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25)


우리는 지지 않는다


차이를 내포한 반복


손석춘 선생님,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면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규원 선생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비가 와도 젖은 者는> 부분) 혼자 비감해져서 “비가 온다, 비가 와도/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마지막 연만 되뇌고 있습니다.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지만 모든 언어가 물살에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것인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뜬금없이 ‘슬픔’이라는 단어만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던 슬픔의 정한이 물러갈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다만 헛된 꿈이었나 봅니다. 세상은 여전히 아프고, 눈물의 강은 우리네 삶을 관통하며 유유히 흘러갑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도서 기자의 말이 왜 이리도 처연하게 들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들뢰즈는 어떠한 반복도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고통 혹은 슬픔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은 영원히 극복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진중공업 타워 크레인 85호 그 아스라한 허공에 머물며 버텨내고 있는 김진숙 씨의 그 가혹한 시간을 생각하니 오늘의 안일한 삶이 부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경제논리, 정치논리로 그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에 대한 항거의 깃발로 우뚝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진숙 씨를 노동해방의 깃발로만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깃발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생뚱맞게도 문태준의 시 <가재미>가 떠오릅니다. 시의 화자는 암 투병하는 여인을 애연히 바라보다가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고 노래합니다.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는 표현입니다. 시인은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고 내처 적었습니다. 이 시가 떠올랐던 것은 아마 이 표현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내 저 허공에 매달린 김진숙 씨의 강건함과 고요함 그리고 햇살처럼 맑은 얼굴에 안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저 허공이 아니라 땅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국 도처에서 희망 버스를 타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했고, 그들을 향해 최루액을 살포하는 경찰을 보며 속상했습니다. 자기가 숨 쉴 만한 희망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들이 고마웠고, 우리 시대의 희망 버스가 되지 못하는 교회 때문에 슬펐습니다. 어쩌면 지금 하염없이 전국을 적시는 장맛비는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의 예수>에서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고 노래했던 정호승 시인이 만일 <부산의 예수>를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예수가 경찰차에 기대어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선생님께서 주기도문을 들머리에 옮겨 적으신 것을 보면서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대화에 임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생각을 나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 찾기임을 새삼스럽게 자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저의 자리가 뒤집힌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반성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구도자적 자세로 임하고 계신 데 저는 오히려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바장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지요?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 말입니다. 그 둘을 일치시키는 사람은 참 행복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둘 사이의 불화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가끔 별 일 없이 편히 쉬어도 몸과 마음이 무거운 것은 그 불화의 무게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할 텐데, 나날이 시름만 깊어갑니다.





예수, 그리고 매혹


조금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청년 시절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저는 이전까지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가난했지만 마음이 풍족했던 사람들, 누가 보더라도 목을 꼿꼿이 세우고 살만한 자리에 있었지만 한없이 겸손하고 부드러웠던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재와 싸우기 위해 안일한 일상을 내려놓은 사람들…. 저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 먼저 그런 이들을 만났습니다. 세상의 문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느끼던 처지에 그런 이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세상의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규정짓고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라는 사나이였습니다. 그분의 부름을 받기도 전에 저는 예수에게 매혹 당했고, 그분을 알아갈수록 현실의 교회에 대해서는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깃든 빛까지 앗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라는 사나이와의 사귐이 깊어갈수록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표상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채색의 세상이 돌연 찬란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아도 감사했고, 풀잎에 내려앉는 햇살만 보아도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공중을 자유로이 나는 새들도 그분을 찬미하는 듯했습니다. 내 앞에 현전하고 있는 세계 전체가 어떤 메시지인양 들려왔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은혜임이 실감되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고단한 삶을 이럭저럭 견디며 살아가는 삶이 싫어졌습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터 위에 집을 짓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화가 났습니다. 현실 교회가 노정하고 있는 모습은 예수의 원정신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거의 급진적이라 할 만큼 인생의 방향을 선회한 것은 은혜로운 부르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수 정신이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저는 신학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곤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생각만 깊어갔습니다. 자기 확신에 찬 이들을 만나면 그들의 확신을 뒤흔들어놓거나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공허감도 따라 깊어갔습니다. 마치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던 막대기 끝의 빈자리를 바라보듯 공허한 눈길로 세상을 흘끔거리곤 했습니다.


까뮈, 사르트르,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루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에 탐닉했던 것은 그런 허깃증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의 언저리조차 살피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제게 숨구멍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마치 생채기를 긁어 덧내듯이 그들을 잡아당기던 심연을 즐겨 응시하곤 했습니다. ‘콘텍스트’는 질문을 던지고 ‘텍스트’는 답을 준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흔들리는 터전 위에 서 있는 듯 삶은 위태로웠고, 진리의 길은 모호했습니다. 황홀한 도취도, 뚜렷한 지향도 없이 엄혹했던 시절을 견딘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회색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예수라는 사나이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길을 나의 길로 삼기에는 심지가 너무 약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을 자꾸만 되뇌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논가 우물 속에 비쳐진 자기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시의 화자는 처연하게 고백합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상의 <거울>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자기불화와 연민 사이를 바장이면서도 저는 이미 정해진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목회자로 살기 시작했고 벌써 그 세월이 30년이 넘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을 톺아보니 부끄러움뿐입니다. 길들여진다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채 순치되어버린 삶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이 무색하여 공연히 책상 앞에 놓아둔 석향을 들어 냄새를 맡았습니다. 돌밭 위에서 모질고 시린 세월을 견디며 안으로 축적한 향내가 은은히 퍼져 나왔습니다. 문득 내게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저어하는 마음이 드네요. 이야기가 일직선으로 내닫지 못하고 이렇게 가리산지리산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그동안 애써 숨겨 왔던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의 순수를 잊지 말아야


손석춘 선생님,


선생님은 예수를 보수의 눈으로 볼 것인가 진보의 눈으로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실을 찾아야 옳지 않은가 물으셨습니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진실이 없다면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허깨비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눈빛과 조용조용한 말씨에서 투사를 보기보다는 구도자를 보았습니다. 구도자가 하는 말이기에 한국교회의 현실을 지적하는 그 날선 언어가 더욱 예리하게 다가왔습니다. 청년 시절 나를 분노하게 했던 한국교회의 현실을 나 자신이 체화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큽니다.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신뢰했던 예수는 지금 이 땅에서 외롭습니다. 나 또한 예수를 외롭게 한 사람입니다. 그는 당신의 일을 함께 하는 이들을 ‘친구’라 부르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 구석구석에서 파란 불꽃을 일으키듯 예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람들의 귀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가끔은 주일을 맞이하는 것이 고문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말이 사람들의 가슴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가장 큰 번민은 입을 다물고 싶을 때조차도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삶을 통해 뒷받침 되지 못하는 말의 부박함이 떠오를 때면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어집니다. 듣는 이들을 고려하여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저 자신과 마주칠 때면 그런 심정은 더욱 깊어집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꾐에 넘어간 덕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며 하나님을 향해 부르댑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예레미야 20:8).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 덕분에 사람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으며 사는 제 모습이 되비쳐지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의 그 장하던 의기는 어디로 가고 현실에 길들여진 추레한 삶만 남은 것일까요?

성령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꾸짖었습니다. 그 첫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가끔 걸음마를 익히는 아기들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렙니다. 몇 걸음 걷다가 이내 주저앉곤 하지만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설렘 사이의 그 창조적 긴장이 새 세상을 여는 틈이겠지요. 저는 가끔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 ‘첫걸음’을 들여다보면 합니다. 사립문 밖을 나선 아이가 저만치에서 한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아빠를 향해 가기 위해 역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그림이지요. 아기의 발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이미 아빠의 품에 안겨 있었을 겁니다. 제가 지금 회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인 듯싶습니다. 정진홍 선생님은 “처음의 순수를 잊으면 지금의 현존이 지향을 잃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헐적으로나마 처음 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일 겁니다.


잡담회 풍경


손 선생님,


부끄러운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는 것은 이제 탄식만 하며 지낼 수는 없다는 나름의 절박함 때문입니다. 의기만으로는 사람이나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서둘지 않으려 합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널뛰기하기보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까치발을 하고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跂者不立, 跨者不行)는 노자의 말이 참 귀하게 여겨집니다. 까치발을 들거나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걷는 것은 결국 남보다 커 보이거나, 남보다 앞서겠다는 마음이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작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압니다. 촛불을 나누는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요즘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교인들과 잡담회를 갖습니다. 정해진 멤버도 없고 정해진 주제도 없이 그저 자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잡담회에는 두 가지 금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이들의 말을 비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잡담회인가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잡담’을 사전은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로 정의해 놓았더군요. 하이데거도 잡담을 존재 망각에 빠진 ‘세인世人’의 특색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으니, 잡담의 가치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전제도 없이 벗들과 편하게 주고받는 잡담 속에서 창의적 사고의 단초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마음 편한 잡담이야말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고 남을 받아들이기도 하는 소통의 마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의 잡담회는 꽤 진지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것과는 다른 신앙적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이 그 자리에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모처럼 담임목사와 편하게 대면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던지는 질문의 요지는 ‘구원의 배타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구원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묻자 주춤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전제해 왔고 또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인데, 질문을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모호해지고 만 겁니다. 잠시 망설이던 그들은 아주 솔직하게 내세에서 누리는 지복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사용된 구원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용례에 대해 말해줬고, 예수가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초점은 저 세상보다는 이 땅에서의 삶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고,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가 느낀 것은 많은 이들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식의 질문과 대답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정답을 원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고 말하면 그것은 대답의 회피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가치가 착종된 세상에서 단순한 답을 찾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답은 현실적합성을 갖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진정한 신앙이란 정답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이해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신앙이란 손쉬운 해답을 거절하는 용기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미 준비된 정답을 그냥 수용하기보다는 물음을 향해 자기를 열어놓는 정직한 태도가 필요하다고도 말합니다. 답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함은 일쑤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믿음의 탈을 쓴 폭력이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도구화하는 것이야말로 반(反)신앙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답을 원하는 이들에게 질문과 의혹거리만 잔뜩 안겨 준 셈입니다. 교우들이 저의 그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신앙적 고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틈을 만드는 사람들


손 선생님,


요즘 저는 길들여진 제 둔중한 의식을 두드리는 몇몇 일들에 접하며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에 절망하여 목사라는 직분을 내려놓는 젊은 목회자가 등장했고,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당분간 목회 현장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분도 계십니다. 한결같이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직은 천직’이라는 소명 신화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번민의 시간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선택을 만류하는 이들보다는 오히려 격려하고 심지어 부러워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지금의 교회 모습이 정상이 아니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면제년을 앞두고 돌려받지 못할까 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지 않는 것이 ‘죄’라고 명쾌하게 정리하셨습니다. 또 ‘원죄’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제멋대로 왜곡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목사의 버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죄’나 ‘원죄’라는 말을 일의적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죄’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참 다양한 층위의 현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죄’라는 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용어들은 인류의 장구한 역사적 경험과 존재론적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는 주름 잡힌 말들입니다. 그것을 펴서 매끄러운 말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해석학적 낭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고 있던 죄의 공동체적 혹은 사회적 차원을 강조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펼쳐 보이신 역사 전망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본이 경제 발전을 주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사람의 노동이 주도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진단하셨지요? 물론 이행의 조짐은 미약하지만 결국 그렇게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절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인간화의 길로 사람을 몰아대는 자본을 횡포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하고, 인간 영혼의 선함을 굳게 신뢰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할 겁니다. 저는 그런 신뢰의 밑절미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힘을 굳게 믿는 이들이 본다면 세상모르는 이들의 설레발이라고 우리를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웃거나 말거나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김지하 선생의 시 <틈>이 떠오릅니다. 시인은 아파트 사이 빈 틈으로 불어오는 꽃샘바람을 맞습니다. 아파트를 거쳐온 그 바람은 사람의 몸속에도 꽃눈을 틔웁니다. 시인은 ‘갇힌 삶에도/봄 오는 것은/빈 틈 때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새일은 늘/틈에서 벌어진다’고 말합니다. 시인이 말하는 ‘틈’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말로 옮기면 ‘꿈’이 되겠지요?


세상 다시 그리기


선생님은 제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가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소망을 품고 애굽을 떠났던 히브리 공동체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노예노동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던 이들에게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며 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불어넣으셨습니다. 폭언과 채찍 아래에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허덕이던 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광야로 나갔습니다. 삶의 조건은 엄혹했지만 그들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형성되어 갔습니다. 애굽에서 준비해 간 음식이 떨어져 난감할 때는 하늘에서 내린 음식으로 배를 불렸고, 소유와 축적이 무의미함도 배웠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허덕일 때는 반석에서 터져 나온 생수로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출애굽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까닭은 지금 우리의 형편이 애굽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고, 할당량․폭언․채찍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책상 빼’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정신은 점점 왜소해집니다. 사람의 정신을 왜소하게 만드는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대안적인 삶을 가리켜 보이는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나눔과 섬김과 돌봄과 아낌에 근거한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내면화하고는 성공신화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주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의 꿈도 떠오릅니다. 그는 앗시리아 제국의 야욕으로 인해 지중해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을 때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꿈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그 꿈은 현실의 고통을 잊도록 해주는 미약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마음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해주는 닻입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이사야 11:6-8).


이사야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그는 현실 논리에 매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가슴에 하늘의 불씨를 심었던 것입니다.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입니다.


예수의 겨자풀 천국도 떠오릅니다. 모두가 백향목처럼 우뚝한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세상에서 예수는 겨자풀의 나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백향목 세상은 몇몇 특권적인 사람에게만 천국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지옥인 세상이라면 겨자풀 세상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특색에 따라 살아가면서도 그 때문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꿈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를 통해 펼치고 있습니다.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신앙 공동체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볼품없는 지체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가난한 이들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사회 제도를 만들자는 제안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셈입니다.


종교, 문화, 경작의 종합


제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나라 혹은 사회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그런 나라 혹은 세상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가늠할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하지만 지향이 분명하다면 길은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홀로는 걸을 수 없는 길이기에 벗들이 필요합니다. 부산을 향해 내달리던 희망 버스는 그 자체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몇 해 전 도로시 데이의 《고백》을 읽다가 눈이 번쩍 떠지는 한 구절과 만났습니다. 미국 가톨릭 운동사의 한 획을 그었던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이 더 쉽게 선해질 수 있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이것은 피터 모린이 도로시의 가슴에 심어준 꿈이기도 했는데, 그런 세상의 모습을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피터는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 위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보며 크게 기뻐했다. 그는 모두가 형제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기를 소망했다. 그의 생각에는 형제들이야말로 하나님과 선을 발견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였다. 그래서 형제들을 향한 이 노력이 더 나은 물질적 삶으로 이어지기를 원했다. 스스로의 자질을 발휘하고 모든 예술에서 표현되는 사랑과 찬미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정도의 물질적 삶, 그는 모든 사람이 음식이나 옷과 같이 집에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생산하며, 적어도 이러한 생필품에 관한 한 결핍을 겪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내게 이와 관련한 비전을 심어 주려고 노력하면서, 그 원대한 계획을 ‘종교, 문화, 경작’의 종합이라고 불렀다.”(도로시 데이, 《고백》, 302쪽)


어쩌면 도로시 데이의 꿈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꿈을 구체적인 현실로 번역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종교, 문화, 경작을 종합할 수 있는 통섭의 능력은 홀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충동과 감상에 사로잡혀 글이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새로운 세상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합니다. 이제 이 장마가 지나고 나면 불볕더위가 찾아오겠지요? 그러면 또다시 소나기가 그리워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라고 노래했던 고정희의 절창이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편집자 주/이글은 김기석 목사, 손석춘 선생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중의 일부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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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23)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손석춘 선생님,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경칩에서 춘분을 향해가는 이즈음 봄기운을 잘 타고 계신지요? 며칠 전 저는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에 한기가 들어 잔뜩 옹송그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저의 몸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매일 물이 오르고 있는 산수유나무와 개나리와 눈맞춤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흘낏흘낏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잠포록한 날씨 탓인지 제가 늘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는 삼각산이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크레인만이 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무엇인가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누구라도 그 압도적인 재해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식탁머리에서 제 딸이 혼잣소리처럼 말하더군요. “이런 일을 겪고 보면 사람이 아득바득 용을 쓰며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아직 젊은 딸의 그런 처연한 깨달음에 살짝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를 말하지만, 우리가 실은 흔들리는 터전 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과욕의 부질없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를 보면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춘추천국시대의 현인 노자가 쓴 말로 하늘과 땅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오늘 재해 앞에 선 사람들은 이 말에서 자연의 맹목적 폭력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이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복음 5:45b)고 말했습니다. 이런 판단은 잘났건 못났건 모두가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근본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어찌 하나님이 기독교인만의 하나님이겠습니까? 모두가 다 기가 막한 그분의 자식인 걸요. 저는 이 말씀이야말로 종교적,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 라오서(老舍)의 소설 《루어투어 시앙쯔》를 읽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비가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이야기합니다.


“비가 개인 후에, 시인들은 연잎의 구슬과 쌍무지개를 읊조리지만; 가난뱅이들은 어른이 병이 나면 온 식구가 굶는다. 한 차례의 비는 기녀나 좀도둑을 몇명이나 더 보태주는지,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을 얼마나 내는지 모른다. 어른이 병들면, 아이들에게는 도둑질이나 몸을 파는 것이 굶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비는 부자에게도 가난뱅이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사람에게도, 의롭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린다. 그러나 실은 비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 내리기 때문이다.”(라오서, 《루어투어 시앙쯔》, 1986, 통나무, 495쪽)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 내리는 비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말은 정의의 문제에 민감했던 80년 대 중반의 제게 쇠북소리처럼 쟁쟁하게 울려왔습니다. 어쩌면 성경을 보는 새로운 관점 하나를 얻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갔습니다만 저는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의 동쪽 해안지대를 초토화시켰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전에 먼저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큰 종을 자처하는 목사들의 망언이 터져나오는 것은 아닐까?’ 2004년에 쓰나미가 남아시아를 휩쓸었을 때, 2005년에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미국의 뉴 올리온스를 덮쳤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어느 유력한 교회 목사는 그 두 사건을 모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저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너무나 분노하여 그를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괴물로 변한 영혼이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해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저는 깊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여겨지는 한 원로목사는 이 사건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신앙적으로 보면 일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속에 담긴 무지와 정신적 오만함에 소스라쳐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릇된 종교적 신념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도 절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혹은 이웃에게 닥쳐온 불행에 대해 해석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해석이 가능할 때 사람은 그 문제를 처리하고 또 대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일을 겪을 때면 사람들은 해석을 위한 아르키메데스의 입각점으로 하나님을 동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난제들을 푸는 열쇠어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 말의 내포와 외연은 늘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욥의 이야기를 꺼내곤 합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도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길흉화복의 인과관계로는 풀리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허다합니다. 자신이 겪어야 했던 불행한 운명도 욥을 괴롭혔지만, 그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은 가까운 친구들의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변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욥을 몰아붙입니다. 욥이 겪는 고통은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확신에는 인간적 연민이 끼어들 틈조차 없습니다. 그릇된 신학은 우정에 바탕을 둔 세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욥은 가장 가까웠던 이들도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린 현실을 견딜 수 없습니다.


“나는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고, 잇몸으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너희는 내 친구들이니, 나를 너무 구박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이 손으로 나를 치셨는데, 어찌하여 너희마저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나를 핍박하느냐? 내 몸이 이 꼴인데도,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느냐?”(욥기 19:20-22)


욥의 이 탄식이 제 귀에 절절하게 들려옵니다. 큰 불행을 겪을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습적인 사고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나님은 계시는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엘리 비젤(Elie Wiesel)은 하나님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수용소에 간 첫날 밤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의 몸이 소각되는 화장장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신과 나의 영혼을 죽이고 나의 꿈을 재로 만들어버린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희곡 <하나님에 대한 공판 The Trial of God>에서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찌의 수용소에 갇혀 있던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신을 재판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상상도 못할 고통 앞에서 신에 대한 기존의 논증들은 아무 설득력이 없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이 전능하다면 분명 쇼아(Shoah, ‘절멸’을 뜻하는 히브리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만약 막을 수 없었다면 신은 무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지 않았다면 신은 괴물이었습니다. 치열한 논의 끝에 그들은 결국 신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경건한 이들에게는 충격이겠지만, 절망의 심연에 처한 이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놀란 것은 그 다음 대목입니다. 재판을 주재한 랍비는 판결을 내린 뒤 저녁 기도 시간이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태연하게 알렸습니다. 신에 대한 생각은 변해도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을 그만 둘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여러 일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작음과 유한함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불가해한 삶의 곤경에 직면한 이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왜’라는 질문은 사실은 신의 정의를 구하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구조적 악에 속한 문제라고 한다면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한 인식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왜'라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 현실과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의연하고 침착한 태도를 보며 저는 참 많이 놀랐습니다. 그 극도의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며 만일 우리에게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땠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메이와쿠 카케루迷惑はかける’라는 말로 설명하더군요. 그들은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교육을 받는다고 하지요?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이 크게 흐느끼거나 울부짖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극도의 배려 정신 때문이랍니다. 그런 배려심이 부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국가주의와 결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본의 심장은 일본의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벚꽃이 아니라면서 일본의 심장은 후지산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꺼질 줄 모르는 불, 절제된 방식으로 순결한 눈에 덮인 후지산 말입니다. 후지산이야말로 일본의 진짜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의구심이 지나치게 과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혼돈 속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질서 의식이 경이로웠습니다. 배고픈 다른 이를 위해 음식을 양보하고, 생필품을 살 때도 뒤에 있는 이들을 의식해 적절하게 욕망을 통제하는 모습에서 저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또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기의 울타리 밖을 사유하지 못합니다. 이게 한국 기독교의 실상입니다. 남의 큰 불행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경고 운운하는 수준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저는 명시적으로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으면서도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몸을 낮추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경을 통해 만난 하나님은 땅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사회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이 땅에 정의를 세워달라’는 기도로 들으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땅에서 들려오는 기도의 응답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협력할 이들을 찾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당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출애굽기 3:10)당황한 모세는 자기는 그럴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마디 말씀으로 모세의 망설임을 가라앉힙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고 또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력함을 느낄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념, 인종, 피부색, 종교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당신의 피조물들이 구체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입니다.





손석춘 선생님,


굉장히 먼 우회로를 거쳐 마침내 선생님이 제게 던지신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주의 기도에서 ‘죄의 용서’라고 번역된 단어가 사실은 ‘빚의 탕감’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제 지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빚의 탕감’이 ‘죄의 용서’로 뒤바뀌게 된 소이연을 물으셨습니다. 정확하게 그 때를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변형 혹은 왜곡의 과정이 왜 일어나는지는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 등장하는 ‘죄의 용서’를 토라의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그런 소명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구체적인 지침입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저는 율법의 핵심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으로 이어지는 절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식일을 뜻하는 히브리어 샤바트는 바빌로니아에서 정결례를 하는 날을 지칭하는 샤파투(sappattu 또는 sabattu)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그 날을 ‘신의 심장이 쉬는 날’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신도 쉬어야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히브리어로 샤밧shavat도 ‘그가 쉬었다’는 뜻입니다. 거기서 나온 단어가 바로 샤바트인 것이지요.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의 흔적이 보입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라는 말끝에 성서 기자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이는,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리셨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17b) 이 마지막 부분을 우리말은 밋밋하게 번역해 놓았지만 그 문자적인 뜻은 ‘그는 자기 영혼을 되찾았다’입니다. 하나님도 좀 쉬셔야 한다면 우리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사실 안식일이 십계명 안에 들어간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에 ‘쉬라’는 것을 아주 엄중한 종교적 계명으로 삼은 종교가 성서종교 말고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쉼’이 그들에게 그렇게도 중요했던 것은 그들이 제국주의 치하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일 겁니다. 제국의 질서 속에서 그들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시간과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못한 것이 바로 노예살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자기들이 들어가 살게 될 새 땅에서는 몸과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안식일 규정을 보면 이 마음이 더욱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쉴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여종의 아들과 몸붙여 사는 나그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출애굽기 23:12)


안식일 규정은 자유민들만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나 종살이 하는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깊은 관심의 대상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나중에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율법주의적으로 규정하면서 그 깊은 뜻을 잃어 그렇지 안식일 법은 인권법, 아니 생명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년 규정은 안식일에 비해 훨씬 더 깊은 사회적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앞에서 라오서를 인용하며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은 늘 위협받게 마련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빚을 얻고 이자조차 갚지 못해 결국 땅과 재산을 채권자에게 넘겨주고, 나중에는 종으로 전락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주기적으로 그런 세상 현실을 갱신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요즘 들어 이익 공유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어느 재벌가의 총수가 그런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더군요. 정말 뻔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공공재를 사유화하고 노동자들의 몫을 가로채 부를 얻은 사람의 말이었기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의 말은 하나님에 대한 부정입니다.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나오는 안식년 규정은 땅의 휴경을 강조합니다.





“여섯 해 동안은 밭에 씨를 뿌려서, 그 소출을 거두어들이고,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거기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 그렇게 하고도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출애굽기 23:11, 레위기 25:7).


여기서도 하나님의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들짐승’입니다.


하지만 신명기서에 나오는 안식년 법은 초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빚의 면제와 종의 해방입니다. 오늘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성경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에 성경은 매우 급진적입니다. 먼저 빚의 면제 혹은 탕감에 대한 규정을 보겠습니다.


“매 칠 년 끝에 그 해의 끝에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면제 규례는 이러하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주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친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레위기 15:1-2)


빚을 면제해주는 해가 가까이 왔다고 하여 인색한 마음으로 친족을 냉대하거나 아무것도 꾸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안을 당한 이가 주께 호소하면 그것이 그에게 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빚을 갚지 못해 결국 종으로 팔려간 사람들도 일곱 해 째 되는 해에는 자유민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유를 주어서 내보낼 때에는 빈 손으로 내보내서는 안 됩니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대로, 너희의 양 떼와 타작마당에서 거둔 것과 포도주 틀에서 짜낸 것을 그에게 넉넉하게 주어서 내보내야 한다.”(신명기 15:14)


부자들로서는 참 받아들이기 싫은 요구였을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한 것과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거기에서 구속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여라.”(신명기 15:15a)


하나님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긴다고 말하는 이들조차 이런 급진적인 요구를 슬그머니 외면해버리고 맙니다. 대학문을 나서는 순간 빚쟁이가 되어버리는 젊은이들, 저임금에 시달리며 언제 쫓겨날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오늘의 교회가 얼마나 성서 정신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희년법은 안식년 법의 확장입니다. 안식년 법에 나오지 않는 한 가지는 빚에 몰려 채권자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땅을 원주인에게 주라는 명령입니다. 희년법이 이스라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실제로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일이관지하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정의의 회복입니다. 물론 그 정의는 사법적 정의라기보다는 분배적 정의겠지요.


저는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죄의 용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복음사가인 누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서 이사야가 들려주는 주님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이 바로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누가복음 4:18-21). 예수님의 사회적 비전이 희년에 맞닿아있는 것이 사실일진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 '죄의 용서'라고 번역된 대목이 ‘빚의 탕감’을 가리키고 있음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이제 선생님의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빚의 탕감’을 ‘죄의 용서’로 바꾼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셨지요? 전문 신학자가 아닌 제게 이 질문은 사실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매우 버겁습니다. 성경의 전승사나 교회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샅샅이 살필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빚’을 뜻하는 단어 속에 이미 ‘죄’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고, 복음서 안에서 이미 그러한 의미의 뒤섞임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빚’이 ‘잘못’이 되고, ‘잘못’이 다시 ‘죄’로 바꾸는 의미의 진화과정을 우리는 성경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사에서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면서 예수의 가르침이 정신화되고 추상화된 과정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또 다시 우회로를 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선생님은 언론의 현실이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그리고 언론이 권력이 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언론의 타락이 어떻게 자본의 욕망과 유착되어 있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길을 읽으면서 ‘언론’의 자리에 ‘기독교’라는 말을 대입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요? 종교적 담론이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전위될 때, 종교가 자본의 욕망과 유착될 때, 종교의 쇠락은 시작됩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는 많은 이들에게 걸림돌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는 낯설고도 위험한 가르침을 베푸는 걸림돌이었고, 그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에게 걸림돌이었고, 승리주의를 거부함으로써 제자들의 걸림돌이 되었고, 죄인과 세리를 변호하심으로써 경건하다는 사람들과 민족주의자들의 걸림돌이 되셨고, 여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셨기에 사회적 통념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의 걸림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지금 행세깨나 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닙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죄짓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누가복음 17:2) 하셨던 예수는 교회 안에서 더 이상 그렇게 격렬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전하도록 택함받은 목사들입니다. 그리고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하늘이 내린 복으로 여기는 성도들도 그러한 입막음의 동조자들입니다.


어느 분이 교회를 가리켜 ‘죄 경영’(Sin management)을 하는 사업장으로 표현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용서를 선언하고, 삶의 변화 없이 너무나 가뿐하게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버리는 교인들의 모습이 도무지 마뜩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최승호 시인의 <때밀이수건>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돌비누 같은 경(經)으로 문질러도

무명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떼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

그들의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때밀이수건> 중에서


시인의 표현에 거침이 없습니다. 불경스럽게까지 들리는 시인의 언어를 타박하기보다는 그것을 거울로 삼아 스스로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삶의 변화가 없는 데도 속죄를 선언하는 교회를 가리켜 시인은 ‘간편한 세탁기’같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가책조차 없이 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교회를 찾아갑니다. ‘빚의 탕감’이 ‘죄의 용서’로 환치되는 순간부터 빚어진 참상입니다. 이런 환치의 역사는 교회가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때부터 시작되어, 권력과 결탁하여 성장한 콘스탄틴 대제 이후 가속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종교 권력자들은 기독교를 탈역사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기들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욕망에 기초한 문화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때 기독교의 생명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 절기로 사순절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마다 아주 가끔이나마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인간을 마술적으로 구원하기 위한 속죄의 죽음으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교우들에게 예수도 우리처럼 평범한 행복을 원했던 분임을 잊지 말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그 말은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손석춘 선생님,


저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안쓰러운 생각에 가끔은 한눈도 팔며 살라고 말합니다. 너무 몰두하다가 소진되거나 거칠어질까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외람되지만 선생님께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불의한 현실에 대해 분노도 해야 하고, 바로 잡기 위해 투쟁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더러 한눈도 좀 팔아보십시오. 벗들을 만나 더러 허튼소리도 해보고, 숲의 고요함 속에 머물기도 하십시오. 봄이 되면 꽃은 피어나듯이, 세월이 제 아무리 수상해도 선생님의 가슴에도 싱그런 꽃 한 송이 소담하게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편집자 주

이글은 김기석 목사, 손석춘 선생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중의 일부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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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22)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꾸 가다보면 생기는 것이다.”

 

루쉰의 이 말과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을 실감하고 있다. 20여 년 전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는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반역자라는 붉은색 찌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시작은 꿈이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충돌하고 있던 그 암울한 시대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을 꿈꾸었다. 꿈은 무력한가? 그렇지 않다. 꿈꾸는 자가 없다면 역사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 문익환의 <꿈을 비는 마음> 부분

 

문익환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정주영은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다. 끊어졌던 철로가 연결되었다. 개성공단을 향하는 차량의 행렬은 날마다 휴전선을 넘어 갔다. 북한의 조림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단체의 활동도 활발하였고, 빵공장과 병원을 세워주는 일도 활발하지 않았던가. 바야흐로 길이 열렸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달라고 하겠다던 한 노인의 꿈, 유럽의 어느 간이역에서 서울행 열차표를 살 꿈을 꾸었던 홍세화의 꿈이 실현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은 부푼 꿈에 젖어 있었다.



<holding hands - flickr>


 

하지만 통일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평화로운 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가 필요한데, 신뢰라는 것은 한 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갈등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만나 차이를 조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여러 정파들이 북한을 타자화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식량을 지원하고, 비료를 지원하고, 에너지를 지원하는 일로 우리가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그들을 통일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경제력의 차이를 가지고 그들에게 근거없는 열등감을 강요할 때 남북의 만남은 서로에게 불행이 될 가능성이 많다.

 

개성공단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대한 통일의 실험실이었다. 우리가 차이를 넘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이며, 서로의 필요에 주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장이니 말이다. 경제논리가 그 장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곳은 통일 이후의 삶의 본보기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통일 한국은 비시장적 가치들이 진지하게 고려되는 곳이어야 한다. 통일의 실험실인 개성이 장망성으로 변해간다면 우리 앞에 열린 길에는 다시금 다북쑥이 우거지게 될지도 모른다.

 

길은 열렸지만 아직 그 길에는 위험이 많다. 하여 임종을 앞둔 메브 푸엘로가 했던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렇다. 구세주 그리스도께 올라가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네 가진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맨발로 걸어가는 이들과 함께 걸어 길 끝에 계시는 하나님께 가야 한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출발점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모두 함께 도달하게 될 것이다.” 맨발로 걸어가는 이들과 함께 걷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서는 사람들, 홀로 앞서 가기보다는 더디더라도 함께 걷기를 배우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통일의 일꾼들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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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22)

 

순례자로 산다는 것

 

‘즐거운 망각’의 탐닉

에덴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시간에도 이빨이 있음을 자각한다. 시간은 우리 몸과 영혼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우리에게 새겨놓은 무늬를 사람들은 문화라고도 부른다. 사람의 모듬살이는 문화를 형성하지만, 그 문화는 동시에 우리의 존재조건이 되기도 한다. 외부 세계와 낯을 익히는 과정, 그것이 삶이다. 나의 ‘있음’은 늘 ‘~이다’라는 술어로만 표현된다. 나의 있음은 늘 ‘더불어 있음’이다. 누군가와 맺는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추한다. 사람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지만, 그래서 늘 우주의 중심이지만, 그의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존재이다. ‘관계맺음’이야말로 인생이다. 문제는 이 관계의 그물망이 우리가 허무의 물결에 실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자유로운 삶의 열망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관계, 그것은 기쁨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권태의 뿌리이기도 하다. 어느 날 평온한 일상 속으로 느닷없는 불안감이 찾아올 때, 허무라는 낯선 손님이 찾아올 때, 돌연 세상은 낯선 곳으로 변한다. 이전에는 그리도 아름답게 보이던 것이 역겨워지기도 하고, 목숨을 걸 만큼 소중했던 것이 시큰둥해지고, 자기 자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 갑자기 고개를 들었을 때 느끼는 어지럼증처럼 사람은 시간 속에서 멀미를 한다. 입덧에 시달리는 임부처럼, 허무감에 잠겨 시름할 때, 사람은 그 어떤 서술어로도 오롯이 담아낼 수 없는 ‘나’의 존재에 대해 묻게 된다.

 

허무의 어둠은 거울의 배면이 되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해준다. 실존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 여행자인 인간의 삶은 자기 동일성 혹은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지배하는 정조는 불안이다. 어쩌면 불안은 인간의 존재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불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은 우리가 잊고 사는 본래적 실존의 소환장이다. 사람들은 그 소환장을 애써 외면하면서 소유, 업적, 지위, 쾌락 등 ‘불안의 대용물들’을 찾기에 급급하다. 불안이 제기하는 내적 성찰에의 요구를 견딜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망각’의 기법을 동원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뒤세우스 일행은 꿈에도 그리던 이타카를 향해 귀향을 서두르고 있었다. 아흐레 동안이나 풍랑에 시달리며 표류하던 그들은 로토파이고이족의 나라에 당도했다. 원주민들은 염탐하러 온 오뒤세우스의 부하들을 환대하면서 로토스라는 열매를 주었다. 호메로스는 이 대목을 이렇게 전한다.

 

“그리하여 그들 중에 꿀처럼 달콤한 로토스를 먹은 자는 소식을 전해주거나 귀향하려고 하기는 커녕, 귀향은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로토스를 먹으며 로토파고이족 사이에 머물고 싶어했소.”(호메로스, 《오뒤세이아》, 제9권 93-97행, 천병희 역, 단국대학교 출판부)

 

오뒤세우스는 울고불고하는 이들을 억지로 배로 데려가, 노젓는 자리 밑에 묶어놓고는 ‘아무도 로토스를 먹고 귀향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출항을 독려했다. 귀향을 망각해버린 부하들과 그들을 신산스런 삶의 자리로 되돌려놓은 오뒤세우스, 둘 중 누가 잘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미 로토파이고이족의 주민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뒤세우스처럼 우악스럽게 우리를 끌어다 마땅히 가야 할 길로 데려가려는 이도 없다. 그래서 대개는 순례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잊고, ‘즐거운 망각’에 탐닉한다. 지금 사람들이 먹은 꿀처럼 달콤한 ‘로토스’ 열매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존재를 소유로 치환하는 사람들

 

사람은 모두 하늘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한다. 세상 소풍에 취해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올라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더러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하늘 바라보기를 그만 뒀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들은 ‘떠나온 곳을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는 사람들이다.

 

참 찾아 예는 길에 한 참 두 참 쉬지 마라

참참이 참아가서 영원한 참 갈 것이니

참든 맘 참 참을 보면 가득 참을 얻으리.

 

-함석헌, <참> 전문

 

인생 여정은 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싫든 좋든 사람은 길 위에서 살아간다. 길 위에 있다는 것은 늘 변화를 향해 자기를 열어놓고 산다는 뜻이다. 자기 부정을 본질로 하는 변화는 평안과 안전을 구하는 마음과 늘 길항한다. 변화의 계기는 외부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떠나라’라는 단어는 길 위의 실존에 대한 암시가 아닌가? 참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참참이 걸어감, 곧 참음이다. 영혼의 어둔 밤이 찾아오는 순간에도 끝끝내 가야 할 길을 잊지 않는 사람만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참음으로 걷는 길의 목표는 영원한 참에 이르는 것이다. 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는 어느 순간 엄범부렁한 자기 속이 가득 채워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참으로 달콤하고 가슴 벅찬 순간이다.

 

‘그 길’의 운명은 지금 어떠한가? 통행인이 뜸하여 묵정밭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가? 한 밤중에 ‘골짜기 문’을 나서, ‘용 샘’을 지나 ‘거름 문’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보던 느헤미야는 성벽은 다 허물어지고, 문들도 모두 불이 탄 채 버려진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샘 문’과 ‘왕의 연못’에 이르렀을 때에는 더 나아갈 길이 없었다(느헤미야 2:11-18 참조). 진군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에게 도래한 소비사회의 휘황한 불빛은 우리 눈을 어지럽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존재를 소유로 치환하는 세대에 사람들의 영혼은 더욱 납작해졌다. 이 시대의 느헤미야는 지금 어느 거리를 걸으며 탄식하고 있을까? 모두가 걸어야 하는 ‘그 길’은 잊혀진 길이 된 것은 아닌지?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

서울에는 사람 낚는 어부가 없다

바다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서울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슬에 젖지 않는다

서울의 눈물 속에 바다가 보이고

서울의 술잔 속에 멀리 수평선이 기울어도

서울에는 갈매기가 날지 않는다

갯바람이 불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그리워하는 일조차 두려워하며

누구나 바다가 되고 싶어 한다

 

정호승,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 전문

 

바다가 되고 싶지만 바다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고, 이슬에 젖지도 앉는 서울, 인정의 사막인 그 메갈로시티 저편으로 낙타를 탄 누군가가 흔들거리며 나아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존재를 소유나 지위로 치환해버리는 세상에서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귀 밝은 이들에게는 소금산 꼭대기에서 ‘나는 외롭다, 누군가 나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외치는 ‘어린왕자’의 음성이 아련하게 들려올 것이다. 그 음성은 잃어버린 본래적 삶에 대한 그리움을 우리 가슴에 심어준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도 없는 영혼의 심연

 

모든 종교는 순례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거룩한 기억이 깃든 곳으로의 순례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질서를 새롭게 세우기 원한다. 그것이 신탁을 듣기 위한 것이든, 치료를 구하기 위한 것이든, 경배를 위한 것이든, 참회 혹은 정화를 위한 것이든, 순례는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초월적 질서와의 소통을 희구하면서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고생이다. 오체투지로 라싸를 향해 나아가는 티베트 순례자들의 모습은 편안함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경이롭게 다가온다. 눈 덮인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몇 걸음마다 한 번씩 땅바닥에 손과 발 이마를 대는 그 고단한 여정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그들의 경험의 진실성과 고백의 적실함을 종교적 편견으로 예단하는 일은 정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들을 잡아끌고 있는 내적인 힘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일상의 흐름을 끊고 순례 길에 오르게 했을까? 그것은 목마름 혹은 헛헛증일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아케디아’(akedia)였다. 그것은 흥미 없음, 나태함, 불만, 권태, 오늘을 살지 못함을 뜻한다. 우리도 일쑤 경험하는 아케디아는 ‘떠나라’는 명령이 아닐까? 어떤 것으로도 해소될 수 없고, 채울 수도 없는 영혼의 심연에 직면할 때, 자신과의 불화를 절감할 때, 참된 나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시달릴 때야말로 길의 부름을 받을 때이다.

 

로마의 북부에는 수비아코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은 성 베네딕도의 동굴로 유명한 곳이다. 로마의 귀족 자제였던 베네딕도는 허영과 사치와 폭력으로 점철된 현세의 삶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수비아코의 작은 동굴에 들어와 몇 년 동안을 기도생활에 전념했다. 그곳에서 그의 영혼은 정화되었고, 흙가슴으로 곱게 갈아엎어진 그의 영혼의 향내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대 그레고리오의 <대화록>에 나오는 베네딕도의 일화 중에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한 미친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여자는 어떤 마음의 충동 때문인지 한 곳에 머물러 있지를 못하고,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으로, 계곡으로, 숲으로, 들로 쏘다녔다. 기력이 다하여 쓰러졌을 때만 쉴 뿐이었다. 정처 없이 헤매던 어느 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거룩한 베네딕도의 동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문 다음 날, 그는 언제 미쳤었냐는 듯 싶게 멀쩡해져 있었다. 그는 여생을 온전한 정신으로 삼았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오늘의 교회가 베네딕도의 동굴이 될 수는 없을까 생각하며 아뜩해진다.

 

기독교인들의 순례의 전통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헬레나의 예루살렘 방문 이후 성지순례는 신실한 신자들의 꿈이었다. 그런데 평신도들의 성지순례가 활성화된 것은 11세기 무렵부터이다. 파리 근교의 클루니에 있던 베네딕도 수도회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에 시달리던 평신도들에게 예수와 성인들과 관련된 땅으로 순례여행을 떠나도록 격려했다. 여건상 예루살렘까지 갈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사도들이 묻힌 것으로 믿어지는 곳으로의 순례는 대단히 활발해졌다.

 

베드로가 묻힌 곳으로 믿어지는 로마, 아리마대 요셉이 묻힌 곳으로 믿어지는 글래스톤베리, 야고보가 묻힌 곳으로 믿어지는 스페인의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 중에 순례자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배울 수 있었고, 한시적이긴 하지만 세속적인 삶을 뒤로 하고 수도사적인 삶을 살았다. 순례의 여정 중에 그들은 독신자처럼 지냈고, 다른 순례자들과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다. 순례자들은 서로 싸우거나 무장을 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순례의 전통은 곧 오염되었다. 십자군 전쟁이 그것이다.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성묘를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유럽 도처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교 공동체에 대한 약탈을 정당화했고,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에 대한 학살로 이어졌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십자군 전쟁의 진상을 밝히고 있다. 프란체스코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예루살렘에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가 만난 현실은 벌거벗은 폭력과 약탈뿐이었다. 십자군들은 애초의 뜻을 저버리고 어떻게 약탈을 하고, 여자를 노예로 삼고, 사라센 사람들을 학살할 것인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그들 사이를 걸으며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설교했지만 병사들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롱하기까지 했다.

 

“주여, 전쟁의 피 속에서 인간은 피에 굶주린 짐승이 됩니다. 당신께서 내려 주신 얼굴을 버리고 늑대가 되고 더러운 돼지가 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인간의 얼굴을 되찾게 해주소서. 당신의 얼굴 말입니다.”(니코스 카잔차키스, 《성자 프란체스코2》, 315-6쪽, 열린책들, 2008)

 

자기가 문제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의 순례는 그 고상한 명분이 무엇이든 타락하기 쉽고, 폭력과 결합하기 쉽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해서 순례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 왜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것일까? 왜 이슬람은 무슬림들이 평생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일까? 의례화된 순례는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재빨리 흘러가는 시간에 매듭을 지음으로 삶의 리듬을 만들기도 한다. 시간의 매듭인 순례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삶을 장구한 역사 속에 위치시키고, 다른 이들과 긴밀히 연결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순례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사람들을 머리에 그려 보라. 그 길에서 순례자들은 공동체적 공명을 경험할 것이다.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저 산꼭대기에 서있는 낙락장송이 되기보다는 어울려 숲을 이루는 나무가 되고 싶다던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 가리키는 바도 이것이리라.

 

삶을 순례로 이해하는 이들의 행장은 단출해야 한다. 어쩌면 순례란 잃어버린 ‘단순함’을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 누리며 살던 모든 것을 가지고 순례를 떠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순례는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90세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이 반핵시위 도중 경찰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티쉬 쿠마르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흔 살 노인도 인류를 위해 감옥에 가는데, 젊은 우리는 지금 무얼 하는 건가?” 그래서 그는 벗인 메논과 함께 핵 보유 강대국들을 순례하는 평화 행진을 하기로 작정하고는 축복을 받기 위해 큰 스승인 비노바 바베를 찾아갔다. 비노바 바베는 그 기특한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 무기를 선물한다.

 

첫째는 어디를 가건 채식주의를 실천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단 한 푼도 몸에 지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황하는 사티시 쿠마르에게 비노바 바베는 “항아리는 비어 있어야만 속을 채울 수 있는 법”이라고 참된 인간관계에 돈은 장애가 될 뿐이라고 말한다. 순례를 하다 지쳤을 때 돈이 있다면 호텔에서 잠을 자고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겠지만, 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선의를 가지고 환대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비전을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과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이런 삶은 불가능하다. 순례자가 되어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것은 그곳에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의 지층, 내밀한 욕망, 충일한 기쁨의 뿌리는 지하 깊은 곳에서 인류의 경험과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될 때, 낯선 이들은 사라지고 타인들을 향한 적대감은 스러지고 만다.

 

삶을 순례로 이해하는 사람은 소유뿐만 아니라 직함과 가면과 역할도 내려놓아야 한다. 순례 길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순례 길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허영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순례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약함에 직면하게 된다.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의 허영심을 벗겨내고, 자신이 누군가의 호의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절감하게 만든다. 순례가 주는 선물은 바로 이것이다. 허영심을 내려놓고 자기의 약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그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동행이 된다. 더 이상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바심이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영문도 모르고 질주하던 삶에서 벗어나 현실을 자세히 보며 산다. 그 순간 그는 세상에 가득 찬 은총에 눈을 뜬다.

 

무명의 백태가 벗겨질 때,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는 숭고한 감정이 솟아오르고,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귀속될 수 없는 불멸성을 간직한 존재임을 두려움으로 깨닫게 된다. 이런 자각을 가진 사람, 가슴에 불멸의 불꽃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라 한다. 시간 여행자인 인간은 모두 순례자이다. 그 순례는 자신의 본래적 실존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고, 영원한 참으로 가득 참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그 순례의 도구는 발이 아니라 가슴이다. 우리 스승은 말했다. 그 길은 좁아서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길, 참의 길이 우리를 부른다. 중세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Turistas manden; peregrinos agradecen)”. 당신은 어느 쪽인가?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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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8)

 

행동하라는 요구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의 기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때문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있지 아니하고, 그 변혁하고 자유하게 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인식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참으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작용하기 때문이다.(토마스 머튼)

 

속이 허할수록 말은 부박해진다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사념이 덧없게 느껴지고, 말의 부질없음이 아리게 다가올 때마다 나는 고진하 시인의 시 <黙言의 날>을 읽는다. 마치 해독제를 들이키듯….

 

하루종일 입을 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하지만 지금은 속엣것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져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향한 시위일까,

고행일까

큰 입을 封한 채

물구나무 선 항아리들.

부글부글거리는 욕망을 비워내고도

배부른 항아리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항아리들!

 

나도 속엣것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지고 싶다. 미처 숙성되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내고, 홀로 남겨진 시간 자괴감에 시달릴 때면 더욱 그러하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도 배부른 항아리가 되고 싶다. 제집을 찾지 못한 말들이 곳곳을 떠돌며 음란하게 교미하는 시대에 말을 부리며 살아갈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은 일종의 천형이다. 공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말, 누군가의 가슴에 파고들지 못하고 귓전에서 스러지고 마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홍수에 마실 물 없다고, 말씀의 홍수 시대에 정작 들을만한 말은 많지 않다.

 

속이 허할수록 말은 부박해진다. 내면에 고이고, 온축되고, 발효되어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공감의 언어가 사라지면서 지시적 언어가 많아지고 있다. 지시적 언어는 시비와 대립을 조화시키기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다.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이는 말이 횡행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의 가슴에는 저마다 상처자국이 있다. 또한 우주적 차원을 잃고 사소에 빠진 말들은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경박한 호기심만 부추기면서 우리 삶을 사소화한다. 존재의 집이라는 언어가 타락하자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큰 말은 조용하지만 작은 말은 언제나 시끄러운 법이다. 아, 옛 시인들은 어떻게 세상을 가득 채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편 19:2-4a)

 

말씀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성경에 ‘들어라’는 말이 넘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들어라 이스라엘!’,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물론 말씀은 외적 감각 기관인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마음으로 듣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에서 엉머구리 들끓듯 하는 욕망의 말들이 잠잠해져야 한다. 우리 속이 말끔히 비워질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말씀과 만난 사람은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세기 1:1)는 말씀과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 뜬 사람이 있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28:20)라는 말과 만나 가파른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이들도 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로마서 13:11)라는 말씀과 만나 새 사람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도 있다. 성경을 삶의 ‘척도’로 삼아 그 말씀을 기준 음으로 삼고 자기 삶을 조율하는 사람들, 그들은 말씀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징표들이다. 에너지로 가득 찬 말씀이 갈급한 영혼과 만날 때 신적인 불꽃이 점화된다. 물론 욕망의 습기로 눅눅해진 영혼에는 그 불꽃이 점화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문예 비평가인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성경을 가리켜 ‘산고(産苦) 속에 있는 텍스트’라 했다. 성경은 언제나 새로운 몸을 필요로 한다. 성경은 모든 때와 장소에 들어맞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체계로서의 진리가 아니라 이야기로서의 진리를 제시한다. 처음부터 완결된 이야기도 있지만, 오랜 전통을 통해 변화과정을 겪어온 이야기들도 있다. 성경은 후자에 속한다. 성경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는 수 천 년의 역사가 온축되어 있고, 이야기를 전승해 온 사람들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성경은 매끈한 텍스트가 아니라 접힌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그 해석은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 주목하느냐 혹은 어떤 전승 주체의 입장에 공감하느냐에 따라 같은 본문도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으니 말이다.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성경의 권위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은 해석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을 삶에 관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간주한다. 성경을 삶과 역사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처방전(prescription)으로 보는 것이다. 이때 성경은 닫힌 텍스트가 되고 만다. 마커스 보그는 성경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볼 것을 제안하면서 역사적(historical), 은유적(metaphorical), 성례전적(sacramental)이라는 세 개의 형용사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이 고대 이스라엘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기록된 텍스트라는 의미에서 ‘역사적’이고, ‘문자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뜻에서 ‘은유적’이고, 신성한 것을 매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례전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이런 관점에서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앨리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 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사람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관점과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 이야기가 갖는 힘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는 데 있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 그 이야기는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 현전(現前)한다. 과거의 맥락과 우리 삶의 맥락이 만나 새로운 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창조와 출애굽, 십자가와 부활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생성이다. 성경에 대한 해석은 이미 있는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나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빚어내는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의미를 해석해 놓은 단테를 읽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린이용 단테를 읽는 게 낫다”고 말한 바 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찾아가는 모험과 도전에 뛰어드는 것이기에 자아나 편견에 사로잡힌 자 혹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위험한 여정이다. 그 여정은 어쩌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하는 ‘어둔 밤’ 한복판을 통과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맛있게 느껴지던 것이 맛없어지고, 확실하던 것이 불명확해지고, 확신은 회의로 바뀌기도 한다. 자아 정체성은 흔들리고 삶의 평온이 깨지기도 한다. 그것은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일이기도 하고, 모리아 산을 오르는 길이기도 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불꽃 앞에 서는 일이기도 하고, 구름이 덮이고 천둥이 치고 있는 산정에 오르는 길이기도 하고, 길도 없는 광야길을 걷는 길이기도 하고, 골고다를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길은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삶을 체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울면서라도 그 길을 걷는 이들은 하나님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예수가 ‘모른다’고 한 문제에 대해 자기들은 ‘안다’고 말하는 이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삶에 지친 이들은 성경의 전복적 메시지를 꺼려하고, 교권주의자들은 성경 해석의 권위를 독점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새로운 중세인 셈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기준음으로 삼아 자기 삶을 조율하려 하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기준음으로 삼아 성경의 메시지를 조율하고 있다. 성경으로부터 메시지를 듣는 성경읽기(exesesis)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과 욕망을 성경에 투사한 성경읽기(eisegesis)가 넘친다. 듣기로서의 성경읽기의 시작은 질문을 던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인생이 문제임을 아는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자유로운가?’ ‘인간은 왜 죽음을 피할 수 없나?’ ‘왜 무고한 자가 고통당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 이야기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모색하다가, 인식의 극단에 이르러 침묵할 수밖에 없을 때, 마침내 우리는 어떤 불가지한 실재에 마주치게 된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묻다가 하나님의 크심과 신비에 부딪히는 순간, 언어도단의 세계와 만난 욥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질문에 대답해보라는 하나님의 다그침에 언거번거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다만 손으로 입을 막을 뿐’(욥기 40:4)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교권주의자들은 어쩌면 그리도 욥의 친구들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들에게 모호함은 악덕이고, 믿음 없음이다. 그들은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도 말할 수 있고,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은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죽어간 사람들,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했던 일부 종교인들의 오만함은 끔찍할 정도이다. 그들은 예수가 ‘모른다’고 한 문제에 대해 자기들은 ‘안다’고 말한다.

 

체코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은 <말의 힘>이라는 글에서 언어가 오용될 때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경고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찬란한 지평을 열어주다가, 다음번엔 수용소 군도에 이르는 통로를 세우기도 한다. 같은 말이 한 시점에서는 평화의 주춧돌이었다가, 다음 순간엔 그 음절 하나하나마다 기관총 소리가 울려 퍼질 수도 있다.”

 

말을 다루는 이들은 자기가 사용하는 말이 평화의 주춧돌인지 기관총 소리인지를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성경을 금서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독재자들의 최대 실수’라고 말한 바 있다. 성경은 차별과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모든 권력의 하수인들과 권력의 추악한 얼굴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동시에, 자비와 돌봄과 자유와 평화가 지배하는 세상을 끊임없이 가리켜 보이기 때문이다. 혼신의 힘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있는 한 독재는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성경이 오용되기 쉽다는 점이다. 자신의 증오, 편견, 이기심, 배타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전거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우상 숭배'를 금하는 성경 구절을 붙들고 이웃 종교를 우상으로 규정하는 이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릇된 확신에 사로잡힌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 혹은 신념이 우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남과 싸우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자기 속에 깃든 무지와 맹목과는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를 죽이는 사람마다, 자기네가 하는 그러한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요한복음 16:2b)이라고 하셨던 예수의 통찰은 무섭도록 예리하다. 모든 열심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바른 이해와 분별력에 근거하지 않은 열심은 남도 해치고 자기 자신도 망가뜨린다. 종교적 담론은 자칫하면 폭력과 손을 잡기 쉽다. 그렇기에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성경은 끊임없는 성찰 과정을 거쳐 보편적 진리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선율

 

성경의 세계를 한 두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선율은 명백하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공명하는 이들의 또 다른 사랑이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그 두 가지 사랑에 대한 다양한 변주곡이다. 그런데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파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고통 받는 이들을 짠하게 바라보시며, 그들의 살 권리를 되찾도록 인간사에 개입하신다. 그 사랑은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어루만질 때는 부드러운 바람이지만, 불의와 억압의 세상을 향할 때는 온 세상을 휘몰아치는 태풍이 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닮지 못한 불초(不肖) 신자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교회는 불의에 대해 저항할 줄도 모르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애린의 마음조차 잃어버려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진정한 영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내쫓기고,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도 교회는 울지 않는다. 터가 무너지는 세상을 향해 경고의 나팔조차 불지 않는다. 파헤쳐진 산과 강, 그리고 그 속에 깃들어 살아가는 뭇 생명들이 신음을 해도 교회는 별 일 없다는 듯 평온하다. 정신의 알짬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생아, 네가 무어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인생아 너는 죽은 거더라. 삶을 모르고 산 것을 좋아하는 맘도 없고 산 것을 산 채로 감당하는 뱃심도 없더라. 생명을 보느냐? 듣느냐? 만지느냐? 먹느냐? 먹어야 산다 하지만 네가 생명을 산 채로 먹을 수 있니? 네가 먹는 것은 생명은 다 빼고 남은 주검의 껍질만이 아니니? 인생아 너는 속이 죽었더라. 산 것에 대들 염을 못 내는 겁장이더라. 모처럼 살았던 것도 네 손에만 들면 죽고야 마는 너 아니냐? 죽은 줄을 확실히 안 다음에야 손을 대고 입을 대려 엉금엉금 기어드는 너 아니냐?”(<人生아> 일부)

 

함석헌은 말씀 주변을 서성이면서도 끝내 말씀을 온 존재로 받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생명의 불길 그대론 못 견뎌 불은 끄고 미지근한 재만을 안는 가슴.” 참 기가 막힌 지적 아닌가? 유대교 랍비들은 성경을 미크라(miqra), 곧 ‘행동하라는 요구’라고 불렀다. 신앙생활이란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기 위해 고투하는 과정이다. 교회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침묵하는 성경을 깨워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때이다. 기로에 선 한국교회가 살 길은 그 길뿐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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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7)

 

몽상과 꿈 사이에서

 

 

일주일에 하루, 새벽 기상 시간에 매이지 않기로 한 아침, 모처럼의 숙면을 꿈꿨지만 몸에 내장된 기억은 의지보다 강했다. 어김없이 일찍 눈이 떠졌다. 그래도 침대 속에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가며 30분 쯤 뒹굴거리는 호사를 누렸다. 아내가 아침 6시만 되면 트는 FM 라디오 방송을 대신 틀고, 아침을 준비하여 함께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문득 세월의 무상함이 저릿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지금 이곳이 참 낯설다’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존 레논의 <이매진>이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하려고만 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죠.

저 아래 지옥이 없고, 저 위로 푸른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을.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죽일 일도 목숨을 바쳐야 할 일도 없고, 종교도 없을 거예요.

 

노래는 이어졌다. 존 레논이 달콤한 목소리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그건 나 혼자만의 꿈은 아니라고, 당신도 그 꿈에 동참하라고 말할 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홉스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나날이다. 드라마틱한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사람들은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시대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정직이라 말하고, 남을 짓밟는 것을 경쟁력이라 말하고, 사람들의 능력을 쥐어짜는 것을 효율성이라 말한다.

 

 

                                    판화/류연복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히브리의 지혜자인 코헬렛의 말이다. 그는 마치 현대인들의 정황을 보고 있는 듯이 말하고 있다.

 

삶이 각박하다고 느낄 때, 갈짓자 행보에 스스로 실망할 때, 역사의 전망조차 불투명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꿈꾼다. 주전 8세기 중근동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나라들이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 억압과 착취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그들은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노는 세상을 꿈꾸었다. 어처구니없는 꿈이다. 그 꿈은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꿈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한다. 그것은 그런 세상의 꿈이 성취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우리들 속에 심겨져 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현인 노자는 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은 “애써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므로 크다(夷) 하고, 애써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기에 드물다(希) 하고, 애써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므로 정묘하다(微)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희망도 그러하다.

 

꿈을 꾸는 이들은 불온하다. 기존질서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꿈꾸는 이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세상에 틈을 만들어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킨다. 기존질서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불온하다 하여 박해하거나, 몽상가라 하여 비웃는다. 그것은 그들의 내면에 깃든 당혹감과 불안함의 역설적 표현이다.

 

꿈과 몽상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이들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다른 삶을 그리워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삶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몽상가들이다. 극심한 아파르트헤이트의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속으로 분노하고, 때로는 온건하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그 상황을 돌파해보려 했지만 그런 불의한 체제가 무너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권회복을 위해 싸우다가 27년간 옥고를 치른 넬슨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라는 오래된 가치를 붙들고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모든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사는 무지개 나라의 문턱에 당도했다. 한 사람이 품은 담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고투가 빚은 열매이다. 희생이 없이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존 레논의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지금 몽상과 진정한 꿈 사이를 걷고 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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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8)

 

힘내라, 젊은이들

 

 

입동이 지난 후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재바르게 살다가 마음이 묵정밭으로 변해버린 이들일수록 영문모를 영혼의 헛헛함으로 인해 울적해지는 때이다. 그래서인가? 노란 은행잎이 소복히 쌓인 거리를 걷노라면 그 따스한 노란빛이 마치 위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쌀쌀한 초겨울 풍경에 눈길을 주다가 이상하게 거리가 살짝 들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활기가 수능시험을 치른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은 홀가분함으로 거리를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 옅게 화장한 얼굴이 쑥스러운지 서로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 어른들의 세계에 틈입하기 위한 절차인지 염색과 퍼머로 멋을 낸 남학생들, 그들은 비로소 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들의 숨이 거리를 들뜨게 만들었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정규직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 절박함에 가슴이 얼얼해진다. 그러는 한편 가슴 가득 분노가 인다. 젊은이들의 관심이 온통 먹고 사는 일에 집중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신적 왜소증에 시달리게 만드는 세상은 미래가 없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그리스인들은 앎 그 자체를 위해 배웠고 히브리인들은 경외하기 위해 배웠지만 현대인들은 써먹기 위해 배운다고 말했다. 소위 실용적 지식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럴수록 인간다움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잔다리를 밟아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인간다운 품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실패다.

 

 

 

 

들릴라의 무릎을 벤 채 달콤한 꿈에 취했던 삼손이 떠오른다. 나른하고 포근한 행복감에 젖어들던 바로 그 때 그는 머리카락을 잘리웠고 산을 뽑을 듯하던 기운도 잃어버렸다. 적들을 향해 불이라도 쏟아낼 것 같았던 눈도 뽑히고, 조롱하는 적들 앞에서 맷돌을 돌려야 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망각한 자의 비극이다. 들릴라는 오늘도 성공 혹은 행복이라는 환상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자기 무릎 위에 눕히려 한다.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다. 들릴라의 손짓을 오연하게 뿌리칠 수는 없을까? 자기 삶의 주체로 바로 설 때 가능하다.

 

시카고 대학교의 석좌교수인 마사 누스바움은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라는 책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지역적 차원의 열정을 뛰어넘어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곤경에 공감하는 태도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실용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자본주의 경제질서에 편입된 교육체제가 소홀히 하고 있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공감의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 교육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삶이 각박해진 까닭은 돈과 성공을 신처럼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이 삶의 중심 가치가 될 때 사람은 교체 가능한 부품이나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비재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 세상은 사람을 제물로 받는 몰록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익지 못한 채 떨어진 감 열매를 소금물이나 쌀독에 묻어 두었다가 떫은 기가 가시면 간식거리로 주셨다. 여름이 끝날 무렵 참외 덩굴을 걷다가 채 익지 않은 열매를 보면 그것조차 거두어들여 된장에 박아놓았다가 겨울 반찬으로 삼곤 했다. 도사리까지도 여퉈두던 그 마음, 배추 꼬리 하나까지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그 살뜰함, 오래 사용해 사그랑이가 되어버린 도구들도 버리지 않고 기어코 다른 쓸모를 찾아주던 그 살림의 손길이 그립다. 거리를 들뜨게 만들던 젊은이들이 세파에 떠밀려 허든거리지 않고 자기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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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7)

 

오랜 외로움을 넘어

- 도로시 데이의 《고백》-

 

 

“우리는 모두 숙명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이 외로움 앞에 내놓는 이번 삶의 유일한 답은 공동체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그 형제와 공동체를 이루어 가까이 살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야 한다”(425쪽).

 

불안의 시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한 활동가이자 명상가’,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신자’, ‘미국의 마더 테레사’라고 일컬어지는 도로시 데이, 월간 잡지 <가톨릭 일꾼>을 창간했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환대의 집>을 열었던 이 전사적 인물의 자서전이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자서전의 원제는 《오랜 외로움》(The Long Lonliness)이다. 이 뜻밖의 제목이야말로 도로시 데이의 영성과 실천이라는 비밀의 화원을 여는 열쇳말이다. ‘오랜 외로움’은 모든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실존의 한계 상황이다. 살라는 명령을 받고 이 세상에 왔지만 어떻게 살라는 지침은 받은 바 없기에 우리는 암중모색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한 세월을 살아간다. 생명의 기본 조건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이다. 슬픔과 기쁨이 갈마드는 인생길에서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절감할 수밖에 없을 때,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온다. 불청객처럼.

 

대공황 시기, 끝없는 불안의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도로시 데이는 “이 삶을 어떻게,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15쪽)를 진지하게 자문했다. 그리고 실제적이고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살기로 작정했다. 물론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에 이정표로 선 이들이 있었다.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오웰, 실로네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그들이 그려 보인 도덕적 이상과 나중에 입문하게 된 가톨릭교회의 영성이야말로 도로시 데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두 질료라 할만하다. 도로시 데이라는 심지에 영혼의 불꽃을 점화했던 피터 모린도 빼놓을 수 없다.

 

도로시 데이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궤적을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그가 굳이 자기의 생의 내밀한 골방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자신에 대해 써도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에 닿는다”(23쪽)는 겸허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897년 11월 8일 브루클린 배스비치에서 태어난 데이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1906년에 일어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경험 때문인지 무에 대한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지진의 참상을 겪는 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하는 이웃들의 모습은 어린 소녀의 가슴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새겨졌다. 성인들의 삶에 감흥을 느끼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모습에 감동하고, ‘베네디시테Benedicite’와 ‘테 데움Te Deum’ 등의 찬송가를 듣는 것도 기쁨이었다.

 

온갖 난관 속에서도 지향을 바꾸지 않았던 데이의 검질김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인지도 모르겠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처럼 데이의 어머니는 강인하고 낙관적이고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다른 날에 비해 유독 걱정거리가 많았다거나 하루 일이 특별히 더 힘들었을 경우, 어머니는 늘 어디 저녁모임에라도 나가는 듯 신경을 써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갖추어 입었다. 그리고 여왕처럼 앉아서 저녁 식탁을 주재하며 우리 네 자식을 모임에 참석한 같은 어른들인 양 정성으로 대접했다”(50-51쪽). 시련과 절망에 맞서는 법을 어머니는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은 데이에게 위로와 안전, 평화와 공동체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삶은 오빠들의 영향으로 접하게 된 신문과 책들로 말미암아 깨지고 말았다. 잭 런던, 업튼 싱클레어의 책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아나키스트인 크로포트킨과 베라 피그네르의 글과 접하면서 데이는 자신의 삶이 도시 빈민들의 삶과 연루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의 행복”(71쪽)이라고 생각했던지라 도처에 널린 극빈의 현실은 당혹감을 안겨 주었고, 세상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유한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반감은 더욱 깊어졌다.

 

일리노이 대학에 입학한 후, 일부 신자들이 누리는 안온한 행복은 세상의 고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데이는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된 욕설을 내뱉음으로써 교회 다니는 친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바로 그때 데이에게 천둥처럼 다가온 소리는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구호였다. 산업사회의 포로가 되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사람들, 그 기나긴 절망의 행렬은 데이에게 이렇게 외쳤다. “노예들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 자체를 없애 버리는, 그렇게 해서 사회질서를 뒤바꾸려고 노력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82-83족) 아직은 방향을 잡지 못한 거룩한 분노가 데이의 가슴에 사무쳤다.

 

가족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 데이는 사회주의 계열의 일간지인 <콜Call>에 기고하면서 비로소 공적인 직무를 시작한다. 이때 아나키스트들의 대의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는 대중운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데이는 “모든 종류의 파업, 시위, 평화 촉구 집회 등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달려갔다”(102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는 자기를 성찰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감옥에 가고, 글을 써서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자기 속에 있음(107쪽)을 알아차린다. 이때 그의 마음에 충격을 준 것은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헌장Rerum Novarum’과 ‘40주년Quadragessimo Anno’이었다. 이 문건들은 당대의 산업주의 질서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충격이었을 뿐, 신앙으로의 귀향의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데이는 워싱톤의 여성참정권론자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가 생애 최초의 감옥생활을 체험한다. 정치범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는 동안 데이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어떠한 대의도 자각도 상실한 채 벌거벗은 고통과 공포만을 응시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삶이 이토록 추하고 하찮다는 통한의 확신(136족) 때문에 데이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개인적인 한계 경험이 있었기에 데이는 이제 인류의 고통 앞에서 자신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한다.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창살 뒤에 수많은 사람들과 나이 어린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저지른 범죄로 인해 구속과 징벌과 고립과 시련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나는 결단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었다”(136쪽).

 

절망을 피하는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헤셀)임을 데이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던 것일까? 데이는 세상의 고통에 연루되기를 꺼리지 않음으로써 자기 초월의 길로 접어든다. 예수는 그 길이 좁고 험하여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했다. 세상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은 고통의 연대를 피할 수 없다. 그 참담한 시간 그가 성경을 찾은 것은 계시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시편을 읽으며 데이는 잊고 있었던 기쁨과 감사와 희망을 되찾는다. 석방과 더불어 다시금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기는 하지만, 그의 가슴에 뿌려진 씨가 발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앙으로의 귀의

 

어느 날 데이는 유진 오닐이 낭송하는 프랜시스 톰슨의 시 ‘하늘의 사냥개’를 들으면서 미친 듯한 삶의 질주를 멈추고 자기 삶의 시종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 데이는 새벽에 나가기 시작했다.

 

“불빛과 침묵, 무릎 꿇은 신자들과 예배의 분위기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가 되었다. 사람에게는 어떤 대상을 공경하고 예배하고 흠모해야 할 크나큰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심리적 필요이다”(147-148쪽).

 

데이는 의지의 행위로서 기도의 분위기에 자신을 맡겼다. 자발적 가난에 대한 지향이 생긴 것도 그때이다. 킹스 카운티에서 간호실습생으로 일한 것도 인류의 고통 속에 더욱 깊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호사의 직무도 데이의 내적인 허기를 채워줄 수는 없었다. 날마다 벌어지는 비극을 오래 붙들고 괴로워할 수도 없었고, 비극과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도 없었고, 비극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는 본능적으로 성찰적 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병원을 떠난 데이는 유럽 여행도 하고, 온갖 신산스런 일들에 연루되기도 하면서 자기의 또 다른 운명인 글쓰기에 매달렸다.

 

첫 번째 책이 출간되고, 그 소설의 영화 판권도 팔리면서 데이는 처음으로 풍족한 삶을 맛보게 된다. 스태튼 아일랜드 해변에 작은 집 한 채를 산 데이는 아나키스트인 생물학자 포스터와 살림을 시작한다. 이때의 경험이 《고백》의 제2부 <자연스러운 행복>에 오롯이 담겨 있다. 데이에게 있어서 이 기간은 인생에서 누려야 할 행복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성찰한 시간이었고, 또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데이는 신앙으로 귀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기 다말이 태어나면서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은 위기를 맞게 된다. 데이는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딸아이의 인생에 질서를 부여하리라는 생각에 다말로 하여금 세례를 받게 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 경멸했던 포스터는 그 일을 계기로 데이 곁을 떠났다.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데이의 내면에 어떤 뿌리가 내리던 시기였다.

 

가톨릭 신자가 된 데이를 또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사코와 반제티 사건이었다. 아나키스트로서 구두 제조공과 생선 행상이었던 그들은 급여 강탈사건에 가담했다가 경비원 둘을 죽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드레퓌스 사건 이후 인류의 양심을 뒤흔든 이 사건은 데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을 위해 절규하는 가톨릭교회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은 더욱 큰 충격이었다. 데이는 자선은 베풀지만 정의를 위한 투쟁에는 가담하지 않는 교회, 인권을 유린당하는 이들을 품지 못하는 교회, 산업-자본주의 체제에 동의하는 교회에 절망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기어이 찾아내 상처를 싸매 줄 사제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또 다시 신앙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날 수는 없었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말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였고, 누구도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외로움에 이어 우울증이 찾아왔고, 그는 캘리포니아로, 멕시코로, 그리고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녔다.

 

인류의 고통 속으로

 

데이는 워싱톤을 향해 행진하며 실업 대책을 촉구하고, 구호물자를 요청하고, 강제 퇴거에 저항할 목적으로 구성된 굶주림의 행진에 <커먼윌>의 취재 기자로 동행한다. 데이는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 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감동한다.

 

“그들은 그분의 친구였고 동지였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마음이야말로 주님의 마음에 가까운 것 아니던가”(290쪽).

 

시위가 끝나고 기사를 탈고한 후 데이는 워싱턴 국립성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특별한 기도를 바쳤다. “보잘것없는 재주이오나 우리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길을 열어 달라는 기도”(291쪽)였다.

 

기도의 응답은 즉각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피터 모린이었다. 피터 모린과의 만남이야말로 사건이 되는 만남이라 할만하다. 그는 데이의 내면에서 부대끼고 있던 사회 변혁의 열망과 가톨릭 신앙을 잘 버무려준 최고의 요리사라 할 수 있다. 그가 품었던 “사람들이 더 쉽게 선해질 수 있는 사회”의 꿈은 고스란히 데이에게로 옮겨왔다. 형제들이야말로 하나님과 선을 발견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로 여겼던 그는 ‘종교, 문화, 경작’을 종합하는 삶을 제시했다. 어디에나 둘러앉아 원탁토론을 즐겼던 피터는 국가가 독점한 일체의 원조와 지원 활동에 맞서기 위해 환대의 집을 세울 것을 제안했고, 실업자들에게 땅과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농업경영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신문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데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가톨릭 노동자Catholic Worker>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문의 제목을 가톨릭 노동자로 정한 까닭은 당시의 가톨릭교인들 대부분이 가난했기에, 그들에게 열정을 심어줘 영혼의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게 하고 싶었기 때문(371쪽)이다.

 

<가톨릭 노동자> 1933년 5월에 창간호를 냈는데, 발행부수는 2천5백 부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날 즈음에는 15만 부까지 발행하게 되었다. 비전을 공유하는 조력자들도 늘어났다. 늘 성찰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던 데이는 신문의 성공에 도취되지 않았다. 오히려 신문을 만들고 발송하는 일은 쉽지만, 말을 듣고 길거리로 나가야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신문을 팔면서 데이와 동료들은 길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사귈 수 있었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면서 우애는 형제애로 발전했고, 그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이 되었다. 길거리에 나서면서 데이가 깨달은 것은 매스 미디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근본적이고 단순한 종교적 진리에 공감한다는”(359쪽) 사실이었다.

 

데이의 사회 변혁 운동이 짙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택한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계의 노동자들의 현실을 언급한 교황들의 글에서 구호 문구를 뽑아냄으로써 급진적이라는 비난에서 비켜섰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회사의 물품을 사지 말라고 호소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의 길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죽었다’는 선고가 들여오는 오늘의 현실 가운데서 데이의 유연한 지혜는 귀감이 된다.

 

초창기 직원들의 생활을 위해 마련한 공간은 자연스럽게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공동체인 ‘환대의 집’으로 발전하였다. 데이와 피터는 신앙적 관점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라고 생각했고, 말 그대로 벌거벗은 사람들을 먹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환대의 집은 그저 구호품을 내놓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고통을 같이 짊어지기 위해 육신의 안락은 물론이고 정신과 영혼의 위안조차 포기해야 하는 공동체였다. 환대의 집은 “실직자들, 병들고 아픈 사람들, 고용 부적격자들”(380쪽)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다. 데이는 극빈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값을 무시하고 좋은 밀가루와 커피를 구입했고, 이런 호기 어린 씀씀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거룩한 낭비인 셈이다. 아주 소박하게 시작된 ‘환대의 집’은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 “공동체, 그것은 오랜 외로움 앞에 내놓는 사회적 해답”(395쪽)이었다.

 

또 다시 출발선상에

 

데이가 또한 소중히 여긴 것은 피정이었다. 농장에서 시작된 정례 피정은 영원에 비추어 오늘을 조율하는 일이었고, 처리해야 할 많은 일로 비어버린 가슴에 하늘을 채우는 일이었다. 데이는 피정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 굶주리고 목말라서 기운 차릴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맡은 일을 하자면 나 역시 먹어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마른 샘이 되지 않으려면 나 역시 이처럼 달디단 샘물을 마셔야 한다”(461쪽).

 

데이의 <가톨릭 노동자>가 순탄한 경로로만 움직인 것은 아니다. 국가가 전시 동원체제로 재편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애국주의적 열정을 심어주려 할 때, <가톨릭 노동자>는 단호하게 평화주의 노선을 천명하고, 징병제의 부도덕성을 강조하고, 양심적 징병거부를 부추긴다. 그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떨어져 나간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데이는 폭력의 정치에 영적인 무기로 맞설 만큼 자신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는가 하는 자괴감을 느낀다. 동료이자 사부였던 피터 몰린의 죽음도 데이에게는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고백》은 1952년 이후의 데이의 삶은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의 말미에 숭실대학교의 김회권 교수가 덧붙인 해설은 이후 30년 가까운 데이의 반전평화운동, 인종차별철폐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에 철저한 투사이면서도 오랜 외로움을 직시하는 영성가였던 데이의 삶은, 이웃들의 아픔에 반응할 줄 모르고, 예언자적 소리를 잠재워버린 한국교회를 향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종소리에 화들짝 깨어나는 이가 많아지기를.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빵을 갈라 먹으며 그 분을 알고, 서로를 안다.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천국이 잔치일진대, 우애만 있으면 빵 한 조각을 놓고도 인생 또한 잔치 아닐런가”(502쪽).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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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6)

 

‘회심이 뭐예요?’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나서도 여전히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한 지인은 자기의 번민을 파스칼의 말을 빌어 표현했다. “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의 눈빛은 먼 허공을 더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존의 심연을 응시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런 아득함 앞에 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득 필화사건으로 정보부에서 겪었던 시달림의 후유증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시인 박정만이 떠올랐다. 해 지는 쪽으로, 나마저 없는 저쪽 산마루로 가고 싶다고 말하던 시인은 <종시終詩>에서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속으로.”라고 노래한 후 우리 곁을 떠나갔다. 산다는 게 이렇게 힘겹고 눈물겹다. 무정한 세상에서 살다가 이름 없는 들꽃처럼 그저 스러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책에 서명을 부탁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망설인다. 그저 이름만 적어주자니 성의 없어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쓸 수도 없는지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요즘은 ‘참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 아무개’라고 쓸 때가 많다. 삶은 순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그 길을 함께 걷자는 정중한 초대인 셈이다. 물론 순례의 귀착점인 ‘참’은 하나님이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자는 요구하지만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고 살고 있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무겁고, 주위 사람들이 귀찮게 여겨질 때면 순례자로서의 본분을 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에 사로잡혀 있던 이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회심이 뭐예요?’ 질문이 단순할수록 대답도 간결해야 하는 법인데 대답이 쉽지 않았다. 겨우 어섯눈을 뜨고 삶을 가늠하는 이가 어찌 시원한 답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문득 ‘접속’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회심이란 자기 속에 깃든 하나님의 형상과의 접속, 하나님과의 접속, 이웃과의 접속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회심에 이르는 길은 우련하지만 손으로 발로 더듬으면서라도 가야 할 길이다.

 

16세기에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교부 도로테우스는 세계를 원이라고 상상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 중심은 하나님이고 그분의 광채는 인간들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모든 이가 하나님이 계신 원의 중심으로 다가간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 곧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되는 이 절묘한 균형 속에서 이루어진다. 순례의 여정을 떠난 모든 이들이 마침내 하나의 중심 앞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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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5)

 

이 성전을 허물라

 

 

모두가 안에서 단란하고 오붓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은 데, 홀로 문 밖에 내몰린 듯싶어 외로움에 사무쳤던 때가 있었다. 그때 먼 곳에서 들려왔던 교회 종소리가 한 순간 내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종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교회, 그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속에 머물고 계신 분을 만났다. 추운 겨울 아침, 기도실 마룻바닥에 햇살이 비쳐들면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새벽마다 성도들이 흘리고 간 눈물이 얼어 수정처럼 보였던 것이다. 결핍과 고통이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미학적 깨달음에 가슴 벅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시절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우련한 풍경으로만 남아 있다. 어느 동네든 성채처럼 거대해 주변을 압도하는 교회가 참 많이 세워졌다. 말구유와 십자가, 수건과 대야로 요약할 수 있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담기에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본本’을 붙잡지 못할수록 ‘말末’에 집착하는 게 인간의 버릇이다. 예수 정신을 꼭 붙잡는 이들이라면 어찌 규모에 집착하겠는가? 교회를 세우기 전에 먼저 빈민가에 가서 그들의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고 말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충고가 아프게 떠오른다.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솔로몬의 최대 치적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전사인 동시에 시인이요 정치가였던 아버지 다윗도 이루지 못한 꿈을 그가 성취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그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우리의 조상을 이끌어 내실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우셨는데, 나는 주님의 언약이 들어 있는 궤를 놓아 둘 장소를, 이렇게 마련하였습니다.”(왕상8:21) 성전 건축을 출애굽의 완성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갖는 신학적 의미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하고, 성전 건축이 이스라엘 역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자.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백향목과 잣나무를 얻기 위해 두로의 히람 왕에게 매해 밀 이만 섬과 짜낸 기름 스무 섬을 보내주었다. 그것은 물론 백성들의 고혈이었다. 게다가 솔로몬은 레바논에 파견하는 벌목꾼 삼만 명, 짐을 운반하는 사람 칠만 명, 산에서 돌을 떠내는 사람 팔만 명을 징발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조세 부담은 물론이고 노역에까지 시달렸으니 어느 가정인들 온전했을 리가 없다. 어사 이몽룡이 변 사또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읊었던 시가 절로 떠오른다. “금잔의 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드높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출애굽의 완성으로 보았지만, 스스로 ‘새로운 바로’가 되어 평등의 공동체를 ‘새로운 애굽’으로 만들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분단이었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나자 북부 지파 사람들은 르호보암을 찾아와 선왕이 메웠던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왕은 단호히 거절한다. 다윗 가문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음을 깨달은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옹립하면서 남북 분단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무리한 성전 건축이 빚어낸 참상이 이와 같았다.

 

그에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 출애굽 공동체가 함께 세웠던 성막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라는 소명을 가슴에 품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성막을 함께 세웠다. 성막을 짓기 위해 필요한 예물은 결국 백성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물 봉헌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와’라는 말이다. 여하한 형태의 강요나 강제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금이나 은을 봉헌하는 이들도 있었고, 각종 짐승의 가죽을 봉헌하는 이들도 있었고, 여러 가지 빛깔의 실을 봉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기여는 경중이 가려지지 않았다. 모두가 기쁨으로 헌신했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솔로몬의 길을 가고 있는가? 출애굽 공동체의 길을 가고 있는가?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편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고는 그것을 하나님의 도움 혹은 은혜로 포장하는 일은 제발 그만 두어야 한다. 30여 년 전 교인들의 자발적 헌신으로 아담한 예배당을 짓고 봉헌하는 날, ‘이 성전을 허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던 어느 목사님이 떠오른다. 그는 건물에 집착하는 순간 예수 정신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예수 정신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위선과 자기만족임을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제 다시 시작할 때이다. 규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본질을 꼭 붙들 때 교회는 든든히 서간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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