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께(12)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목사님,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절망 속에서도 아픔을 공감하는 목사님의 능력을 보며 무심한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한 문장, 한권의 책을 인용하시는 그 박학다식함에 시샘하며 지루한 읽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발견하고 밀려오는 뿌듯함에 책을 다시 보고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간사함에 놀라고, 그 간사한 사람이 저와 같은 목사라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그냥 제 추측입니다만 제가 언젠가 SNS에 쓴 내용이 목사님의 책에 담긴 내용과 비슷해서 기뻤습니다.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를 넘어


“어느 목사님이 SNS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자기 개인의 아픔에 대해 말하면 은혜스럽다고 하고 세월호 참사나 비정구직 문제 등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에 대하여 말하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누구나 느끼는 현실입니다.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는 어제와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둥이 기울고 서까래가 삭은 오늘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는 문장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쓰신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거의 뒷부분(367쪽)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사람이 간사하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문장을 발견하고 그 기쁨에 목사님의 책 전체를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가 그 책을 쓴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목사님이 쓰신 그 부분만 반복해서 읽는 겁니다. 이 문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책을 이해하려고 읽었습니다만 이 문장을 발견하곤 기뻐서 읽었습니다. 참 이기적이지요.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를 탓하면서도 정작 저는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사사화된 신앙’적인 태도로 삶을 일관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서 한탄하다가도 정작 제 자신의 ‘사사로움’에 감동하고 마는 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목사님, 제 안에도 있고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이 치졸하고 악한 인간성에 대해 목사님은 절망하기보다 희망을 발견하셨습니다. 사람이 갖는 관계에 대한 욕구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의 불씨이지요. 이 욕구를 막아서 개인적인 삶에 머물고 자기만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도적으로 틔우려고 해도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인 관계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관계망’ 형성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자도의 의미를 현실화시키고, 우리가 사는 공간을 치유적인 생태계로 복원시키기에 모든 이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저는 아픔을 통하여 관계망이 사람을 살리는 생태계임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 무엇보다도 교회는 관계망으로 촘촘히 엮인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오히려 성도들이 삶에서 겪는 아픔을 나누고 의식을 공유하면 관제언론처럼 사단마귀가 들었다고 몰아내칩니다. 또 필요를 나누라고 강조하면 게으름을 일상화 시키는 것이라며 ‘인간성’을 탓합니다.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억압하고 억제하는 일에 앞장서서 마치 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처럼 관계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개인적인 질병보다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겪는 고통이 더 지속적이고 파괴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악으로부터 오는 아픔에는 외면하도록 눈감게 합니다.


목사님, ‘목사는 늘 위로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시달립니다. 이 위로라는 말속에 개인적인 아픔을 고쳐달라는 강한 압박이 담겨있습니다. 목사가 의사도 아니고, 목사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 위로의 압박은 상당하여 때로는 목회를 더욱 무기력하게 합니다. 정말 치유해야 할 것은 질병이 아니라 어쩌면 생각일 것입니다. 혼자, 고립된 신앙 속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이런 신앙 말고 아픔을 삶의 과정으로 수용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질병의 치료보다 더 근원적으로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위로하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대면한 첫 만남은 <복음과 상황> 지령 300호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늘 글로만 읽던 목사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하였지만 정작 목사님과 가장 가깝게 닿은 것은 눈도 아니고 손이었습니다. 혜안이 가득한 눈 속에 지혜로움이 느껴졌고, 악수하며 잡은 손을 통해 마음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 악수를 잊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것, 그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걷는다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155쪽). 함께 걷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머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연대하는 그 정신이 손에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걸어가는 삶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손을 잡는 것뿐입니다. 맞잡으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늦어지지요. 누구의 손을 잡든지 간에 손을 잡는 순간 늦고 더디게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빠른 사람의 힘에 이끌려 딸려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무리하면 얼마가지 못해서 넘어지고 맙니다. 손을 잡는 행위는 더딤을 수용하고 함께 걷겠다는 느림을 수용하는 엄청난 행위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서 하나님과 아담이 만나는 첫 장면이 바로 손가락의 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그 손가락은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주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


저는 목사님이 인용하신 고종석 선생님의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라는 문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픈 아내를 간병한지 12년째인 저는 깜깜한 어둔 밤에 조용히 침대위에 누워 있는 아내의 팔뚝을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이 다 잠들어 있고 호흡만 들리는 그 밤에 조용히 아내의 팔뚝을 만지는 제 행위는 아내와 함께하는 성생활과 같습니다. 그건 “당신은 내 아내입니다”하고 속삭이는 언어랍니다. 그러면 아내도 아는지 부부행위를 하는 듯 호흡이 가빠지고 거칠어집니다. 인생이 칠흑같이 어둡고 답답해도 서로를 보살피는 연대의 의미로 이러한 손닿음은 언제나 부부만의 내밀한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야심한 밤에 아내의 손목을 잡는 행위는 부부로서의 존재만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의 글속에 “마주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는 문장을 읽으며 전 맞는 말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제 아내처럼 말도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는 중환자를 일상에서 만나는 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옵니다. 물론 제 아내도 엄청 두려워합니다. 사고의 두려움도 있지만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제가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이동할 때 긴 세월동안 저의 모습을 보아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주민들조차도 쭈뼛거립니다.


그렇지만 늘 같이 지내온 우리 성도들은 제 아내가 교회에 가면 자신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아내의 얼굴을 보듬고, 팔뚝을 쓰다듬으며 재잘거립니다. 그렇게 아내가 머무는 곳에선 웃음꽃이 핍니다. 그렇지만 제 아내는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것은 참 희한한 만남입니다. 말 못하는 제 아내를 만나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 평안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탈북 청년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도록 식장을 빌리고, 음식을 차려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온 제 아내를 그 두 사람에게 소개하며 “제 아내입니다”라고 하자마자 그 두 청년이 저를 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사모님이 이런 모습으로 누워계신데 저희를 도왔습니까?”라며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생사를 걸고 자신들이 살아온 체제와 다른 곳으로 넘어온 청년들은 좀처럼 울지 않습니다. 그 각오의 단단함이 감정마저 얼어붙게 하나 봅니다. 그렇지만 그 탈북 청년들은 그날 그토록 울었습니다.


손길이 닿으면 그 손길이 닿는 제 아내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손을 내미는 그 사람도 치유의 과정을 겪습니다. 마주 잡는 손 하나가 세상과 접촉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그대로 수용하는 “보살핌이고 연대”입니다. 맞습니다. 손을 맞잡는 것은 제 아내에게는 세상과 접촉이지만 손을 잡는 그 사람은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수용하는 보살핌이 된 것이지요. 손을 잡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 걷는 사람이 상대방의 속도를 인정하고 자신의 삶 속도를 늦출 때만 그렇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부인하는 느림을 선택하고, 휙휙 지나가는 빠름 대신에 ‘천천히’를 선택하여 걸을 때만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부인 없이는 결코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포기하고 다름을 선택하고 함께 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연대는 자기부인에서 나옵니다. 자기부인이 없는 연대는 거짓이고, 자기 의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든지, 정부와 노사협상이든지 손잡고 빨리 가자고 말하는 시대인 것 같아서 느림을 선택하고 손을 잡는 자기부인의 시대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목사님,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같이 있을 때는 서로의 어루만짐을 잘 모르다가 함께 있지 않는 ‘부재’의 순간이 오면 그동안의 삶속에 가득했던 ‘일상의 거룩한 순간’들이 생각나서 그리움에 마구 젖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몇 달 전에 독일로 청빙을 받아서 떠난 후배가 그립습니다. 후배 목사와 함께 한 시간 속에는 나이를 초월하는 우정이 숨어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동토처럼 얼어붙었던 서로의 허물도 있었지만 그가 부재한 뒤에 겪는 그리움은 그걸 모두 녹여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겨울을 맞아도 눈물로 받아주는 이”가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제게는 그 후배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사역자로서 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사역에 대한 무지보다도 겨울 같은 인생의 혹독함 속에서도 계절을 모르고 찾아오는 성적인 충동입니다. 제 속에 있던 불만족으로 가득한 제 욕망은 제 감정을 할퀴고 제 언어에 가시를 심습니다. 저의 건강하고 정당한 욕망이 어둠속을 헤매며 저를 괴롭힐 때 저는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눈길 줄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 능글능글 오욕이 불타는 눈길을 받아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인간의 본능에 전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절망을 나누던 이가 제게서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사님의 편지를 엮은 이 책이 바로 그 후배와 같은 ‘물건’입니다. “저는 어둠을 모르는 빛, 절망의 심연을 거치지 않은 희망,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주어지는 은혜, 추함을 외면하는 아름다움, 불화의 쓰라림을 알지 못하는 조화, 흔들림조차 없는 확신, 일상을 떠난 영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든든함을 지향하고, 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장 속된 것에서 거룩한 것을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의 길은 흔들리며 걷는 길입니다”(303쪽). 이 문장에 제 눈에 확 꽂혔습니다. 저절로 아멘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목사님, 고맙습니다. 이기적인 저를 보게 하시고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더럽고 추하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진정으로 거룩한 분입니다. 속된 것 따로, 거룩한 것 따로인 세상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304쪽)는 말로 저를 바른 길로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에게 절망하지만 절망하는 그 속에 오시고 거하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밤마다 나의 추함에 통곡하지만 십자가를 볼 때마다 다시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의 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저를 보며 그분의 성품에서 소망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후배를 떠나보낸 여정은 참 외롭습니다. 그러나 이 삶에 이 책마저 없었다면 더욱 절망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사람이야 이별이 가능하지만 책은 언제나 손안에 넣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나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거룩한 하나님 같아 보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목사님의 책을 통해 경험합니다. 하여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알고 아픔의 고통을 다시 품고 살아갈 결심을 합니다.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의 길을 만들기에….  


김병년/다드림교회 목사, 《난 당신이 좋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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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5)


걷기를 마치며


갑자기 배가 고팠다. 그동안은 일부러라도 허기와 친해지고, 거친 밥과 친해지고, 불편한 잠자리에 친해졌던 시간들, 그런데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자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오르듯 허기가 밀려왔다.


인근에 있는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먹으라 했다고, 당신이 사는 것이라며 아내는 장모님의 뜻을 전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라는 말 한 마디면 족했다. 무얼 먹어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그런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 뭔가 이상했다. 규민이가 차를 운전하는데 자동차의 속도가 낯설게 다가왔다. 두 발로 걷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너무 사라지고 있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포 사격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땅의 아픔과 상처는 그런 것이었다.


삶에도 속도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달리고 있었다. 달리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살고 있는 것이었다. 빨리 달리는 것이 성실이지 미덕이라고, 남을 앞서는 것이 성공이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것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채 죽어라 앞으로만 달리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쳐 간다. 길가에 핀 키 작은 꽃이나, 수풀 사이의 메뚜기,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나 그들을 노리며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개미귀신, 마른 가지에 앉아 날개를 접은 잠자리에 눈길을 주지 못한다. 한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나 지친 노인의 눈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밤하늘의 별자리와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별똥별이 날아간 곳과 무지개가 뿌리를 내린 자리에 꿈을 새기던 설렘도 더는 남아 있지를 않다.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어쩌면 열하루 동안의 걷기가 준 선물 중에는 삶의 속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선도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열하루 동안의 로드맵을 짜고 내내 마음으로 걱정하며 동행을 한 함광복 장로님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누구보다 분단의 땅(DMZ)을 가장 많이 밟은 사람, 우리 가까이 있는 ‘거룩한 땅’(聖地)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는 분이시다.


먼 길을 기꺼이 달려와 격려와 위로, 힘과 용기를 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화인(火印)처럼 마음에 남아 있을 만남,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난 멋진 동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함께 걸었던 분들께야 뭐라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열하루 동안의 숙박비에 해당하는, 생각지 않았던 봉투를 건네준 태건상사 김만석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도 마음에 간직한다.


길을 걸으며 만났던 모든 이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소소한 만남이라도 모두가 소중한 만남이었고, 밤하늘을 밝히는 별들처럼 열하루 길을 의미 있게 해 준 고마운 이웃들이었다.


마음으로 동행하며 응원을 보내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있어 나는 혼자 걸으면서도 혼자가 아닐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걷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보며 일정을 되돌아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중간 중간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 전부였는데, 사진 중에는 마지막 날 장파리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가족들을 만났을 때 규민이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도망을 치곤했었다. 그런 내가 나를 찍는 것은 더욱 어색한 일, 생각해 보니 걷는 동안 나를 찍은 사진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한 장쯤은 남겨두면 어떨까 싶어 부탁을 한 것이었다.


일부러 뒤로 돌아섰고, 규민이는 내 뒷모습을 찍었다. 얼굴 대신 신발 두 개가 배낭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찍혔다. 그런데 그 사진에는 사진을 찍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하늘의 한 부분이 범상치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찍을 때는 몰랐던, 나중에야 빛의 형상을 보며 깜짝 놀랐던 사진. 

그동안 수고했다며 손을 흔드시는, 내게는 영락없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뒤로 돌아선 내 머리 바로 위에, 잔뜩 흐린 하늘 한복판에 빛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검은 하늘 사이로 남아 있는 빛의 형상을 확대해서 보니 떠오르고 있는 아침 해와 그 해와 접해서 생긴 공간이었다.


그 빛은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빛이 만들어내고 있는 형상은 누군가가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영락없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빛나는 옷을 입으신 그 분이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고했다고, 기도의 시간을 가져 고마웠다고, 나는 늘 너를 따라다니며 너를 지켜보았다고,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드시는 빛의 형상, 내게는 부인할 수가 없는 주님의 형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열하루 동안 내내 나와 동행하셨던 분은 주님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때에도 내 등 뒤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분, 내가 보낸 모든 시간 속으로 그분의 사랑이 짙게 스며들었다.


열하루 동안 홀로 걸었던 걸음 걸음을 기도로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해진 이 땅을 주님이 손수 기워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좋은 길을 안내해주어 고마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때, 함광복 장로님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셨다.


<아! 해내셨습니다. 오늘은 아무 생각도 마시고 푹 주무십시오. 하나님이 한 순간도 안 놓치시고 목사님 돌보셨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무탈(無頉)의 장정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동의 장정을 하신 목사님 감사합니다.>


장로님의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감사했다. 정말이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철조망과 지뢰가 허리를 두르고 있는 아픔의 땅 DMZ를 따라 홀로 걸었던 열하루 동안의 걸음걸음을 부디 기도로 받아주시기를 빈다. 갈라진 이 땅을, 너덜너덜 어처구니없이 해진 이 땅을 주님께서 손수 주님의 손으로 기워주시기를 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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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3)


마지막 걸음


〈세익스피어 맥베드에 “숲이 움직이면 전쟁을 준비해야 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걸어 내려오시는 그 벌판 가득 중공군이 풀을 꽂고 남하할 때 임진강 건너 영국 크러스터 대대는 그 대목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벌판에서 한 많은 임진강 전투를 생각하시면 덜 피곤하실 겁니다. 신장남교는 새로 놓은 것이고, 옛날 다릿발 하나를 우기고 우겨서 남겨놓았습니다.(2월까지 있었는데, 아직 있겠지요.) 그 다리 밑 두지나루에 황포돛배가 있었는데 돈벌이가 안 되니까 없앤 모양입니다. 요샌 북한이 황강댐을 열었다 닫았다 물장난을 하는 바람에 임진강 황복은 고사하고 참게까지 최악의 세월이랍니다. 혹시 宗漁라는 물고기를 아세요? 다음에 뵐 때 얘기해 드릴게요.>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新장남교를 두고 로드맵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지만, 내게는 몹시 위험한 다리였다. 다리는 꽤나 길고 높이도 꽤 높았는데, 이상하리만치 난간은 낮았다. 인도가 따로 마련된 것도 아니어서 마주 오는 커다란 트럭을 피하다 보면 난간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아찔해지곤 했다. 사람이 걸어서 건너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리 같았다.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 시작하여 열하루 동안 걸은 380km의 길. 

아픔과 상처의 땅을 내 발로 걸었다는 것이 소중하게 남았다.


그래도 적성까지 왔으니 하루의 일정치고는 많이 온 셈이었다. 허름한 식당을 찾아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몇 숟갈을 뜨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이재필 장로님이었다. 걷기의 마지막 날, 퇴근길에 먼 길을 달려온 장로님은 저녁을 같이 먹는 대신 숙소를 수소문했다. 마지막 날이라도 편히 쉬라는 배려였다.


조금은 외진 곳에 있는 펜션은 은퇴를 한 부부가 운영을 하는 곳으로 더없이 조용했다. 비수기에 평일이라 그랬는지 다른 손님들은 없는 것 같았다. 방에 짐을 내려놓은 뒤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하루 길을 걷는 동안 장로님은 여러 번 먼 길을 달려왔다. 폭우에 젖은 발을 위해 신발을 사가지고, 행여 쓰러질까 고기를 사주시려, 물집이 잡힌 발을 감싼 인민군식 발싸개를 보고는 안쓰러워,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숙소까지…, 그냥 고맙고 좋은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노을이 어느새 서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 장로님을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함광복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길을 소개하시고는 그 길을 제대로 걸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장로님의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아, 미수를 넘기신 어머님께서 그 땡볕을! 거기서 숭의전으로 가는 길은 약간 우회하는 방법입니다. 그래도 숭의전은 꼭 들러 가십시오. 목사님은 궁예가 갔던 길을 걷고 계시며, 철원서 개성(임진각)까지는 고려의 건국과 패망의 역사가 새겨진 왕건의 길입니다. 조금 더 가 고랑포는 경순왕이 귀부한 나루, 죽어서 경주로 못가고 묻힌 통한의 땅, 그 전에는 장수왕이 한성백제를 치기위해 도강한 여울,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임진나루를 버리고 저벅저벅 걸어 건너간 도섭지역, 6.25때는 인민군 탱크가 도강한 지점, 그리고 김신조가 겨울 강바닥을 엎드려 통과한 한국사의 Hot Point Place입니다. 그러나 예정된 길에서 왕복 약8km를 보태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차량이 가능하면 경순왕릉 폐허의 고랑포(춘천중앙교회 역사를 연 이덕수 전도사의 고향땅) 그리고 호로고로성을 다녀오시면 좋은데~. 어제 거리를 좀 벌기도 하셨을까. 점심 드시며 옆 사람들에게 구원 요청을 해보세요. 이를 강추하는 이유는 임진강은 이토록 역사의 강일뿐더러 이 역사를 머금고 있는 고호(임진강 유역의 옛 이름) 8경의 풍광은 늘 울먹이며 펼쳐져 있어서 어느 가을날 저도 그 강 길을 혼자 통곡을 하며 걸었던 그 기억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로드맵 필요 없습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시기만 하면 되니까. 벌써 내일인가요? 정말 역사를 쓰고 계십니다.>


울먹이며 펼쳐져 있는 풍광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일정에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쉽지만 언젠가 혼자 통곡하며 걸었다는 그 길을 장로님과 함께 걷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동쪽 끝에서 시작하여 서쪽 끝까지, 얼마든지 마음 먹기에 따라 도보순례는 가능한 것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것은 일정을 마치는 날이기도 했거니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들 규민이가 찾아오기로 했다. 마지막 날 길을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장파리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규민이가 차를 운전해서 찾아왔다. 열하루 만에 만나는데다가 내내 DMZ를 걷다 가족들을 만나니 마치 내가 군에 입대했다가 휴가를 나온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길에서 만난 지라 김밥이며 과일 등 준비해온 음식을 자동차 안에서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진각까지 가는 길을 절반쯤으로 나눠 반은 아내와 걷고, 나머지를 규민이와 걷기로 했다. 길을 걷는 동안 자동차는 규민이와 아내가 반씩 운전을 했다. 오래 전 이순원이 쓴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읽은 적이 있거니와, 나란히 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남달랐다. 우리가 인생의 길도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예외 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느슨해진 탓일까, 나도 모르게 체력이 고갈된 것일까, 가벼울 줄 알았던 걸음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졌고 더뎌졌다. 동행하는 가족이 없었다면 여러 번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쳤을 때,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 고마웠다.


마침내, 저 멀리, 임진각이 보였다. 열하루 일정의 종착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괜히 가슴이 뛰었다. 마침내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된 것이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몸이 버텨줄까, 괜히 중간에 포기를 하여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 실망을 주는 건 아닐까, 길을 걸을 때마다 나를 떠나지 않고 뒤따라오거나 앞질러 갔던 그림자처럼 마음 한 구석에 붙어 있던 생각이었다. 이젠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신뢰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차를 운전해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만났더니 임진각에 온 김에 전망대에 올라갔다 오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치 자석에 붙들린 쇠붙이처럼 걸음이 한 걸음도 떼어지질 않았다. 그것이 마음 때문인지 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한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전망대는 아내와 규민이만 다녀왔다.


강원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약 380km에 해당하는 열하루의 길, 폭우에 땡볕에 어쩌면 나는 정말로 몸과 마음을 소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내게서 빠져나간 모든 것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하고는 다르기를, 세상과 사람이 다르게 다가오기를,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걸음이기를,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임진각 마당에 하나의 사물처럼 서서 그렇게 빌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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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말씀 안으로(4)


산타가 홍포를 두른 까닭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하시니라.(마태 25:31~46)



성탄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는 날인데 어느 날인가부터 국적도 없이 등장한 홍포를 두른 허연 수염의 할아버지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설쳐댑니다. 이렇게 성탄의 즐거움은 교회보다는 밖에서 먼저 가로채 향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가로챈 성탄의 중앙엔 역시 예수의 모습은 순진무구한 아기의 이미지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전부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예수의 오심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 대한 뜻을 곱씹으며 성탄의 의미를 몸으로 알아가는 이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도 대중매체를 통해 만나는 성탄의 이미지는 이미 본뜻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그 왜곡된 성탄 이미지 한 가운데에는 어김없이 홍포를 두른 두툼한 몸매의 한 나이든 사나이가 자리합니다.


바로 그의 이름 산타 클로우즈.


지금도 여전히 해마다 그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아기 예수보다도 더 이 할아버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가 성탄선물을 고대하는 아이들을 위해 친히 그의 모습으로 치장하여 산타의 신화 잇기에 협력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의 이름 산타 클로스.


제 아이들도 그를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저도 어린 시절 항시 그날이면 이 붉은 옷의 할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잠을 설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여전히 성탄이면 온 거리를 가득 메우며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하는 이 산타 클로스. 붉은 피보다도 더 선명한 홍포를 두른 이 할아버지.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인지, 저는 그의 정체가 무척 궁금해 졌습니다.


‘도대체 산타는 어디서 오는가? 그는 왜 붉은 옷을 입고, 그것도 오리털 패딩도 아닌 두터운 솜옷을 입고 있는가? 왜 그는 벤츠도 BMW도 아닌, 아니 백번 양보하여 말이 끄는 썰매도 아니고 코가 붉은 사슴이 끄는 썰매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에스키모인은 개가 끄는 썰매를 탄다고 하는데, 왜 산타는 사슴만 고집하고 있는 걸까? 왜 산타는 그처럼 통통한 몸매에도 하필이면 좁디좁은 굴뚝을 주 통로로 삼고 있는 것일까? 요즘은 너무도 멋지고 예쁜 선물상자들이 널려있는데, 왜 산타는 여전히 냄새나고 자그마한 양말에만 선물을 담는 것일까?’


순식간에 산타에 대한 온갖 궁금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이 궁금증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저는 분연히 일어나 산타의 정체를 밝혀보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여러 서적을 통해 확인한 산타의 정체는 약간 의외의 모습으로 제게 인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잠시 산타의 정체를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타는 아마 북부 추운나라 어딘가에서 탄생했을 거라 믿는다. 실존 인물이든 상상 속의 인물이든 말이다. 그러나 산타는 과거 시이저로 하여금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했던 터키의 중앙. 아나톨리아지방의 남쪽 Myra(현재는 Kale)라는 곳, 그러니까 추운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막지형에 가까운 곳에서 4세기경에 살았던 실존 인물 니콜라우스란 사람이 그 모델이 된 것이다. 어린이를 특히 좋아했다는 그는 평생 갖가지 선행을 행했다는데 그 중에서도 세 명의 자매가 구혼자가 있음에도 가난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자 이들을 몰래 도와주기 위해 저녁에 그 집 지붕에 올라가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그 금 주머니가 우연찮게 벽난로에 걸어 두었던 양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후 이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기대치 않는 선물을 받았을 경우에는 항상 이 니콜라우스에게 감사하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이 니콜라우스에 관한 이야기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네덜란드인에 의해 뉴욕에 자리 잡은 후 자본화, 상품화의 연금술사인 미국인들에 의해 재창조되어 지금의 산타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전 세계로 역수출되었다고 한다.


산타의 고향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다고 여겨져 그곳에 설립되어진 후 매년 전 세계 어린이들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산타본부는 원래 이 지역에서 구전되던 말을 타고 선물을 나눠줬다는 바이킹의 신 Odin과 염소를 타고 비슷한 일을 했다는 그의 아들 Thor의 전설이 미국식 산타와 결합하여 그리 되었다 한다. 그러니까, 터키에 살았던 성 니콜라우스와 염소를 타고 다녔다는 바이킹의 신이 미국에서 만나 그 후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건너가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이 산타할아버지라는 것이다. 배가 볼록하여 늘 기분 좋게 “ 하! 하! 하! Merry Christmas!!”라고 말하며 웃는 흰 수염의 할아버지는 성 니콜라우스의 모습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나 성 니콜라스의 외모가 이랬던 것은 아니고, 흰 털이 달린 빨간 옷에 검은 벨트를 두르고 긴 모자를 쓴 모습은 미국 만화가 Thomas Nast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성 니콜라스의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산타클로스협회 홈페이지, <산타의 유래> 참조

http://desk.santaclaus.or.kr/shopinfo/santaclaus.html)


이상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산타의 유래입니다. 지금의 터키지역에서 남몰래 선행에 힘쓰던 니콜라우스가 산타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의 모습은 여러 목적이 섞여 들어가 재창조된 이미지들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산타의 그림도 역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의 산타만은 여타의 각색에도 좀처럼 탈색되지 않은 이미지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행에 힘쓰며 또한 그들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한 니콜라우스의 모습은 사실 성탄의 의미와도 잘 부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의 삶도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선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오신 날에 산타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왜 제 마음은 이리 편치 않은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산타의 그림에서 변조된 무언가가 하나 둘씩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산타가 산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이웃에 대한 애정과 봉사에 있습니다. 즉 선물을 나누어주는 니콜라우스의 모습이 바로 산타의 원형인 셈입니다. 그런데 산타를 맞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는 니콜라우스의 모습이 아니라 선물을 받고 있는 나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니콜라우스가 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로만 채워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니콜라우스의 자리는 거대 기업이나 상업주의로 치장한 각종 다양한 매체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가지고 있는 돈만큼 우리는 니콜라우스의 선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돈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먹고 마시게 했던 니콜라우스의 모습은 이제 두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세상입니다.


‘각자의 여유 있는 만큼의 자금을 가지고와 니콜라우스의 은총을 만끽하라!’


조금 아리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아들이고 있는 니콜라우스의 정확한 모습은 바로 그것일 따름입니다. 어디에도 공짜는 없습니다. 투자한 만큼의 응당한 대가를 기대하는 것은 세상의 논리로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수없이 복잡하게 오가는 자본의 흐름 속에 산타의 이미지는 상업적으로 이용되며 이어지고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할 것입니다.


상황이 이쯤 이르게 되자, 저는 갑자기 산타의 이야기에서 마태가 전하고 있는 최후 심판에 대한 모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심판의 이미지 중 가장 장엄하고 준엄한 그림을 지니고 있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 나오고 있는 바로 그 심판의 모습이 제 머리 속에서 곧바로 산타의 이미지를 대체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그 사연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의 최후 심판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비유입니다. 그 중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그 첫 번째는 종말심판의 대상입니다. 사실 신구약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유대중심주의적 시각이 강하게 박혀있는지라 이방인은 성서에서도 부정적이거나 속된 종족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구원과 믿음의 주체도 대개는 이스라엘 종족으로만 국한됩니다. 그러나 오늘 마태는 우리에게 최후 심판의 대상은 이스라엘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전반부에 적혀있듯이 최후 심판의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은 특정부류가 아니라 모든 민족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참석해야만 하는 종말심판! 바로 이 장엄한 그림을 마태는 선언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나 비그리스도인들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인자의 종말심판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 선언! 우리에게 주는 무게가 그리 녹녹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심판을 향해 모이게 된 시점에서 다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심판의 기준입니다. 이것이 이 종말심판에 대한 비유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두 번째 의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종말심판의 분명한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해줍니다. 그것은 종교나 신앙도 아니고 기도와 예배도 아니며, 오직 불행한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들을 가련히 나의 마음속에 담아내는 행위, 그들을 애달피 여기는 정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으로 대표됩니다. 즉 이웃을 위한 내 삶의 진실도와 실행의 크기에 따라 심판이 이루어짐을 이 비유는 확연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종말 심판의 잣대는 기존 우리가 입에 발린 듯이 외고 다녔던 ‘신앙고백이 종말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것과는 적지 않은 괴리감을 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같은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 등장하는 마태의 진술을 살펴보면 그 괴리감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사실 마태 자신도 그의 복음서 10장 32-3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에 관해 고백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에 관해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같은 복음서 7장 21-23절에 기록되어 있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마다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주님, 주님, 우리가 당신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당신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당신 이름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 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범법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하고 선언할 것입니다.”


위에 인용된 성서 구문을 생각하면 삶속에서 구현되는 실천적 신앙고백의 강조는 전혀 충돌되지 않는 지속적인 마태의 전승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마태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종말심판의 기준을 잠정적으로 그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의 심판 기준 역시 신앙의 고백이긴 마찬가지이나 그 신앙의 고백이 언어 속에만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굴레를 박차고 나와 신앙의 고백이 생활 속에 녹아있을 때에야 심판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고통 받고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보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신앙이란 의미 없다는 말이 바로 이 종말이야기가 전하는 핵심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니, 니콜라우스야말로 이 심판의 기준에 가장 적합한 증인일 수 있습니다. 평생을 이웃을 위해 헌신한 그의 이미지 속에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탄을 통해 기다리는 것은 선물을 우리에게 주는 산타가 아니라 선물을 주고 있는 산타가 된 우리여야 할 것입니다.


너무도 뻔 한 결론이 이미 나와 버렸지만, 말씀을 매듭짓기 전에 마태의 최후심판 이야기를 잠시만 더 붙잡아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흑백논리에 익숙해 있습니다. 흔한 말로 권선징악이 주는 통쾌함에 무척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종말심판을 하나의 영화로 생각하며 살펴본다면 흔한 할리우드식의 문법과는 다른 구조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희미한 선악의 구분입니다. 흔히 우리들 머릿속에는 양으로 비유된 선한 그룹과 염소로 비유되는 악한 무리들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자리하고 있을 터인데, 실상 꼼꼼히 살펴본 이 비유의 구조는 반드시 그들이, 즉 인자의 왼편에 세운 무리들이 악인이었다는 설명이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고 있던 왼편 염소 무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성실성마저 읽어보게 됩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 잡게 할 것이다.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 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쫓겨 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 갈 것이다.


이 이야기가 가감 없이 전해주고 있는 두 무리의 차이는 이웃에 대한 행위 바로 그것뿐입니다. 그 외에 그들이 범죄행위를 했는지 안했는지, 신앙적으로 불충분한 삶을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유는 상당한 경지의 고감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자는 오른편의 무리들에게 축복의 언어를 던집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인자 자신이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헐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심지어 감옥에 있을 때 그 사정을 돌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기준으로 왼편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음으로 저주의 언어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자의 판결에 항소하고 있는 이 두 무리들의 변론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인자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 변론합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 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리고 인자의 저주를 받고 있는 무리들도 거칠게 항의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심판을 받은 두 무리의 변론이 이처럼 동일하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언제 굶주리고 목마른 주님을 모른 체 했느냐?”는 저주를 받은 무리의 항변은 애끓을 만큼 사람의 마음을 진동하는 처절함으로 다가옵니다. 어찌 이 이야기만으로 그들을 악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항변은 사뭇 진실을 담고 있고 또 절박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정말 굶주리고 목마른, 그리고 나그네 된 주님을 결코 만난 적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항변을 통해 오히려 저는 그처럼 주님에 대한 절절했던 그들의 기대, 고행, 그리고 인내로 점철된 순례의 길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평생 그들은 그처럼 기다리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애쓰던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절절한 사연으로 주님을 찾지 않았던 사람의 입에서 그런 처절한 항소의 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애절히 언제 우리가 주님을 만난 적이 있었느냐고 항변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평생 주님을 찾기 위해 애썼던 순례자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이 그렇게 큰 비약일까요? 저는 오히려 이 점에서 언제 우리가 주님을 도와주었느냐고 반문하던 첫 번째 축복받은 부류의 사람들보다 더 신실하고 진지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은 이처럼 억울함을 헤어날 길이 없어 쏟아내게 되는 항소의 말을 토해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야 말로 주님을 찾기 위해서 평생을 허비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언제 당신이 굶주렸고, 언제 당신이 목이 말랐고, 언제 당신이 나그네가 되었고, 언제 당신이 헐벗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도대체 언제 당신이 병들었고 심지어 감옥에까지 갇혀있었습니까? 도대체 언제.... 왜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십니까? 더군다나 세상의 임금이요, 인자요, 심판자로 오실 당신이 어떻게 굶주리고, 목이 마르고, 나그네가 되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될 소리를 하십시오... 차라리 주님께서는 우리들보다 저자들을 더 편애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마세요! 애매한 착한 사람들 나쁜 놈들로 몰아가지 마시고.... 우린 평생 당신을 찾아 헤맸지만 당신의 그림자조차 만난 일이 없어요! 이거 사람 엉뚱한 일로 몰아세우지 마세욧!”


사실 왼편에 있었던 이들의 언어는 제가 옮긴 내용 이상의 더 절박하고 또 더 어처구니없는 그들의 억울함에서 터져 나온 항소의 언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따져서는 오른편에 있던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는데도 자신들만 악마와 그 심부름꾼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야만 되는 현실을 어느 누가 편히 앉아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그들 역시 막가는 인생으로 종을 친 사람들도 아니고 구석구석 심판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찾느라 소중한 인생을 소진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앞에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원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그들의 항변은 정당했고 또 마땅히 그렇게 변론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관은 이들의 항소에 정확히 답변을 해야 할 책무마저 있다고 해야 합니다.


“진실히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지 않았을 때마다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심판관의 대답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심판관의 답변은 양쪽 무리 모두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입니다. 똑같은 항변에 똑같은 대답! 어느 유능한 작가가 이처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장엄한 심판의 언어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몰래 제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그마한 방 하나에 뭐 특별날 것이 없는 곳이긴 하지만.... 제 삶 속에서 혹시 놓쳐 버린 주님의 모습은 없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제 고개는 연신 저의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고정된 이미지로 오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요란스런 홍보와 함께 뜨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내 의식 속에 아니 내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곳에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와의 만남을 계획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백 개, 천 개 혹은 만 개의 얼굴을 가지고 언제나 친근하게 혹은 귀찮게 우리 주변을 서성이듯 맴돌고 있는 분이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이 정도 진행되자, 저는 이제 마땅히 산타가 성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곤란 중에 있는 이웃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산 바로 니콜라우스야 말로 성탄의 의미를 십분 살리는 최상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성탄 우리 모두 산타가 되었음 어떨까 생각합니다.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기쁨의 포근함을 우리 모두 만끽하는 그런 날이 되었음 어떨까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애꿎은 주님의 고정된 이미지를 좇아 헤매기보다 분명한 우리의 이웃 속에서 주님을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또한 기도해 봅니다. 그토록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던 많은 이들 가운데 스며있는 주님의 체취를, 그의 내음을, 그의 그림자를 느끼는 예민한 신앙이 우리 가운데 가득히 넘쳐나기를 또한 기도해 봅니다.


여러분, 저는 다시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우리 산타가 됩시다. 비록 우리에게 반짝이는 빨간 코를 한 수사슴은 없어도, 멋들어지게 물들인 붉은 홍포가 없어도, 또 많은 이들을 위해 그득히 담아놓은 선물꾸러미가 없어도, 우리 한번 멋진 산타가 되어봅시다. 비록 준비된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보다 멋진 산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잊힌 얼굴을 궁금해 하며, 그에게 혹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근심의 마음을 담으며 그의 연락처를 열심히 확인하는 우리의 손등에서, 즐거운 일이 생긴 이에게 찾아가 기쁨을 나누어 받는 우리의 정감 속에서, 혹 근심에 빠져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겨 낙담하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의 언어와 애달픈 정서를 건네는 우리의 신실함에서 언제나 산타는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갇혀 지내는 내가 아니라 내 의식 속에 있는 모든 이들과 또 나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그들의 내음과 음성, 웃음과 눈물, 슬픔과 걱정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이라면 결코 산타와 멀지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또 기원합니다. 눈이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만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산타가 되어 우리 이웃의 기쁨과 아픔을 공감하게 되기를, 또한 그러한 마음을 함께 나누게 되는 성탄이 되기를 저는 지금 간절히 기원합니다.


“I wish You a Merry Christmas!”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 빼앗긴 성탄절 http://fzari.tistory.com/1035

* 성탄전야의 유혈극http://fzari.com/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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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께 2017.12.20 09:05

김기석 목사님께(11)


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편지글을 모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형식과 문체의 글은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무겁지 않아서 굳이 노트를 할 필요는 없지만 곱씹어 읽으면서 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와 아내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두 살 아래인 아내와 저는 종로구에 있는 오래된 장로교회 출신입니다. 물론 지금도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집 앞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요. 어릴 때부터 ‘그냥’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마치 버릇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저는 어느덧 안수집사가 되었고 아내는 권사로 피택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주기율표, 하나님이 주신 명함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FM 93.1MHz에 채널이 맞추어져 있는 라디오를 켭니다. 이 채널은 2002년 귀국한 후 아마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식구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어떤 조예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듣는다라기 보다는 그저 틀어놓고 있는 것이죠. 광고 없이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방해하지 않는 배경음악으로는 딱이거든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책을 읽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겐 신앙도 그러합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제 배경에 깔려 있던 것이죠. 특별히 뜨거운 경험을 한 적도 없고 모태신앙에 대한 저항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신앙은 불편하지 않은 배경음악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교회 고등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밤을 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2학년이면 대개 임원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 자기의 신앙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가 주제였지요. 다를 재밌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온갖 꾀를 내어서 교회로 끌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온 친구도 있고 평소에 찍어놓은 여학생이 다니는 교회라서 나온 친구도 있고 교회 도서관을 공짜로 사용하고 싶은 친구와 교회 다니는 대학생 형들에게 수학문제 푸는 것을 물어보려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전통으로 신앙을 갖게 된 저 같은 친구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죠.


저희 집이었기 때문에 제가 제일 나중에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홈그라운드 찬스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제 신앙의 근거는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주기율표’였습니다. 2학년에 들어오면서 배운 주기율표가 제게는 큰 충격이었거든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원소들이 갖고 있는 규칙성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주기율표가 제게는 하나님이 주신 명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는 찬송가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원소,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수소와 헬륨 초신성 폭발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찬송가가 지금은 40번 찬송이지만 그때는 79번 찬송이었어요. 79번 원소가 ‘금’이라서 금과 같은 찬송이라고 기억했거든요. (원소기호 40번은 지르코늄이라는 낯선 원소이지요.)



움파의 의미와 우화

그저 배경이었던 신앙이 인생의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은 교회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연동교회 대학부는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장악되어 있었죠. 이들은 우리 교회 고등부 출신이 아니라 주로 지방출신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자주 경찰서와 감옥에 들락거렸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많이 피워서 교회 어른들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다행히 고등부의 우리 동기들은 공부를 유난히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교회 어르신들은 이제야 우리 교회 대학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되었다고 큰 기대를 했습니다.


대학부에 들어간 첫 날, 선배들은 우리를 데리고 술집에 갔습니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날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배가 ‘고갈비’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게 알고 보니 ‘고등어 갈비’였던 것입니다. 모임은 유쾌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쉽게 평생 ‘죄’라고 여겼던 술 문화에 젖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왜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죄’라고 단정하고 살았는지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특이한 음식이었을 뿐이죠. 지금도 술을 즐깁니다.


그날 난생 처음 들은 단어는 고갈비 말고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움파’입니다. ‘베어 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를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움파가 우리교회 대학부의 별명이었습니다. 움파 1기, 움파 2기,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했습니다. 당시는 학번을 많이 쓸 때였지만 어떤 친구는 곧장 대학에 가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삼수 끝에 대학에 가고 또 대학에 끝내 가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 대학부는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움파 14기더군요.


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요즘이야 파를 좋아하지만 그때는 어려서인지 라면에 파 한 조각만 들어가도 먹지 않았을 정도로 아주 싫어하는 식재료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을 그까짓 파로 표현하다니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필 그때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어떤 못된 아줌마가 죽어서 지옥의 불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아줌마의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살면서 단 한 개라도 선행을 베푼 게 있으면 말해봐라, 그러면 내가 하느님에게 잘 말씀드려 볼게.”라고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거지 여인에게 파 한 뿌리를 뽑아서 준 게 생각이 나서 이것을 자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느님은 파 한 뿌리를 아줌마에게 내려주고서는 그것을 잡고 불바다에서 빠져 나오라고 했습니다. 아줌마는 분노했죠. 파를 잡고서 어떻게 지옥에서 빠져나오겠습니까. 파에다가 분노의 발길질을 했습니다. 파는 ‘똑’하고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줌마는 영원히 불바다에서 나오지 못했지요.


선배들이 움파의 의미를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 우화를 떠올렸습니다. 아줌마가 지옥에서라도 못된 성격을 꾹 누르고 파를 잡고서 지옥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평생 동안 겨우 파뿌리 하나 준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하나님이 이 여인에게 지옥을 빠져나올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파뿌리에 매달렸다고 해도 아마 지옥의 불바다를 벗어나지 못했겠죠.


교회 어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대학부 선배들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선배들이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도스또엡스끼 운운하면서 초를 치는 쪼그마한 꼬마의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셨죠. 막걸리도 여러 잔 따라주시면서요. 그러다가 한 여자 선배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움파는 그런 존재야. 겨울 내내 양념으로 쓰기 위해 조금씩 잘라먹는 하찮은 존재지. 하지만 우리는 겨울을 날 거야,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움파라고 부르지. 네가 말한 것처럼 파 한 뿌리는 하늘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끈일지도 몰라. 우리 각각의 한사람은 그렇게 약하지. 하지만 그게 한 뿌리가 아니라 파 한 단이면 어떨까? 더 강할 거야. 약한 파뿌리도 여러 개가 뭉치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얘기였죠. 듣고 보니 내가 움파 14기라는 게 은근히 근사해 보였습니다. 움파가 자그마치 14년이나 계속되고 있구나, 앞의 선배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선배들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공부도 했지만 철학과 경제 그리고 사회에 관한 것들이 더 많이 공부했죠.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읽으면서 신앙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 책의 골자는 “신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의 투사물이다.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하지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거든요. 신이 인간의 투사물인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한 신의 모습을 세상에 투사해야 한다는 점은 금방 결의가 되었지요.


선배들은 일찌감치 교회를 떠났습니다. 1984년 대학에서 경찰이 철수하고 1987년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자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게 한가롭게 여겨졌기 때문이겠죠. 그러자 교회 어른들은 아주 좋아하셨어요. ‘신앙 없던 그들이 떠난 것’을 아주 후련하게 여기셨죠. 그런데요.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즘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말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던 분들이에요. 상당히 많은 선배들이 나중에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지요. 오히려 자기들이 착한 신앙인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했던 우리 고등부 출신 청년들 가운데는 신학을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나중엔 우리가 그들의 골칫거리가 되었지요. 원래 움파가 그런 것이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잘라 먹는 겁니다. 그러면서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선배들이 남겨놓고 떠난 야학을 맡아서 운영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저희의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전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교회 어르신들은 때로는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훼방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무슨 커다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움파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걱정이었죠. 움파의 수가 점점 줄었거든요. 움파는 여럿이 같이 있어야만 힘이 있더라고요,


결국 우리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처럼 외국으로 공부하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고 아예 교회와 담쌓은 친구도 있지요. 이러나저러나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IMF 사태가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면 IMF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죠. 주로 나쁜 방향으로 말입니다. 모든 것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이윤으로 판단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를 포함해서 평생 교회를 지키시던 사찰 집사님은 어느 날 용역직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젠 아무 때나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사람이 된 거죠. 존경을 받던 소사 집사님은 한낱 피고용자가 되었습니다. 여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은퇴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어느 날 사표를 강요받고 떠나시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난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더 이상 움파가 없었거든요. 교회 청년들은 자신들은 움파가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거대한 주식회사가 되었지요.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신앙은 다시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교회에 다닌다고 대답하기는 하지만 내가 먼저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 나서서 전도하는 일은 물론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전혀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그저 또 하나의 친목단체이자 계급사회일 뿐입니다.


목사님의 책에서 「움씨를 뿌리는 마음」이란 제목을 봤습니다. 움씨라는 말에서 움파를 기억해냈습니다. 얼른 사전을 찾아보았지요. ‘뿌린 씨가 잘 나지 않을 때 다시 뿌리는 씨’라는 뜻이더군요. 목사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을 때 농부들은 밭에 씨를 덧뿌립니다. 그것을 움씨라고 하는데, 사는 게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의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다시 한 번 씨를 뿌리는 용기를 내야 해요. … 움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기 속에 있는 정말을 애써 다독이며 희망을 뿌리는 것입니다. 덧거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덥석 일에 뛰어들었다가는 상처 받고 물러나기 십상입니다(97-98쪽).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통해 ‘희망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일은 거두지 말아야겠지요. 예전에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았지만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움씨를 혼자 뿌릴 용기는 없습니다. 농부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예전 움파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갈비 안주에 막걸리를 나누고 싶은 날입니다. 목사님께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달력과 권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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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10)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 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입니다


목사님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따르고 쳐다보는 양으로서는 참 가슴 뭉클한 편지였습니다. 따를 지팡이나 바라볼 막대기 찾기가 이리도 쉽지 않은 시대에 드문 반가움이요, 감동이었지요. 책을 받아 들고 무릇, 목사의 편지란 뻔한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내 지루한 상상을 떠올렸지요. 하지만 문장마다 진정성이요, 소박하면서도 해박한 사유의 깊이와 연민이 일렁이는 글을 대하며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사람을 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음이요, 시대를 바라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음이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이따금 제게 비친 목사님의 마음은 거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 직설적인 것보다는 은유적인 것, 극단적인 것보다는 유연한 것에 기운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그토록 선한 천성과 함께, 어떤 후천성이 보태진 대목도 찾아졌습니다. 예컨대 양심을 잃고 폭력에 중독된 작금의 행태에 관하여는, 불의를 담지 못하는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분노 같은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 용산참사 현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추모와 평화의 결의를 다졌던 시간 기억나시지요? 그곳에 검소하고 간편한 배낭을 등에 지고 점퍼차림으로 걸어오시는 목사님을 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고 생색을 내거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어떤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참여하고 마음을 보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겸손한 태도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 모습이 김기석이라는 목회자 특유의 이미지로 제게는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참혹한 세상의 현장 앞에서, 사악한 권력이 저지른 만행 앞에서 한 종교인으로, 한 목회자로, 한 인간으로 바람처럼 걸어 들어온 것이지요. 치밀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요, 거사를 도모할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분의 길을 따라 그냥 걷고 있는 이 지구의 선한 신앙인으로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도’와 ‘레’사이의 수많은 음을 무시하는 시대


어제 저녁엔 단원고등학교를 다녀왔습니다. ‘기억교실’을 이전(존치)하는 문제를 놓고 유가족과 경기도교육청 안산교육청 그리고 중재위원회의 서른다섯 번에 걸친 회의 끝에도 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전야제를 했지요. 이 행사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30년 세월 비교적 남다른 경력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저로서도 이 난감한 시간을 지나가기가 퍽 어려웠습니다. 민망하고 무기력하며 분노와 슬픔에 젖은 무대였지요.


개인적 고백을 좀 하자면, 2005년부터 일해 왔던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라는 사단법인의 사태가 꽤 심각하고 추악하게 이르러, 10여년 세월 이 땅에 평화박물관을 지으려는 꿈으로 모금공연을 해왔던 저로서는 여간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단법인社團法’이 ‘사단법인私團法人’으로 변해버린 어이없는 사건이지요. 소위 ‘진보’라는 얼굴의 민낯을 보게 되는 참담한 일입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노래동네’에는 공연이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다르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인간’과 ‘역사’를 안고 노래하는 노래 진영에는 웃고 노래하기가 조심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마치 유난스러운 올여름처럼 정지된 시간입니다.


어젠 평생을 한반도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해오신 고 박형규 목사님의 장례식장에서 조가弔歌를 불렀습니다. 북쪽의 땅 개성이 열렸던 날, 함께 기쁨으로 다녀왔던 정이 아니어도, 이 땅에 기독교의 후배들에게 삶 그 자체로 보여주셨던 청년 같은 푸른 생애 앞에 노래밖에 드릴 것이 없는 것을 송구하게 여기며 다녀왔던 길입니다. 94세의 노스승은 돌아가시기 전 며칠 동안을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으시고 그 고결한 삶을 최후의 시간까지 행하셨다고 합니다. 사악한 독재정권들은 ‘긴급조치9호’, ‘민청학련사건’ 등의 사건을 조작하여 수차례 투옥과 온갖 고문으로 옥죄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던 자유인이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이 사건은 4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법정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런 이 땅에서 노래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한 문장이 또 들어옵니다.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고맙다’라는 글입니다. 언젠가 노래하는 선배가 집에 놀러와 다짜고짜 ‘미안하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선배는 몇 년 전, 저의 25년 기념공연에 격려의 글을 보냈지요. “그는 그 오랫동안 이 세상에 들어가 그늘을 걷어내는 노래를 했다”고 써주었습니다. 노래동지들이나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가끔씩 던지는 이런 위로의 말이 사실 제겐 ‘해 저문 빛이라도’ 같은 것입니다. 글쎄요, ‘버티고’ 있다고 말씀 드려도 될는지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라는 물음에는 지금 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빗금철폐(유대인/이방인, 남자/여자, 거룩/속됨, 의인/조인, 부자/빈자. 선/악, 미/추 등)’라는 목사님의 표현은 단호하고 깔끔한 비유입니다. 그러면서 흑과 백을 가르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회색빛사회에서 살겠다고 속내를 내비치셨지요? 관습이 만들어놓은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사신 예수를 우리는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신동호 시인이 17년 만에 낸 시집에 담긴 글이지요. “농현弄絃은 국악엔 있고 삶엔 없다.” ‘도’와 ‘레’사이의 수많은 음을 무시하는 시대와 관행과 인간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경고입니다. 빗금을 철폐해야 마땅한 종교가 빗금을 재생산하고 또 생산해대는 이 시대를 울어봅니다. 이 눈물이 평화를 데리고 오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귀한 편지를 어느 날 또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래서 꽉 찬 책꽂이이지만 보이도록 넣어두겠습니다.


오늘 아침 본 영화에서 외국의 한 어린이가 들려준 독백을 쓰며 인사를 드립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참 멀어요, 두 시간 정도 걸리지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갑니다. 중앙로로 가거나 골목길로 가거나 목적지는 같아요. 그러나 그게 크게 다른 점이죠.”


목사님, 설마 그게 희망은 아니겠지요?


홍순관/ 가수, 평화운동가, 《나는 내 숨을 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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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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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말씀 안으로(3)


성탄전야의 유혈극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태 2:16-18)


설교 제목을 ‘성탄전야의 유혈극’이라 뽑았지만, 본문을 살피면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헤롯이 새로 태어날 이스라엘의 왕을 처단하기 위해 베들레헴 근방의 사내아이를 살해한 사건은 성탄 이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상징하는 바와 성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본다는 뜻에서 무리해서 제목을 그리 뽑아보았습니다.


또 다시 성탄의 달이 돌아왔습니다. 저물어 가는 한 해 마지막달의 느슨한 분위기 때문에 올해 성탄도 우리에게 그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축제라는 이름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성탄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든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익숙합니다. 동방의 점성가 세 사람이 기이한 별을 감지하고, 그것을 좇아 유대 땅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곤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에게 들려 “새로 난 유대인의 왕이 어디 있는가?”고 묻게 됩니다. 성서에는 이 세 사람의 신분이 박사라고 표현되어있습니다. 원문에 의하면 “동방에서 마고스들이 예루살렘에 왔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고스란 점쟁이를 지칭하는 말인데, 마태의 기술 전체를 통해 살펴보면, 그들은 별을 보고 유대 땅을 찾아왔으니 필시 점성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 점성술은 인류 최초로 문명이 발생되었다고 여겨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성행하였습니다. 그러니 동방에서 왔다라고 하는 말은 그들이 바로 그 지역 출신임을 뜻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곤 더 이상의 언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분이나 이름 등 모든 것이 오리무중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에 대한 신화화 작업이 진행되어 서기 500년경에는 이들의 신분은 점성가에서 임금의 지위로 격상되었고, 더 나아가 이들이 준비한 선물인 황금, 유향, 몰약 등 세 가지 예물을 들어 이들을 세 명이라 고정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이들 점쟁이들은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라는 이름마저 부여받게 됩니다. 심지어 이들 말고 또 한 사람의 동방박사가 있었는데…. 그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예수의 탄생이 아닌 죽음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이들의 이름은커녕 정확한 신분과 숫자도 알 수 없습니다. 성서는 그저 “동방에서 온 점쟁이들” 정도로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런대로 우리의 상상을 동원한다면, 그들이 유대 땅에 들어와 당당히 그 지역의 왕을 알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높은 신분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점성술이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학문으로 지금의 미신적 행위와는 달랐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동방으로부터 유능한 지식인들이 유대 땅에 와서 새로운 왕의 탄생한 곳을 묻고, 헤롯은 유대의 박사들을 통해 베들레헴이 유력한 후보지임을 알려주게 됩니다. 그 후 동방에서 온 점성가들은 베들레헴으로 향해 갓 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오늘 택한 본문의 배경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갈 때 꼭 들려달라는 헤롯의 부탁을 어기고 몰래 다른 지방을 통해 유대 땅을 빠져나갑니다. 이에 격분한 헤롯이 그 때를 시점으로 갓 태어난 모든 아기들을 몰살하도록 명령합니다. 장차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경쟁자를 미리 없애버리기 위하여서입니다. 그러나 그 때 마침 예수는 천사의 현시로 인해 이집트로 도피하게 되어 그 수난을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일을 마태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해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라마의 학살로 인해 라헬이 통곡한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그 증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라헬은 언니인 레아와 더불어 이스라엘 12지파 조상 야곱의 아내였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베냐민이 그녀에게서 출생하였습니다. 베냐민을 낳을 때 겪은 산고로 그만 목숨을 잃은 라헬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8킬로미터 떨어진 라마지역에 묻히게 됩니다. 이 라마 지역에 가나안 땅 점령 때부터 바빌론 유배 다음까지 라헬이 낳은 베냐민의 후손이 살았습니다. 남 왕국 유다가 신바빌로니아에 패망하여 기원전 597년과 587년에 무수한 유대인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끌려갈 때 라마 주변에 살던 베냐민 부족도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이 때문에 라헬의 무덤에서 구슬픈 곡소리가 들린다고 예레미야 예언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렘 31:15) 그런데 또 다른 전승은 라헬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베들레헴 근처에서 죽고 묻혔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창 35:19, 48:7) 마태는 바로 이 전승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어 헤롯이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학살하자 베들레헴, 곧 라마에 묻힌 라헬이 통곡하였다고 풀이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과연 베들레헴을 라마로 해석한 마태의 해석이 옳았나 아닌가를 놓고 설왕설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의 역사적 증언인 예수의 탄생 때문에 벌어진 이 끔찍한 학살극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설교 주제로 잡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당시 저는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중3이던, 이름은 이제 잊었지만 표정과 눈빛만은 여전히 생생한 한 여학생의 질문에서 오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때도 오늘처럼 성탄절이 있는 12월의 어느 한 주였습니다. 학생부 예배가 끝나자 쪼르르 그 학생은 저에게 다가오더니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도사님!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신 거죠?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처럼 많은 아이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요….”


물기어린 눈으로 던지는 중3 여학생의 태도는 자못 진지했습니다. 예수가 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학생의 항변에 저는 잠시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질문은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그것의 본뜻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성탄의 분위기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이들에게 성탄 이후 서슬 퍼런 칼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살해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태어난 지 두 돌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다니! 당시 저는 그 학생의 도전적 질문에 나른했던 저의 성탄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은 환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축제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고 꿈도 아닙니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역사이며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 정확한 역사의 흔적과 의미, 그리고 현실과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면 영원히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당시 저는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성탄은 하나의 신화일 뿐입니다. 그저 기분 좋은 추억이요 환상일 뿐입니다. 필터를 사용하여 뿌옇게 구름 위의 모습으로 꾸며놓은 장식 사진처럼 성탄은 그저 아련한 우리의 신화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는 무엇입니다. 그처럼 잘 치장된 성탄의 신화 속에서 곧잘 우리는 정겨운 이와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받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살피면, 성탄은 그러한 신화 속에 파묻히기에는 너무도 절절한 역사의 순간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날은 너무도 많은 아기의 피가 서린 날입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아기를 잃고 비통에 잠긴 어미와 아비의 피 토하는 억울함이 진동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세상에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아직 채 아픔의 통증도 잘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외마디 비명으로 생을 달리한 날입니다. 그 날은 그들의 싸늘한 시신을 가슴에 묻고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어야 하는, 혹 그러다 자신들마저 명을 바꾸어야 했던 어미와 아비의 날입니다. 그들의 주검과 피 앞에 우리의 성탄은 도대체 어떤 모습, 그리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요!


오늘 설교의 소재는 예수의 오심과 라마의 대학살이 시간적으로 함께 한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두 사건을 연속선상의 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이 두 사건은 정확히 그 의미와 배후를 살펴본다면 서로 다른 두 개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됩니다. 먼저 예수의 오심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정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를 그저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겠다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 곧 예수의 오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라마의 대학살은 하나님의 사랑 표현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한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끔찍한 사건입니다.


어찌 보면 성탄 역시 우리에게 두 얼굴로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날은 기쁨의 날이 되겠고, 제 이익과 욕심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에게 그 날은 파멸과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구도는 지금 우리의 시대에까지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촛불 몇 개와 함께 온다는 사실 보다는 이를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성탄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날은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이 표현되는 날인가요, 아니면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확인하는 날인가요? 이처럼 우리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두 가지 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저는 그 학생의 전투적인 그 질문 앞에 다음과 같은 궁색한 답변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래도 만약 예수가 오지 않았다면 물론 아이들은 죽지 않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예수의 의미를 양적인 의미로만 해석한 아주 치졸한 답변이었습니다. 예수가 와서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안 죽었다는 식의 답변 말입니다. 사실 그러한 방식으로 예수의 오심이 해석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학생의 질문은 성탄을 준비하고 있는 저에겐 부담으로 남아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이 성탄을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만 할까요?


생각해보면 올해도 어김없이 저질러질 수많은 성탄 전야의 유혈극을 생각하고 여전히 자기 본위에만 빠져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노라면, 흐느끼는 라헬의 곡소리가 그리 멀 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라기는 성탄이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 빼앗긴 성탄절 http://fzari.tistory.com/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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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8)


명랑의 희망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1.

불편당(不便堂)은 또 거기에 있었다. 불편한 것이 삶이라는 것. 그러니 불편(不便)을 편(便)으로 알고 살라는 ‘불편당.’ 가면서, 아니 가자는 말이 나와 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나서 나는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내일의 꿈을 열었던

외로운 고니 한 마리

지금은 지금은 어디로 갔나

속울음을 삼키면서

지친 몸을 창에 기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졌다고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어 없어라

이젠 다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아 우리의 고니.


- <고니>(1983), 이태원 노래


그 고니는 나의 모습 그 노래는 나의 고백만 같았다.


2.

나에게 삶은 똑 떨어지는 수학 같은 것이어야 했다. 학창시절부터 수학은커녕 산수도 지지리 못하여 언제나 ‘숫자의 방황’이라 스스로를 칭해 왔으면서도 삶에서는 깔끔한 방정식과 완벽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나는 추구하고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1+2=5(?)와 같이 난데없고 이해불가라 역시 숫자의 방황을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 된 데는 내가 알지 못할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걸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의구심과 의혹으로 인한 괴로움은 줄에 매인 소가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처럼 벗어나는 것만이 얽히고 조여진 의혹의 그물코들을 단방에 벗길 수 있는 그랜드슬램의 비책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도 가끔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군’의 일괄타결법을 설파하곤 했었다. 1+2 연산의 결과가 5로 나올 때, 너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직 ‘그렇군!’이라고 하라. ‘그렇군’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문제를 타인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나의 화두로 삼아, 그것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처럼 풀릴 때까지, ‘그렇군’ ‘그렇군’ ‘그렇군’ 수천번 수만 번을 ‘그렇군’하라는 것이다. 의문과 질문이 끊어진 침묵의 자리에 당도할 때까지. 거기선 의문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품는 나 자신의 에고까지 그쳐 대답을 얻은 충분함, 대답이 필요 없어진 자연(自然), 이미 대답이 된 자족(自足)이 넘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배웠고 터득했고 수련했고 유지해 나간다고 생각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남을 가르치기까지 했던 나의 ‘그렇군’이 다만 나의 에고의 또 다른 완강함일 뿐이란 회의가 든다. 그렇다면 뭔가? 삶이 공허에 불과하다면 (벗어나야하는 거야 그렇다치고)왜 살아야하는 것인가?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인간(人間)이란 관계가 피치 못할 파행이거나 예정된 어긋남뿐이고 본래 만족할 소통은 그만두고 일관된 정중함이나 예절조차 기대할 것이 못된다면. 인간은 다만 동물이고 예기치 못하고 우발적이며 일관될 게 있을 리 없는 동물적 본능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것이라면. 사람은 왜 어울려 살아야하는 것인가. 다만 서로 물고 먹을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의 필요, 아니 물고 먹을 필요를 위하여? 약속을 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진 것 같아 모든 게 다시 시들해진다.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다.



3.

한 때 머슴을 여럿 둘 정도로 짱짱했던 한옥(韓屋) 불편당의 겨울은 기울어진 그 집안의 가세만큼이나 불편해 보인다. 빗장이 닫힌 옛날식 대문에게는 ‘아이고 할아범 아직도 버티고 계시니 기특하군요’라고 인사라도 건네고 싶다. 날은 추운데 약속보다 빨리 도착해 전화를 걸고서도 한참을 지체한 후 빗장이 풀리고 노인장의 가슴 같은 대문이 열리며 노래 속 가난한 시인이 면을 드러낸다. 코를 마시며 덤덤히 손님을 맞는 초로(初老)의 시인은 금장식만 붙이면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썼던 몽골식 차르의 왕관 같은 밤색 털모자를 썼다. 수도를 떠나 낙향한지 오래된 궁정시인의 모습이 저럴까. 그 세월인 듯 열린 문 사이로 한줄기 찬바람이 풀려서 문간을 휘젓고 나간다.


서둘러 장갑을 빼며 악수를 나눈다. 봄부터 여름내 마당에 꽃과 풀을 키워내던 마법의 보료는 대궁을 꺾고 마른 잎들을 쓸어가는 겨울바람에 오그라든 채 방치돼 있었다. 털북숭이 흰 개 한 마리가 ‘지금은 형편이 이렇답니다.’라고 말하는 듯 개집 주위에 얼려놓은 개똥을 앞에 두고도 낯선 손님들을 놀라지도 않은 순진한 표정으로 맞는다. 만져본 듯 맨질맨질 돼지코보다는 작으나 납작하고 봉긋한 윤기 나는 분홍바탕에 검은 빛이 감돌고 자세히 보면 벌룸거리는 녀석의 얼굴엔 개코만 보인다. 털이 안면을 가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코가 흰둥이의 기분과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안녕, 잘 있었냐?’하고 손까지 들어 인사를 건네며 가위로 얼굴을 좀 터줬으면 하는 안쓰러움이 든다. 아니 매번 느끼며 가늠해 보게 되는 것이지만 개의 얼굴뿐 아니라 기우뚱한 불편당 전체를 마술램프 거인의 힘으로 딱, 딱, 각지게 세워놓고 싶다. 잠간사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집의 뼈대가 튼튼하고 벽이 살아있고 지붕이 날아갈 듯 날렵했던 시절, 머슴들과 주인댁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흥성대던 시절로 되돌려 본다. 그러면 내 앞의 시인도 껑충하고 구부정한 몸매를 꼿꼿하게 펴고, 기력이 되살아나고, 궁정시인처럼 원기왕성 매력적이었을 젊은 날의 몸매가 회복되겠지. 그러나 추위에 곱아 굼떠 허방을 딛는 것처럼 박자가 잘 안 맞는 걸음걸이는 앞선 시인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다 그런 게 산다는 거니 거 너무 불편해 마시오’라고, 불편당은 과묵한 무덤덤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툇마루도 없는 봉당에 신발을 벗어놓고 옛날 행랑방 문 같은 쇠고리가 달린 창호 문을 열고 비로소 차향과 청향과 고향과 효소향이 은근한 난로에 익어가는 따뜻한 방으로 들어갔다.


4.

홀로 산길을 걷다 자주 발걸음 멈추는 곳

두루미천남성 군락이 있지

긴 헛줄기 끝에 긴 모가지를 쑥 뽑아올리고

외로이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두루미를 닮아 친해졌어

가시덤불과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울퉁불퉁한 오르막길 하염없이 걷다

호젓한 꽃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다보면

외로움이 출렁, 온몸을 흔드는 순간도 있지만

입석(立石) 같은 외로움이

또 한 번 출렁, 한 무더기 빛으로 쏟아지기도 하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뒤에 두고 온 두루미천남성이 던져준 빛이네

저물녘 산길을 내려오다보니

이미 오래전 입적해버린 새의 주검 위로

나뭇가지에 열린 새들 뱃종뱃종 명랑의 둘레가 되고


- 「명랑의 둘레」, 고진하, 《명랑의 둘레》, 문학동네, 2015.




5.

난 아직 시인의 명랑을 명랑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걸 알려면 산골에 들어가 젊은 날을 살아내고, 긴긴 겨울을 개들과 함께 나는 적막과 치열을 통과하고, 이제는 두루미처럼 길게 뺀 외로움 속에서 홀로 피어나 홀로 가는 출렁임 속 환한 둘레 그 빛을 보아야하는 걸까? 삶은 이렇게 춥거나 곱거나 굼뜨거나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하거나 난데없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난해하거나 공허하거나 말짱 도루묵이거나 하여튼 못생기고 못난 것들의 대잔치일 뿐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다 어떻게 통과하고 길 가 새 한 마리의 주검에서도 그 새의 입적의 거룩함 앞에 산 목을 축이는 두루미천남성 같은 명랑의 둘레에 도달할 것인지. 아니 명랑의 둘레가 될 것인지. 아니 그냥, 새의 주검처럼 이미 오래전 죽은 삶의 온갖 불편함 속에서 노이로제 든 가슴으로 답답할 것인가.


같이 차를 타고 나가 오리구이집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저물도록 난롯가에서 차를 마시고 환삼덩굴이 찹쌀가루와 만나 어우러진 떡을 구워 역시 잡초들과 엿기름과 대추 등이 만나 어우러진 조청에 찍어 먹었다. 차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떡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조청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효소는 저절로 된 것들이 아니다. 나는 그 일일한 수고와 공정을 다 기록할 정도의 수고조차 겁이 나 그것을 다 하나로 뭉뚱그려 불편함이라고 기술하련다. 그것들은 온갖 불편을 통해 온갖 깊은 색과 맛을 내는데, 나는 그것을 눈물이 날 정도로 황송해 하면서 간단히 얻어먹었다. 먹으면서 속울음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뭔가. 삶은 왜 이렇게 완성되지 못하는 것인가. 신학교 입학 이래로 시 한편 못 써보고. 시를 못 써 생긴 병도 아니면서 시 생각이 났다.


아내가 사모님께 살림을 새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경건(敬虔)’이란 말이 떠올랐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새로 배우고 싶었다. 나의 모든 신심(信心)과 나의 모든 공경과 나의 모든 정성을. 그런데 정말 새로 배울 수는 있는 걸까? 시인의 시처럼, 사모님의 정결한 음식처럼, 연구와 연구, 창조와 창조, 몰두와 몰두, 아무도 봐주는 이 없이 이룬 두루미천남성 군락처럼, 구르는 돌, 창공을 나는 새처럼, 자기 자체의 결핍과 필요와 거추장스러움과 수고로움과 번거로움과 온갖 불편함 속에서 바로 그 불편함의 피치못할 열심이 피워낸 삶의 경건. 그 경건이 진한 색과 맛과 향을 자아내는 숙성된 효소와 고아낸 조청과 덖어낸 차로 빚어진 것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으므로 정말 거룩한 예배와 정결한 경건으로. 예배나 경건 따위 생각도 생색도 없는. 그러니 이토록 많은 의혹과 의심과 경계와 탐색과 탐심의 둘레에 둘러싸여 몸을 빼지 못하는 내가 저 명랑한 명랑의 둘레를 알기나 하겠는가.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제까짓 게 뭐라고. 어느새 나는 또 명랑의 그 환한 둘레에 낀 명랑의 동료가 되고 싶은 탐심이 든다. 기온이 급강하하며 한파경보가 내린 저녁, 시인 부부의 밭에 심기운 겨자씨 한 알이 이룬 명랑의 둘레가 사방팔방 공허의 공중을 부유하다 지친 새처럼 피로해져 찾아든 내게 다시 힘을 아낄 깃을 내주었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그런데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명랑’이란 도대체 뭘까? 묻지는 않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내 마음에서 이런 말씀이 들린 듯 했다. ‘외론 것은 외론 그대로 놔둬야지, 알려고 하지 마라.’ 이제부터 외론 나를 외론 그대로 나둬야지. 아야야! 명랑의 오로지 명랑함이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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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3)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숭의전을 찾아가는 길 곳곳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시커먼 칠로 얼굴을 위장한 채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을 하고 있었다. 개미떼처럼 긴 행렬도 있었고, 특별한 임무를 띤 있는 것인지 소수의 인원이 움직이는 짧은 줄도 있었다. 모두가 귀한 집 자식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군인들의 행렬을 뒤따를 때도 있었다. 군인들에 비해 작은 배낭을 메고 총 대신 스틱을 들었지만 그들을 뒤따르다 보니 나도 예비역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분단의 땅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었다.



고려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의전은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는 듯, 단아한 모습이었다.


‘숭의전’(崇義殿)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의를 높이는 곳’이라니, 뜻이 범상치를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싶어 찾아본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숭의전지(崇義殿址)는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년)에는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숭의전의 시초이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정종 1년)에는 왕명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惠宗), 성종(成宗), 현종(顯宗), 문종(文宗), 원종(충경왕, 元宗), 충렬왕(忠烈王), 공민왕(恭愍王)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년)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五王)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1451년(문종 1년)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1452년(문종 2년)에는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서 순례(循禮)라는 이름을 내린 후 부사(副使)를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하고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새 왕조를 연 뒤 이전 왕조의 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곳이 숭의전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거나 부정하지 않고 보존을 하여 기억을 하는 모습도 그랬고, 그곳에 숭의전(崇義殿)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도 그렇고, 고려의 충신을 기리는 전(殿)을 고려의 후손을 찾아내 관리를 맡겼다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숭의전 초입의 ‘어수정’(御水井)에는 마침 하지(夏至)를 맞아 하지 감자를 씻으러 온 할머니가 있었다. 하지와 감자와 할머니,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고 따르는 순연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그윽하게 여겨졌다.


어수정의 물은 달고도 시원했다. 좋은 샘 곁에서 산다는 것은 큰 복이다 싶었다.


무더위 속 먼 길을 걸어서 그랬겠지만 어수정의 물은 유난히 달고 시원했다. 그처럼 맑은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곳에서 살아가니 그 물을 마시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 할머니께 여쭈니 “그럼요, 큰 복이지요.” 하시며 십분 공감을 하신다. 맞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샘을 가까이 둔 이들은 큰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동안 걸으면서 흘린 땀에 해당할 만큼의 물을 마신 뒤,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큰 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진 호젓한 언덕길을 오르니 숭의전이 나타났다. 고려의 충신들을 모시는 숭의전은 마치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단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뜨거운 날씨 탓인지,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의전을 모르기 때문인지, 숭의전을 찾은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막 숭의전을 둘러보고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숭의전을 찬찬히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왔을 때, 저만치 언덕길을 올라오는 한 여자 분이 보였다. 손에는 어수정에서 길었지 싶은 물통을 들고 있었고 목에는 명찰, 아마도 안내원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숭의전을 둘러보았으니 그냥 떠날까 하다가 안내원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다시 찾아오기 쉽지 않은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배낭에 매달린 여벌의 신발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여정을 물어 들은 안내원은 얼른 두 손을 내밀어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기를 전해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했지만, 세상에 이런 기를 어디서 받겠느냐며 마치 확실한 기를 전해 받은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다.


숭의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 준 안내원은 “이리 한 번 와 보실래요?” 하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따라가니 숭의전 앞에 서 있는 큰 나무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무성한 나뭇잎 뿐 달리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무엇을 보라는 것이지요?” 묻자 “부엉이가 저기 있잖아요.” 한다.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부엉이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안내원은 다시 한 나무를 살피더니 “저 곳에도 한 마리가 더 있네요.” 한다.


숭의전을 떠나지 않는다는 부엉이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했다.


언젠가부터 부엉이가 찾아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한 마리였는데, 언제부턴가 한 마리가 더 찾아왔다는 것이다. 안내원은 말했다. “아마도 고려 충신들의 혼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속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일이 존재하기도 하는 법, 아시시 프란체스코 수도원 이야기를 안내원에게 들려주었다. 그곳에서는 흰색 비둘기가 프란체스코 동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안내원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나 ‘임진적벽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서 난 숲길은 빼어난 절경이었다. 몇 번인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궁예와 왕건도 나처럼 서서 저 강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숲을 다 빠져나가도록 아무도 만난 사람이 없었으니, 드문 길을 걸은 셈이었다.


숲을 걸을 때 문득 떠오른 어릴 적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비가 몹시 내리던 수요일이었다. 그 시절 수요일 오후에는 어린이 예배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에 목마른 우리들이 즐겨 찾던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성경동화는 그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었다.


그 날은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지났다 싶은데도 종소리가 들리지를 않았다. 빗소리에 지워진 것인지 정말로 종을 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그 시절엔 어찌 그리 우산이 귀했는지 비를 쫄딱 맞은 채였다.


어두컴컴한 예배당 현관에 들어서니 신발장에 신발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기도라도 드리고 가야지 싶어 예배당 문을 열었는데, 예배당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 한 분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예배당 앞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오신 듯 했다.


그 선생님은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수요일 오후, 아무도 오지 않는 예배당을 기도로 지키던 모습이 남아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신다. ‘얘야,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네 자리를 지키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란다.’

마음속에 묻혀 있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것은 숭의전 앞 나무에서 보았던 부엉이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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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9)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1994년 이후 가장 덮다는 이 여름에 건강하신지요? 최근에 출간된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잠시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초대의 글’에서 지금까지 즐겨 읽어 온 편지 형식의 작품들을 소개해주셨더군요. 전설로 남은 12세기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에서 시작하여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본회퍼의《옥중서간》, 그람시의《옥중수고》, 문익환 목사의《꿈이 오는 새벽녘》, 서준식의 《옥중수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셨지요. 재작년에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추모 음악회에서 그의 절친 브루노 간츠Bruno Ganz가 ‘빵과 포도주’를 낭송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소개하는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히페리온》은 더 반가웠습니다.


목사님의 이번 책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라는 성서 본문의 의미 파악이나 실용적 효과 그 이상을 이야기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편지’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혼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웠던 교회 공동체가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흔들릴 때마다 그는 편지를 써서 벗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렇기에 그의 서신은 곡진하고, 열정적이고, 애정에 가득 차 있다. 그의 편지를 회람하면서 초대 교회 공동체는 구부러진 길에서 돌이킬 수 있었다”(6쪽)는 정도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편지란 우리 “영혼이 발하는 발신음”(5쪽)이어서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게 마련”(6쪽)이고, 따라서 ‘오늘의 나라고 하는 편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거나 불쾌한 소식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또한 수십 년 전 부친께서 “호롱불 밑에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신” 편지가 곧 아버지의 존재이자 “아버지의 품”이었다며 그 편지를 “고향의 냄새”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4쪽). 프란츠 카프카를 비롯한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평생을 아버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사실을 알기에 부친에 대한 목사님의 고백에 놀랐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의 편지가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그래서 더 뜻밖이었습니다. 주옥같은 편지를 지금 갖고 있지 못한 이유가 혹시 아버지의 편지가 곧 ‘고향의 냄새’이자 아버지의 존재 자체였다는 의식이 어려서는 흐릿했기 때문이었는지요.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이해는 목사님께서 읽은 성서와 여러 작가들이 쓴 편지가 새롭게 형성한 것인지요.


어떤 책인들 안 그렇겠습니까만,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으면서 저는 몸 속 깊게 가라앉아 잘 보이지 않았던 욕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함과 진부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고(306쪽), “제거할 수 없는 아픔은 품고 가는 수밖에” 없고(316쪽), ‘순례자는 길을 잃을 권리’가 있고(221쪽),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잠시나마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하며(373쪽), “흑과 백으로 갈리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회색빛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37쪽)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그동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신앙과 도덕을 요구하는 무섭고 매정한 당위의 말들에 꽤나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복음은 이런 공감과 위로의 말들이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가족들이 모일 때 서로 어린 시절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면서 “스스럼없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의례”(201쪽)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른들 중 누구도 ‘흉보기’의 긍정적 측면을 이렇게 포근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어린 시절을 흉내 내며 깔깔거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청파교회 교인들이 부러웠습니다.



48가지 소리가 들려주는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은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였습니다. 이 글은 제가 읽은 목사님의 글 중에 최고였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라는 전제를 서둘러 붙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글을 과연 쓰실 수 있을까요? 저는 없을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 목사님께 그럴 능력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니라 소리에 대해 이 정도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기 때문입니다.


200자 원고지 20여 매 분량의 길지 않은 편지에서 목사님은 48가지의 소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하셨습니다. 시계·자동차·라디오·경적‧옥외 스피커‧층간 소음이나, 정치가의 호언장담‧종교인의 ‘큰 소리’‧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 등을 뺀 나머지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다음은 긴 인용의 충동에 시달릴 만큼 생생한 목사님의 소리입니다.


아궁이에서 솔가리가 탈 때 나는 소리, ‘자작자작’, 밀짚을 태울 때 나는 소리, ‘타닥타닥’, 군불에 묻어두었던 밤 껍질이 터지는 소리, ‘탁탁’, 댓잎을 스쳐온 바람소리, ‘사르륵사르륵’, 솔숲을 거쳐 온 바람소리, ‘솨아솨아’, 비가 그친 후 혹은 볕이 나 지붕 위에 있던 눈이 녹아 내려 섬돌 위에 떨어지는 소리, ‘똑똑똑’ … 닭이 홰치는 소리, 솔개 그림자가 마당귀를 스치면 ‘구구구구’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불러 품에 안던 암탉 소리,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동녘 하늘을 향해 ‘꼬끼오’ 하고 울어 새벽을 깨우던 수탉의 울음소리, 한낮의 무료함을 깨뜨리려는 듯 혼자 ‘컹컹’ 짖는 누렁이 소리(69-72쪽).


목사님은 그런 연후에 21세기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힌 산업화 이전의 아날로그 세계로 독자들을 데려갑니다. “나무 방망이와 다듬잇돌과 피륙이 이루어내는 리드미컬한” 여인들의 다듬이질 소리, “이불 호청이나 큰 빨래를 둘이 마주잡고 ‘쫙쫙’ 펴는 소리, 다림질하기 위해 입에 머금은 물을 ‘푸푸’ 옷에 뿌리는 소리, 밤이면 벽간에서 울려나던 귀뚜라미 소리에 시선을 돌리게 만드셨습니다.


48가지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신 것도 대단하지만 저를 더 놀라게 한 건 언어도, 말씀도,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시편 19:3) 세상 끝까지 퍼진 하늘의 소리에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방문했던 베를린 레기나 마르티눔 성당을 회고하실 때는 “자연 조명과 인공조명이 절묘하게 뒤섞인 공간”의 성스러움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감동을 느끼셨다고 했지요(79쪽). 성서에서 들려오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를 듣기 위해 몸을 낮추셨을 뿐 아니라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폭력적으로 추방당한 작은 소리들에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75쪽). 세계에 있는 모든 ‘초월자의 암호’(카를 야스퍼스)를 읽어내고 그것을 해독해 낼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우리네 심성이 회복된다고도 하셨습니다(53쪽). 작은 것들을 보려면 자꾸 멈춰 서야한다고 하셨지요. “멈추어 서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시작”이고 “생명 사랑이란 언제나 작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라고 말입니다(281쪽). 세상의 어느 특정한 소리에 편향되지도, 제멋대로 세상의 장엄한 소리들 사이에 위계를 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이제는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가 왜 명문인지에 대해 마지막 이유를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사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나 까마득해진 옛날 사람들의 모습은 시골의 촌로들이 목사님보다 더 잘 알지 모릅니다. 차별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비정규직이나 성소수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민운동가들이 더 세밀하게 들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미술이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이 들려주는 48가지 소리에 흥분하는 것은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이 다름 아닌 목사, 그것도 서울의 중형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나 시민운동가나 생태주의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 목사가 하찮게 여겨지던 소리들을 본래의 자리로 복권시켰기에 탄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생각이 났습니다. 말러는 제자 브루노 발터와 숲속을 거닐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장터 소리, 군악대 소리를 듣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소리 들리나? 저것이 바로 폴리포니(대위법적 음악)이며, 내가 폴리포니를 이해하는 방식일세! … 예술가의 일이란 이러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일하는 것일세.


음악 학자들 가운데는 말러의 교향곡 3번을 가리켜 “천지창조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특히 3번 교향곡이란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강구하여 세계를 이루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때문에 말러는 3번 교향곡을 6악장으로 구성하면서 목장의 꽃들, 숲속의 동물들, 인간들, 천사들, 그리고 사랑이 말러에게 던질 말들을 음악화 했던 것입니다.


말러가 의미하는 자연은 좀 독특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말할 때 “오로지 꽃이나 작은 새들이나 수풀의 향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왜 자연에 디오니소스나 위대한 목신 판(Pan, 목신)과 연관 짖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교향곡 3번에서 말러는 “끔찍하고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운 그 모든 속내를 숨기고 있”는 자연,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이 오묘한 자연의 이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소리”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스또엡스끼를 멘토 쯤으로 받들던 말러는 “이 땅위에 피조물이 아직 하나라도 고통 받고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란 근원적 질문에 답하려 했던 음악가였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숲 걷기나 등산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생의 말년에 심장에 문제가 생기자 의사는 격한 운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평생 “책상에 앉은 채로만 작곡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짧고 가벼운 산책만 하라는 의사의 요구에 말러는 낙담했습니다. 운동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원하는 작곡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생 최대의 불행”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목사님과 말러 사이에는 물론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자연의 오묘한 이면에까지 들여다보며 모든 피조물의 고통에 반응하려 했던 말러와 목사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작지 않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해야 할 일 혹은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인간관계의 중심에 두는 이들”(55쪽)에게 느낀 극심한 피로감만 불평할 게 아니라 “세상의 미세한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늘에 주목”(53쪽)하겠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 세계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마련된 성소(161쪽)에 더 자주 몸을 맡기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양화진’에서는 매미들의 우렁찬 합창이 계속되었습니다. 매미의 합창 소리는 너무 커서 소음처럼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양화진의 매미들은 왜 솔로가 아니라 합창을 좋아하는지, 합창을 하되 왜 포르티시모로 울어대는지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이나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까진 못 본다 하더라도(116쪽),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님”을 만나거나(304쪽), 그것도 어렵다면 목적 없는 무위의 놀이를 통해 욕망의 포박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줄 누가 알겠습니까(102쪽).


언제 한 번 양화진으로 놀러 오세요.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많습니다. 목사님의 평안을 빕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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