꼼히 살피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었으니 므무간이라는 자였다. 그는 왕국의 최고 실세였던 일곱 명의 지방관 중에서도 왕의 최측근 인물이었다(14절). 그는 왕후의 문제 행동을 짚어가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왕명에 불복종한 왕후 와스의 행동이 여염집 여인네들에게 알려지면 남편을 멸시할 것이고, 귀부인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단정하며 확대해석한다(16-18절) 므무간은 여인들의 연대 행위에 따른 불안감을 바짝 조성한다. 그러니까 므무간의 말은 왕후 와스디의 불복종이 왕실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국 전체의 반역의 기운을 불어넣는 조짐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적인 왕실의 문제가 국가적인 혼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므무간의 예측은 왕을 긴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둘째는 해법 제시다. 므무간은 왕의 조서를 내려 제국의 법률에 기록하고, 왕후가 왕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할뿐더러 왕후의 자리를 박탈하고, 왕후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내용의 조언이었다(19절). 왕은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면 모든 여인들이 각자의 남편을 존경할 것이라는 므무간의 조언을 받아들였다(20절). 그리고 모든 지방에 남편이 집안을 주관하는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각 민족 언어로 선포하게 했다(22절). 한마디로 이 칙령은 왕후에게 인정받지 못한 권위와 자존심 회복을 원하는 왕에게서 시작된 것으로서, 모든 남편들이 아내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라는 법령인 셈이다. 제국의 왕이 자신의 왕후에게 굴욕당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조언자의 법령에 만족해하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인가. 권위를 상실한 권력자의 안쓰러운 민낯이다.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을 살피는 최측근 관료의 한마디 말만 믿고 곧바로 법률로 정하는 경박하고 무능한 왕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치스럽고 무능한 제국의 왕에게 불복종한 왕후 와스디의 행동은 또 다른 유대인 왕후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머지않아 이 사건은 왕후 와스디를 뛰어넘는 용기로 민족의 죽음위기를 타개하는 에스더의 출현을 예고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건과 삶의 배후에서, 때로는 너절한 일들 사이에서 뜻을 이루시기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것은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 뒤에서 새 일을 기획하시는 하나님의 교묘하신 숨은 돌봄, 곧 섭리 앞으로 우리를 불러들일 것이다.

 

제국의 최고 권력을 자랑하는 사치스러운 잔치는 역설적으로 왕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의문은 더 큰 권력자의 힘이 아니라 좀 더 연약해 보이는 자의 불복종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권위는 힘을 옳은 것을 위해 사용할 때 빛나는 것이지 자기만족을 채우는 힘자랑에 있지 않다. 이것은 끝내 치욕으로 귀결될 뿐이다. 사건 배후에 숨어계시면서 인간의 그릇된 권위의식과 권력욕을 비웃고 계실 하나님이 그려지지 않는가.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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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아! 욥》을 읽고

 

 

김기석 목사님(이하 김 목사)이 최근에(2016년 12월10일) 귀한 책을 꽃자리 출판사에서 내셨다. 몇 달 전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통한 잔잔한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다시 이 책을 받아드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제목은 《아! 욥》이고 ‘욥기 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부제는 마음에 안 든다. 욥기는 산책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제가 욥기 읽기에 딱 어울린다. 욥기 앞에서 ‘아!’ 이외에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소리는 없으니 말이다. 이 ‘아!’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깊은 깨달음이요, 다른 하나는 깊은 탄식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여기에 덧붙여도 좋으리라. 나는 김 목사의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 ‘아!’가 주는 충격과 기쁨과 아득함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했다. 저자와 출판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성경 교사로서 목사에게 욥기는 시지푸스의 바위와 같다. 감당할 수 없는 짐이며, 어쩔 수 없이 감당한다 해도 청중들이 원하는 시원한 답을 찾기도 어렵다. 목사가 놓인 딜레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목사의 운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없다는 불가능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포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 끼어 있다는 바르트의 진술도 목사의 이런 영적 딜레마를 가리킨다. 김 목사도 욥기를 해설하면서 그걸 절감하고 있다.

 

욥의 심정을 이렇게 전한다. 이게 바로 김 목사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말의 부질없음을 이미 절감한 터이지만 다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413쪽).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욥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해보고 싶’(10쪽)다는 것이다. 그 눈은 세상의 고통을 향해 열린 것이다. 김 목사에게 ‘욥은 그런 이들 곁에 지금도 머물고 있’(424쪽)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김 목사는 저 고통의 나락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성경 교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다. 마지막 단락에서 시몬느 베이유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사랑할 것이라곤 없는 이 어둠 속에서’, 그리고 ‘텅 빈 가운데서도 영혼은 계속 사랑하거나 적어도 사랑하기를 원해야 한다.’(424쪽).

 

 

나는 김 목사의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사렛 예수가 생각났다. 구약에서 욥이 가장 처참한 인생을 경험한 인물이라면 신약에서는 예수가 바로 그다. 하나님이 정의롭고 사랑과 능력이 무한하지만 인간에게 대재앙은 부단히 발생한다.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불행을 피할 수 없다. 그게 세상 이치다. 오죽했으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겠는가. 나사렛 예수는 욥보다 더 큰 저주를 받은 자다. 욥은 어느 정도 나이라도 먹었고, 행복한 시절을 보낸 적이 있지만 예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삼십대 젊은 나이에 로마 형법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자다. 마태의 수난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 처형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를 경험한 뒤에 크게 단발마의 소리를 지르면서 숨을 거두었다(마태복음 27:46, 50). 바울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했다(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이를 그리스도로 믿는다.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 무기력한 전능자!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나. 그렇다. 무죄한 자의 고난을 다루는 신정론(神正論)은 우리에게 영원한 아포리아다. 이걸 생각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

 

김 목사는 욥기가 가리키고 이 현실 앞에서 절망하거나 신앙적인 나르시시즘 속으로 도피하거나 신학적으로 계몽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무죄한 이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과 연대하고,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자고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이 시대의 욥기인 ‘세월호 참사’를 여러 번 반복해서 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지금 이 땅에도 수많은 욥들이 있습니다. 그저 있다기보다는 발생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러하고 직장에서 쫓겨난 이들이 그러합니다’(423쪽). 기복주의와 승리주의 신앙이 여전히 득세하는 오늘 한국교회에 김 목사의 《아! 욥》은 죽비다. 일독을 권한다.

 

정용섭/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샘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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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메시지, 카이사르냐 그리스도냐

- 누가복음 2:1~20 -

 

가이사 아구스도

 

“이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명을 내려 호적 하라 하였다.”

 

「마태복음」(2:1)은 헤롯의 시대로 시작되고 「누가복음」은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로 시작된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아래로 이어진 유대인의 족보를 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제자인 누가는 아브라함을 거슬러 아담까지 족보를 거꾸로 끌어 올려 창조주 하나님까지로 소급한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주제인 세계비전적 복음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거지만 약간의 세계사 공부를 해보자. 이 공부의 목적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이 인간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하는 점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가이사 아구스도(IMPERATOR·CÆSAR·DIVI·FILIVS·AVGVSTVS, 기원전 63~서기14)는 ‘존엄한 자 카이사르’라는 뜻이다. 가이사는 로마의 군인정치가 카이사르 장군(Gaius Iulius Caesar, 기원전 100~44) 가문의 성(family name)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나오는 그의 영어식 이름은 줄리어스 시이저다. 이 사람의 이름이 나중에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된다. 러시아의 ‘짜아르’, 독일의 ‘카이저’가 다 카이사르(케사르)의 음역이다. 오늘날까지 유럽의 나라들이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삼색기를 쓴다든가, 가령 미국처럼 국가 문장에 쌍두 독수리가 들어가는 등등의 기원이 다 이 사람 카이사르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문의 고유한 명칭, 한 개인의 고유명사가 ‘세계의 지배자’ ‘천하의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되었을까?

 

로마는 본래 귀족공화정 체제의 국가였다. 원로원이라는 대의 입법기구가 있고 호민관(집정관)이라는 선출직 행정가가 있어 국가를 이원화해서 다스렸다. 그러다 국가가 팽창함에 따라 군인들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그 최고 정점에 이른 인물이 줄리어스 시저였다.

 

세계의 민주주의 진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나라를 꼽으라면 누구나 프랑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1789년 세계최초의 시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부르봉 전제 왕권의 마지막 황제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다. 관성에 의해 태어난 그대로가 태초부터 이어져왔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인간 역사의 비극이지만, 이것이 세계사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이었다. 민주주의, 시민 개개인이 최고의 입법기관 곧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황제와 왕으로 상징되는 소수기득권 세력의 영구집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의 자리가 합법을 넘어 신성불가침적으로 영구 보장된다는 것은 기득권 귀족들의 권리도 그와 같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누구는 귀족 금수저로 누구는 노예 고용살이 흙수저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 철학 예술 더 나가 교회 성경 복음 설교까지 모든 인간의 활동이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연대와 협력과 부역이 된다. 그러므로 비록 루이 16세가 자물쇠와 열쇠를 만드는 소박한 취미를 가졌고, 마리앙뜨와네뜨를 비롯한 황후의 측근들(문고리와 십상시 수석 실장 위원장 등) 민간인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 흰 눈과 같이 결백한(결재만 해주고 써 준대로 읊어댄) 벌거벗은 임금님일지라도, 이 황제를 단두대로 보냈다는 것은 인류역사상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대사건인 것이다. 왕은 그리스도가 아니니 한번 죽으면 부활할 염려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도시들은 ‘민회(agora, ekklesia, apella, comitia)’라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로마도 그 이상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타격을 가한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기원전 356~323)이다. 정복자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그리스 헬레니즘문명의 수호자로서 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이 문명을 전파했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간다라 미술 같은 문명 접촉의 영향으로 불국사의 석굴암에 까지 그의 정복사업과 헬레니즘의 그늘이 드리워져있으니, 얼마나 신비롭고도 무서운 일인가. 이 알렉산더가 정복왕이 됨으로써 세계의 지배자로서의 황제, 그러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제국, 그러한 제국의 기틀과 규범으로서의 세계가 완성되게 된다.

 

마치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지킨답시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정복전쟁으로 유럽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듯이, 황제를 죽인다고 황제가 되고자하는 인간의 야망까지 죽일 수는 없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의 무덤은 큰 바위가 무덤을 누르고 있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다시는 이러한 독재자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민주주의의 의지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독재자가 다시 나오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각성이다. 독재가 부활하는 모판은 시민들의 망각, 둔감, 정치가들과 기득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유행병처럼 한 인간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그에게 기대하는데 있다.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전쟁으로 인기가 치솟고 세력이 커지니까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려는 공화파와 카이사르를 추종하는 제정파가 대립하게 되는데 카이사르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조금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선전전과 협박을 통해 원로원을 장악하며 황제로 가는 길을 닦아간다. 결국 공화파들은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를 암살하게 된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당할 때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브루투스, 너마저도…” 그러나 사실 역사는 그 말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줘야 마땅할 것이다. “카이사르 너마저도” 라고.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 공화파와 제정파 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그 승리는 막강한 군벌을 형성한 제정파에게로 돌아간다. 제정파의 3명의 우두머리가 임시로 권력을 삼분하는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는데 거기서 최종 승리하여 로마의 제1대 황제가 된 인물이 가이사 아구스도다. 가이사 아구스도(본명은 옥타비아누스)는 본래 카이사르의 여동생의 외손자로 아들이 없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카이사르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아구스도는 레피두스를 실각시키고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침으로써 삼두정치를 끝내고 원로원에 의해 독재권을 부여 받는다. 이때 원로원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 아우구스투스(AVGVSTVS)다. 존엄한 자. 그 누구도 그의 존엄을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를 프린켑스(Princeps)라 불렀는데 그 뜻은 제1번 시민이라는 의미다. 원로원에서 제1번으로 발언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죽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로마는 지상 유일의 신의 아들 곧 살아있는 신으로써 신성불가침의 프린켑스가 다스리는 제정 귀족사회가 된다. 그리고 이 의미는 프랑스대혁명으로 전제왕권과 귀족 기득권이 무너질 때까지 세계의 지배원리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은 곧 모든 독재 권력과 영구 세습집권의 기득권이 하나님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부여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체제에 대한 거부 및 반대는 신에 대한 반항으로 처벌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호적

 

단독 지배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독제체제가 안정되자 천하에 호적을 명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이 사단의 충동질로 인구조사를 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역대상」 21) 왜 하나님은 인구센서스를 싫어하셨을까? 왜 성서의 기록자는 다윗의 인구조사를 사단의 충동질이라고 규정했을까? 이 기록은 하나님이 인구 조사를 싫어하셨다는 이야기일까, 민중이 싫어했다는 이야기일까?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명령은 단순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자기 본적지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특별한 명령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의심자들은 호적이란 거주지 등록이면 되는 것이지 본적지에 가서 등록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기록을 거짓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시리아 총독 구레뇨의 호적의 역사적 연대를 들어서 복음서 전체의 신뢰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우선 구레뇨의 호적에 대해. 구레뇨가 아구스도의 명으로 시행한 호적조사는 첫 번째 한 것이라는 누가의 설명이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구레뇨의 인구조사는 단 한번 나타나 있고 그 연대가 「누가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의 저서Antiquities에서 AD 6년에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고 기록했다. 6년이면 이미 예수가 태어나신 이후로 누가의 기록에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구레뇨가 두 차례 시리아 총독을 역임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구레뇨는 두 번의 재임 기간중 각각 호적조사를 실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누가가 굳이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 됐을 때 첫번 한 호적이라는 언급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의문의 표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들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의 부재에 있다. 복음서 이외 일반 역사 기록에 예수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메시아 즉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은 대개 어디에서 나오는가? 위대한 가문. 왕가의 혈통. 정복자. 국가를 세운 개창자들이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역사는 그런 승리자들의 역사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1~8)

 

만일 당대 로마의 귀족 집단에 속한 지식인이 「누가복음」을 읽었다면 유대 지배 계급에서조차 인정하지 않는 예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것이 예수에 대한 역사의 직접적 언급이 현저히 부족한 이유다. 메시아(구원자)라 불릴만한 자는 이런 보잘 것 없는 출신과 형상을 지닌 사람이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의 인식 속에는 인간의 삶속의 보편적이고 거대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가 들어있다. 다름 아닌 메시아(역사의 주인공)는 황제 영웅 권력자 귀족 엘리트일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는 편견이자 착각이다. 이것은 평범한 자, 노동하는 자, 희생하는 자, 고통 받는 자에 대한 멸시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거짓 믿음이다.

 

여러분이 가끔 어떤 영화를 보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결국 모두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부자나 지식인 권력자는 항상 배덕한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 속의 신화일 뿐이다. 현실은 무수한 과묵하고 근로하는 영웅들과 희생자들에 의해 전진해가고 구원 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모든 노고와 노력은 소수의 권력자들과 그들에게 결합된 약삭빠른 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언젠간 이 침묵하는 구원자들이 그들의 말을 할 때가 오리라는 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었고 민주주의가 걸어온 과정이었다.

 

 

 

 

지금 11월에 시작된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훗날 이 역사를 기념한다고 할 때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질까? 백남기 농민의 동상이 세워질까? 사람들은 박정희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세월호의 학생들이나 백남기 농민의 기념물이 건립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슨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라고 말이다. 예수의 초기 생애에 대한 현저한 기초자료의 부족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몰이해(은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거부(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 역사성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도 신비화 되고 말았다. 신비화됨으로써 다시 부자와 권력자들을 보호해주는 신으로까지 왜곡되게 된 것이다.

 

호적 문제로 돌아가자. 왜 거주지에서 등록해도 될 것을 본적지로 돌아가 등록하도록 했을까. 이는 로마 제국이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내세우고 있지만 심층에는 공고한 감시와 통제의 혹독하고 잔인한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이 호적 방식은 세금의 확보 뿐 아니라 부랑하는 난민들에 대한 정보와 통제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그것에 대한 각국 정보기관들의 정보수집과 난민통제 정책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자고로 제국들이 해체 붕괴하는 데에는 난민발생 곧 세금을 내지 않고 출신이 모호한 유랑민들의 대규모 이동이 원동력이 되었다. 떠돌이들이 결집하고 거기에 불순세력과 지방 세력들이 결합되면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심이 형성된다. 이 구심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회오리바람처럼 이동하면서 세상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서유럽은 흉노라 불리는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집단이나 몽골족의 서진으로 이에 쫓긴 훈족(타타르)이 서진하면서 서유럽까지 휩쓸었던 무서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로마 역시 이러한 동방 타타르계 용병집단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 사람들을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타르타르’라 불렀다. 아우구스투스의 천하 호적 명령은 그런 배경을 가졌고 이런 지상의 왕 아우구스투스 통치의 배경이 진리의 왕 그리스도 탄생의 배경이자 대립의 의미이다.

 

은마(銀馬)는 오지 않는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산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서으로 가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뜰에서 울 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다들 누군가(어느 때, 무엇인가) 오기를 기다렸다. 매일 눈을 뜨면 보이는 건 논과 밭과 산이었다. 산 사이로 신작로가 나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시내(용인)로 갈 수 있었다. 용인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수원에 갈 수 있고 수원에서 기차를 타면 서울에 간다. 나는 유년시절 서울에 서너 번 가본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인 풍경은 생각나지 않고 버스에 시달린 것과 연탄재 냄새만 기억난다. 우리 외가는 서울의 변두리였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시골보다도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조금 자라자 곧 서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청소년기에 벌써 미국이나 독일에 갈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를 누군가를 어느 때를 기다린다.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남편. 아들. 딸. 손자. 무엇을, 어떤 때를 기다렸을까? 그 기다림과 기대와 소망은 각기 다르고 다양하겠지만 인간다운 행복한 삶, 샬롬,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미가 4:4」)처럼 자기의 생활 안에서 근심 걱정에 쫓김 없는 편안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구원(救援)’이라고 해보자.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런 구원이 풍족한 것이었다면 나는 서울을 동경하지도 미국과 유럽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동경한 그런 곳에는 그런 구원이 풍성해서 우리는 거기 가서 그것을 얻어다가 구원이 부족한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요와 같이 서울 가신 오빠는 오지 않고 이내 우리의 구원의 꿈과 기대도 사라져 버린다. 한때는 서울의 최고 아파트이기도 했던 ‘은마(銀馬)’는 재미작가 안정효의 소설에 나오는 전설 속 구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있을지언정 은마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의 시대가 끝나면 전설의 시대가 온다. 신화의 주인공과 전설의 주인공은 다르다. 신화 속의 주인공은 영웅이고 승리자이고 위대한 권력자이다. 그러나 신화의 시대가 지나고 그 신화에 도전하는 또 다른 영웅은 반란자 배반자 패배자의 이름을 얻는다. 우리 민족에게는 오랜 세월동안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애기 장수의 전설이 있었다. 그의 날개가 자라나 날아다니게 되면 마침내 세상을 뒤집어엎을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애기장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이 날개가 잘려서 죽게 된다. 그런데 신화학적으로 이러한 전설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배세력에게 짓눌린 민중들이 만들어낸 슬픈 영웅이 애기장수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의 창작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일부러 지어내 퍼트린 실패한 메시아가 애기장수라는 설이다. 여러분은 이 두 학설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되는가?

 

아무튼. 신화의 시대가 가고 애기 장수도 죽고 전설도 지워지고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곧 내 스스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오빠이고 은마이고 메시아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이 말은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우리의 인식이) 자각되고 각성된 의미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주체적 자립(自立)을 이루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그 누구(지도자, 권력자, 부모님, 부부간, 친구간, 선생님, 목사님)의, 어차피 부분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에게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안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고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은 저 멀고 높은 서울과 워싱턴과 뉴욕과 파리나 베를린 혹은 모스크바를 바라는 게 아니다.

 

예루살렘이나 대형교회나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를 사모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이게 진짜 우리들 자신이다!) 내 속에서, 우리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보다 근본적이고 인격적인 전체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사랑(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서로 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자각된 사랑을 함으로써 우리는 무관심하고 비정한 이 세상과 맞서는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사랑의 발견 속에서 우리는 모든 지상의 가짜 메시아들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게 된다. 그것을 오직 하나님만 바란다고 하는 것이다.

 

이걸 일깨워주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개인이 구원을 받음과 동시에 그 개인이 공적 그리스도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나약하고 취약한 죄인의 자의식으로 뭔가 눈에 보이는 가짜 메시아들에 의지하고 기대야만했던 옛 자아의 상태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립적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가 그리스도적 인간, 신의 아들, 신적 인류로 탈바꿈하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도 이렇게 신자에게 주어진 권능과 책임에 도달하지 못하여 여전히 그리스도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미지의 메시아로 상정해 놓고 자기의 모든 삶을 그 추상과 관념에 맡겨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메시아는 본래 없는 공허한 것이거나 거짓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것으로서 일체의 인간적 노력이나 행위가 없이 무상으로 받는다는 교리에만 입각해 있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노고와 희생을 거저먹겠다는 인민의 아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교를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저절로 나온다. 어리석고 깨어나지 않은 사람, 어린아이 같아서 잘 속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의심도 회의도 결과도 헤아리지 못하는 민중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항상 이런 아편 같은 세상에 휩쓸린 사람들을 흔들어 깨움으로써 그 지배자들을 두렵게 한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구약성서는 아들들에 대한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의 이야기다. 선택하고 유기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꼭 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의 기록이란 동시통역이 아니라 추후기록이기 때문이다. 선택받고 보니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얘기. 그러나 당시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 당사자들의 선택이 중요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땅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하와는 아들을 낳는다. 가인의 이름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를 지녔다. 구원자를 낳았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통해 에덴동산으로 복귀할 기대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내실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창세기 3:15). 그러나 가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죽임으로써 선택에서 탈락한다. ‘아벨(헤벨, 공허의 뜻)’은 무고한 죽음, 폭력에 의한 희생자의 상징이다. 그에게도 본래 어떤 이름이 있었겠지만 성경은 그를 그냥 ‘공허(생기의 뜻도 있음)’라 불렀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존재를 무위의 공허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가장 악한 폭력이 된다. 하나님은 그를 대신해 곧 이 공허의 무고한 희생자에게서 이어 나온 아들 ‘셋(대신 줌의 뜻)’을 통해 계보를 잇게 하신다.(창세기 4:25) 우리 모두(셋)는 공허로 돌아간 누군가(희생)의 대신으로 주어진 생명이다.

 

노아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세기 5:29)는 의미다. 역시 에덴동산의 회복을 염원하는 인간 구원의 갈망과 기대가 담긴 이름이다. 그러나 노아는 위로는커녕 홍수로 세상이 깡그리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 훗날 홍수 후에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드는 추태를 보인다(창세기 9). 이것은 뭘까? 왜 노아는 술에 취했으며 벌거벗었을까? 왜 그는 자신을 비웃은 아들 함을 저주했을까? 왜 자기의 벗은 몸을 보지 않고 감싸준 셈과 야벳을 축복했을까? 이것은 노아의 술 취한 절망이다. 술에 취해 그는 돌아갈 가망이 없는 가짜 낙원을 만들고 스스로 벌거벗었다. 함은 그것을 비웃었다. 무엇을? 낙원 복귀의 꿈을. 이미 낙원에 돌아갈 꿈을 포기해버린, 그 절망(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인류가 나타난 것이다. 자기 아들일지라도 노아가 그 아들과 아들의 아들(가나안) 곧 그 후손까지 저주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메시아(에덴 복귀)를 기다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곧 스스로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메시아) 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

 

메시아를 포기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두 가지다. 땅과 자손. 이삭, 야곱, 그의 열두 아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사백년을 살았다. 땅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때가 이르러 모세가 나타났다. 모세는 정치적 지도자이자 시대의 메시아적 인물이었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유아학살에서 살아남았다. 그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이끌고 출애굽(Exodus, 길을 떠난다는 뜻)을 결행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 건설할 하나님 나라의 반석인 토라(תּוֹרָה, 율법)를 선포했다. 율법은 법률이지만 동시에 지혜의 가르침이다.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지혜. 그 원리에 대한 이해력. 그러한 이해의 충만함이 만드는 국가제도의 종교적 서정성. 그것이 가나안의 자연과 어우러진 하나님 나라의 이상향이었다. 모든 지파와 가문이 땅을 가지고 있고 그 경계와 원칙을 지키며 각기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그늘 아래서 평화롭고 안전한 삶. 그들이 아직 히브리 노예였을 때 애굽에서 꿈꾸던 천국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시대를 거쳐 사울이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첫왕이 된다. 그는 세속 왕의 전형적 실패와 패착을 다 보여주고 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이 무렵 사무엘과 같은 예언자가 등장한다.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삼두체제는 멸망 때 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엔 이 세 가지가 다 타락하고 극소수의 예언자들만이 실패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게 된다. 이 무렵 메시아의 단절이자 진정한 메시아 도래의 꿈이 생성된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유수 시대에 이스라엘은 고난, 고통, 박해의 나그네 생활 곧 세상의 최하층으로 살면서 ‘도대체 왜?’라는 강렬한 종교적 의문의 해답을 갈구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와 실패의 역사를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면서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이렇게 예언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61:1~3)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했는데, 그들이 갈망한 메시아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는 참된 왕 제사장 예언자이어야 했다.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와 종교적 경험 그리고 성서적 예언의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결론이었다. 왕만으로도 아니고 제사장만으로도 아니고 예언자만으로도 아니더라는 것. 자신들과 같은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면, 어떤 세상이 와야 하는가? 세상의 왕들을 보니, 세상의 제사장들을 보니, 세상의 예언자들을 보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럼 누구이어야 하는가? 이 셋이 하나이어야 한다. 이 셋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참된 그리스도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이 세 가지가 기능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정치적 지도자, 영적 중재자, 미래의 지시자.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런 메시아를 참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다윗 같은 메시아를, 어떤 사람은 엘리야 같은, 어떤 사람은 멜기세덱 같은, 그런데 누가 왔는가?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오셨다. 나사렛 지방 시골 목수의 아들이 나타났다. 가이사 아구스도와 유대왕 헤롯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폭군들과 부패한 종교지도자들과 끊어진 예언자의 시대에, 누가 왔나? 예수가 오셨다. 오셔서 예수는 무엇을 했는가? 폭력과 지배의 법, 율법의 세계로부터 사랑과 이타의 법, 비폭력적 사랑의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그는 우선 가르치는 예언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복잡하고 고상한 랍비들과 달랐다. 단순하고 지혜로운 말씀들. 명쾌한 자유의 선언. 거듭남. 세례. 그는 세상 권력자들의 지배에 얽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바라보라. 믿음이라는 영적 실제적 본질적 변화의 세계, 믿음이 있어야지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셨다.

 

이것을 깨우쳐 이 세상 지배에 히브리 노예처럼 예속된 자기를 자각하고, 거기에 직면해 십자가를 지듯 그것을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비로소 열리고 보이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성전. 새로운 예배. 새로운 신의 나라. 그것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인식상의 깨우침과 생각하는 방식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가운데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친 사람은 자기의 그리스도적 삶 곧 메시아적이고 공적인 삶의 소명을 깨닫고 이 세상에 비참여, 비가담, 비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러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나그네 떠돌이 풀뿌리 민중이란 본래부터 언제나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인데 자각치 못했을 뿐이었다. 자각하면 가난한 자도 메시아로 각성되어 자유로워진 지상의 왕인 것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의 제사가 아니라 이런 왕적인 삶을 진짜 종교라 했다. 산제사로 자기를 희생으로 드리는 것. 세상 지배자들처럼 자기의 권세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는 참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거부하셨다. 성전을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셨고 그 모든 화려한 건축물이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 선언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리라.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 곧 삶과 정신의 예배자를 원하신다고 하셨다(요한복음 4:24). 그는 이러한 참 제사장으로서 세상과 하나님 간의 중재자로 오신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 중재는 어떤 방식이었는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인간이 동료 인간을 자기와 같이 대접하는 예절. 사랑이 곧 새로운 계명(율법)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 사랑으로써 우리도 우리가 받고 배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민족, 전통, 율법, 그런 관념이나 의식도 필요 없이. 편견, 불안, 의심, 경계, 이런 분리와 분열도 필요 없이. 예수님은 참된 미래의 예언자로서 자신이 보이신 그 사랑으로 사랑 없는 세상을 구원하라고 우리의 미래를 제시하셨다. 오직 서로 사랑, 오직 서로 존경, 오직 서로 대접, 서로 같이 살아가는 아름다움 단순함 착함으로.

 

가이사냐 그리스도냐

 

그리스도는 너희 안에(우리의 사랑 속에) 자기가 계시고 하나님도 계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러 내가 왔다고 하셨다. 내가 곧 하나님 아들이고 메시아라고.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내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내가. 배우지도 못하고 유명하지도 않고 중앙무대에서 활약하지도 않은 내가. 예언자에서 제사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을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왕국의 왕, 진리의 왕으로 선언하셨다. 아우구스투스와 헤롯과 빌라도와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니가 무슨 예언자냐? 니가 무슨 제사장이냐? 니가 무슨 왕이냐? 헛소리! 미쳤다! 신성모독! 바알세불이 지폈다!

 

그러나 그가 표적(sign)을 보이시자 사람들이 몰렸다.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상의 왕과 지상의 제사장과 지상의 예언자들이 합작하여 참된 왕이자 제사장이자 예언자인 그를 십자가에 죽였다. 강도와 같이 반란자와 같이, 저주받은 자의 형상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를 죽였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을 근절시키진 못했다. 그가 없어도 근절 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깨닫고 경험한 것을 고백했고 증언했고 전파했다. 무엇을?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 복음을. 이제 난 알았다. 무엇이 구원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가 내 안에 있어 나는 죽고 그가 살았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왕이요, 제사장이요, 예언자인 그. 그리고 거듭나 새롭게 태어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

 

오빠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는 끝났다. 그러나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 왔다. 차원과 인식과 관점이 달라진 현실. 내가 구원자다. 내가 예수다.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모든 인류에게 평화가 되는 소식과 그 방식을.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폭력을 이기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공동체 속에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내게서 세상을 봄으로써 가능해진다. 나는 세상의 거울 진리의 거울이다. 내가 세상의 대표자이므로 나의 죄와 슬픔과 미움과 원망과 약함과 그런 것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서 내가 얼마나 고귀하고 유일한 가능함을 지닌 존재인지를 자각하니 내가 곧 나에게 왕이고 제사장이고 예언자로서 나의 모든 인생이 새로워진다.

 

이 두 가지. 1)정직한 인식과 직면. 2)그것을 넘어가는 차원 다른 성숙과 지혜. 지혜는 도덕이 아니지만 도덕보다 현명하다. 지혜는 사랑인데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넘어 타자를 환대하는 그리스도적 사랑을 깨치고 배운 사람이다. 사려깊고 온정이 있고 따스한 연민과 냉철함, 공감과 슬픔과 카타르시스를 가진 사람. 종교적 서정성. 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식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 더 이상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

 

지금 세상은 가이사 아구스도, 헤롯, 빌라도, 가야바와 안나스,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최순실, 김삼환 조용기 오정현의 세상이 아닌가. 이 세상에 우리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신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에베소서 3:17).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태어났는가? 얼마나 자라고 계신가? 옹알이 수준? 초딩? 중딩? 고딩? 대학생? 청년, 중년, 노년? 왕(정치적 지도자)? 제사장(종교가, 예술가)? 예언자(비평가, 철학자, 사상가)? 바울은 말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브리서 5:12).

 

아우구스투스의 천하의 변방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하나님의 아들 참된 진리의 왕 예수가 아기로 오셨다. 아직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주의 부모와 천사들의 초대를 받은 들판의 이름 없는 목자들뿐이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누가 이 의미를 알겠는가! 이제 곧 그리스도께서 무럭무럭 자라나 갈릴리에서 부터 복음을 전파하시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누비시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오시기를! 자신의 인격적 결단으로 자기 안에 메시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우리 모두 새해에는 놀라운 변화와 성숙이 임하기를! 우리 교회와 사회와 나라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공의로운 세상으로 진전되어 가기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복음이 도래하는 샬롬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오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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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파와 움씨

분류없음 2016.12.23 08:40

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편지글을 모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형식과 문체의 글은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무겁지 않아서 굳이 노트를 할 필요는 없지만 곱씹어 읽으면서 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와 아내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두 살 아래인 아내와 저는 종로구에 있는 오래된 장로교회 출신입니다. 물론 지금도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집 앞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요. 어릴 때부터 ‘그냥’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마치 버릇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저는 어느덧 안수집사가 되었고 아내는 권사로 피택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FM 93.1MHz에 채널이 맞추어져 있는 라디오를 켭니다. 이 채널은 2002년 귀국한 후 아마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식구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어떤 조예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듣는다라기 보다는 그저 틀어놓고 있는 것이죠. 광고 없이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방해하지 않는 배경음악으로는 딱이거든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책을 읽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겐 신앙도 그러합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제 배경에 깔려 있던 것이죠. 특별히 뜨거운 경험을 한 적도 없고 모태신앙에 대한 저항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신앙은 불편하지 않은 배경음악이었으니까요.

 

주기율표, 하나님이 주신 명함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교회 고등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밤을 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2학년이면 대개 임원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 자기의 신앙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가 주제였지요. 다를 재밌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온갖 꾀를 내어서 교회로 끌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온 친구도 있고 평소에 찍어놓은 여학생이 다니는 교회라서 나온 친구도 있고 교회 도서관을 공짜로 사용하고 싶은 친구와 교회 다니는 대학생 형들에게 수학문제 푸는 것을 물어보려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전통으로 신앙을 갖게 된 저 같은 친구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죠.

 

저희 집이었기 때문에 제가 제일 나중에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홈그라운드 찬스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제 신앙의 근거는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주기율표’였습니다. 2학년에 들어오면서 배운 주기율표가 제게는 큰 충격이었거든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원소들이 갖고 있는 규칙성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주기율표가 제게는 하나님이 주신 명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는 찬송가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원소,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수소와 헬륨 초신성 폭발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찬송가가 지금은 40번 찬송이지만 그때는 79번 찬송이었어요. 79번 원소가 ‘금’이라서 금과 같은 찬송이라고 기억했거든요. (원소기호 40번은 지르코늄이라는 낯선 원소이지요.)

 

 

움파의 의미와 우화

그저 배경이었던 신앙이 인생의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은 교회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연동교회 대학부는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장악되어 있었죠. 이들은 우리 교회 고등부 출신이 아니라 주로 지방출신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자주 경찰서와 감옥에 들락거렸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많이 피워서 교회 어른들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다행히 고등부의 우리 동기들은 공부를 유난히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교회 어르신들은 이제야 우리 교회 대학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되었다고 큰 기대를 했습니다.

 

대학부에 들어간 첫 날, 선배들은 우리를 데리고 술집에 갔습니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날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배가 ‘고갈비’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게 알고 보니 ‘고등어 갈비’였던 것입니다. 모임은 유쾌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쉽게 평생 ‘죄’라고 여겼던 술 문화에 젖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왜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죄’라고 단정하고 살았는지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특이한 음식이었을 뿐이죠. 지금도 술을 즐깁니다.

 

그날 난생 처음 들은 단어는 고갈비 말고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움파’입니다. ‘베어 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를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움파가 우리교회 대학부의 별명이었습니다. 움파 1기, 움파 2기,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했습니다. 당시는 학번을 많이 쓸 때였지만 어떤 친구는 곧장 대학에 가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삼수 끝에 대학에 가고 또 대학에 끝내 가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 대학부는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움파 14기더군요, 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요즘이야 파를 좋아하지만 그때는 어려서인지 라면에 파 한 조각만 들어가도 먹지 않았을 정도로 아주 싫어하는 식재료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을 그까짓 파로 표현하다니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필 그때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어떤 못된 아줌마가 죽어서 지옥의 불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아줌마의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살면서 단 한 개라도 선행을 베푼 게 있으면 말해봐라, 그러면 내가 하느님에게 잘 말씀드려 볼게.”라고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거지 여인에게 파 한 뿌리를 뽑아서 준 게 생각이 나서 이것을 자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느님은 파 한 뿌리를 아줌마에게 내려주고서는 그것을 잡고 불바다에서 빠져 나오라고 했습니다. 아줌마는 분노했죠. 파를 잡고서 어떻게 지옥에서 빠져나오겠습니까. 파에다가 분노의 발길질을 했습니다. 파는 ‘똑’하고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줌마는 영원히 불바다에서 나오지 못했지요.

 

선배들이 움파의 의미를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 우화를 떠올렸습니다. 아줌마가 지옥에서라도 못된 성격을 꾹 누르고 파를 잡고서 지옥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평생 동안 겨우 파뿌리 하나 준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하나님이 이 여인에게 지옥을 빠져나올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파뿌리에 매달렸다고 해도 아마 지옥의 불바다를 벗어나지 못했겠죠.

 

교회 어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대학부 선배들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선배들이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도스또엡스끼 운운하면서 초를 치는 쪼그마한 꼬마의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셨죠. 막걸리도 여러 잔 따라주시면서요. 그러다가 한 여자 선배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움파는 그런 존재야. 겨울 내내 양념으로 쓰기 위해 조금씩 잘라먹는 하찮은 존재지. 하지만 우리는 겨울을 날 거야,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움파라고 부르지. 네가 말한 것처럼 파 한 뿌리는 하늘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끈일지도 몰라. 우리 각각의 한사람은 그렇게 약하지. 하지만 그게 한 뿌리가 아니라 파 한 단이면 어떨까? 더 강할 거야. 약한 파뿌리도 여러 개가 뭉치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얘기였죠. 듣고 보니 내가 움파 14기라는 게 은근히 근사해 보였습니다. 움파가 자그마치 14년이나 계속되고 있구나, 앞의 선배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선배들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공부도 했지만 철학과 경제 그리고 사회에 관한 것들이 더 많이 공부했죠.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읽으면서 신앙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 책의 골자는 “신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의 투사물이다.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하지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거든요. 신이 인간의 투사물인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한 신의 모습을 세상에 투사해야 한다는 점은 금방 결의가 되었지요.

 

선배들은 일찌감치 교회를 떠났습니다. 1984년 대학에서 경찰이 철수하고 1987년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자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게 한가롭게 여겨졌기 때문이겠죠. 그러자 교회 어른들은 아주 좋아하셨어요. ‘신앙 없던 그들이 떠난 것’을 아주 후련하게 여기셨죠. 그런데요.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즘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말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던 분들이에요. 상당히 많은 선배들이 나중에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지요. 오히려 자기들이 착한 신앙인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했던 우리 고등부 출신 청년들 가운데는 신학을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나중엔 우리가 그들의 골칫거리가 되었지요. 원래 움파가 그런 것이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잘라 먹는 겁니다. 그러면서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선배들이 남겨놓고 떠난 야학을 맡아서 운영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저희의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전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교회 어르신들은 때로는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훼방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무슨 커다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움파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걱정이었죠. 움파의 수가 점점 줄었거든요. 움파는 여럿이 같이 있어야만 힘이 있더라고요,

 

결국 우리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처럼 외국으로 공부하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고 아예 교회와 담쌓은 친구도 있지요. 이러나저러나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IMF 사태가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면 IMF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죠. 주로 나쁜 방향으로 말입니다. 모든 것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이윤으로 판단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를 포함해서 평생 교회를 지키시던 사찰 집사님은 어느 날 용역직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젠 아무 때나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사람이 된 거죠. 존경을 받던 소사 집사님은 한낱 피고용자가 되었습니다. 여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은퇴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어느 날 사표를 강요받고 떠나시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난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더 이상 움파가 없었거든요. 교회 청년들은 자신들은 움파가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거대한 주식회사가 되었지요.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신앙은 다시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교회에 다닌다고 대답하기는 하지만 내가 먼저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 나서서 전도하는 일은 물론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전혀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그저 또 하나의 친목단체이자 계급사회일 뿐입니다.

 

목사님의 책에서 「움씨를 뿌리는 마음」이란 제목을 봤습니다. 움씨라는 말에서 움파를 기억해냈습니다. 얼른 사전을 찾아보았지요. ‘뿌린 씨가 잘 나지 않을 때 다시 뿌리는 씨’라는 뜻이더군요. 목사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을 때 농부들은 밭에 씨를 덧뿌립니다. 그것을 움씨라고 하는데, 사는 게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의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다시 한 번 씨를 뿌리는 용기를 내야 해요. … 움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기 속에 있는 정말을 애써 다독이며 희망을 뿌리는 것입니다. 덧거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덥석 일에 뛰어들었다가는 상처 받고 물러나기 십상입니다(97-98쪽).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통해 ‘희망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에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일은 거두지 말아야겠지요. 예전에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았지만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움씨를 혼자 뿌릴 용기는 없습니다. 농부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예전 움파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갈비 안주에 막걸리를 나누고 싶은 날입니다. 목사님께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편집자 주/ 이 글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고 35명이 김기석 목사에게 쓴 《희망 그 빛깔 있는 삶의 몸부림》에 실린 편지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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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김기석 목사님 신간 《아! 욥》-

1.

김기석 목사님의 「욥기 산책」 《아! 욥》을 일부러 느리게 읽는다. 나는 요즘 속력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 속도가 만드는 이차적 징후들. 주마간산(走馬看山). 모든 것이 최소화다. 생사사생, 성사사성(生事事生 省事事省), 부끄러운 일이지만 매사 어찌하면 힘을 덜 쓰나하는 게 일상이 된 것 같다. 우선 몸이 아팠고(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이명(耳鳴)이 심하고 머리가 꽉 막혀 쓰러질듯 어지럽다.) 그래서 늘 피로해 뭔가 힘을 쏟아 집중한다는 게 힘겨웠다.

 

연암선생(朴趾源, 1737~1805)이 그랬다지. 한 달 보름씩 세수도 수염도 깎지 않고, 누구볼 일 어디 갈 일, 인사치레 체면치레, 일가친척 사람노릇까지 팽개치고, 그저 툇마루에 앉거나 벌러덩 누워 하릴없이 묏풍경이나 바라보고 있던가, 갈 길이 멀고 바쁜 박물장수를 공연히 불러다 앉히고 객쩍은 세상 이야기나 엿들으면서, 그런 자신을 또 한심해하기도 하고 다행으로 여기기도 하고.

 

나는 그 정도까진 못되어 자주 피로한 몸을 누이고 쉬면서 몸의 고통을 줄여 보느라 뉴욕의대 존 사노 박사의 《통증혁명》에서 읽은 대로 TMS(Tension Myositis Syndrome,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개념을 내 몸에 대입시키느라 또 남은 힘을 쏟아보곤 하였다. 보내주기로 약속한 책들 약속도 못 지키고, 써주기로 약속한 글도 못쓰고(생각해 보니 사람 노릇이 아니다.), 남의 말을 듣는 것도 건성건성, 글을 쓰는 것도 건성건성, 아내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대충대충인 식이었다. 이 건성건성과 대충대충이 무서웠다. 대충 듣고 건성으로 알아들은 척 하며 ‘응응 그래그래 그렇죠 뭐 세상일이 별거 있나요 허허허…’ 하면서 하루가 일주일이 휙휙 지나가는 그 속력이 무서웠다.

 

 

 

 

2.

구약성경 「창세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만물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기인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나타난 모든 것은 지어짐으로 말미암았고, 그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가 계신다는 유일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런 공허한 말이 또 무슨 대수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당신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함께 (이런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이 사실이다. 이 사실이 우리의 공통의 이해력 안에서 우리의 존재의 원리로 승인될 수 있고, 이 공통의 원리가 가장 실용적이며 가장 최고로 요청되는 지혜이며, 윤리적 선이 된다는 사실뿐이다.

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에 계신 하나님. 수천억 원을 쏟아 부은 포스트모던의 건축물 가운데 현대식 영광을 받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베들레헴 말구유에 소박하고 가난한(벌거벗은!) 사람의 아들로 오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신학적 성찰을 지배하는 기초적인 원리’라고 할 때 그 하나님은 교의의 사원에 안치된 최고신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을 향한 겸손의 가슴에 깃든 서로에 대한 존경 속에 숨은 신이시다.

 

「욥기」는 성서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실지라도, 신학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실지라도, 교조화된 교의신학이 인간의 부조리한 현실을 다 설명해 줄 수 없음을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욥(그의 이름은 아카드어로 ‘내 아버지는 어디 계신가?’라는 의미를 지녔다)은 전통적이고 교의신학적인 지혜론을 펼치는 친구들과 달리 철저한 부정신학적 입장에서 교의신학에 대한 무용론내지는 반박론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욥이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된 배경은 말할 것 없이 그가 직면한 이유 없이 당하는 고통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들의 입에 발린 칭송으로서의 교의가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정당하고 정직한 대면의 언어로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직면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어찌 됐든 「욥기」의 텍스트 안에서 그것은 여전히 난해한 의문을 그대로 남겨놓기는 했지만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논쟁하는 욥과 그의 친구들 앞에 나타나 욥의 말의 정당함을 선언하셨다.)

 

《아! 욥》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미 밝혀진 「욥기」의 텍스트를 가지고 벌어지는 현대의 욥과 욥의 친구들 간 제2라운드의 논쟁을 보여주려고 한다. 어쩌면 「욥기」의 해설 보다 더 중요한 저자의 관점과 수고가 깃든 작업이 이 부분일 거라고 생각된다. 「욥기」의 텍스트는 완결 됐어도 ‘우리의 공통의 이해력 안에서 우리의 존재의 원리로 승인될 수 있고, 이 공통의 원리가 가장 실용적이며, 가장 최고로 요청되는 지혜이며 윤리적 선이 된다는 사실’을 교회조차(혹은 교회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러한 몰이해는 세월호로 대표되는 우리시대의 모든 욥과 그의 가족들과 고통에 대하여 교회가 여전히 교의신학적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쓰나미가 몰아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을 때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했다는 설교 내용을 매스컴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는 남아시아를 휩쓴 지진과 해일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피해를 본 그 지역은 모슬렘과 불교도들이 주를 이루고, 기독교를 박해했던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휴양지인 그곳은 사람들이 몰려와 향락과 마약을 즐기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기사를 듣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심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만한 정신,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사람의 말입니다.”(《아! 욥》, 84쪽)

 

이 책이 설교임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실제 김 목사님에게서 이렇게 격렬한 파토스를 좀처럼 보질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격렬함 보다는 가령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할 때, 나는 김 목사님의 온유한 성품이 표현할 수 있는 갑작스런 파격(그 파격의 온유함!)을 생각하고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욥에게는 친구의 불행 앞에서 칠 일 밤낮을 함께 울어준 벗들이 있었지요? 지난 시간에 나는 ‘그만 한 우정이 또 있겠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그런데 그들은 정말 우산을 내던지고 욥과 함께 비를 맞았나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산을 접어 욥을 두들겨 팹니다.(《아! 욥》, 80-81쪽)

 

누가, 무엇이, 왜, 이 온유한 시인으로 하여금 충격적인 괴물을 발견하고 그 괴물에게 격렬한 인간의 파토스를 토해내게 하는가? 우산을 내던지고 함께 비를 맞기는커녕 오히려 우산을 접어 비를 맞는 친구를 두들겨 패는 자들. 그런 상황. 그런 신학. 그리하여 이런 부분은 이 책에서 기억하고 넘어가야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욥기의 탁월함은 이 대목에 있습니다. 욥의 불행에 대해 진심으로 아파하는 친구들, 더구나 한 마디의 말도 내뱉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키는 친구들의 존재는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철저히 뒤집히고 맙니다. 이 대목은 욥기의 비극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친구들을 욥의 적대자로 돌변시켰던 것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아! 욥》, 65쪽)

 

우리는 세월호 사건 이후 일체화된 충격과 연민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언뜻 난해할 정도로 돌변해가던 적대를 경험했다. 이 대목은 우리사회의 비극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비극성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대목일 것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사람들을 희생자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의 적대자로 돌변시키는 것일까?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모두를 이 질문 앞에 한 사람 예외 없이 몰아세우려 한다. 저자는 「욥기」의 주제를 하나님에 대한 공소한 정의증명이 아닌 인간의 책임으로서 하나님 존재증명에 위치시키려 한다. 저자의 설교적 지향이 주인공 욥보다도 조연격인 욥의 친구들을 향해 있는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이 점 여타의 전통적이고 변증적인 「욥기」 해설서들과 이 책의 가장 큰 변별점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간과해선 안 될 이 중요점은 남미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 1928~ )가 그의 「욥기」 연구서 《무고한자의 고난과 하느님의 말씀》에서 정리한 ‘고난당하는 자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이란 관점과도 차이가 난다. 사실 어느 시대인들 마찬가지겠지만, 욥을 향하고 욥의 입장에서 욥의 편에서 말하는 것의 근원적 중요성보다, 특히 우리들의 시대는 괴물로 변해가는 욥의 친구들에게 더 시급히 말해야할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고, 설교자로서 저자는 이 점을 가장 긴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리라.

 

 

 

3.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는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는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니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느낀다.(고전 13:9) 하나님이든 지식이든 한 인간이 하나님이라도 된 듯 전체를 온전히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불가능성에 대한 겸허한 깨우침이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무오류의 앎을 가능케 하는 신학이란 불가능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과제이다. 어떻게 그러할까? 불가능하다는 것은 교의신학적 차원의 정직한 진실이고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부정신학적 차원의 희망에 대한 긍정이다.

 

저자는 이 부정신학적 가능성을 ‘말이 끊어진 자리’의 ‘침묵’이라 설명한다. 이것은 「욥기」가 고통 받는 인류에게 선사하는 최후의 용기이고 고귀한 인간성이고 신의 선에 대한 변증법적 반항이자 믿음일 것이다. ‘말이 끊어진 자리’와 그 ‘침묵’. 얼마나 눈물이 나도록 멋진 표현인가! 미스테리, 수수께끼, 그러나 완전히 감추어지지 않는. 그것은 정연한 신정론(神正論)이 아니라 말이 끊어진 침묵의 자리에서의 신비(神秘)다. 거기서 울려 나오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해답으로서의 말은 아니지만 더 이상 논리도 해명도 필요없이 너무 충분한 해답이 된다. 저자는 하나님의 대답에 얽힌 무수한 억측과 도돌이표로 돌아가 버리는 신정론적 정답의 들끓는 요구들에 대하여 말 끊긴 자리의 침묵으로 대답하려한다. 어쩌면 김기석 목사님 자신의 말 끊긴 자리의 침묵으로.

 

“…욥은 모른다. 신이 하필이면 왜 그를 선택했는지. 욥은 벗들에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신하고만 대화하고 싶을 뿐…”〔비스바와 쉼보르스카, 「개요(Streszczenie)」, 본문 중 인용된 시〕(《아! 욥》, 408쪽)

 

신비와 함께 산다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를 말한다. 저자는 이미 책을 시작할 때 밝혔다.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지가 아니라 읽지 말아야할지를. 여기서 저자가 성찰하는 신비의 갈피를 느리고 차분한 사색의 분별력으로 가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욥기를 읽어나갈 때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태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둘째, 욥기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까닭이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욥의 말이라고 다 맞는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의 말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발화된 말의 내용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말이 발설되는 상황이나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욥기의 주제를 무고한 자의 고난과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이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은 다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에 굴레를 씌우는 일이다. 독자들에게 정답 없는 삶을 살아갈 용기가 있느냐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넷째, 욥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과거의 인물로 규정하지 말라.”(《아! 욥》, 31-34쪽)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신비란 얼마나 외롭고 슬픈 일인가! 더구나 이러한 신비에 대하여 연구하고 상상하고 음미해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부조리한 고통 속에서 할 말과 도움 받을 말, 마침내 요구할 말조차 끊어진 침묵의 자리,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살아가려는 사람의 신비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 하나님의 편에도 서지 않고, 반드시 올바른 것도 아닌 말들의 배경을 조응하며, 하나의 결론을 고집하고 않고, 모든 부조리한 오늘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 나는 과연 우리 시대에(「욥기」를 관통하는 삶을 지닌) 그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보다, 그런 사람(삶)을 생각하는 것조차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마치 옛날 보았던 영화 <마농의 샘>에서 막힌 수도(水道)를 뚫고 우물을 파고 물을 구하려 애쓰다가 마침내는 당나귀로 물을 실어 나르다 죽는 어린 마농의 아버지 곱추와 같이 삶의 무게에 비틀리고 휘어진 형상의 삶. 그의 과묵함과 침묵이 이 세상의 부조리 너머로 응시하는 하나님. 목사님이 제 1강에서 언급했던 기형도의 시를 읽어본다.

 

우리 동네 목사님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기형도(1960-1989)

 

어쩌면 우리 동네 목사님은 김기석 목사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아니 아니, 내 모습이기도 할까? 오십세. 나는 이제 세상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신학교의 교의신학도 깨우쳐주지 않았던 슬픈 천명(天命)이란 것을 스스로 깨쳐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하물며 목사노릇으로 강단에서 설교하기 너무나 자주 자괴감에 시달리는 바벨론 유수와 같은 날들이다. 김 목사님께 곧잘 이런 저런 대드는 말도 해보곤 하는 나이지만, 솔직히 길을 물어보고 싶다. 저 이제 어디에 밑줄을 쳐야할까요? 역시 다정하고 겸손히 빙그레한 웃음으로 ‘나도 당신과 같은데 뭘∼’ 끝내 대답은 안 해주실 줄은 안다.

 

나도 모르겠다. 숨은 신이 멸시 당하고 우상신이 득세하며 교의신학은 만연하지만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서 설명이 안 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를 이 시대. 나는 가난한 천막교회 목사 같은 처지에 또 세상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 어느 생활에 밑줄을 쳐야할까? 누구를 향하여 「욥기」의 소감을 피력해야할까? 모든 이슈가 블랙홀처럼 세상의 부패와 부정의 폭로에 말려들어간 이 연말에, 그래도 코밑에 닥쳐온 성탄절과 세모(歲暮)에, 욥은 누구이고 욥의 친구들은 누구이고 우리들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 것인가?

 

김 목사님의 빼곡한 독서와 사색의 책갈피에서 지천명(知天命)의 내 의문에 대한 한 대답이듯 이런 생각이 난다. ‘불행한 사람이 책을 읽는다. 행복한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 불행한 사람이 글을 쓴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불행한 사람이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 다면 그것은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이다.’(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모르겠다는 말은 그만하자. 모르긴 뭘 모르는가? 우리는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욥기」는 그런 자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욥이 오직 신과만 말하려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론 신은 오직 욥과만 말씀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가 막혀 할 말이 끊어진 침묵의 자리에서 오직 신과만 대화하는 사람.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나왔을까? 《아! 욥》.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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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7)

 

지극히 평범한 한나, 비범한 노래를 부르다

 

2016년 12월의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들은 광장의 평화로운 촛불 혁명을 이끌고 있다. 평범함은 지리멸렬하지 않았고 지배 세력들의 사악한 동맹과 결탁을 부끄럽게 만들며 비범함을 드러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광장의 촛불이 비범함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사무엘서의 한나의 기도와 중첩되었다. 한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 때는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가 거의 끝나고 왕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역사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끝자락은 암울했다. 안으로는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의 타락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였고, 밖으로는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블레셋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제사장들은 올바른 예배에는 도무지 관심 없었고, 물질적인 욕심과(사무엘상 2:12-17) 그릇된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에 바빴다(2:22-26). 이 혼란의 시대를 뚫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워진다. 새로운 시대를 잉태한 위대한 인물 뒤편에는 불임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견딘 여성 한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슬픔은 고통이었건만, 한나의 남편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로 인해 그녀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다. 그녀의 괴로움과 간절한 기도는 사무엘의 출생으로 응답되었다.

 

 

 

 

이후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일평생 여호와를 섬기도록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한다. 놀랍게도 그녀의 기도는 개인적인 감격과 감사를(2:1-5) 넘어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고 예고하는 노래가 되었다(2:6-10). 그래서였을까. 한나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훗날 ‘마리아 송가’(누가복음 1:46-55)의 원형이 된다. 그렇게 한나의 기도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읊조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며 노래였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6-10).

 

사무엘의 출생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렸던 감격의 기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며, 주님의 구원으로 인해 기뻐하는(2:1) 목소리는 불임의 고통을 끝내고 삶의 반전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였다(2:5).

 

그러나 그녀의 기도 후반부는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을 넘어서 기존의 세상 질서를 엎으시고 반전의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선포로 확장된다. 한나에게 여호와는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다(2:3). 때문에 그녀에게 여호와는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교만한 자들의 삶을 엎으셔서 평등과 균형을 만드시는 분이다. 풍족하던 자들, 많은 자녀를 가진 자들, 귀족 계층들과 대비되는 넘어진 자들, 임신하지 못하던 자들, 굶주리던 자들, 가난한 자들, 빈궁한 자들의 삶이 반대로 뒤집혀진다. 기존의 사회 질서와 권력을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혁명적이다. 그러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2:6) 여호와는 인간의 체제 안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 언제든 자기 뜻에 따라 반전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이다.

 

한나는 기존질서를 해체시키려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타락의 민낯을 드러낸 제사장들의 수치스러운 행태들이 빚어낸 현실을 지켜보며 변화의 주도적 힘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노래했다. 한나는 삶의 밑바닥에서 도무지 탈출할 수 없는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행동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했다. 그녀는 “땅의 기둥은 여호와의 것”(2:8)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새로운 변화의 바람도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는 새로운 질서 개편이 있을 것을 꿈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악인들을 암흑 속에서 잠잠하게 하실 여호와, 그러나 경건한 자들을 지키시는 여호와를 한나는 믿는다. 하여 한나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시는 여호와가 재판관이 되셔서 땅 끝까지 심판하실 것을 선포했다. 그녀의 기도 끝에 느닷없이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10)라는 선언이 이상하지만, 이 말에는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이 담겼다.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해 높아졌다”(2:1)라는 첫 절의 고백과 어울리게 기도의 끝맺음은 장래 일을 기대하는 선포적인 언어였다.

 

아직 왕이 없던 시대였지만, 한나는 장차 세워질 왕을 기대한 것이다. 그녀는 기름부음 받은 왕이 누구라고 이름을 지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서 끝에 이르러 다윗 집안을 통한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은 다윗의 노래는(사무엘하 22:1-51)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듯 마주보고 있다. 결국 한나의 기도는 불임이라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과 감사를 넘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악한 질서를 재편하실 하나님을 선포하는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겹겹의 세월을 지나며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위대한 기도로 우리 곁에 남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시대(3:1), 평범했던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두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지금 찬바람 몰아치는 광장에는 평범함이 모여 비범함을 낳고 있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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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산책길에서 만난 길벗들

 

 

초대받은 사람들

 

김기석을 따라 같이 욥기산책을 하다보면 동서고금의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에는 욥기 전문가는 별로 없는데, 욥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이들이 한 때 어디선가 한 말이 독자들의 욥기 이해에 얼마나 큰 빛을 비추는 지를 꾸준히 밝히면서, 그들을 일일이 소개한다. 이 책을 다 읽는 동안 독자들은 적어도 90여명 이상의 길벗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초청을 받은 이들 중에는 단연 시인들이 많다(다니카와 슌타로, 단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소동파, 엘리어트, 파블로 네루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호메로스, 횔덜린, 구상, 기형도, 김승희, 도종환, 박두진, 윤동주, 윤석산, 이문재, 이정록, 정진규, 정현종, 정호승, 한하운, 황동규).

 

그 다음이 철학자들(괴테, 노자, 마사 너스바움, 막스 피카르트, 맹자, 비트겐슈타인,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에밀 시오랑, 에픽테투스, 임마누엘 칸트, 자끄 데리다, 장자, 칼 야스스, 토머스 홉스, 하이데커)이고, 극작가나 소설가들(니코스 카잔차키스, 로버트 자레츠키, 밀란 쿤데라, 비르질 게오르규, 사무엘 베케트, 알베르 카뮈, 엔도 슈샤쿠, 외젠 이오네스코, 제임스 힐턴, 카프카,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이 그 뒤를 잇는다. 또한 인문학 교수들(강상중, 김흥호, 신영복, 카렌 다위샤), 실학자(박지원), 신학자들(김민웅, 마틴 루터, 송천성, 수스따보 구티에레츠, 스티븐 보우머 프레디거,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어거스틴, 월터 브루그만, 칼빈, 폴 틸리히), 작곡가들(헨델, 비발디), 화가들(마크 로스코, 미켈란제로, 조르주 피에르 쇠라), 과학자들(미다스 데커스, 제레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 문명 비평가들(루이스 멈퍼드, 테리 이글턴, 함석헌), 정치가들(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 종교지도자(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작가들(로버트 자레츠키, 에릭 스프링스티드, 엘리 위젤,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 파커 파머), 의사(올리버 색스), 유대문학자(피쉬베인) 등도 저자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주역, 농가월령가, 회심곡에 이르기까지, 저자 자신이 욥기 이해의 여정에서 만난 지적 유산의 전승들이 모두 언급되며, 인용되고 있다.

 

 

 

 

김기석의 욥기산책에 참여하는 독자에게 이토록 많은 인물과 전승들은 어떤 구실을 할까? 독자들의 욥기 이해를 돕는다? 아니다! 욥기의 세계를, 자신의 삶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응시하거나, 그것도 혼자서 흥미삼아 관광을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의 축적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그들과 함께 사귀면서, 욥기의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들이 욥과 그의 네 친구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논쟁 같은 대화에 한 번 끼어들어 보기도 하고,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도 듣지만 말고, 하나님에게도 사탄에게도 말을 걸어 독자 자신의 견해를 밝혀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생기는지도 조금은 심층적으로 파헤쳐보고, 우주가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온갖 피조물이 함께 사는 곳임을, 창조주 하나님은 단순히 사람과만 교제하시는 인격적인 대상으로 제한할 수 없는 분임을, 그리고 욥을 둘러싼 세계는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이고 우리의 삶일 수도 있음을, 학제간學制間의 여러 인물을 만나 듣고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김기석이 깔아놓은 이 마당에서 놀이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할 일이다.

 

구태여 현학적인 본문상호관련성intertextuality이네 다중본문융합多衆本文融合이네, 이 따위 너스레는 떨지 않겠다. 저자가 독자에게 소개하는 길벗들 중 몇몇은 욥에 관해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한 이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독서에 초대받은 대다수는 각자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지만, 욥이나 욥기에 관한 한 우리 일반 독자처럼 주인공 욥이나, 그의 이름으로 된 욥기란 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이다. 다만 우리의 저자 김기석은 그들을 욥의 세계로 끌어 들이고 그의 독자들과 만나게 중재할 뿐이다. 그들이 필연적으로 욥기 산책에 함께할 까닭은 없다. 저자가 그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글을 인용하는 것도 저자의 욥기 이해나 어떤 주장에 대해 무슨 증거를 가져다 대려고 그들을 증인들로 소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욥기산책 길에서 욥 이야기를 같이 하자고 초청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저자를 따라 산책을 하다보면, 김기석의 책에 언급된 그 90여 명의 동서양의 인물들은 마치 욥기 이해를 위해 뭉친 저자들과 독자들의 컨소시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제각기 자기 위치에서 자기 재능을 따라 공동 작업을 한 것 같은 결실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김기석의 ‘욥기 산책’으로 나온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바쁠 게 없는 초대 손님들

 

이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나에게 와서 너무 지체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의 출판이 좀 늦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죄송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결코 리뷰 필자인 나 자신의 잘못이란 누명을 혼자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다. 까닭인즉, 김기석의 소개로 만난 이들과의 개인적 대화가 너무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 흥미 있는 길손들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장시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이들이 있다. 그 중 두 사람이 카렌 다위샤와 프랜시스 톰슨이다. 아마 독자에 따라서는 이들 말고 다른 길벗들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을 것인데, 아마도 그들과 함께 욥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새로운 체험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마주하며 오래 얘기를 나누게 만든 두 사람에 대해 얘기해 본다. 저자는 욥기 8-9장에 나오는 빌닷의 신학이 자칫하면 지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현실을 정당화 해주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의 사다리 윗단까지 오른 사람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 자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탈세와 권력형 뇌물 수수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을 정당화시키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그의 일당 110명이 러시아 금융재산의 35%를 도적질한 것을 폭로하는 카렌 다위샤 교수의 저서 《푸틴의 클렙토크라시(도적지배체제)》를 소개한다. 카렌 다위샤의 이 저서는 지난 두 달(2016년 10월과 11월)에 터진 청와대 스캔들의 러시아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범죄권력집단의 범죄 실태와 그 구성원들의 역할이 다 공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크렘린과 청와대가 같은 시기에 같은 연배의 주인공들이 유사한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한 사람은 <하늘나라의 사냥개>라는 시를 쓴 노숙자 출신 시인 프랜시스 톰슨인데, 그의 시는 낭독하는 데만 10분 30초가 걸린다. 하나님으로부터 도피에 실패하는 그의 경험이 감동으로 다가오자 나는 그를 쉽게 놓아줄 수가 없었다. 저자 김기석은 욥이 체험하는 하나님 부재와 욥을 단련시키는 하나님의 임재 체험이 고백된 본문(욥기 23:8-12)을 설명하면서, 프랜시스 톰슨의 이 시를 부분적으로 인용한다. “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다. 밤과 낮의 그늘 속으로,/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다. 수많은 세월 동안을./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다. 마음의 미로 속으로.” 그러나 끝내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걸음걸이”로 시인 자신을 찾아오셨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시의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 시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는 인간과 그를 끝없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숨바꼭질을 장대하게 펼쳐 보여준다는 점을 밝힌다. 프랜시스 톰슨이 경험한 어둠은 사랑으로 내미신 하나님의 손 그림자였다는 것을 저자는 욥의 유사 경험과 대조시키고 있다.

 

욥기 산책길에서 잠시 벗어나 이 두 인물과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이 책의 독자로서 나 개인의 일탈이었음이 분명하지만, 나는 감히 독자들에게도 확언할 수 있게 됐다. 저자가 초대한 90여 명의 손님과 함께 산책하는 동안 독자는 도중에 이 산책을 중단하고, 초대받은 이들 중 어느 누구와 외길로 빠져 들어가 또 다른 세계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초대 손님을 선별한 김기석에게 욥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고민했던 바흐친, 지라르, 융, 지젝, 멜빌, 라캉, 윌리엄 블레이크 등은 왜 부르지 않았느냐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또 다른 질문

 

「욥기」는 「잠언」과 「전도서」와 함께 구약성서에서도 지혜문학으로 구별되는 책이다. 이 세 책의 성격이 현격하게 다르다. 「잠언」은 전통적인 지혜를 수집해 놓은 책이다. 「전도서」는 꼭 잠언을 염두에 두고 그것에 저항할 목적으로 수집 편찬된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 지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자신들의 인생체험에 따라 이 두 서로 다른 지혜에 대해 긴장을 느끼면서도 둘 다 수용할 수 있다. 더욱이 이것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세 종교의 경전의 일부가 되면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지니게 되었고 여기에서 독자들은 믿음과 실천의 규범을 찾는다. 그러나 욥기는 좀 복잡하다. 이 책이 경전 안에 들어오면서 욥기를 경전으로 읽는 독자는 혼란을 겪게 된다. 이것은 욥기를 경전으로 대하지 않고 한 종류의 문학작품으로만 대할 수 있는 독자들과는 또 다른 체험이다.

 

기독교의 경전 「성경전서」(66권)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다는 것이 전제된 말이기 때문에, 단순히 직접화법의 화자가 하나님이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시편과 같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찬양과 감사와 기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직접화법 (“하나님이/여호와께서 가라사대…”)이 없어도 「시편」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견지에서 보면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과는 달리, 욥기는, 욥기 저자의 지문이나 편집구를 제외하고서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이고 논쟁이다. 등장인물로는 하나님, 사탄, 욥, 엘리바스, 빌닷, 소발, 엘리후 등이 번갈아 나온다. 각 등장인물이 화자로 나오고, 그들의 직접화법이 길게 또는 짧게 전개된다. 욥기를 읽을 때 독자들은 어떤 화법에 대해서는 누가 누구에게 언제 왜 그런 말을 하는 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화자들의 말은 지혜전승의 인용이고 편집이고 선별된 전승에 근거한 자기주장이다. 욥기에서 화자 표시를 다 제거하고, 문맥을 다 무시해 버리고, 언급된 지혜전승만 나열해버린다면, 어떤 부분은 「잠언」 같고 어떤 부분은 「전도서」 같을 것이다. 그러나 욥기가 그런 지혜의 수집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하나님의 직접화법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욥의 경우 좀 불손 불경한 표현이 나오더라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기 1:1)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신 자인만큼 하나님의 직접화법 다음으로 그의 말은 존중받아야 하고, 사탄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고, 엘리바스, 빌닷, 소발, 엘리후, 이들 네 친구는 그들이 말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꾸중을 받은 것이니(욥기 42:7-8), 그들의 직접적인 말들도 실은 성경에 적혀는 있어도 “성경말씀”이라고는 볼 수 없고… 이런 식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욥기산책의 저자가 욥기 독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1강의 결론 부분은 이 책만의 공헌이라고 판단된다. 이것은 위에서 밝힌 평자의 기우를 넘어서는 적극적으로 욥기를 읽는 자세이다. 그는 독자에게 네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욥기를 읽어나갈 때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태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이 태도는 욥의 친구들의 기본적인 태도였고,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꾸중을 받았기 때문이다. 짐짓 하나님 편을 드는 것 같은 전통적인 응보의 교리를 가지고는 더 이상 욥의 경우를 설명하지 못한다. 서구 신학의 틀을 가지고 세월호 사건을 해석하려할 때 그것이 작동할 수 없었던 것도 똑같은 이치다.

 

둘째, 욥기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까닭이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욥의 말보다 친구들의 말이 더 은혜스럽게 들리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욥의 말이라고 다 맞는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의 말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한다. 다만, 말의 옳고 그름의 척도로 욥과 친구들의 논쟁에 접근하면 욥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발화된 말의 내용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말이 발설되는 상황이나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부탁이다.

 

셋째, 욥기의 주제를 무고한 자의 고난과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이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은 다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에 굴레를 씌우는 일임을 상기시킨다. 김기석은 욥기가 독자들에게 정답 없는 삶을 살아갈 용기가 있느냐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김기석은, 욥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과거의 인물로 규정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지금도 많은 ‘욥’들을 양산하는 체제라는 점을 주목하게 한다. 이렇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김기석의 장치가 욥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독자를 도울 것이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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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16)

 

밧세바는 강간당한 것인가, 유혹한 것인가

 

“모호하게 보이는 것들에서 우리는 뭔가를 깨달을 수 있다”라고 말한 자끄 라깡의 한 마디처럼 모호함은 텍스트 해석의 실마리가 되곤 한다. 모호성은 일상 언어와 과학의 영역에서 환영받지 않지만, 문학의 옷을 입은 텍스트의 모호성은 독자를 미묘한 언어게임의 장으로 불러들인다. 예컨대 다윗의 드라마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큰 문제였던 이른바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에서도 모호성이 포착된다. 단 한 절만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사무엘하 11장 전체 맥락에서 왕의 권력을 남용한 다윗의 일방적인 강간행위는 아니었는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다윗의 간음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암몬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폭력의 상황 가운데(10장; 12:16-31) 다윗의 궁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전쟁 상황,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지만 다윗은 자신의 궁에 머물러 있었다. 온 이스라엘 군대는 랍바를 에워싸고 전쟁 중이었지만(11:1), 다윗은 저녁 시간 침상에서 일어나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된다(2절). 왕이 전쟁터에 군사들을 보내놓고 한가로이 저녁 산책하는 모습은 불안하고 불길하다.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있어야 할 왕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직무유기다.

 

 

 

옥상을 거닐던 중 다윗 왕의 눈에 들어온 한 여인,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2절).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본다. 심부름을 다녀온 사람이 “그녀는 엘리암의 딸이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아닙니까?”(3절)라는 질문형식의 답변을 한다. 다윗이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힌 셈이다. 우리아는 다윗의 37명의 용사 중 한 사람이고(23:39), 엘리암 역시 다윗의 용장이었다(23:34). 다윗은 밧세바의 신원을 확인하고도 그녀를 호출한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4절, 개역개정).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4절, 새번역).

 

개역개정과 새번역의 미묘한 차이는 문장의 모호성을 반영한다. 히브리 문장의 동사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다윗이 주도하는 형태다. 다윗은 여자에게 전령들을 보냈다. 그가 그녀를 취했고 그녀는 그에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함께 누웠다(4절). 두 명 이상의 전령이 다윗의 명령에 따라 밧세바에게 갔을 때, 그녀는 자신이 왜 왕의 호출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 채 명령대로 다윗에게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밧세바의 저항이나 불복종의 묘사는 없다. “정을 통했다”라는 번역은 둘의 합의된 성관계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목소리 없는 밧세바의 수동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다윗의 적극적인 행동과 왕으로서 강제력 행사의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격과 모호성의 긴장이 있다. 밧세바의 수동적인 태도와 정황에 해석자들이 관심을 두었다면 다윗을 강간범으로 고발하지 않았을까?

 

해석자들은 밧세바의 자리로 이동하여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상상해보려 하지 않았다. 왕의 지위가 요구하는 강제력과 명령을 받는 밧세바의 복종 사이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없는가? 몇몇 해석자들처럼 이 여인이 저녁 시간에 목욕하고 있었던 것을 문제 삼아야 하는가? 밧세바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목욕하고 있었던 것인가? 한 여자가 목욕하고 있고, 왕이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다윗을 볼 수 없다. 그녀는 단지 누군가에 의해 관찰 당했을 뿐이다. 본문은 그녀의 의도와 감정을 단 한 줄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욕을 유혹하려고 추파를 보내는 행위처럼 해석하는 주석가들이 있다. 이것은 목욕하는 여성을 남성의 성적인 도발을 자극하려고 유혹한 것처럼 죄를 덮어씌우려는 의도다. 이러한 해석은 밧세바를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의 틀 안에서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동시에 여성을 향한 ‘동료인간’으로서의 연대의식이 결여된 차별적인 태도다.

 

밧세바가 목욕한 것을(2절) 생리로 인한 부정한 기간이 끝나 정화하는(4절) 제의적인 정결예식이라는 해석은 접어두자. 또 다른 문제가 이 여인의 임신에서(5절) 시작되니까. 11장에서 밧세바가 처음 소개될 때를 제외하면, 그녀는 실명이 아니라 “그 여자” 혹은 “우리아의 아내”로만 불린다. 다윗 왕의 지위와 권력 앞에서 밧세바의 목소리는 없다. “내가 임신했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뿐이었다. 그녀 역시 다윗처럼 사람을 보내 임신 사실을 알렸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아의 아내로서 다윗과 동침한 위험성을 감지한 대처다. 동시에 그녀의 임신은 다윗의 범죄행위를 드러내는 증거다.

 

밧세바의 임신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자신의 충실한 장군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여 밧세바와 성관계를 갖도록 책략을 짜냈지만 실패하고 만다. 다윗은 밧세바의 뱃속 아기를 우리아의 아기처럼 위장하여 죄를 은폐하려 했지만, 우리아는 다윗의 숨은 의도를 좌절시켰다. 우리아는 왕에게 장군님과 모든 군대가 벌판에서 야영중인데, 어찌 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동침할 수 있겠냐며 그럴 수 없다고 했다(11절). 다윗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죄를 감추기 위한 시도가 실패하자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칼에 맞아 죽도록 요압 장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방식을 선택했다(15-17절). 그는 은밀하게 비열했다.

 

밧세바는 자기 남편의 죽음이 다윗 왕의 비밀스러운 계획에 근거한 것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아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애도의 시간이 끝나자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이 여인은 다윗의 아내가 되고, 아들을 낳았다. 저자는 다윗이 저지른 일에 대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라고 평가했다(26-27절).

 

다윗의 죄악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여 간음했고,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어도 우리아의 죽음을 사주했다. 때문에 11장의 본문은 다윗의 행위를 비난하지만, 밧세바를 비난하지도 죄인 취급하지도 않는다. 간음은 행위 대상자인 남녀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밧세바가 아니라 다윗에게만 죄의 책임을 돌린다. 왜일까. 저자는 이 사건을 왕의 권력과 지위를 남용한 성범죄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아내를 바라보는 욕망을 비난해야지 벗음을 상상하게 하는 밧세바의 목욕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신앙과 신학적 교훈이 담긴 본문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모호성에서 질문하며 사유할 자유를 허락했다. 그러면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야하는 부담과 책임은 무엇일까. 다윗은 권력을 남용한 왕으로서 품위를 잃었고, 마음의 법정인 양심을 버렸으며, 죄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는 교훈의 증거가 되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더라도, 성경은 그의 도덕적인 죄를 덮어두지 않았다. 이 맥락에서 우리 시대의 ‘목회자 성윤리’ 의식도 따져볼 일이다. 목사의 영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가 의혹제기로만 끝나거나 피해 여성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도록 공동체의 책임의식이 절실하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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