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3)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숭의전을 찾아가는 길 곳곳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시커먼 칠로 얼굴을 위장한 채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을 하고 있었다. 개미떼처럼 긴 행렬도 있었고, 특별한 임무를 띤 있는 것인지 소수의 인원이 움직이는 짧은 줄도 있었다. 모두가 귀한 집 자식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군인들의 행렬을 뒤따를 때도 있었다. 군인들에 비해 작은 배낭을 메고 총 대신 스틱을 들었지만 그들을 뒤따르다 보니 나도 예비역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분단의 땅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었다.



고려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의전은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는 듯, 단아한 모습이었다.


‘숭의전’(崇義殿)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의를 높이는 곳’이라니, 뜻이 범상치를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싶어 찾아본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숭의전지(崇義殿址)는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년)에는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숭의전의 시초이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정종 1년)에는 왕명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惠宗), 성종(成宗), 현종(顯宗), 문종(文宗), 원종(충경왕, 元宗), 충렬왕(忠烈王), 공민왕(恭愍王)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년)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五王)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1451년(문종 1년)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1452년(문종 2년)에는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서 순례(循禮)라는 이름을 내린 후 부사(副使)를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하고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새 왕조를 연 뒤 이전 왕조의 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곳이 숭의전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거나 부정하지 않고 보존을 하여 기억을 하는 모습도 그랬고, 그곳에 숭의전(崇義殿)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도 그렇고, 고려의 충신을 기리는 전(殿)을 고려의 후손을 찾아내 관리를 맡겼다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숭의전 초입의 ‘어수정’(御水井)에는 마침 하지(夏至)를 맞아 하지 감자를 씻으러 온 할머니가 있었다. 하지와 감자와 할머니,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고 따르는 순연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그윽하게 여겨졌다.


어수정의 물은 달고도 시원했다. 좋은 샘 곁에서 산다는 것은 큰 복이다 싶었다.


무더위 속 먼 길을 걸어서 그랬겠지만 어수정의 물은 유난히 달고 시원했다. 그처럼 맑은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곳에서 살아가니 그 물을 마시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 할머니께 여쭈니 “그럼요, 큰 복이지요.” 하시며 십분 공감을 하신다. 맞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샘을 가까이 둔 이들은 큰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동안 걸으면서 흘린 땀에 해당할 만큼의 물을 마신 뒤,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큰 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진 호젓한 언덕길을 오르니 숭의전이 나타났다. 고려의 충신들을 모시는 숭의전은 마치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단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뜨거운 날씨 탓인지,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의전을 모르기 때문인지, 숭의전을 찾은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막 숭의전을 둘러보고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숭의전을 찬찬히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왔을 때, 저만치 언덕길을 올라오는 한 여자 분이 보였다. 손에는 어수정에서 길었지 싶은 물통을 들고 있었고 목에는 명찰, 아마도 안내원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숭의전을 둘러보았으니 그냥 떠날까 하다가 안내원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다시 찾아오기 쉽지 않은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배낭에 매달린 여벌의 신발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여정을 물어 들은 안내원은 얼른 두 손을 내밀어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기를 전해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했지만, 세상에 이런 기를 어디서 받겠느냐며 마치 확실한 기를 전해 받은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다.


숭의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 준 안내원은 “이리 한 번 와 보실래요?” 하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따라가니 숭의전 앞에 서 있는 큰 나무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무성한 나뭇잎 뿐 달리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무엇을 보라는 것이지요?” 묻자 “부엉이가 저기 있잖아요.” 한다.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부엉이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안내원은 다시 한 나무를 살피더니 “저 곳에도 한 마리가 더 있네요.” 한다.


숭의전을 떠나지 않는다는 부엉이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했다.


언젠가부터 부엉이가 찾아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한 마리였는데, 언제부턴가 한 마리가 더 찾아왔다는 것이다. 안내원은 말했다. “아마도 고려 충신들의 혼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속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일이 존재하기도 하는 법, 아시시 프란체스코 수도원 이야기를 안내원에게 들려주었다. 그곳에서는 흰색 비둘기가 프란체스코 동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안내원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나 ‘임진적벽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서 난 숲길은 빼어난 절경이었다. 몇 번인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궁예와 왕건도 나처럼 서서 저 강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숲을 다 빠져나가도록 아무도 만난 사람이 없었으니, 드문 길을 걸은 셈이었다.


숲을 걸을 때 문득 떠오른 어릴 적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비가 몹시 내리던 수요일이었다. 그 시절 수요일 오후에는 어린이 예배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에 목마른 우리들이 즐겨 찾던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성경동화는 그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었다.


그 날은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지났다 싶은데도 종소리가 들리지를 않았다. 빗소리에 지워진 것인지 정말로 종을 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그 시절엔 어찌 그리 우산이 귀했는지 비를 쫄딱 맞은 채였다.


어두컴컴한 예배당 현관에 들어서니 신발장에 신발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기도라도 드리고 가야지 싶어 예배당 문을 열었는데, 예배당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 한 분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예배당 앞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오신 듯 했다.


그 선생님은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수요일 오후, 아무도 오지 않는 예배당을 기도로 지키던 모습이 남아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신다. ‘얘야,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네 자리를 지키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란다.’

마음속에 묻혀 있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것은 숭의전 앞 나무에서 보았던 부엉이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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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9)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1994년 이후 가장 덮다는 이 여름에 건강하신지요? 최근에 출간된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잠시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초대의 글’에서 지금까지 즐겨 읽어 온 편지 형식의 작품들을 소개해주셨더군요. 전설로 남은 12세기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에서 시작하여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본회퍼의《옥중서간》, 그람시의《옥중수고》, 문익환 목사의《꿈이 오는 새벽녘》, 서준식의 《옥중수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셨지요. 재작년에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추모 음악회에서 그의 절친 브루노 간츠Bruno Ganz가 ‘빵과 포도주’를 낭송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소개하는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히페리온》은 더 반가웠습니다.


목사님의 이번 책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라는 성서 본문의 의미 파악이나 실용적 효과 그 이상을 이야기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편지’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혼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웠던 교회 공동체가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흔들릴 때마다 그는 편지를 써서 벗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렇기에 그의 서신은 곡진하고, 열정적이고, 애정에 가득 차 있다. 그의 편지를 회람하면서 초대 교회 공동체는 구부러진 길에서 돌이킬 수 있었다”(6쪽)는 정도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편지란 우리 “영혼이 발하는 발신음”(5쪽)이어서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게 마련”(6쪽)이고, 따라서 ‘오늘의 나라고 하는 편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거나 불쾌한 소식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또한 수십 년 전 부친께서 “호롱불 밑에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신” 편지가 곧 아버지의 존재이자 “아버지의 품”이었다며 그 편지를 “고향의 냄새”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4쪽). 프란츠 카프카를 비롯한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평생을 아버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사실을 알기에 부친에 대한 목사님의 고백에 놀랐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의 편지가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그래서 더 뜻밖이었습니다. 주옥같은 편지를 지금 갖고 있지 못한 이유가 혹시 아버지의 편지가 곧 ‘고향의 냄새’이자 아버지의 존재 자체였다는 의식이 어려서는 흐릿했기 때문이었는지요.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이해는 목사님께서 읽은 성서와 여러 작가들이 쓴 편지가 새롭게 형성한 것인지요.


어떤 책인들 안 그렇겠습니까만,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으면서 저는 몸 속 깊게 가라앉아 잘 보이지 않았던 욕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함과 진부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고(306쪽), “제거할 수 없는 아픔은 품고 가는 수밖에” 없고(316쪽), ‘순례자는 길을 잃을 권리’가 있고(221쪽),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잠시나마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하며(373쪽), “흑과 백으로 갈리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회색빛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37쪽)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그동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신앙과 도덕을 요구하는 무섭고 매정한 당위의 말들에 꽤나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복음은 이런 공감과 위로의 말들이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가족들이 모일 때 서로 어린 시절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면서 “스스럼없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의례”(201쪽)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른들 중 누구도 ‘흉보기’의 긍정적 측면을 이렇게 포근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어린 시절을 흉내 내며 깔깔거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청파교회 교인들이 부러웠습니다.



48가지 소리가 들려주는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은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였습니다. 이 글은 제가 읽은 목사님의 글 중에 최고였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라는 전제를 서둘러 붙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글을 과연 쓰실 수 있을까요? 저는 없을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 목사님께 그럴 능력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니라 소리에 대해 이 정도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기 때문입니다.


200자 원고지 20여 매 분량의 길지 않은 편지에서 목사님은 48가지의 소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하셨습니다. 시계·자동차·라디오·경적‧옥외 스피커‧층간 소음이나, 정치가의 호언장담‧종교인의 ‘큰 소리’‧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 등을 뺀 나머지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다음은 긴 인용의 충동에 시달릴 만큼 생생한 목사님의 소리입니다.


아궁이에서 솔가리가 탈 때 나는 소리, ‘자작자작’, 밀짚을 태울 때 나는 소리, ‘타닥타닥’, 군불에 묻어두었던 밤 껍질이 터지는 소리, ‘탁탁’, 댓잎을 스쳐온 바람소리, ‘사르륵사르륵’, 솔숲을 거쳐 온 바람소리, ‘솨아솨아’, 비가 그친 후 혹은 볕이 나 지붕 위에 있던 눈이 녹아 내려 섬돌 위에 떨어지는 소리, ‘똑똑똑’ … 닭이 홰치는 소리, 솔개 그림자가 마당귀를 스치면 ‘구구구구’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불러 품에 안던 암탉 소리,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동녘 하늘을 향해 ‘꼬끼오’ 하고 울어 새벽을 깨우던 수탉의 울음소리, 한낮의 무료함을 깨뜨리려는 듯 혼자 ‘컹컹’ 짖는 누렁이 소리(69-72쪽).


목사님은 그런 연후에 21세기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힌 산업화 이전의 아날로그 세계로 독자들을 데려갑니다. “나무 방망이와 다듬잇돌과 피륙이 이루어내는 리드미컬한” 여인들의 다듬이질 소리, “이불 호청이나 큰 빨래를 둘이 마주잡고 ‘쫙쫙’ 펴는 소리, 다림질하기 위해 입에 머금은 물을 ‘푸푸’ 옷에 뿌리는 소리, 밤이면 벽간에서 울려나던 귀뚜라미 소리에 시선을 돌리게 만드셨습니다.


48가지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신 것도 대단하지만 저를 더 놀라게 한 건 언어도, 말씀도,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시편 19:3) 세상 끝까지 퍼진 하늘의 소리에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방문했던 베를린 레기나 마르티눔 성당을 회고하실 때는 “자연 조명과 인공조명이 절묘하게 뒤섞인 공간”의 성스러움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감동을 느끼셨다고 했지요(79쪽). 성서에서 들려오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를 듣기 위해 몸을 낮추셨을 뿐 아니라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폭력적으로 추방당한 작은 소리들에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75쪽). 세계에 있는 모든 ‘초월자의 암호’(카를 야스퍼스)를 읽어내고 그것을 해독해 낼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우리네 심성이 회복된다고도 하셨습니다(53쪽). 작은 것들을 보려면 자꾸 멈춰 서야한다고 하셨지요. “멈추어 서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시작”이고 “생명 사랑이란 언제나 작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라고 말입니다(281쪽). 세상의 어느 특정한 소리에 편향되지도, 제멋대로 세상의 장엄한 소리들 사이에 위계를 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이제는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가 왜 명문인지에 대해 마지막 이유를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사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나 까마득해진 옛날 사람들의 모습은 시골의 촌로들이 목사님보다 더 잘 알지 모릅니다. 차별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비정규직이나 성소수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민운동가들이 더 세밀하게 들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미술이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이 들려주는 48가지 소리에 흥분하는 것은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이 다름 아닌 목사, 그것도 서울의 중형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나 시민운동가나 생태주의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 목사가 하찮게 여겨지던 소리들을 본래의 자리로 복권시켰기에 탄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생각이 났습니다. 말러는 제자 브루노 발터와 숲속을 거닐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장터 소리, 군악대 소리를 듣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소리 들리나? 저것이 바로 폴리포니(대위법적 음악)이며, 내가 폴리포니를 이해하는 방식일세! … 예술가의 일이란 이러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일하는 것일세.


음악 학자들 가운데는 말러의 교향곡 3번을 가리켜 “천지창조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특히 3번 교향곡이란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강구하여 세계를 이루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때문에 말러는 3번 교향곡을 6악장으로 구성하면서 목장의 꽃들, 숲속의 동물들, 인간들, 천사들, 그리고 사랑이 말러에게 던질 말들을 음악화 했던 것입니다.


말러가 의미하는 자연은 좀 독특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말할 때 “오로지 꽃이나 작은 새들이나 수풀의 향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왜 자연에 디오니소스나 위대한 목신 판(Pan, 목신)과 연관 짖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교향곡 3번에서 말러는 “끔찍하고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운 그 모든 속내를 숨기고 있”는 자연,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이 오묘한 자연의 이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소리”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스또엡스끼를 멘토 쯤으로 받들던 말러는 “이 땅위에 피조물이 아직 하나라도 고통 받고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란 근원적 질문에 답하려 했던 음악가였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숲 걷기나 등산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생의 말년에 심장에 문제가 생기자 의사는 격한 운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평생 “책상에 앉은 채로만 작곡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짧고 가벼운 산책만 하라는 의사의 요구에 말러는 낙담했습니다. 운동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원하는 작곡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생 최대의 불행”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목사님과 말러 사이에는 물론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자연의 오묘한 이면에까지 들여다보며 모든 피조물의 고통에 반응하려 했던 말러와 목사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작지 않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해야 할 일 혹은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인간관계의 중심에 두는 이들”(55쪽)에게 느낀 극심한 피로감만 불평할 게 아니라 “세상의 미세한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늘에 주목”(53쪽)하겠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 세계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마련된 성소(161쪽)에 더 자주 몸을 맡기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양화진’에서는 매미들의 우렁찬 합창이 계속되었습니다. 매미의 합창 소리는 너무 커서 소음처럼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양화진의 매미들은 왜 솔로가 아니라 합창을 좋아하는지, 합창을 하되 왜 포르티시모로 울어대는지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이나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까진 못 본다 하더라도(116쪽),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님”을 만나거나(304쪽), 그것도 어렵다면 목적 없는 무위의 놀이를 통해 욕망의 포박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줄 누가 알겠습니까(102쪽).


언제 한 번 양화진으로 놀러 오세요.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많습니다. 목사님의 평안을 빕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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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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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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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8)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목사님, 40년 또는 반세기만이라는 불볕더위 속에, 10년은 족히 되는 선풍기마저 고장 난 방에서 목사님의 책,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참, 책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읽는 맛이 다릅니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8ㆍ15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헬 조선’ 등 세간의 유행어를 매몰차게 비판하던 뒤끝이라 목사님이 펴내신 책의 이 제목부터가 맘에 끌렸습니다. 모두 아는 바대로 ‘헬 조선’이란 유행어는 박근혜 정부 시기에 나온 ‘민중의 소리’인데, 여전히 남 탓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헬 조선’은 자살율 세계1위, 청년실업, 빈부격차, 안보불안, 출산율 세계최저, 부패지수 세계최고 등의 현실에서 생긴 말입니다.

하긴 100g에 수백만 원씩 하는 송로버섯, 바닷가재, 훈제연어, 칠갑상어알 샐러드, 상어지느러미찜, 한우갈비 등으로 오찬을 즐기는 그들에게 ‘헬 조선’은 이해하기 어렵고, 불온하기 그지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들만의 ‘지상낙원’을 모르는 채 ‘더위나 먹으면서’ 사는 99%의 ‘개·돼지’들의 나라가 왕조국가인지 공화국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원나라 시대의 학자 김이상金履祥이 “글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다섯 가지 맛이 섞여 있어서 재미가 진진하다”고 했거니와 김기석 목사님의 책이 꼭 그렇습니다. 52가지 소제를 빼어난 문장력으로 풀고 동서고금 명저에서 솎아낸 다양한 인용문은 청와대 오찬에 나온 값비싼 메뉴와는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문은 인”이라 하여 글은 곧 사람입니다. 글과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글 같은 글, 책다운 책을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은 터에, 모처럼 ‘인과 문’이 일치한 글을 만났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그의 시를 읽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옳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은 곧 인’이기 때문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이니까 이런 책을 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이비 문인ㆍ학자ㆍ언론인ㆍ목사ㆍ주교ㆍ승려들이 판치는 시대에 김 목사님은 참 문인이고 신실한 목사라고 생각됩니다. 옛날식으로 하면 참 선비인 거지요. 조선초기의 혁명적 지식인이었던 정도전은 ‘참 선비상’을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첫째, 사는 학지제천지學之際天地하여 음양ㆍ천문ㆍ지리ㆍ생물ㆍ복서卜筮 등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다.

둘째, 사는 명윤리明倫理하여 오륜을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인간이어야 한다.

셋째, 사는 달어고금達於古今하는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넷째, 사는 지성지본호천명知性之本乎天命하는 성리학자여야 한다.

다섯째, 사는 관인이면서 교육자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시문을 통해 진리를 나누는 벗이어야 한다.

일곱째, 골육지친과 사귀는 벗이어야 한다.

여덟째, 책을 붙잡고 옛것을 뒤적이며 새로운 도덕을 말하는 벗이어야 한다.

아홉째,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어야 한다.

열째, 심장을 가르고 간을 꺼내며 믿게 할 만한 친구여야 한다.


목사님, 한국 사회가 ‘헬 조선’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언론인과 지식인(종교인 포함) 등 이른바 선비들이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장차관, 국회의원, 검사, 판사 등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머슴들입니다. 그런데 머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설치는 적반하장은 일차적으로는 주인인 국민의 책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의와 진리를 존재의 사명으로 하는 지식인들이 책무를 다하지 않거나 오히려 권력과 유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슴들이 상전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고대로 지식인 사회는 먹물과 속물이 동거하기 마련입니다. 대학 사회ㆍ정계ㆍ언론계ㆍ법조계ㆍ종교계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뒤섞여 있습니다. 속물과 쭉정이가 더 설치고 종교계에서는 그 속물, 쭉정이가 더 선지자 행세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대형교회와 사찰을 짓고 권력자를 우상으로 섬기면서 신도들의 지갑을 털지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설교와 설법으로 기복신앙을 부추겨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목사님은 어찌 보면 평범한 기독교 목사이고 문학평론가입니다. 그런데 혼탁한 시대에는 ‘평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배세력, 주류 패거리에 섞이지 않으면 ‘찬밥’ 신세가 되거나 ‘이단’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평범함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고, ‘다섯 가지 맛’이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과외의 재미와 지식을 준 ‘인용문’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 자주자주 ‘쉼터’를 만나게 됩니다. 그 쉼터는 때론 사막의 오아시스일 수도 있고, 풍성한 과수원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목사님이 책을 통해 보여준 ‘인용문’ 말입니다. 다양한 책에서 발췌하여 그때그때 제시한 인용문은 과외의 재미와 지식, 신선한 석간수, 엄동의 딸기 맛이 납니다. 마음에 와 닿는 인용문 및 편을 골라보았습니다.


십자군은 자기네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한테 손을 내밀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한테서 배우려는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의 공포와 원한을 다스릴 줄도 몰랐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죽이고 망가뜨리고 태우고 모독하고 부수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의 도덕성을 무너뜨렸다.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도된 증오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서양인이 계속해서 이슬람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 볼 경우 오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카렌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435-436쪽).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눈멀 수 있단 말인가? 형제의 흠을 찾아내는 데는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을 가진 자가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듯 완전히 눈멀 수 있단 말이냐? 저자들은 구름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우라고 호통을 치면서 자신들은 불꽃을 휘두르는 몰록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하면서, 팔순의 눈먼 노인은 문밖으로 내모는 족속들이다. 탐욕 부리지 말라고 아우성치면서, 금붙이에 눈이 멀어 페루인들을 말살시키고 이교도들에게 짐승처럼 수레를 몰게 한다(프리드리히 폰 실러, 《도적패》, 119쪽).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편 19:1-4).


어찌해서 당신들은 여기 수도원에 편히 앉아 가난한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빚어진 빵을 먹으면서. 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백성들과는 동떨어져서. 저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기는 커녕 고지식한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들 보고 이리떼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어진 목자들이 되라 하셨는데. 어떻게 당신들은 양들을 잡아먹는 이리 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들은 가난 속에서 평생도록 헌신적인 삶을 살기로 굳게 맹세하고 또 서약하고서도 당신들이 한 말은 모두 잊어버린 채 안락한 생활을 할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종교가 뜻하는 모든 것을 다 저버릴 수 있습니까?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어떻게 수도를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들은 겉으로는 당신들의 육신을 죽이는 체하나, 속으로는 당신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질색인 양하면서도 속마음은 탐욕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스스로백성의 지도자요. 스승이라 자처하나.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들은 강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칼랄 지브린, 《반항하는 정신》, 22-24쪽).


시의적ㆍ감성적인 문장


김 목사님은 또한 대단한 문장가입니다. “보기 좋은 떡은 먹기도 좋다”는 격언대로 아무리 천하의 경륜을 담았대도 글이 난삽하면 읽히지 않지요. 좋은 글이란 읽기 쉬우면서도 논리적이고 시의적이면서 감성적이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쓴 본문 중에서 몇 대목을 골라봤습니다. 한 번 더 읽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이 온통 부정한 돈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치권에 유입되는 부정한 자금은 가진 자들만의 리그를 조성하는데 활용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은 문화계,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 할 것 없이 모두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말씀을 지금처럼 처절하게 실감하는 때가 또 있을까요? 저는 늘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서로 함께’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선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돈의 전능을 해체하라」, 130쪽).


지난 시절에는 우리 의식 속에 동두렷이 떠오르는 별들이 있었습니다. 시절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분들이 계시기에 절망 속에 유폐되지 않을 수 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마른 목을 축이는 새들처럼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권위에 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정신이 사라졌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지만, 들으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중력에 이끌릴 뿐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마음이 망실되었기 때문일 겁니다(바라보아야 할 별 하나」, 143쪽).


손이 아름답던 한 사람을 압니다. 예수입니다. 그는 나병에 걸려 사랑하는 이들과의 접촉의 기쁨을 포기한 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열병에 시달리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바다 물결 속에 잠겨들던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끌어올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깨어났습니다(마주 잡을 손 하나」, 158쪽).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인간을 ‘서로 함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다는 것이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함께 지내다 보면 연애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낯선 모습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낯섦을 품어 안을만한 여백이 없을 때 불처럼 타올랐던 사랑은 차가운 재만 남긴 채 꺼져 버리기도 합니다. 사랑의 위기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그러한 낯선 모습이야말로 두 사람의 사랑을 크고 깊게 만들기 위한 기회라는 사실을 말입니다(둘이서 함께 걷는 길」, 176쪽).


누군가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큰 사람입니다. 아무리 맞아도 돌이킬 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으니 말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이 가끔은 “장군죽비가 되어 어깨를 후려치는 것 같았고. 때로는 싸리비로 마당을 정갈하게 쓸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때로는 양철북 소리처럼 쟁쟁하게 들려왔다”고 하셨지요?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얼굴을 붉히실 때,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말과 삶의 괴리를 누구보다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씀을 따라 살아보려는 애는 쓰지만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배는 그만 먹으라고 하는 데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몸과 마음에 밴 습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레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인생은 ‘오늘’의 점철」, 345쪽).


일상적인 세계, 상식의 세계. 예측 가능한 세계가 무너질 때 삶은 혼돈으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무난한 세계에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일탈의 욕망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이런 일탈의 욕망이 없다면 인간 세계는 지루함 때문에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타자를 물화시키거나 그의 존엄을 훼손하기 시작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종교는 그런 과도한 욕망을 경계하는 나팔소리여야 합니다. 종교가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세상 도처에서 괴물들이 나타납니다(인간보다 이상한 존재는 없다」, 215쪽).


의를 살리는 루터의 길을


목사님, 내년 2017년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루터가 만크펠트에 있는 부모를 방문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나게 됐는데, 그때 번개가 그의 옆에 있는 숲을 때렸다고 하지요. 그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신도 모르게 광부들의 수호성인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수도사가 되기를 서원했습니다.


루터는 이와 더불어 어느 날 신약성서 로마서 1장 10절의 “하나님의 의는 복음 속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바울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의의 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위대한 출발이었지요.


김기석 목사님, 종교개혁의 주체이던 기독교(개신교)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시대에, 김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한국기독교 개혁의 선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목사님의 편지 글인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가 루터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를 명백히 할 목적”으로 쓴 ‘95개 조항’과 같이 ‘의에 목마른’ 시대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건필 하십시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김남주 평전》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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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말씀 안으로(2)


빼앗긴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18~23)


"Happy Xmas(The War is over)"

by John Leonnen

So this is Xmas. And what have you done.

Another year over. And a new one just begun.

And so this is Xmas. I hope you have fun.

The near and the dear one, The old and the young...

A very Merry X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And so this is Xmas. For weak and for strong.

For rich and the poor ones.

The world is so wrong

And so happy Xmas. For black and for white.

For yellow and red ones Let's stop all the fight.

A very Merry X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And so this is Xmas. And what have we done.

Another year over. A new one just begun.

And so happy Xmas. We hope you have fun.

The near and the dear one. The old and the young.

A very Merry X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War is over, if you want it. War is over now.

Happy Xmas


벌써 12월입니다. 이미 11월 말부터 시작된 TV광고와 백화점의 장식등이 12월에 있는 ‘그날’이 곧 우리 눈앞에 다가왔음을 알려줍니다. 방금 읽어드린 존 레논의 “Happy Xmas”도 바로 12월에 있는 그 날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그날은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축제가 되어야할 성탄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입니다.


12월로 접어들기 전부터 온통 세상은 성탄절 분위기로 바뀝니다. 곳곳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캐럴 송과 성탄 장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분명 성탄절은 예수란 인물의 탄신일임에도 요즘 성탄절 소식은 교회보다는 다른 곳에서 먼저 접하게 됩니다. 거리 구석구석 화려한 포스트에서, 매일 매일 우리 눈을 고정시키려 몸부림 치는 커다란 TV 속에서, 언제나 우리 옆에서 친근한 음악을 선사해주는 심야 라디오 디스크자키의 달콤한 멘트 속에서, 우편함을 가득 채워 쓰레기 분리의 지겨움을 선사하는 오색찬란한 각종 광고지 속에서, 언제나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교회보다 한발 앞서 인사합니다.


이런 조짐이 11월 중순부터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대체로 교회는 잠잠합니다.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귀한 성탄 찬양은 오직 12월 25일 그날 하루만을 위해 존재하나 봅니다. 다들 벙어리인지, 아님 귀머거리인지, 교회는 고작 우리의 본질을 일깨워주기 위해 오신 이의 날을 하루 이틀 안에 해치워버리는 상당히 경제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성탄의 분위기를 매년 느끼며 적잖은 안타까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때로 그 느낌은 성탄을 잃어버렸다는, 아니 빼앗겨버렸다는 분노로 바뀌기도 합니다. 성탄을 빼앗긴 교회, 성탄을 잃어버린 신앙... 그것이 현대 교회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성탄은 초대교회 성도에게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탄생보다는 부활에 더 큰 비중과 가치를 두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바로 예수의 행적에 대해 가장 오래된 기록 중의 하나라 여기는 마가복음에 예수의 탄생기사가 빠져있다는 점에서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로마의 박해시기를 거쳐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1세(272~337)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적인 종교로 인정받음으로써 점차 예수의 탄생일은 점차 비중 있게 다뤄지기 시작합니다. 통일된 로마제국의 종교이념으로서 그리스도교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인 336년경에 이르러 로마인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였던 태양일 축제(동지)에 맞추어 지금의 12월 25일이 예수 탄생일로 고정됩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날짜 지정은 로마식의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과정의 부산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날짜의 기원도 아니며, 그 날짜의 진위여부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날짜에 대한 ‘의미 부여’이며, ‘가치 부여’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원과 이유가 어쨌든 간에 성탄은 예수의 오신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우리에게 구원행위를 통하여 새로운 삶의 의미를 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육체의 모습을 입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그분은 온 몸으로 보여주시다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따라서 성탄절은 그런 예수의 의미와 목적을 재확인하며 기억하여 계승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이미 이야기 했듯이 우리의 성탄절은 상업주의에 멍들어 시퍼렇게 변색되어갑니다. 그 와중에 교회가 보여주는 초라한 모습은 교회의 구석구석마다 각 기관끼리 모여앉아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며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지극히 성탄에 반하는 모습일 뿐입니다. 혹자는 깊은 밤을 깨우며 그분의 오심을 노래로 전달하는 새벽 송에 큰 의미를 두며 안위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교회 신자 집들만 방문하며 그들이 준비한 음료와 선물에만 기뻐하는 이기적 모습을 내 비칠 때는 그것 역시 위장된 안위일 뿐이라는 것이 금세 탄로 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대형교회들은 이런 저런 번거로움을 이유로 이 같은 통과의례마저 간략히 생략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게 성탄절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더 이상 우리는 제대로 된 성탄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심으로 이 땅의 그릇된 모습과 방향에 채찍을 들어 포효하셨지만, 그의 유지를 받든다는 교회는 그분의 하신 일을 따라 하기는커녕 그분의 의미마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탄의 주인공은 더 이상 예수가 아닙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무덤에 갇히었다 3일 만에 부활한 뒤 하늘로 올라갔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한 사나이가 아니라, 매년 앞장서서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빨간 옷의 사나이, 흰 수염에 두둑한 뱃살을 자랑하는 바로 산타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산타는 오래 전 가난한 이의 벗으로 그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니콜라우스도 아닙니다. 그들은 더욱더 많은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안기기 위해 고용된 일용 세일즈맨일 뿐입니다. 그들은 이미 성탄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철저한 훈련을 거친 후 고객들 앞에 다양한 매체를 타고 등장해 성탄절은 다정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 1년 동안 덕본 이들에게 답례품을 주는 날, 가족들과 혹은 연인과 함께 그윽한 분위기의 호텔에서 한 끼 외식을 하는 날, 좀 더 잘 나가면 그 연인과 함께 커피 향으로 무드가 익는 안락한 스위트룸에서 남은 여장을 푸는 날, 그리고 수많은 선물과 상품권들은 이해와 타산에 의해 덕 볼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는 날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탄절 특수’란 말이 있듯이 성탄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그럴듯한 영화 한편 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중예술의 꽃이라 불리는 광폭의 스크린에서는 예수란 사나이와는 전혀 다른 변종의 구세주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안방극장을 방문하는 대머리에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표정이 전매특허인 브루스 윌리스의 무자비한 살인행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구세주를 영접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로만 성탄절은 장식되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상을 뛰어넘어버립니다. 지금도 내전(內戰)에 시달리는 세계 여러 나라들,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성탄절은 그야말로 의미 없는 많은 날 중 하나일 뿐입니다. 여전히 인류의 구세주가 왔다는 그 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총탄의 희생자가 되고 있으며, 선진 부국의 식당에서 쏟아지는 음식찌꺼기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식량문제에 여전히 많은 어린 아이들이 부황기의 얼굴로 죽어가는 그 날도 바로 12월 25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저주스러운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표정 없는 이성의 힘으로 역사상 비교할 수 없을 호황기를 누리고 있으며, 지금의 농업기술은 이미 전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농작물을 수확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통계 앞에서도 수없이 굶어주는 주검을 우리는 목격해야합니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못하는 이 원통한 우리의 현실을 어찌 저주받지 않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교회는 잠잠입니다. 지금 교회는 그 옛날 예수란 이가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권세 있는 발언’은 잊은지 오래 같습니다. 이미 교회는 벙어리가 된지 오래이며, 이런 성탄의 퇴색 속에도 흐뭇한 선물 교환과 그해 전도 왕에게 멋진 상품권 안기는 것으로 모든 것을 퉁치려 합니다.


그래도 교회는 잠잠입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탈출했다 까닭모를 정치계산에 밀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수많은 난민의 두려움 속에서, 한 술의 죽이 없어 힘없이 눈을 감는 우리의 또 다른 자녀들 속에서 아기 예수 역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는 잠잠합니다. 우리에겐 그 귀한 잠을 참아내며 완주한 새벽송이라는 면죄부가 있기 때문일까요?


교회는 잠잠합니다. 주인과 객이 뒤바뀐 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할 그 어떤 꿈도 꾸지 않는 채! 지금도 우리는 잠잠함으로 우리의 신을 모독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성탄을 잃어버렸습니다.


성탄의 의미로 오신 분을 우리는 임마누엘이라 부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교회가 이 임마누엘의 신앙을 참으로 온 몸으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성탄은 산타의 몫일뿐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저주까지 퍼부어가며 욕했던 존 레논이 부르는 이 캐롤이 되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셨나요?

한 해가 지나고 막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답니다.

그처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여러분 모두에게 즐거운 일들이 함께 했기를 기대합니다.

가까운 이나 다정한 이나, 나이 든 이나 젊은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성탄과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날이 참 좋은 날이라 희망합시다.

그 어떤 두려움도 없는...

그처럼 이번 크리스마스는 약한 이나 힘 있는 이나

부유한 이나 가난한 이들 모두를 위한 날이길 바랍니다.

그래요, 세상은 그처럼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피부가 검은 이나, 하얀 이, 그리고 노란 이나 붉은 이들…

그 모두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이길 바랍니다.

자, 이제 모든 싸움을 끝내도록 합시다.

즐거운 성탄과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날이 참 좋은 날이라 희망합시다.

그 어떤 두려움도 없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셨나요?

한해가 지나고 막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답니다.

그처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여러분 모두에게 즐거운 일들이 함께 했기를 기대합니다.

가까운 이나 다정한 이나, 나이 든 이나 젊은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성탄과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날이 참 좋은 날이라 희망합시다.

그 어떤 두려움도 없는…

만약 여러분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전쟁은 끝낼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그 전쟁을 끝낼 수 있습니다.

Happy Xmas!”


그가 홀로 외쳤듯이 우리도 외치길 바랍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싸움을 끝냅시다. 모든 전쟁을 멈춥시다. 그분이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속물의 세상을 하나님의 딸과 아들로 살아가는 법을 보이신 분이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할 말을 하며, 해줄 일을 해나갈 때 잃어버린 성탄은 다시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이제 고함이라도 칩시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로 실망의 눈빛만을 쏘아붙이고 있다면, 우리가 나섭시다. 작은 소리가 큰 함성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러한 꿈을 꿉니다. 언젠가 정말 성탄다운 성탄을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임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원합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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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말씀 안으로(1)


예수를 따른 다는 것


예수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하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하셨다.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하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9:57-62)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신앙을 갖게 됨으로 마음에 지극한 평온을 얻을 수 있었노라”고. 또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가 내 안에 있어 나는 어두운 밤길에서도, 지독한 풍랑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혹은 이렇게 고백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그 일 때문에 나는 실패하던 인생이 반전하여 성공과 영광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그리고 때론 이런 소리도 들려올 겁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내 삶이 얼마나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찼는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다.”라는... 그리고 이러한 믿음에 대한 소식과 소리는 먼 나라 얘기만이 아닌 바로 가까운 우리 이웃들로부터도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입을 모아 노래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배워 바른 길가니 우리의 삶과 생이 언제나 즐겁고 평온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 같은 신앙인의 즐거운 삶을 따라가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입으로는 쉬지 않고 예수를 닮기 원한다고 조아리며, 아울러 그 때문에 촉발된 평온과 기쁨, 즐거움, 행복이 언제나 우리 안에 가득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구절에서 예수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예수를 따른 다는 것의 의미’는 조금 다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세 번의 경우를 통하여 자신을 믿고 따른 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러주시고 계십니다. 그 세 번의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친히 찾아와 길가는 그의 앞을 막아서고 이렇게 고합니다.


“선생님! 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앞에 인용한 선언 말고는 전무합니다. 다만 우리는 유추를 통해 그의 대강의 모습을 그려 볼 따름입니다. 격정적이고 열의 있는 고백은 아마도 그가 혈기 넘치는 젊은이였음을 상상하게 해 줍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혹은 친히 예수의 설교를 접하고 마음에 일어난 감동과 격동을 감출 길 없어 이 한 몸 위대한 스승을 위해 투신하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하고 그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한 젊은이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구절을 통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젊은이는 길가는 자신의 선생이 될 사람의 발걸음을 막아서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젊은이로 추정되는 이의 소박하고 뜨거운 결심 앞에 예수가 전하는 언어는, 그러나 뜻밖에도 무척 서늘합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습니다.”


도대체 예수는 무슨 의도로 이런 답변을 그에게 던지신 것일까요? 왜 그분은 자신을 평생 따르겠노라고 다짐하는 이가 지닌 가슴의 열정을 이토록 식게 만드는 차가운 답변을 내 놓은 것일까요? 참으로 고약한 답변입니다. 마치 체념한 이의 언어처럼 예수의 대답은 이 이름 모를 젊은이의 뜨거움을 순식간에 가라앉혔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의 눈에 별안간 자신의 길을 막고 자신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평생 따르겠노라고 다짐하는 젊은이가 처음에는 고맙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길에 대한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앞뒤 재지 않고 성급하게 추종의 고백을 던지는 그에게 자신을 따른 다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일러주어야 할 책임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여보게 친구,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네의 결심과 의지는 내 고맙게 여기네. 허나 나를 따른 다는 것의 의미를 아나? 그것은 외로움이 연속일세. 무수히 따르는 군중 속에서 가슴에 심은 진리 하나 부여잡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최후까지 투신해야만 하는 무척 고독한 투쟁일세. 때로는 사람들은 이렇게 진리를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대접하곤하지. 왜냐고? 그렇게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일세. 그들의 관습과 전통, 혹은 버릇들마저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바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과 울타리로부터 그처럼 진리를 전하는 이들을 몰아내기 일쑤이네. 때로는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겠지. 허나 사람들은 극히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기 마련이라네. 늘 그런 진리의 영역은 먼 나라 이야기로 돌리고 당장의 현실에서 나만의 이익에 충실하기 마련일세. 우리는 그런 이들을 상대로 그동안 지니고 누려왔던 특권을 포기하라고 외쳐야만 하는 걸세. 따라서 이러한 일은 한순간의 격정과 열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네. 오히려 끊임없는 인내와 외로움의 무게를 감당하겠다는 ‘생활화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일세. 생각해보게, 여우같은 짐승들도 돌아갈 제 집이 있다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들도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진리를 전하는 이들은 머리 둘 곳도 없다네. 왠지 아나? 그들이 진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네.”


예수는 짧은 언어 속에 자신을 따른 다는 의미를 가능한 포괄적으로 담아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는 뜨거운 가슴을 느끼며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겠노라 다짐하는 자신의 동료가 될 사람을 향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본래적 외로움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이러한 의도는 두 번째의 경우에 또다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예수께서 더 적극적이십니다. 예수께서 곧 다른 이를 향하여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나를 따르시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오히려 예수께서 서늘한 답변을 접하게 됩니다.


“선생님, 제가 먼저 물러가서 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아마도 당시 예수의 추종명령을 받은 이 사람은 막 부친상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손수 완수하겠노라고 전언합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의 관습상 지극히 당연하고 또 타당한 일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장례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상을 당한 경우에는 일상 속에서 언제나 반복해서 외워야 하는 신앙 고백문과 심지어 정해진 시간에 드려야 하는 기도마저 면제받을 정도이니까요. 이러한 관례는 후대에 이르러 상을 당한 이는 모든 율법과 계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해석까지 나오게 됩니다. 더군다나 직계 가족의 장례는 무엇보다 중하여 언제나 몸을 깨끗이 해야만 하는 제관조차도 부모와 가족의 장례는 손수 치러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중요하고 또 소중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겠다는 이의 심정은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네 죽은 자들을 장사 지내게 내버려두고, 당신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리시오.”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 대답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뜻밖의 답변을 던지신 예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지금껏 아무런 도전 없이 언제나 그럴듯한 진리로 대접받고 있던 통념을 단박에 무너뜨리시는 그분의 의도! 오히려 아직 제대로 된 사회적 규약과 법칙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자신의 신분과 안녕, 그리고 복지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가족 간의 돈독한 유대감일 텐데, 그래서 장례나 기타 가족의 경조사 참여는 본질적으로 심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마치 시기하는 이들의 언어처럼 써늘하게 토해내는 예수의 대답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예수의 대답은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의 통념과 질서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기존의 질서와 관습에 의존하여 살기보다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와 행동,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는 자리한다는 예수의 설명을 우리는 이 대답을 통해 읽게 됩니다.


이러한 예수의 의도는 세 번째의 경우로 곧바로 연결됩니다. 이번에는 제 3의 인물이 등장하여 예수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그러나 먼저 제가 제 집에 있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의 의지는 초지일관 오직 하나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성격은 기존 질서와 관습과는 철저히 단절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의존해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질 수 없으며, 그것을 끊어버리는 결심 없이 하나님의 나라는 요원하다는 것을 예수의 대답은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늘어지는 낭만주의의 달콤한 꿈속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예수의 뒤를 따르겠다는 것은 내 일신상의 즐거움과 기쁨만을 동반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신앙을 갖게 됨으로 마음에 지극한 평온을 얻을 수 있었노라”고. 또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가 내 안에 있어 나는 어두운 밤길에서도, 지독한 풍랑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혹은 이렇게 고백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그 일 때문에 나는 실패하던 인생이 반전하여 성공과 영광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그리고 때론 이런 소리도 들려올 겁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내 삶이 얼마나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찼는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다.”라는... 그리고 이러한 믿음에 대한 소식과 소리는 먼 나라 얘기만이 아닌 바로 가까운 우리 이웃들로부터도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입을 모아 노래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배워 바른 길가니 우리의 삶과 생이 언제나 즐겁고 평온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 같은 신앙인의 즐거운 삶을 따라가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입으로는 쉬지 않고 예수를 닮기 원한다고 조아리며, 아울러 그 때문에 촉발된 평온과 기쁨, 즐거움, 행복이 언제나 우리 안에 가득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저는 예수로 인하여 제 마음이 즐겁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만남으로 저는 이전에 없었던 고민과 번민, 그리고 혼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예수란 분을 내 삶의 근저에 초대함으로 저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 또한 느껴야만 했습니다. 보다 솔직히 터놓아보자면, 예수를 알고 난 후, 내 삶에 즐거움보다는 번민과 고민의 나날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 때문에 저는 보지 못하던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내 한 몸의 안위와 평온, 그리고 다분히 이기적인 가치관 속에 아늑한 일상을 보내던 내게 예수란 인물은 잊혔던 많은 이웃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이전에 내가 보지 못했던 수많은 이웃이 나의 무관심 속에 그들 역시 나처럼 느끼고 누려야 할 삶의 안위와 평온을 갖지 못했음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은 무너지며 요동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내 어미며, 형제요, 자매인가?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고 일갈하신 예수의 의도가 제 가슴에 박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란 분은 내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전에는 뜻하지 않게 생기게 된 선물에 큰 즐거움으로 펑펑 나름대로 기분을 내며 한턱 쏘기도 했지만, 이제 내 손에 들린 선물을 보며 나보다 이것이 더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살피게 되었고, 또 그들이 어디 숨어 이 같은 선물이 주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 두리번거리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맛있는 식사를 앞에 두고, 아직 한 끼를 누리지 못해 배곯고 있을 또 다른 나의 자매와 형제의 모습을 기억해내곤 눈물을 뿌려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때론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읊조리던 복음송 속에 실감나는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고 섬뜩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때론 저도 아무 반성 없이 예수를 닮기 원한다고 노래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닮을 예수의 모습을 제대로 목도한 다음, 난 그 노래의 무서운 의미를 온 몸 깊숙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닮기 원한다고 반복적으로 노래하던 그분 예수는, 이 천년 전에 갓 서른을 넘은 나이에 포근한 가정하나 제대로 꾸며보지도 못하고, 단지 하나님 나라를 설교했고, 또 그에 응당 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가장 흉측한 극형 중 하나인 십자가에 달려 명을 달리했습니다. 나무 위에 달려 신음을 토해내는 그분의 모습을 읽게 된 순간, 난 내가 닮아야 할 그분의 고통에 놀라 멀리 뒷걸음질 쳐야만 했습니다. 그분이 십자형 틀 위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받아야 했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슬픔을 목격했을 때. 난 신앙이 전혀 낭만이 아니며, 또 한순간의 꿈도 아닌 절절한 현실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가 느껴야 했던 그 섬뜩함! 그 후 전 예수를 닮겠다는 노래를 함부로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서 결정되어야 할 많은 것이 있어야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저는 신앙이 감성의 영역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이라는 것 역시, 내가 신앙적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것 역시 역사적 결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백하건대, 저는 예수란 분을 만남으로 더 큰 번민과 고민, 그리고 아픔과 갈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고개 들어 내 신앙의 그림자에 묻어있는 의미를 읽어보노라면, 그렇게 예수 때문에 받아야 했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번민, 고통 갈등... 그 모든 것이 꼭 아픔, 슬픔, 번민, 고통, 갈등만은 아닌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예수 때문에 받아들인 아픔, 슬픔, 번민, 고통, 갈등이 나를 더 키우고, 나를 더 즐겁고, 나를 더 평화롭게 하고, 나를 더 즐겁게 하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예수 때문에 촉발된 갈등과 격정은 숨죽이지 않고 있지만, 꼭 그 아픔이 아픔만은 아니었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지금의 저는 또다시 고백합니다. 예수란 분으로 인해 제게 찾아온 것은 참으로 섬뜩한 고민이었다는 것을. 이제 더 이상 예수는 신화나 전설이 아닌 역사이며, 따라서 나무 위에 달리기까지 우리에게 전하고자 애썼던 하나님의 나라 역시 현실이며 역사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를 따른 다는 것의 의미가 자리합니다. 이처럼 예수를 따른 다는 것은, 그의 고민과 고통, 슬픔과 아픔이 내 것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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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7)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나는 감신대학에서 4년 동안은 당신의 교수였지요. 그러나 당신이 감신대학을 졸업하고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걷는 동안 나 역시 교수직을 떠나서 성경 번역에 몰두해 온 지가 벌써 서너 성상이 지났습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은, 내가 당신의 학생이고 당신이 나의 교수라고, 나는 주저 없이 고백합니다. 현재까지 20여권이나 되는 당신의 저서를 통해서 배운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저서들은 내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그때그때마다 나를 생각해서 챙겨준 것도 아닌데, 마치 누군가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내게 일러바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면, 내가 당신의 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아는 내 주변의 극히 소수 중에 어느 누군가가 그 책들을 내게 줄곧 보내주었습니다. 하여 나는 그 책들 속에서 당신의 육성을 들으면서, 당신이 목회자로서의 당신 잘못을 뉘우칠 때(「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147-152쪽 특히 151쪽), 나도 그와 똑같은 나의 잘못을 뉘우쳤고, 당신이 하는 기도(병상에 누운 그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나는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의 손을 통해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달라’고, 159쪽)를 엿들으며 난처한 처지에서도 어떻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또한 당신 덕분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발견하였고, 성도의 교제에서 함께 나눌 메시지도 얻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목사안수례를 앞둔 이에게 주는 조언(109-117쪽)은 백미입니다. 나는 그런 조언에는 늘 실패해 왔습니다. 신학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지레 겁먹도록 예레미야가 소명을 거절했던 것(예레미야 1:6; 20:7)을 상기시키면서 신학 지원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겁박했는가 하면, 목회의 길로 들어선 둘째 아들이, 어릴 적, 암병동에서 사경을 헤맬 때는 하나님께 이 자식 제발 빨리 데려가시든지 빨리 살려주시든지 어서 결정해주시라고 기도했었지만, 그 아이가 목사 안수 받던 날은 이 아비는 이 자식이 당신을 섬기다가 거기에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은 목사 안수를 받는 아들을 격려한 것도 아니고 축복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오히려 위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목사 안수례를 앞둔 후배에게 해준 격려의 말들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다혈질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도자의 자세를 가지라고 한 것, 묵상과 기도를 위한 시간의 지성소를 만들라고 한 것, 파당을 짓지 말라는 것, 설교 언어에서 매너리즘을 피하라고 한 것 등은 그렇게 살아온 선배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니지요.



이번에도 독자들은 당신의 글을 탐독하면서 당신이 인용한 여러 철학자(사상가, 하이데거 외 13인),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디트리히 본회퍼 외 10인), 시인(강은교 외 국내 시인들 32인, 칼릴 지브란 외 외국 시인들 10인) , 여러 분야 작가(법인 외 한국작가들 10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외 외국 작가들 22인), 화가(렘브란트 외 10인), 오르겔 마이스터, 피아니스트, 사진작가, 영화감독 작곡가, 가수 수녀 등 각 분야 전문가(홍성훈 외 7인)를 만나서, 그들의 창작 세계가 주는 감동을 전달 받기도 합니다. 별도로 당신이 “아름다운 영혼의 성좌”(이용도, 루쉰, 토리, 김약연, 강순명, 마더 테레사, 톨스토이, 토마스 아퀴나스, 최홍준, 이세종, 토마스 머튼, 함석헌, 디트리히 본회퍼, 마하트마 간디, 원경선, 가가와 도요히코,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 김구, 전우익, 로제 수사, 이승훈, 앨버트 슈바이처, 이현필, 프란체스코, 이찬갑, 권정생, 윤동주, 유누스, 문익환, 안창호 등 245쪽)라고 일컫는 이들은, 당신의 신앙과 지성의 원천이기 이전에, 당신의 책을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준 이들이고, 생명의 빛을 반사한 별들이지요.


당신이 인용한 이들을 보다가 우연히 당신이 읽는 도서 목록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나라 안팎 어느 곳을 방문하든지 늘 그곳 역사와 관련된 인물을 찾는 당신에게서 우리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게 한 이들을 만나는 것도 은총입니다(예를 들면, 통영 방문기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에서는 유치환, 백석, 김춘수, 김상옥,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이중섭).


이뿐만 아니라 책에서 당신이 조형한 아포리즘만 거두어도 결실이 풍요롭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봅니다. 문맥을 떠나서도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생명은 스러져도 이야기는 죽지 않는 법, 이야기를 불멸로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기억에의 의지다.”(90쪽), “척박한 환경을 자기 삶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내면에 꽃이 피어나는 법이다.”(97쪽), “시혜자의 자리에 서는 순간 선한 뜻은 공적 쌓기로 전락하고 만다.”(100쪽), “칭찬을 구하는 이들은 실망을 추수하게 마련이다.”(100쪽),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숨은 불씨를 찾는 것이다.”(108쪽),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이다.”(126쪽),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오실 분의 삶을 이 땅에서 재현하며 사는 것이다.”(164쪽), “자기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 신앙 고백은 허망한 것이다.”(216쪽), “신앙은 ‘떠남’과 ‘따름’ 사이에서 형성된다.”(337), “과도한 욕망의 길 끝에는 수치가 있다.”(355쪽)


시절을 적는다, 세상을 읽는다


당신의 글을 읽다가 매 챕터마다 당신이 절기 코드를 적어 넣은 것을 발견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당신의 글을 <겨울 편>(14-82쪽), <봄 편>(83-189쪽), <여름 편>(190-264쪽), <겨울 편>(265-383쪽),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겨울 편>에서는 “소한에서 대한으로 넘어가는 이즈음”, “대한이 지났는데도”, “소한 추위가 지나더니”, “입춘이 지난 후”와 같은 언급을 봅니다. 당신이 당신의 글을 우리의 24절기에 맞추어 정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봄 편>을 보면, “접동새 우는 4월에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세월호 참사자들이 떠오르고, 5월이면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넋들을 떠올리게 되고, 6월에는 이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32쪽)고 하여 땅의 사건을 읽고 있고, <여름 편>에서는 다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소서가 코앞이어서”, “이제 본격적 무더위가…” “여름의 끝자락” 같은 코드를 숨겨 비와 바람과 태양의 열기를 읽고 있습니다. <가을 편>에도 “백로가 지나서인지”, “이 가을 날, 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추석연휴 기간 중에…”, “한로를 앞둔 절기여서…” 등을 언급하면서 하늘과 땅의 변화를 읽습니다. 어쨌든 당신의 글이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렇게 네 계절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골고루 편집이 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군요. 대림절부터 시작되는 교회력을 따른 것 같기도 하고… 잊혀가는 24절기를 당신에게서 다시 찾는다는 것이 소중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당신이 의식했든 안 했든 독자들은, 기후와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이 참으로 밀접하다는 것도 당신의 글에서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 공간 위의 삶과 역사를 관찰하면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하늘과 시절을 읽는 당신이 이번에는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내가 속한 독서회에서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을 읽는 적이 있습니다. 조지 기싱이야 영문학계에서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까 그의 여러 저서 중 하나를 읽나보다 했지만 책 제목에 나오는 ‘헨리 라이크로프트’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왜 우리가 그의 수상록을 읽어야 하나, 왜 또 그의 수상록을 조지 기싱이 써주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펴보니, 목차가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그의 유고 뭉치를 읽으면서 기싱은 적습니다. “나는 라이크로프트가 하늘의 상태와 계절에 순환에 언제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작은 책을 계절에 따라 네 개의 장(章)으로 나누기로 마음먹었다”(13쪽). 읽다가 보니 이 책은 조지 기싱이 죽기 전에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가상의 인물, 발음도 하기 힘든, 헨리 라이크로프트를 내세워 하고 있습니다. 자서전에 소설적 허구를 넣자니 그렇고 안 넣자니 무엇이 빠진 것 같아 아쉽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친구의 수상록 써주기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이미 당신의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에서도 당신이 “하늘의 상태와 계절의 순환에 언제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이번에 다시 읽어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함께 읽으며 2016년 봄과 사순절과 부활절을 함께 보낸 우리에게 준 메시지, 따로 인용하여 우리의 믿음을 성찰하고 싶습니다.


엄벙덤벙 살다보니 벌써 사순절 순례여정을 마감하고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네요.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고난과 슬픔과 연약함을 부둥켜안음으로 더 깊은 세계를 지행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삭발식을 거행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해주는 것이 산 자의 의무일진대 그들은 그 길조차 막혀 있어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자기만족에 겨운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거추장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103쪽).


「길을 잃으면 어때」라고 하는 마지막 장이, 이성복이 말하는 ‘장난끼’(285쪽)와는 얼마만큼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자못 심각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긴장했던 (당신은 늘 독자를 긴장시키죠.) 우리 독자들을 크게 웃게 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무장해제 하듯 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인연을 생각하면 길 잃음이야말로 은총이 유입되는 통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381쪽). 이 말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동시에 또 꺼지지 않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토박이말을 발굴하는 재미


당신의 최근 저서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일차적 관심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보다는 당신이 활용하는 우리 토박이말들을 정리하고 익히는 것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이것이 저자의 저술 목적이 아닌 줄 알지만, 아마 최근의 당신의 저서들, 《아슬아슬한 희망》, 《말씀의 빛 속을 거닐다》, 《광야에서 길을 묻다》 등을 읽으면서부터 생긴 내 버릇인 것 같습니다. 이번 책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도 또 어떤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이 책에서 활용되었는가 하는 것을 먼저 관찰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면 더 많겠지만 책을 절반까지 읽으면서 내가 찾아낸 토박이말 활용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미 아는 것은 빼놓고 아직 처음 본 듯한 것들만 적어 봅니다.


시난고난 애끓이지는 않을 겁니다”(18쪽), “마음을 도스르지 않으면”(26쪽), “자꾸 틀리게 부른다고 지청구를 듣곤 했습니다.”(33쪽), “신산스러운 삶의 경험이 없었다면”(36쪽), “요즘은 무지근한 어깨 통증 때문에”(49쪽), “오늘도 희떠운 소리가 많았습니다.”(59쪽), “나뭇잎은 이미 오가리 들어 있고”(65쪽), “선들어진 발걸음으로 걷는 젊은이들”(67쪽), “어른들의 모습도 오련하게 떠오릅니다.”(69쪽), “그 소리를 따라 무람없이 걷다보면”(73쪽), “진동한동 다니느라 거칠어졌던 호흡이 가지런해지고”(77쪽), “특별한 장식이 없기에 그 공간은 오히려 깔밋하게 보였습니다.”(79쪽), “나는 그분의 느르심을 흔감하게 경험하였습니다.”(79쪽), “울가망하던 마음이 조금은 거늑해졌습니다.”(79쪽), “단정하고 뜸숙한 글씨는”(80쪽), “마당가의 살피꽃밭을 살피게 됩니다.”(83쪽), “앙버티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90쪽), “엄부렁한 내 삶의 실상을”(92쪽), “여전히 여줄가리에나 집착할 뿐 깊은 곳에 당도하지 못한 채 어뜩비뜩 걷고 있는 내가”(92쪽), “서리 내린 밭에 남아 있는 희아리”(93쪽), “움씨를 뿌리는 마음”(95쪽), “아무리 겨울의 뒤끝이 무작스럽다고는 해도”(125쪽),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126쪽),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너름새가 절로 드러난다.”(139쪽), “무작스런 말본새와 태도로 남의 속을 건드리는 이들”(139쪽), “저는 목사님을 뒤흔들었던 혼돈을 아령칙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140쪽),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147쪽), “툽상스러운 듯하나 씩씩하기 이를 데 없는”(148쪽), “그 동안 현실 주변을 베돌기만 한”(148)쪽, “무작스럽게 쇄락의 방향으로 나를 잡아채는”(152쪽), “내 정신노동이 힘겨웠노라 언거번거 말할 수 없습니다.”(158쪽) “더덜뭇한 성격 탓에 삶의 비애만 가중되고(162쪽), 불쾌한 일들로 인해 오갈든 마음을 미소로 어루만지십시오.”(165쪽), “요셉의 눈길은 지며리 예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172쪽) 등등.


언젠가 한 번 내게 말해준 적이 있지요? 당신도 이런 토박이말을 만나면 어느 경우에 어떻게 쓰는 말인지 충분히 알아서 예문들을 많이 만들어서 사용해 보고, 그래서 어색함이 없을 때 자신의 글에 활용한다고…. 내가 아는 문인 중에 시나 수필 전문을 토박이말로만 쓰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번역본이 따로 있어야 읽겠던데, 당신의 경우는 독자들이 토박이말에 흥미를 가지고 다가가며 배워보겠다는 끌림을 주니, 대단히 교육적인 면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토박이말 사전(<재미있고 순우리말 사전>,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및 단어 모음>)에도 안 나오는 낱말들은 당신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책으로 엮어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이처럼 여러 좋은 대목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 기꺼이 당신의 학생이 되어 배울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같은 시공간에 이처럼 배움을 나누는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리하여 내게 즐거움입니다.


올 여름이 뜨거운 만큼 다가오는 또 다른 계절은 그 아니 좋지 않겠습니까? 부디 좋은 시간 속에서 함께 만납시다. 만나 즐거울 때까지 안녕하기를.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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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6)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목사님이 쓰신 편지글을 읽으며, 지난 한 주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홀로 지내는 공간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셨다니, 수도자로서의 금욕이 목사님에게는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글 「움씨를 뿌리는 마음」 편에서 ‘‘흔들림’과 ‘젖음’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과 연결 시켜주는 촉매인지 모른다”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그것을 읽으면서 살짝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된 일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그 얘기를 서두에 놓습니다.



절망의 핏빛 노을


1967년, 초등학교 4학년 초봄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어떤 일로 홀로 귀가하던 중에 텅 빈 신작로 위에서 노을이 져 온통 붉어진 세상을 만났습니다. 미루나무가 촘촘히 늘어선 신작로 저 끝 지평선 아래에서 태양이 터져버린 것처럼 세상은 온통 붉었습니다. 생전 처음 본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무슨 계시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 뜻을 발견하지 못하면, 곧 내려질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뻘건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신작로 저만치 어딘가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나는 망연히 그 지평선 끝을 바라보며 서늘한 공포 속에 서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지, 그곳에 내가 가야할 집이 있기는 한 것인지.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물론 그 정경만이 자아낸 공포는 아니었지요.


저는 교회 옆집에서 자랐습니다. 교회와 우리 집 사이에는 호박돌을 넣어 흙을 빚어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토담이 있었습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 고풍스러운 담장이 어느 해 장마 때 기와 사이로 빗물이 스몄던지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담이 무너지는 큰 일이 벌어졌는데도 웬일인지 아버지나 어머니는 무심했습니다. 교회와의 사이에 있던 담이 무너졌으니 축복이었을까요? 담이 무너지고 난 뒤 그 흙더미가 치워졌을 뿐, 한동안 교회와 우리 집은 서로 트인 채로 지냈습니다. 그 전에도 담장 위로 떡 접시나 계란 꾸러미 같은 것이 넘나들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것들이 이제는 당당히 뒷마당을 가로질러 걸어서 넘어 다니게 된 것이죠. 아버지나 어머니는 교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네와는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담이 무너진 뒤 저는 간혹 트인 교회 쪽을 흘깃거리며 지냈는데, 어느 날인가 마당을 쓸고 계시던 목사님이 저를 보더니 넘어 오라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마 계시 받은 손짓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은밀한 손짓에 홀렸습니다. 그리고 넘어간 그 길로 ‘교인’이 되었습니다. 돌아올 때 제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신자가 아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한히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나쁜 짓은 못할 것’이라고 소곤거리시는 걸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손짓에 홀렸으므로 그것은 제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책임질 일 없는 손짓이었고, 손해 볼 일이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그 절망의 핏빛 노을 속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낮잠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마저 집에 안계셨으므로 아주 심각하게 늦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급했으므로 ‘어제’ 메고 온 가방을 그대로 멘 채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너무 일찍 온 모양이더군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여유가 생겼습니다. 게을러 지각을 밥 먹듯 하던 저로서는 그 망중한이 꿀처럼 달콤했습니다. 창 가득 들어오는 햇빛을 돋보기로 끌어 모아 습자지를 그슬리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해는 점점 짧아졌고, 습자지에 들이민 돋보기에서도 햇살은 멀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시간을 의식하자 어리숙한 영혼은 혼란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늪처럼 갈앉은 의식을 헤집어 가까스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 하나를 거두었습니다.


어두운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나의 의식을 가득 장악한 이 날의 ‘아침’과 ‘저녁’의 혼란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각한 것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간단했겠지요, 하지만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 동안 저는 여전히 그 ‘현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섭게 붉어진 노을을 마주하고서도, 아침에서 저녁으로 건너뛰고 낮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미망. 무엇인가가 닥쳐왔는데, 모른다는 것. 이것이 내게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을 보았고, 그것이 바로 ‘미망’이었습니다.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것. 목사님의 편지글을 읽다가 전율이 일었던 것은 그날 그 미망의 깊이가 주었던 두려움이 저의 존재의 근원과 연결시켜주는 촉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무슨 보상처럼 타지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일찍이 출가했던 누이들과 도시에 유학 중이던 형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설날이거나 추석이었으면 이해할 수 있을 일이었습니다.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


얘기를 하다 보니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활성화 신호를 기다렸던 억압된 기억’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 사건입니다. 그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입대를 앞둔 청년이어서 영장을 받아들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초입은 언제나 광주역이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광장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 서 있던 탱크를 보았습니다. 그걸 바라보며 서 있는데, 중년의 한 사내가 달려와 저를 낚아채 택시에 태웠습니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의 말을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창백한 정경들이 그것의 답이었습니다. 택시는 제가 가리킨 광주 발산의 누이 집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누이는 택시기사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저를 작은 골방에 밀어 넣고는 꼼짝 말고 거기 자빠져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누이의 명령대로 하룻밤은 꼼짝하지 않고 지냈지만, 여전히 그렇게만 자빠져 있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 광주천 뽕뽕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가니, 제 앞에 트럭 한 대가 와서 멈춰 섰습니다. 트럭 뒤에는 피투성이가 된 시신 두 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바로 뒤따라온 버스를 타고 도청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이틀을 더 있었고, 그곳에서 듣고 본 것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 5·18 광주 민주화운동 – 으로 저의 입대가 미뤄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온 저는 1980년 그 늦봄, 서울의 그 평화가 낯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낯설고 또 낯설었습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조용한지요?” 하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느라 가슴에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그 평화가 아니라 홀로 공포에 사로잡힌, 세상의 질서에서 비껴 앉은 저 자신이 아닌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교회 주일 예배에 앉아서도 저는 홀로 섬처럼 낯설었습니다. 1967년 그날 그 운동장에 깔리기 시작했던 땅거미처럼 두려웠습니다. 저는 낯선 그것과 맞서서 점점 더 큰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속에서 질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진실은 오래전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던 ‘아침’과 ‘저녁’처럼 멀리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공허만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핏빛 노을 속에 있었습니다. 미망迷妄입니다. 헤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령’이나 ‘부활’의 기호 안에서는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일이었으니, 그 안에 들어 있을 복잡한 질서들을 경외할 뿐이지요. 그것을 체험한 고백은 제게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들은 신앙을 자신들의 지배에 효율적이게 하는데 이용해 왔습니다. ‘믿고 받드는 마음’을 조작해 내는 데에 그 신비한 무엇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미륵이나 재림 예수까지를 말하지 않아도 작은 것들이 숱하게 우리 현실 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저지른 짓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에 견고한 무엇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그 미망을 깨는 일에 유용했던 것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생명의 신비》나 리차드 리킨의 《오리진》 같은 책이었습니다. 제 이십 대의 동반자들입니다. 그것이 질서를 잃어버린 나에게 준 것은 어떤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를 거기에서 읽었습니다. 미망을 걷어내는 데에는 그 메시지가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질서를 말하고 있었고, 그 질서와 질서 사이에 숨어 작동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을 제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 어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빛과 어둠이 있는 그 곳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빛과 어둠이 있는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아느냐?(욥기 38:18-21).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입니다. 내게는 그 빛이 그날의 아침이고, 그 어둠이 그날의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습니다. 오직 점이었습니다. 그 점에 관해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중략)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하나님이 칼 세이건을 통해 이 말을 제게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나고 강고한 질서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에 제가 겪었던 그 미망에 대응할 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입니다. 봄이 되어 한 포기의 풀이 자라고, 그것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는 질서가 주는 메시지를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족입니다만, 저는 위에서 1967년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 가득 가족들이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집에 어머니가 안 계셨던 것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둘째 형의 전사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러 가셨기 때문이었고, 가족들은 그 부음을 듣고 온 것이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렸던 그 낮 동안 ‘창백한 푸른 점’에서 벌어진 혼돈 속에서 형이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님께 드리는 제 첫 편지입니다. 목사님께 드리는 첫 편지에서 이런 신앙고백은 마땅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저는 이 표어 덕분에 무엇인가를 정해야 하는 판단을 앞두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제게 큰 축복입니다. 미망을 밝힐 등대니까요. 이 더위 속에서도 서재의 에어컨은 꺼져 있을 때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명행/소설가, 《대통령의 골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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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5)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강렬한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한여름 오후입니다. 멀리서 여름새가 청량한 울음소리를 가끔 낼 뿐 시골의 한 여름은 고요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두루두루 편지를 보내셨고, 세상사 질곡 속에서도 희망을 묻곤 했던 저 또한 이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샛노란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목사님을 처음 만났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아스라한 청파동 거리의 추억


김삼웅 선생님이 쓰신 《김남주 평전》이 마침내 발간되고 난 뒤, 출판사에서는 북 콘서트를 기획했었지요. 김남주 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광주에서 한 차례 열린 북 콘서트는 서울에서도 한 차례 열렸었지요. 서울에서의 북 콘서트는 목사님이 계시는 ‘청파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저나 김남주 시인 둘 다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기독교 관련 책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 것도 목사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김남주 시인의 평전을 낸 데다가 교회에서 북 콘서트까지 하게 되니 저로선 이 일들이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어느덧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잊힌 인물이라 생각했고, 또 투쟁과 혁명을 이야기 하던 세태도 한물갔으니, 지금 시점에서 그에 관한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7, 80년대와 같은 저항과 혁명의 시대에나 읽히던 시인의 삶을 담은 평전을, 더구나 극단적으로 보수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상 그의 평전이 읽힐 것을 기대하는 출판사가 있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꽃자리출판사의 한종호 목사님은 선뜻 책을 내 주셨고, 출간기념 북 콘서트까지 한다는 것은 저로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에게 이런 홍복이라니요! 그런데 북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가 청파동에 있는 교회라는 말을 듣고는 저는 잠깐 흥분했습니다. 청파(靑坡)! 지금은 고루하고 낡은 이름처럼 들리지만 빛나던 청춘의 한때, 저를 성장시키던 장소가 청파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북 콘서트뿐만 아니라 수십 년 만에 청파동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참 많이 설레었습니다.


목사님도 저처럼 젊은 날을 추억할만한 장소가 있으시겠지요. 백발을 머리에 인 지금 생각해보면 유년기와도 같았던 스무 살 적. 그때는 고뇌조차도 참 예뻤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 손에 책을 들고, 저는 미술관과 음악회를 찾아 털털거리는 버스를 탔더랬지요. 저의 무수한 발걸음이 찍혀 있을 긴 청파언덕…, 그 언덕을 더듬거리며 추억해 보면 여지없이 스무 살, 그 빛나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갑니다.


가난한 여대생이라 눈요기로만 훑어보던 예쁜 옷을 팔던 옷가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아 있는 교문 앞에서 사 먹곤 했던 오무라이스…, 그땐 작은 일에도 참 만족해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젊은 날의 그 시절은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지요. 4년 내내 툭하면 계엄령이고, 여차하면 닫히던 교문 앞에서 터트리던 울분과 한숨의 나날도 빼곡히 기억 속에 스며있습니다. 닫힌 교문을 뒤로 하고 들어선 음악다방에서 전 무엇을 그리도 기다렸던가요? 그 기다림 속에서 툭툭 터져 나오던 속울음 같은 그 외로움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그 청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전 북 콘서트가 열리는 ‘청파교회’ 거리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거리와 동네가 거대해지고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로만 존재가 가능한 서울에서 아직 동(洞)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청파동과 청파언덕 길은 크게 달라보이진 않았습니다. 예전보단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숨이 좀 막힌다는 것 외엔 그다지 낯설지도 않았어요.


갈월동 길도 여전했고요. 그 길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서울역이었지요. 학교에서 쭉 걸어 내려오면 남영동 버스 정류장이 있고…, 아 그리고 극장이 있었지요. 남영동 금성극장이었던가!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빠와 처음 같던 곳이 바로 그 극장이었습니다. 전 거기서 <마음의 행로>, <황태자의 첫사랑> 등의 영화를 봤었지요.


지금도 그 극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전철역이 들어섰고 남영전철역 곁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창문 없는’ 검은 건축물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거기, 한 줄기 빛조차 숨죽여 들어가게끔 설계된 창문과 완벽한 방음 시설을 갖춘 ‘검은 건축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거기서의 비명과 죽음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는 그 건축물 곁을 스치는 무심한 전동차도 다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빠들과 함께 자취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청파동이었습니다. 여상 출신이 어쩌다 대학시험을 보게 되는 바람에 4년간 긴 청파언덕을 오르내리게 되었고, 질식할 것만 같은 70년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한 목소리를 보태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 끝에 도착한 곳도 청파동 아랫동네인 남영동 그 창문 없는 검은 건축물이었으니, 참 저에겐 인연이 깊은 ‘청파’고, 고유명사로 남아 있는 ‘남영동’입니다. ‘청파’교회 앞에 서니 만감이 회오리바람처럼 제 몸을 휘감더군요. 그 쓰라리던 기억을 또 떠올리게 하던 청파동이었습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도


김 목사님, 저는 교회와는 무관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교회 혹은 절이 어디나 널려 있어 몇 발짝만 옮기면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될 수 있는 게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 형편이지요. 제가 시골생활을 한지가 20여 년인데 옆집 아주머니는 지금도 호시탐탐 저를 교회에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십니다. 또 저의 집에서 차를 타면 십 분 거리에 절들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만 절에 가는 날라리 불교 신자이긴 하지만 큰 스님에게 수계를 받은 적이 있으니 저는 불교 신자에 가까운 편이지요. 아무튼 신앙을 갖는다는 건 엄청 부지런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전 게으르기 짝이 없으니 진정한 의미의 신앙인이 되기는 글렀다고 치부하며 제 자신을 합리화해 봅니다.


아무튼 《김남주 평전》 북 콘서트 덕분에 교회도 가고 목사님들도 만나고, 또 김 목사님과 손석춘 교수님이 주고받은 글을 책으로 엮은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도 받는 혜택도 받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저는 북 콘서트 공간이던 청파교회, 한 뼘도 안 되는 낮은 강단의 오래되고 작은 교회가 주는 감동을 가슴에 품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김 목사님과 손 교수님이 주고받은 서간집을 곧바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세상을 바꾸려는 분들이 계시구나 하는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거기에 동감하는 마음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기에 이번에 목사님이 펴내신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란 책을 받아 읽으니 왜 청파교회가 김남주 시인을 받아주었던가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는 동안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목사님의 사유와 문학, 기독교적 실천을 통한 목회자로서의 고뇌가 오롯이 표현된 편지글들은 제게 그런 감동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으론 목사님의 문장도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표준어로만 사고하고 글을 쓰는 세태 속에서 예스런 표현의 낱말을 곳곳에 품은 글을 읽으니 제 마음이 마치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욱이 목회자의 사유를 통한 시적 언어와 간간이 스며있는 고유어들은 마치 중세 고음악을 듣는 듯한 고아함과 격조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목회자의 글을 거의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조금 남달랐습니다. 마치 시를 조곤조곤 읽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나뭇잎에 내리는 가랑비 같은 음성으로 성경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또 안개가 잔뜩 낀 아득한 도로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 희망만을 얘기할 수 없어서인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도 같다고나 할까. 목사님의 편지글을 읽는 동안 뜨거운 더위가 무색하게 서늘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중학교 3년간 다닌 미션 스쿨의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정신의 편력과 독서의 이력이 겹쳐져 반갑기도 했습니다. 함석헌, 돔 헬더 까마라, 본회퍼, 김수영, 테니슨의 시, 토카타와 푸가, 몰리에르… ‘청파교회’가 장소에 대한 기억이었다면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 책은 저에게 문학과 종교, 학교와 사회,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추억을 담은 앨범 같은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새카맣게 잊고 있었더군요. 제가 한때 밤을 새워 성경을 읽었다는 것을요. 빨간 줄을 쳐 가면서 말이죠. 그것도 열다섯 살 때 말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그때 저는 교과서보다, 아니 고교진학 공부는 안중에 없었고, 어떻게 하면 일 년 간 신약과 구약을 다 읽을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곤 했던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간 중학교가 기독교 학교라서 수업 시간에 성경을 배웠고, 수요일엔 교시에서 토요일엔 대강당에 모여 전교생이 예배를 보았습니다. 교회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아멘!’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서 ‘아멘’하곤 했었지요. 성경을 배우는 시간은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토요일 대강당에서 예배를 보는 것은 수업시간이 적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배시간엔 큰 언니들이 앞에 나가 배에다 잔뜩 힘을 주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 - 소프라노, 엘토 이런 것을 그때 알았지요. - 이 있었는데, 그 시간은 그냥 좋았습니다. 그때 노래를 참 잘했던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나중에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되었고,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미션스쿨에서 이러한 예배를 보는 것이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쯤 지날 무렵 저는 점차 회의가 들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볼 때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쩌구 저쩌구…”하는 내용을 들으면 저같이 신앙심이 없는 애들은 “으악!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란다!”하면서 귓등으로 설교를 듣기 시작했지요. 목청을 높여 “우리 죄인들은…” “우리 원죄를…” “회개하고 회개하라…”며 부르짖던 부흥회는 소녀들의 가슴에 새겨지려던 신심을 외려 달아나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러한 풍경은 저를 중 3학년이 되자 예배시간에 가지 않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짓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만들었지요.


저에게 있어 성경읽기란 순전히 오기로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서울의 학교로, 오빠들 곁으로 보내려고 했었는데, 저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서울로 안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해 공부대신 성경읽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소설처럼 재밌지는 않았지만 공부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것 마냥 술술 진도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선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글 행간마다 자꾸만 의문부호들이 떠올라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실까? 불의 심판은 왜? 예수님은 귀신을 왜 돼지에게?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수업시간에 왜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는 거야? 그리고 목사들은 왜 우리에게 죄인이라고 하는 거지?…그런 질문들이 성경을 읽을수록 생겨났습니다.


구약을 삼분의 이쯤 읽었을 때 저의 중학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울의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구약읽기를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성경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들이 저를 놓아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시공부를 하지 않는 상고생의 지루한 일상은 책으로도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가끔 교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으로 빠져든 것만큼 교회에 빠져들지는 않더군요. 교회조차도 소심했던 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루하고 긴 저의 상고생의 3년이 흘러갔고, 선생님은 제게 왜 상고에 왔냐며, 대학진학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션스쿨에 다녔던 3년간의 기억이 어쩌면 남다른 생각을 하게 한 계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을 때 전 제가 받았던 초벌교육(중학교 교육)의 현장인 그 시골 중학교를 늘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사학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문득 수십 년 전의 그 미션스쿨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전교생이 다 들어가는 대강당이며 그랜드 피아노가 있던 음악실, (그 음악실에서 입학 후 첫 음악시간에 슈베르트의 <마왕>을 들었지요. 음악대학을 나온 선생님이 레코드를 틀며 설명해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일은 제게 서양음악을 좋아하게 하는 단초가 됐던 것 같습니다.)각각의 방에 따로 피아노가 있는 다섯 개의 레슨실, 큰 교실에 가득했던 책들, 전 거기서 하이네 아뽀르네에르 같은 시인을 알게 되었고, 《전쟁과 평화》같은 소설을 읽었습니다. 미술실에서는 미술반 언니들이 그림을 그렸고, 우린 때때로 학교 뒤편에 있는 향교로 야외 스케치를 나가곤 했었지요. 발레를 전공한 체육 선생님 덕분에 연말에 열리던 추수감사절과 성탄 행사에 무용반 언니들의 발레 공연도 볼 수 있었지요. 아 그리고 체육 행사 때에는 고등학생 언니들이 포크댄스 경연대회를 열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이처럼 저의 중학교 생활은 음악과 미술을, 역사와 문학에 흠씬 젖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에 대한민국의 어떤 중고생들이 ‘백조의 호수’에 맞춰 무용을 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가요? 훗날 들은 바에 의하면 그때 제가 다녔던 학교가 경기도내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여학교라 근동의 여학생들이 선망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지방학생을 위한 기숙사와 여학생 예절을 위한 수련관을 따로 마련한 곳, 여학교에 맞게 발레 전공자를 체육 교사로 채용하는 세심함을 갖춘 곳이 어디 그 시절에 흔했을까요?


그런데 한편 당시 교장 선생님은 그 지역에서 욕을 많이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욕은 주로 미국사람한테 잘 보여 목사가 되고 교장이 됐다는 것이고 교장이 되더니 너무 거들먹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안 되었을 때인데, 목사가 되고 교장이 된 그에게 돈 많은 미동북부 북 감리교 할머니들이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엔 늘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고, 대강당에서 그 할머니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합창, 발레, 성극 등을 공연하고 시화전 그림전시를 하고는 했습니다. 당시 그 교장이 예수를 팔고 하나님을 팔아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서 돈을 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명색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육 사업을 하는 현재의 사립학교 운영자들과는 비교조차 안 될 겁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들이 지금 어떤 프로그램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온갖 부패와 부정의 온상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그때 그 학교 교장을 ‘코빨갱이’라고 욕하고 비난했던 그 읍내 사람들의 비난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것입니다.


햇살이 좋던 오월, 옛 성터에 올랐던 봄 소풍, 그 산정에서 듣던 교장선생님의 기도와 설교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그때 그 교장 선생님은 설교 중에 이 성서 구절을 들었지요.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라. 심고 가꾸지 않아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고…” 이 구절은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언제 들어도 참 좋습니다.


그때 산정에서 보았던 그 풍경, 발아래는 저 멀리 근동의 온 들판이 펼쳐져 있었지요. 그때 저는 열세 살, 갓 피어난 새싹이었습니다. 어리고 여리던 그때 내 머리에 쏟아져 내린 예술의 축복, 교육의 세례는 지금의 저를 키워낸 원형질이 되었습니다.


읍내 한 가운데 우뚝 선 교회 첨탑에서 울려 퍼지던 <저 높은 곳을 향하여>란 찬송가는 제가 좋아하던 곡이었습니다. 그 찬송가는 저의 정신의 지향점을 위로 향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그 노래는 끝까지 따랄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에 들린 귀신을 돼지한테 쫓아낸 예수님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 든 그 의문들은 종교와 신앙, 세상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의문들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 의문들 때문에 숱한 밤을 지새우고, 책을 찾아 읽었었지요. 그리고 그를 통해 아픔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으리라던 그때 그 다짐이 제 생의 길목에 흔적으로 꽃피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김 목사님, 지면을 통해 이렇게 다시 불러봅니다. 목사님이 주신 편지 덕분에 추억의 한 자락을 펼쳐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끝인사를 드리려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 아쉬움은 반쯤 접어두겠습니다. 이 팍팍한 시절, 무심한 듯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이 세상에 아직도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을 찾아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는 목사님의 간절함이 들릴 듯합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마당가로 나가 흙바닥에 주저앉아 풀을 뽑습니다. 어느새 웃자란 풀들을 하나씩 뽑으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나쁘지 않습니다. 오늘은 바람조차 없네요. 어느 새인가 마당가에 백합화가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백합화의 달콤한 향이 따가운 햇살 속에서도 살며시 전해집니다. 목사님께도 백합화의 은은한 향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더운 여름에 지치지 마시고, 늘 건강하시길….


박광숙/고 김남주 시인 부인, 《빈 들에 나무를 심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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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4)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도무지 ‘내 삶’에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절박한 물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네요. 유학 생활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내면을 옥죄고 있을 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스러움과 공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끈질기게 갈마들면서 영혼을 갉아먹고 있을 때, 그때 받은 목사님의 편지를 오늘 다시 읽어 봅니다. 그저 ‘나의 삶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의 주저앉은 마음을 북돋워 주었던 글입니다. 그 편지를 천천히 읽고 또 읽다 보면 마음이 가지런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솜씨 좋은 농부의 호미질이 지나가면, 어지럽게 뭉그러져 있던 흙더미들이 단단하고 단정하게 북돋워진 이랑이 됩니다. 목사님의 편지를 읽는 일이 꼭 그런 일입니다.


글에서 들려오는 ‘몸의 소리肉聲


고전어라는 산을 다 넘기도 전에 조급증에 시달리던 저의 마음을 목사님의 편지는 다정하게 타이르셨지요.


“너무 서두르지 말게. 서두른다고 빨리 가는 건 아니더라구. 물론 목표는 잃지 말아야 하지만, 무딘 도끼로 나무를 찍는 것보다는 날을 세워서 찍는 것이 지혜 아니겠는가? 마음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남는 건 자기연민이거나 분노이기 십상이지.” “지극정성이란 결국 ‘지금 여기’에 마음을 모으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점 하나 하나를 찍어 형태를 이루는 점묘법처럼 우리의 하루가 충실해야 인생도 충실해지는 법인데….”


그러면서 목사님의 글은 슬며시 나의 시선을 나의 문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유도하셨지요.


“어제는 산에 다녀왔네. 고난주간이긴 하지만 그저 사무실에 있으면 울적해질 것 같아서였어. 도심에 가깝긴 하지만 산에 피어난 꽃들은 어쩌면 그리 맑고 고울까. 종일 노랑제비꽃과 눈맞춤을 하면서 산을 걸었네. 우리의 삶은 자연을 향해 계속 걸어가야 온전해질 수 있음을 몸으로 느꼈네.”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듣다가 그 한음 한음이 이루어내는 어울림에 사로잡혔다네.”


이윽한 귀 기울임, 곡진히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목사님의 충고는 차라리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고스란히 내맡긴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담담한 심경은 그 자체로 노래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글을 읽는 사이에 조금씩 온기를 되찾은 저의 내면을 향하여 매번 힘찬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눈 밝고, 귀 밝은 사람이 필요한 법이라지. 우리 정신 차리고 사세!” “히브리어와의 연애에서 얻은 기쁨이 무더위를 넉넉히 이기는 힘으로 전화되기를 비네.”


독일의 작은 대학도시 튀빙겐의 허름한 기숙사에서 목사님의 편지를 읽고 있던 저는 젊기만 했습니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써주신 희망의 ‘목소리’는 저의 눈빛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부치신 편지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편지 속에서 어떤 솔깃한 대안이나 정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희망을 끄집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편지글을 따라 읽어가는 사람마다 그 글에서 들려오는 ‘몸의 소리肉聲’에 문득 눈빛이 밝아짐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눈으로, 머리로 읽기를 멈추고 편지글을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저만치 어딘가에서 온몸으로 어둠과 부딪쳐 파란 불꽃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가슴에 돋아나는 절망을 도려내고 다시금 길을 떠날 용기를 얻습니다(341-342쪽).



세속 먼지 뒤집어쓴다 해도 정신은 흩어지지 않는 법


목사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라고 하셨죠? 그러면서 그 “그리움은 ‘너’의 빈자리가 강하게 환기시킨 마음의 공허”(5쪽)라고 적으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유대인 사상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와 너Ich und Du》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온 존재를 기울여 말 건넬 수 있는 ‘너’와의 만남 혹은 관계, 그것은 목사님의 많은 편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붉은 줄 아닐까요? 편지를 비롯하여 모든 형태의 글쓰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만 목사님은 그 언어보다 근본적인 것, 곧 “서로의 마음에 가 닿으려는 절실함과 진정성”이야말로 부버가 말하는 ‘근원어Grundwort’일 거라고 진단하셨지요(339쪽).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경험으로 구성되는 근원어의 균형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세상에서 인간다움의 온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안전 불감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유일무이한 ‘너’를 느끼지 못하는 증세가 더 큰 문제입니다. 공감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전’은 오히려 섬뜩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안전해 보여도 “그곳은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죽음의 벌판”(143쪽)입니다.


목사님의 편지들을 읽다가 다시 한 번 《나와 너》를 펼쳤습니다. 아예 목사님의 편지글과 포개놓고 읽었습니다. 제2부 〈사람의 세계〉에서 마르틴 부버는 ‘너’의 세계가 마비된 ‘그것’의 세계를 구석구석 소개해줍니다. ‘그것’에 갇혀 사는 사람들, ‘그것’의 세계에 만족하는 삶의 면면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이용하려는 욕망만 있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힘은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특수성을 탐닉하고 자기라는 허상에 집착하며 그것을 숭배합니다. 참된 ‘너’를 만나지 못하는 ‘나’는 순간적인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꼭 우리시대 도시인들의 모습 같다고 느꼈습니다.


놀랍게도 《나와 너》 초고가 나온 해가 1916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의 일이네요. 온갖 갈등과 모순이 끔찍한 전쟁으로 터져 나온 시기에 부버는 인간다움의 알짬을 ‘나-너’ 근원어에서 찾아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처럼 지독한 ‘나-그것’의 세계에 포박된 우리가 어떻게 ‘나-너’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부버는 말합니다. “오직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는 ‘전환Umkehr’ 곧 ‘돌파Durchbruch’가 있을 뿐이다.” 이 말은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뜻하는 히브리어 ‘테슈바(תשובה Teshuvah)’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전환은 아무래도 수평적 차원의 돌이킴이 아니라 저 하늘을 향한 온 존재의 솟구침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테슈바’를 묵상하다가 나에게 와락 닥쳐온 시구가 있었습니다. “세속 먼지 뒤집어쓴다 해도 정신은 흩어지지 않는 법 / 자신 속으로 밀리게 될 때는 돌파하라, 위를 향해!”(요한 볼프강 폰 괴테, 〈타리스만〉 중에서) 장쾌한 시어입니다.


아등바등 일상을 기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홀연 비상飛上의 의지를 일깨우는 글들이 있지요. 제게는 목사님의 글이 그랬습니다. 때로는 먼저 힘차게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독수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아득한 고공비행을 앞두고 시계視界를 조망하는 독수리의 눈매가 저를 상쾌하게 긴장시켰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고진하 목사님의 시 〈독수리〉를 처음 읽었을 때(1997년)나 지금이나, 거기 ‘김기석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독수리는 지상의 온갖 번뇌에서 

잠시 발을 뗀 은수자처럼 보인다, 막 

털갈이를 끝낸 듯 야윈 몸뚱어리에서 

번져 나오는 은은한 광채!


어쩌면 목사님은 이 시 앞에서 손사래를 치시면서 ‘그거, 다 젊을 때 얘기야.’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썩은내 풍기는 사체 속에 부리를 / 처박고 사는 生일지언정, 드러난 부분보다 / 감춰진 것이 많은 것이 삶인 것을” 치열하게 증언하는 목사님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청년의 기백, 감투敢鬪의 기상이 서려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젊은 날의 영문 모를 열정과 작별하지 못한 것”(315쪽) 같다고 하셨죠? 그런 목사님이 친근하고 좋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있다면 길들여진 젊음”(323쪽)일 것 같다고 하셨죠? 그런 목사님의 매서운 질타를 양약良藥으로 받아들인 젊은이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자기만의 날갯짓을 훈련할 것입니다. 시인은 막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김 목사님에게 헌정된 시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아직 날아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푸르고, 넓고, 깊은 하늘을, 정적靜寂을

겹겹이 접어 잿빛 날개 속에 묻고 있을 뿐

(고진하, 《우주배꼽》, 세계사 1997).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이 바야흐로 높이 날아오르셨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날고 있었지. 깊게 더 깊게, 지금도 독수리는….’



번역 시학詩學 poetics의 미학


그런 목사님 곁에서 꽤 일찍부터, 꽤 오랫동안 목사님의 목회를 보고 배웠지만, 저는 3년 전 비로소 늦깎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시작한 지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지요. 제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할머니께서는 제가 주님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는데 마흔을 넘긴 나이에 안수를 받았으니 나름 버틴다고 버틴 셈입니다.


목사님께서도 “부름 앞에서 주저하며 자꾸 뒷걸음치던”(112쪽) 마음이 있었다고 하셨지요. 목사가 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까 심각하게 궁리할 때마다 제게 떠오르던 직업은 번역가였습니다. 알량한 외국어 실력이었지만 제 삶에 이력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그것밖에는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치열한 번역 노동은 제가 수년 간 경제적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알뜰한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치고 들어가 정신의 다리를 놓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울한 일상 속에서 느슨해진 정신의 나사를 바짝 조이는 데도 단단히 한 몫을 한 것이 번역입니다. 그러니 ‘번역’ 얘기가 나오면 저의 눈과 귀가 번쩍 뜨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목사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번역’은 외국어의 자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겨놓는 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기꺼이 하고 싶어 했던 그 일, 곧 번역은 훨씬 웅숭깊은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배운 번역 신학, 혹은 번역 시학詩學 poetics이라고나 할까요?


목사님의 편지글에 나타난 그 번역 이론을 저 나름대로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진리가 몸과 마음에 배어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입니다. 그러니 방심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조급증을 내서도 안 됩니다. 공부는 문자 공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일쑤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진짜 공부는 그런 것입니다(113쪽).


진리의 말(씀)을 구체적인 삶으로 옮겨내기 위한 정성스러운 노력studium이 번역이군요. 바로 이 일을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 줄어들 때 종교는 하늘과 사람을 엮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엮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허울뿐인 제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가장 뛰어난 가르침宗敎’은 또한 ‘가장 뛰어난 다리宗橋’의 기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처럼 단절과 소외가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공동체적 삶을 통해 번역”(244쪽)해내는 일이었어요. 혼자서 진리를 삶으로 잘 옮겨내는 일도 소중하지만, 그 정신을 “공동체적 삶”으로 구체화하는 일은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목사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언뜻 “공동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영혼들의 패거리 짓기를 참 싫어하셨지요.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소수의 약자들에게 악마적 이미지를 덧씌워, 대중의 억눌린 폭력성이 그들을 향해 분출되도록 유도하는 우리 시대의 윤똑똑이,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들을 고발할 때 목사님의 문체는 허위의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화살을 닮았습니다. 주님께서 갈고 닦으신 화살, 그분의 화살 통에 감춰져 있다가 교만한 이들을 향해 곧게 날아가 꽂히는 예리한 화살(이사야 49:2) 말입니다. 하지만 참된 진리를 ‘공동체’적 삶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목사님의 편지에서는 햇살의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따스함이 또 애틋합니다. 아무래도 목사님이 오늘 우리 시대에 바라보고 있는 공동체적 연대의 뿌리가 ‘슬픔’인 탓인 것 같습니다.


슬픔이야말로 ‘너’에게로 건너가는 다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고통이 그냥 ‘나’만의 고통에 머물 때 감상 혹은 애상에 빠지기 쉽지만 그것이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화할 때 그 고통은 보편적 의미를 획득합니다(277쪽).


목사님은 ‘희망’의 존재 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희망이나 위로가 아닌 슬픔의 연대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재확인하는 길” 아니겠느냐고 되묻고 계십니다(278쪽). 그러므로 진리의 정신을 공동체적 관계로 번역해내는 일에 복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타인의 아픔을 ‘차마’ ― 이것도 목사님이 참 아끼는 표현이지요 ― 외면하지 못하고 그들의 필요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136쪽)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삶을 회복할 수 있겠지요? 다시 한 번 부버를 인용하자면 모든 낱낱의 ‘너’에게서 “영원한 ‘너’의 나부낌”을 들을 수 있는 능력, 모든 낱낱의 ‘너’를 통하여 “영원한 ‘너’의 옷자락”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능력으로 말입니다.


‘번역飜譯’이라는 말을 연거푸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정성스러운, 그러면서도 탁월한 번역에 감사드리면서 저의 답장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목사님의 편지글 한 장 한 장이 그 번역의 산물이지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 그 넓고 깊은 하늘을 목사님은 쉼 없이 날고 날아서〔〕 풍요로운 성찰과 대화의 가능성을 한보따리 나눠 주십니다. 특히 사유하는 인간의 무늬〔人文〕가 아로새겨진 문예의 아름다움은 김기석이라는 번역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생생하게 스며듭니다. 그 뜻을 발견하여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품고 오래오래 날아와서 그 뜻을 기다려온 적잖은 사람들의 삶에 양식으로 안겨주는 어미 독수리! 목사님 덕분에 저는, 그리고 목사님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아름다움 앞에 자꾸 서보고, 그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깊어갈 때 자기중심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88쪽) 있게 되었지요. 앞으로도 한참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땅의 현실에만 눈을 돌리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하늘을 잊고 살아갑니다. 큰 정신이 나오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요? 있음 그 자체로 다른 이들의 좁장한 마음을 넓혀주고, 시야를 확장시켜 주는 사람이 몹시도 그리운 시대입니다(141쪽).


그렇습니다. 바로 그래서 목사님이 몹시 그립습니다. 벌써 오래 되었네요, 목사님과 흔흔하게 북한산에 올랐던 때 말입니다. 아무리 바쁘셔도 시간을 내주시리라 생각해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함께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백일홍이 다 지기 전에….


손성현/창천교회 청년부 목사, 번역가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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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3)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한여름 산중은 만원입니다. 남도답사 일 번지 땅 끝 마을 대흥사 십리 숲길은 수시로 차량이 엉키고 꼬입니다. 왜 그런지 미루어 짐작하실 줄 압니다. 중복이 지나고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그래서 풍광 좋고 유서 깊은 산중 절의 수행자들에게 이 시기는 손님맞이로 과로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십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템플스테이 바람으로, 산사는 지친 몸을 쉬고 헝클어진 마음을 살피고 다잡는 사람들의 쉼터와 깸터가 되고 있습니다.


모처럼 맞이하는 휴식마저도 번잡하고 과다한 소비로 허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하는데,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작년 여름에는 한 달 내내 하루에 대여섯 차례 오는 벗들에게 차 대접 하다 보니 그윽하고 향기로운 차 맛이 무미하고 텁텁하기까지 했습니다. 때로는 예고하지 않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나그네들 때문에 다소 지치고 힘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외우는 주문이 있습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모든 만남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세속에서 힘들고 지친 벗들은 어렵게 귀한 시간을 내어 암자를 찾습니다. 맑은 차 한 잔을 나누며 속내를 털어놓고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좋은 생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소홀할 수 없지요. 나는 그들을 맞이하면서 거듭거듭 겸양과 정성의 덕성을 미덕을 다지고 가꾸게 됩니다. 한 생각 돌리면 수행이 아님이 없고 하느님 나라와 불국정토가 아닌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찰의 죽비


목사님! 선하고, 따뜻하고, 지혜롭고, 열정이 넘치는 목사님, 이라고 김기석 목사님을 그렇게 표현해도 결례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촘촘히 정독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은 새벽 별빛 아래 좌선하는 듯한 적멸의 환희에 젖었습니다. 특히 종교수도자의 글은, 읽어가는 행간이 그대로 명상과 눈 열림의 순례 길이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습니다. 틈틈이 연두 빛 형광펜으로 밑줄 친 글들을 마주합니다.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거듭 새삼스럽습니다. 의미의 환생과 부활입니다. 사유의 진폭을 넓혀주고 성찰의 죽비를 주는 글들이 얼마나 고맙고 벅찬 것인가를 다독가인 목사님도 공감하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의 벗들이 제 방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방을 살피더니 그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님, 비싼 물건이 하나도 없네요.” 책상 하나, 노트북 컴퓨터, 작은 음향기기, 그리고 책장에 가득한 책들이 내 살림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의 속내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많고, 비싸고, 화려하고, 명품에 대한 소유물이 비교우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기 때문이겠지요. 더욱이 분수에 맞는 소유로 자족하면서 내면의 향기로 가득해야 할 종교인마저도 자본과 권력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비싼 것이 없다고 하세요. 여기에 있는 책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고가품들인데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책의 내용들은 천만금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지혜와 복을 내게 주니 천하에 최고로 값나가는 것들이지요.


좋은 책을 말하려니 중국 송대의 문장가이자 정치개혁가인 왕안석의 권학문이 생각나는군요. 그는 이렇게 책의 값어치와 효능을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 비용이 들지 않고, 책을 읽으면 만 배의 이득이 생긴다. 가난한 자는 책 때문에 부유해지고 부자는 책 때문에 귀해진다. 어리석은 자는 책을 읽어 어질어지고 어진 사람은 책으로 인해 부귀를 얻는다.” 그런데 목사님, 이런 효능을 가지게 하는 책은 반드시 ‘좋은 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지요. 그 중에서 어떤 책들이 좋은 책인지를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 많은 책들을 보면서 내면의 살림살이가 부끄럽고 글 쓰고 말하기가 저어되고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러면서 좋은 글은 무엇일까를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먼저 목사님이 책에서 말씀하셨지요.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의 허망함을 저는 너무도 잘 압니다. 가르침은 가리킴이 되어야 합니다”(295쪽).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유와 경험과 성찰의 삶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글은 아무리 논리가 반듯하고 문장이 아름다워도 울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좋은 글은, 읽는 이의 눈을 뜨게 해주는 글이라고 단언합니다. 눈을 뜬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반성하게 하는 것, 한 층 더 넓고, 높고, 깊게 세상과 자신의 정신을 이끌어 주는 것이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오랫동안 감신대 교수를 지내셨던 이정배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말이 분명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말들로 세상을 흔들어야 한다.” 늘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말에 대한 일종의 불신과 위험을 가지고 살고 있는 나에게 이정배 목사님의 선언은 말의 효용과 말의 나아갈 길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제 생각이 깨지고, 열리고, 다져지는 뿌듯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감사 충만! 성령 충만!


목사님! 생각해 보니 저와 목사님은 종교수행자이면서 글을 쓰는 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닌 이상동몽異床同夢의 도반입니다. 각자의 지점에서 깨침과 헌신의 길을 가고 있으니 참으로 든든한 동지입니다. 이상동몽과 대동소이大同小異는 제가 관계성을 말할 때 핵심 지침으로 삼는 말입니다. 대동소이, 이상동몽, 참 옳고, 좋고, 정겨운 신뢰와 연대감이 느껴지지 않으신지요. 저는 비교적 비교하지 않고 사는데, 글을 쓰는 재주를 조금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라는 방편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진실하고 치열하게 생각과 몸짓을 밀어 올리면서, 삶의 극점에서 나오는 글을 써야 하는데, 짐작과 논리와 당위만이 앞서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찔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글은 경전 독송과 참선과 더불어 주요한 수행의 방편입니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하면 많이 읽고, 다양하게 부딪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다른 이의 책을 대하면서 저는 책을 열기 전에 제목에 대해 나름대로 짐작해 봅니다. 책의 제목은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의미의 집약이고 호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목차 하나하나를 꼼꼼히 주시합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건져내는 각 글의 제목은 그것 자체로 얼마나 신선한 울림이 있는지를 목사님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어떤 책은 각 글의 제목만을 음미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고요함과 침묵은 우리가 시간 속에 마련한 성소


이번 목사님의 책에서 제가 특별히 마음이 머무는 글의 제목을 말해도 되겠지요. 「사람은 누가 됐든 유일무이한 존재」, 「담백한 삶을 위하여」,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움씨를 뿌리는 마음」,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마주 잡을 손 하나」,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서로 따뜻하게 비벼대면서」, 「인간보다 이상한 존재는 없다」, 「세속적 우상과의 싸움」, 「가시밭길을 걷다」,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바늘로 우물 파기」, 「의미의 저장소」, 「길을 잃으면 어때」… 목차를 쭈욱 읽어가면서 첫사랑에 꽂힌 느낌으로 위의 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은 다른 제목들이 마음에 닿았을 것입니다. 《다시 책은 도끼다》를 최근에 발간한 박웅현이 책은 기본적으로 ‘각자의 오독’이라고 말했듯이, 각자의 삶의 지점에서 접점을 이룬 글들이 눈에 밟혔을 것입니다. 글의 제목은 본문과 함께 삶의 지침이고 방향입니다. “중생이 아프니 보살이 아프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진리는 이렇게 한 줄의 문장으로 의미를 저장하고 길을 가리키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줄의 문장 너머에는 성스러운 ‘침묵’과 ‘기도’와 ‘노동’만이 최초이자 최후의 고갱이로 존재하고 있지요.


목사님! 저와 목사님은 이상동몽, 대동소이의 길을 가는 수도자입니다. 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살아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지요. 지금 세상에는 전문가가 참 많다고요, 그런데 자신 존재 자체로 다른 이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요. 그렇습니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자신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수도자는 일상에서의 ‘몸짓’ 하나하나가 그대로 ‘말’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넘치는 말 속에서는 나쁜 말들이 교묘하게 숨어서 우리의 생각과 삶을 좀 먹고 있습니다. 내 편을 만들고, 남을 배제하고, 혐오하고 고립시키는 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초점을 흐려놓고 시선을 돌려놓는 말을 생산하는 언론 기술자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히 행세하고 있습니다. 또 지식인은 어떠한가요. 보수적인 정권과 천박한 자본가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생산해 주고 돈과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속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지식인과 종교인은 세상이 나아야 할 길을 가리키는 말을 용기 있게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믿음을 얻어야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고 사람들의 가슴에 스밀 수 있겠지요.


목사님! 어떻게 해야 말이 믿음과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답은 간명하겠지요. 지행일치, 언행일치의 삶을 평소에 늘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진리를 내면화하고 일상화하는 삶이 곧 수도자의 길이겠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빛이요 소금이요 목탁이요 죽비가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각고의 정진이 필요하겠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고요함과 침묵은 우리가 시간 속에 마련한 성소”(161쪽)라는 말씀에 고요히, 침묵으로 공감합니다. 내면의 성스러운 삶을 다지기 위해 부박하고 속된 만남을 줄이고 있습니다.


목사님! 요즘 사유의 줄거리는 평범한 대중의 성찰과 성숙입니다. 이번 책에서 다음과 요지로 물으셨지요.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일상의 노동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라고요. 저의 고민도 이런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상층부 사회의 부조리를 비난하고 원망합니다. 각 영역의 1%에 해당하는 그들의 그릇된 세계관과 행태가 평범한 다수 대중의 삶을 헝클어뜨리고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단면으로 이루어진 단세포가 아니지 않습니까? 다면이고 입체적이고, 그런 입체적 다면들이 다양하게 관계하면서 삶의 여러 모습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원인이 어찌 한쪽에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시민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시민은 사회라는 관계망의 시민으로 존재합니다. 또 개인 시민이 존재합니다. 하여 평범한 직업을 가진 시민은 이 두 갈래 길 모두에 성찰과 성숙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시민은 나도 살고 이웃도 사는, 상생의 길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단위에서 참여하고 연대하는 실천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염려하신 평범한 사람들,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성찰’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보편윤리의 삶을 지적하고 지향하는 것이겠지요. 모든 사람은 “분노와 적대감은 타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자기 파괴적 열정이기에 더욱 심각합니다.” 목사님은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각 개인이 행하고 있는 무지, 게으름, 비겁함, 불성실, 방관과 방종, 불성실, 몰염치와 무례, 평범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갑을 관계, 작은 거짓, 지역과 연고주의에 의한 편견과 편향 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의 이런 삶들은 면죄되는 것일까요. 이런 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부끄러워하고, 그리고 고치지 않으면 자기 삶을 어둡게 하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성찰하고 바꾸고 성숙할 수 있도록 하는 소명과 원력이 저와 목사님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청파교회에서 목사님의 책을 주제로 의미 깊고 정감이 넘치는 대화가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목사님과 함께 하는 여러 목회자들이 제 암자에 와서 하룻밤을 보내며 기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오고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부처님과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참 좋을 것입니다. 그 옛날 초의 선사와 추사, 다산 선생 등이 제가 깃들고 있는 일지암과 다산초당을 오가며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렇게 생각과 정을 주고받으며 삶의 줄기에 푸른 잎 돋고 예쁜 꽃 피고 튼실한 열매 맺을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청안하시고 청락하십시오.


법인/일지암 주지, 참여연대 공동대표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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