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15)

 

“이런 교회는 무너지는 게 순리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라 했다. 사로잡힘은 주체적으로 조장할 수도 없고 물리칠 수도 없다. 불가항력이다. 그래서 사로잡힘은 마치 교통사고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느닷없고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예수에게 사로잡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본다. 사로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일심으로 달리긴 했다. 돌아보면 갈짓자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다. 다가섰다 싶은 순간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은 순간 다가오는 길, 탄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진 그 길이 참 힘겹다.

 

한국교회가 위기다.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 해도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시적인 위기라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근본적 위기이다. 교세가 확장되고, 대형교회도 많이 등장했지만 복음은 후퇴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경계했던 ‘다른 복음’이 슬그머니 틈입하여 주인 노릇하고 있다. 십자가는 자동차 룸미러에 매달려 대롱거릴 뿐, 많은 이들이 십자가라는 스캔들과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 행복한 삶의 루틴을 깨뜨리는 메시지는 수취인 불명이 되어 허공을 맴돈다. 은혜스러운 찬양의 소리는 도처에서 들려오지만, 예수의 벗들의 신음소리는 경청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도 외롭다.

 

에덴의 동쪽으로 이주한 가인은 도시 건설자가 되었다 한다. 에덴의 동쪽이 가리키는 것은 ‘불안’, ‘안식 없음’, ‘뿌리 뽑힘’이다. 가인에서 라멕으로 이어지는 그 폭력의 흐름은 아직도 잦아들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든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거리를 걷는 이들의 얼굴마다 오랜 피곤이 똬리 틀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던졌던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번째 질문,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책망이다. “네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났구나.” 아담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은 바로 하나님 앞이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천진함을 잃어버린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뒤로 숨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후 사람은 그 마음에 깃든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어떤 대상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불안의 대용물 말이다. 누군가 인간 속에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허구렁이 있다고 말했다.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려니 삶은 힘겹고 마음의 공허는 깊어간다.

 

두번째 질문,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이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닐 것이다. 가인은 불퉁거린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냐고.” 하나님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아무리 무심해도 그 눌함訥喊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웃을 지키는 자로 만드셨다. 하나님에 대한 책임, 그리고 이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한 인간다운 삶이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책임이라는 말이 너무 강박적으로 들려서일까? 성경은 ‘책임’을 ‘사랑’으로 바꾸곤 한다.

 

성경 인물 가운데 노아는 순종의 챔피언이다. 그는 폭력과 부패함이 가득찬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다.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신 하나님도 노아만 보면 흐뭇해 하셨다. 그는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했다. 방주를 만들라 하면 만들고, 짐승들을 이끌어 들이라 하면 그렇게 했고, 들어가라 하면 들어갔다. 마침내 홍수가 끝났음을 알았을 때도 그는 방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만한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노아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 것일까? 물론 아브라함도 순종의 사람이다. 떠나라 하면 떠났고, 바치라 하면 바쳤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있고 노아에게는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책임성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누군가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인 동시에, 그를 위해 스스로를 위기에 내던지기도 하는 행위이다. 아브라함은 전쟁 중에 사로잡힌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출정했고,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기 위해 길을 떠난 하나님 일행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순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교회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것은 바로 책임의 윤리이다. 민족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독교는 위험을 무릅쓰고 진리 편에 섰고,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섰다. 그 때 기독교는 젊었다. 야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늙어버렸다. 불의에 대해 저항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벗들인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지도 않는다. 위선적인 종교인과 지도자들을 향해 ‘화가 있을진저!’라고 일갈하던 예수의 얼굴에는 베일을 덮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만 바라봐 달라고 말할 뿐이다.

 

야훼는 제국의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세계에 던져진 혁명의 깃발이었다. 하나님은 힘으로 사람들을 압도하던 애굽,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을 지푸라기 강아지로 여기셨다. 현실이 아무리 암담해도 초월적 비전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예수는 로마 제국이 지배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화려하고 늠름한 이들만이 존중받는 세상이 아니라 겨자풀처럼 보잘 것 없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의 몫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꿈 자체가 불온하기 이를 데 없다.

 

오늘의 제국은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희소성’의 신화를 가지고 사람들을 쥐락펴락한다. 희소한 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경쟁한다. 적당한 경쟁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희소성의 신화에 갇힌 이들에게 ‘적당히’라는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 무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은 루저가 되고 승리한 이들은 득의만면이다. 예수의 세계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불편을 감수하지만, 희소성의 세계는 한 마리 양을 위해 모든 양을 희생시킨다. 욕망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망각이 깊어지면 주체의 몰각이 찾아온다. 거라사 광인을 사로잡고 있던 레기온이 돼지떼에게로 들어가자 돼지떼는 비탈길을 내리달아 호수에 빠져 죽었다.

 

기독교는 이런 세계의 실체를 폭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그동안 번영의 복음과 죄 경영(sin-management)을 통해 몸집을 불리느라 바빠, 자본주의의 신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왜곡된 정신을 타격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정방향으로 되돌리고, 세속적 가치 질서의 우상적 작동을 막아야 할 교회가 세상에 투항해버리고 만 것이다. 예수 정신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예수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이런 교회는 무너지는 게 순리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광야 공동체는 애굽과 바로 체제에 대한 대안이었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일은 창조적 노동이 아니라 고역이다. 고역으로서의 노동은 비인간화를 가속화시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히브리들에게 제시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비옥한 땅을 일컫는 말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사는 세상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출애굽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 나일강물이 피로 변한 사건은 그 위대한 문명이 사실은 밑바닥 계층 사람들의 피를 통해 형성된 것임을 가리킨다. 야훼 신앙은 이처럼 당파적이다. 하지만 그 것은 보편을 지향하는 당파성이다. 헤게모니 장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 떨리게 경험하는 학교였다. 만나는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떨어졌을 때 주어졌다. 만나는 제대로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받아먹는 것이고,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밥을 함께 나눔으로 그들은 한 식구가 되었고,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공동체를 뜻하는 community는 ‘서로 함께’라는 뜻의 ‘com’과 ‘선물’이라는 뜻의 ‘munus’가 결합된 단어이다. 신앙 공동체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때 든든히 서 간다. 초대교회의 애찬은 바로 이런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신앙 공동체는 또한 하나님의 파토스를 함께 느끼는 이들을 통해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린다.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헐벗은 사람, 나그네, 감옥에 갇힌 사람, 병든 사람을 외면할 때 우리는 예수님도 외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을 약자들 속에 숨겨 놓으셨다. 그들 앞에 멈춰서고, 곁에 다가서고, 그들의 몸에 손을 대고, 그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때 생의 비애는 줄어들고 내적 자유의 공간은 늘어난다. 신앙 공동체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회적 세계의 민중적 현실에 연루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가끔 남은 목회 여정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색하게나마 대답한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삶을 이웃과 더불어 누리는 축제로 경험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이다. 신앙생활이란 우리를 동화시키려는 세상의 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여 하나님 마음이라는 중심을 향해 순례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슬아슬하지만 즐거운 탈주이다.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중세의 격언이 떠오른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은 그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안내인이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출구인 동시에 입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을 통해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 그 꿈이 현실이 되게 하는 일, 그것 말고 목회의 다른 목표를 나는 알지 못한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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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4)

 

소멸하는 것을 통해 불멸을 보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창세기 8:22)

 

1.

 

시간 여행자인 인간은 순환하는 계절의 리듬을 타고 산다. 그 속에는 패턴이 없는 무질서에서 패턴을 만들어내신 큰 생명의 숨결이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규칙적인 패턴에 따라 번갈아 찾아오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에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그 리듬을 타고 살 때 삶은 흥겹고, 그 리듬을 거스를 때 삶은 힘겹다. 지금은 우주의 리듬과 문명의 리듬이 충돌하는 시대이다. 몸이 고단하고 심성이 거칠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쓸까? 시간 여행길에 만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붙들기 위한 기억투쟁일까? 세상에서 제일 힘센 덧없음에 작은 틈이라도 만들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까? 혹은 자기 속의 불화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일까? 어쩌면 시 쓰기는 우주의 리듬에 자기 존재의 리듬을 연결시키고픈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자기 발견을 위한 몸짓이든, 세상과 소통하려는 열망이든 시를 쓴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고된 일이다. 시 이전의 시가 마음에 밀려올 때, 그것을 언어의 그릇에 오롯이 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시인이 그 고됨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멸의 운명을 타고난 생명이 불멸의 무늬를 잣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인 정명성은 관찰자이다. 그는 세상을 유심히 살핀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에게 세상은 초월자의 암호인 것처럼 시인에게도 세상은 초월자의 암호이다. 하지만 그는 해석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보여주려 한다. 자기 심상에 비친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그리듯 그저 그려낼 뿐이다. 그의 심상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같은 하얀 연기가

굴뚝마다 피어오른다

처마 밑 장작더미 틈새로

 

뉘엿뉘엿 스며든 석양을 거두어

아궁이 속에서 불로 지피는 사람들

바람은 멎고

새들은 산으로 돌아가고

 

등불처럼 오롯이 타오르던

노을도 꺼져가는 저녁

홀로 남은 빈들엔

어둠이 내려,

종소리보다 평화로운

어둠이 내려

 

저녁기도 끝나는 시각

연기를 지펴 올린 마을 하늘에

강가의 돌들만큼이나 무수히

피어난 저 환한 별들

 

(<저녁> 전문)

 

이미지의 전환이 눈부시다. 시각적인 이미지는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되고, 아래로 향하던 시선은 돌연 위를 향한다. ‘굴뚝마다 피어오르는하얀 연기가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로 전환되면서 시적 생동감이 만들어진다. 아궁이 속에 불을 지피는 사람들은 장작이 아니라 장작더미 틈새로 스며든 석양을 지피는 것이다. 저녁이 되어 홀로 남은 빈들도 외롭지 않다. 종소리보다 평화로운 어둠이 덮어주기 때문이다. 마을 하늘마다 무수히 피어난 환한 별들은, 여항의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기표가 된다. 이처럼 무정물인 하얀 연기석양어둠별들은 시인의 심상 속에서 유정물로 전환되어 밀접히 연결되고 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홀로 있지 않다. 이 든든한 유대 속에 삶의 뿌리가 놓여있다.

 

 

 

2.

 

시인의 시선은 따뜻하다. 따뜻한 관찰자인 시인에게는 모내기조차도 우주와의 교감이다. 이앙기가 지나간 자리에 심기는 것은 어린 모가 아니다. ‘오월의 싱싱한 햇살 몇 오라기이다. 그러니 모주머니를 어깨에 멘 구부정한 할머니가 흙 속에 꽂는 것은 부유하는 어린 햇살들이 되는 것이다(<모내기>). 시인은 어느 비오는 날 오후, 호박 모종 옮겨 심고 밭이랑 사이에 풀을 뽑는 촌노를 본다. 땅과 촌노는 구별되지 않는 일체이다. 그는 자기 밭 속에 스며들어 밭이 되고 만다(<촌노의 하루>).

 

하지만 관찰자는 외로움의 운명을 타고 난다. 누군가에게 선뜻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가와도 그는 그만큼 뒤로 물러선다. 거리를 확보해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시 전편에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의 외로움은 건조하지 않다. 그는 호수의 밤을 타고 산을 돌아 손님처럼 마을로 흘러들어오는 안개를 닮았다.

 

호젓한 가로등 아래 모여 수런거리다가

불빛 새는 외딴 처마 밑을 기웃거리다가

잠 못 드는 개구리들의 울음을 말없이 듣다가

개망초 피어나는 강둑에 걸터앉았다가

바람이 자는 들판에 켜켜이 고여 졸다가

 

(<안개> 부분)

 

수런거리고, 기웃거리고, 말없이 듣고, 걸터앉고, 졸고 있다 하여 비참하지는 않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시인은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을 청하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상처는 스스로 견뎌야 할 삶의 몫인 까닭이다. 삭풍같은 마른 외로움과 뼛속까지 에이는 겨울의 헐벗음을 감싸기 위해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은 햇살의 입맞춤에도쉽게 녹지 않다. 새 살이 차오르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입춘 즈음>). 조개는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생살 속에 박힌 모래를 뱉어내지 않는다. 먼 훗날 어여쁜 임금께 바칠 진주를 바라보기 때문이다(<진주조개>). 시인에게 사는 일은 늘/소리 없는 눈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눈물이 뜨거워지면 흔들리는 한 떨기불꽃으로 피어오른다(<>).

 

3.

 

외롭기에 시인은 소멸하는 것들에 눈길을 보낸다. 소멸하는 것들은 안쓰럽다. 하지만 잿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불사조처럼 시인은 소멸하는 것 속에서 불멸을 본다. 소멸과 불멸, 하늘과 땅, 하루와 영원, 삶과 죽음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긴밀히 내통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가능태가 현실로 이행하는 운동이라 했다. 즉 시간은 공간과의 싸움이라는 말이다. 시간이 우리를 본래적 삶을 향해 부르고 있음에 비해, 공간은 타성 속에 우리를 가두려 한다. 타성화된 공간 속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를 외면한다. 공간은 우리로 하여금 소멸을 거부하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관찰자인 시인의 눈길은 공간을 넘어 영원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라, 변화의 계기가 된다. 시인이 어둠이 와 닿기 전/지는 노을 따라스스로 꽃잎을 접는 무궁화처럼 망설임없이 스러져 갈 수 있기를 소망(<무궁화>)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할머니처럼 매일/조금씩 주저앉는 초가도 초라하지 않다. 금계국 핀 들길 따라 어김없이 바람이 찾아옴을 알기 때문이다(<외딴 집>).

 

봄이 되어서야

기다렸다는 듯

강가의 갈대들은 죽어간다

황량했던 불모의 겨울 내내

메마른 강변에서 홀로

숲을 이루었던 것들

황혼처럼 조용히 스러지는 저녁

노을에 젖은 가랑비가 내린다

 

갈대들이 죽어가는 길을 따라

비로소 봄이 들어선다

스러지는 갈대숲 무덤 딛고

파릇파릇 일어서는 작은 풀들

봄비 그친 아침

햇살이 이슬 털어낸다

 

(<사월> 전문)

 

봄은 갈대들이 죽어가는 길을 따라 온다. 갈대숲의 무덤이야말로 작은 풀들이 돋아나는 밭이 되는 것이다. 생명과 죽음은 이처럼 긴밀한 연결되어 있고, 소멸의 과정을 통해 불멸의 리듬을 만든다. 밀물과 썰물의 주기적 순환이 바다를 푸르게 유지시키는 것처럼, 낮과 밤의 순환이 생명의 바탕인 것처럼, 생명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우주가 숨쉬고 있다. 그러니 죽음과의 대면을 늘 연기하며 살기 원하는 이들의 삶은 천박을 면하기 어렵다. 죽음 혹은 소멸의 빛에 비추어 보아야 삶은 무지개빛 광휘로 빛나게 된다. 시인이 자기 마음 갈피를 뒤적이다가 빛바랠 줄 모르고여전히 푸른빛으로 남아 있는 오래된 애착 한 잎을 나뭇가지 끝에 매달아 두는 까닭도 조락(凋落)의 순환 속에 들고자 함이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 오르던 산에, 시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른다. 무덤가에 쭈그려 앉아 잡초를 솎아내며 그는 오래 전 봉인해 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관을 연다. 하지만 관 속에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어디에 가신 것일까? 그때

 

동시에, 사태라도 난 것인지

온 산을 흔드는 웃음소리

까르르 까르르

무지개 미끄럼 타듯, 구름다리 건너듯

할아버지 무덤 오르며 내리며

구르는 아이들이 쏟아내는

봄 햇살보다 눈부신 웃음

 

(<만남> 부분)

 

시인은 아이들의 눈부신 웃음 속에 일어서신 아버지를 본다. 이승과 저승이 이렇듯 상쾌하게 내통할 수 있다니. 이런 이미지는 요양원에 머물며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도 등장한다. 가을볕을 쬐고 앉아 기억을 풍장하는 것처럼 고요한 어머니, 그리고 시끄럽게 뛰어노는 아이들. 시인은 어머니의 침묵으로/깊어진 가을 숲 속에서 환하게 울려나는 아이들의 함성을 듣는다(<침묵>). 어머니는 그 함성 속에 이미 녹아들고 있다. 소멸과 불멸은 되먹임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4.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남보다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이다. 처마 높이까지 자라 태양만큼 노란 꽃들을 피워내는 해바라기나, 낮은 장독대 둘레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풀꽃보다 작은 채송화나 모두 제 모습으로 한 세상 살고 있다. 생명의 세계는 무등(無等)의 세계이다. 높고 낮음이 없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높고 낮음의 차별상을 만들며 산다.

 

크고 작은 것이

무슨 상관인가

 

모두 하늘을 향해

피어난 꽃들인 것을

 

큰 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상관인가> 부분)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라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주어진 삶을 견디며 살아내는 것이다. 흐르면서 얼고, 녹이면서 또 흐르는 것이다. 밟히면서도 파릇파릇한 민들레처럼, 칼칼한 흙바람 맞으며 피어나는 냉이꽃처럼 다만 피어나는 것이다(<봄비>). 장맛비에 꺾어진 허리를 다시 곧추 세우며 일어서는 옥수수처럼(<태풍 민들레>) 영혼에 깃든 습기들을 말리며 일어서는 것이다. 그러다가 주인이 부르시면 망설임 없이 스러져가는 것이다(<무궁화>). 시간 여행자인 시인은 여전히 외롭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 주변머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가야 할 곳을 알고 가고 있다. 시간의 리듬을 타고 그가 마침내 이를 곳은 어디인가? 세상의 관찰자인 그의 가슴은 속으로 뜨겁다. 해를 삼킨 김기창 화백의 닭처럼 그의 가슴에는 하늘이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높고 멀어

하늘이라는데

당신의 박동소리

이토록 가깝고 생생하니

내 가슴 이렇게

일렁거릴 수밖에

 

크고 넓어

하늘이라는데

그대가 내 안에 들어와 있으니

나 어쩔 수 없이

넘쳐날 수밖에

 

(<파도> 전문)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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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2)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1.

 

매미 울음소리가 한참이던 그해 여름, 나는 수영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들판 저편, 논배미 곁에 있던 샘을 무시로 뛰어들던 동네 형들의 동작은 날렵했다. 발판을 굴러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물에 뛰어드는 그 멋진 비상을 둑에 앉아 감상만 해야 했던 나는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어느 여름 날 수영학습을 감행했다. 집 앞 논배미 옆에 있던 둠벙에 뛰어든 것이다. 양팔을 바람개비처럼 돌리기만 하면 몸이 앞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어라, 그게 아니었다. 내 몸은 납을 달아맨 추처럼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며 정신이 아뜩해지는 순간, 어떤 강력한 손길이 내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밭에서 농약을 치고 있던 형이었다. 분무기를 벗어던지고 6-7미터 높이의 둑 위에서 둠벙으로 뛰어내려 동생을 건진 것이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형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빙긋 웃었다. 형도 어이없는지 한숨을 내쉬더니 따라 웃었다. 그리고 형은 봄날 볍씨 소독을 위해 사용하곤 하던 고무 함지를 내려 그 속에 물을 채워주면서 그 속에서 놀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래도 손에 쥐어준 개구리참외의 단맛과 등에 닿는 따뜻한 햇살 때문에 형을 용서하기로 했다.

 

2.

 

서울로 유학을 와 누나의 전셋집에 기거할 무렵, 주인집 아줌마는 가끔 누나가 없는 틈을 타 나를 방 밖으로 불러내곤 했다. 아줌마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번진 날은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날이었다. 아줌마는 가끔 양푼에 밥그릇이나 숟가락을 담아 우물 뚜껑 위에 올려놓고 물을 길을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 양푼이 우물 속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를 불러내곤 했던 것이다. 아줌마는 나를 우물타기 경력사원으로 인정해주면서 그릇을 건져달라고 부탁했다. 미끄럽고 깊은 우물 벽을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해 오르내리며 나는 삭정이를 꺾으려 오르곤 했던 시골 산을 생각했고, 또 가끔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도 했다. 기명들을 건져 두레박에 담고 “끌어 올리세요” 하고 외치면, 아줌마는 기왕 내려간 김에 우물 청소 좀 하고 올라오라고 말씀하셨다. 60년 대 중반, 세상이 아직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3.

 

자치 생활을 할 무렵, 수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울의 달동네에 살던 나는 깊은 밤 물지게를 지고 공동 수도가 있는 아랫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길게 줄지어 서있는 물통들을 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들던 시골의 샘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서로가 하룻밤 새 물어온 이런저런 소문들을 나누느라 속살거리던 우물가, 가끔은 터무니없이 큰 웃음이 폭죽처럼 터지기도 하던 그 우물가가 아니었다. 누구 하나라도 새치기할까봐 눈에 불을 켜고 마치 전장에서 서로를 싸늘하게 응시하는 군인들처럼 굳은 표정으로 우리는 말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간신히 물을 받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다보면 물의 1/3쯤이 쏟아졌다. 허망했다. 소년 시절 내 기억에 각인된 샘터의 풍경은 그러했다.

 

 

 

 

4.

 

옛날 영월에는 물이 아니라 술이 나오는 샘이 있었더란다. 그런데 이 샘은 사람에 따라 다른 술을 내곤 했다. 양반이 가면 맑은 청주를 내고 상놈이 가면 탁주를 냈다. 마을에 살던 상놈 하나가 청주가 마시고 싶었지만 샘은 그런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상놈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 노릇인데 술 샘까지 자기를 차별하자 그는 딱 살맛이 없었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을 차리면 사는 법. 그는 어느 날 양반 옷을 입고 갓까지 구해 쓰고 제법 ‘흠흠’ 소리까지 내며 팔자걸음으로 술 샘에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술 샘은 비웃기라도 하는 듯 텁텁한 탁주를 내는 것이었다. 화가 치민 그는 작대기로 술 샘구멍을 마구 쑤셔댔다. 그 후부터는 술이 안 나오고 물만 나오게 되었단다.

 

술을 내는 샘은 차별 세상의 은유이다. 이현주 목사님은 이 민담을 이렇게 읽었다.

 

“인간의 불평등에서 비롯하여 인간의 불평들을 조장(助長)하고 있는 술 샘은 마땅히 무너져야 한다. 인간을 구분 짓고 계층으로 갈라 세워 서로 갈등하게 하는 ‘술’은 천하 인민 모두에게 같은 맛으로 먹히는 ‘물’로 바뀌어야 한다. 술 샘 전설은 바로 이 변혁의 과정, 인간 해방의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칼아 너 갈 데로 가>>, 생활성서사, 1993, 39쪽)

 

세상이 으레 그러려니 하는 사람은 불평등을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을 전복하는 상상력은 역시 억울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술의 세상을 물의 세상으로 바꾸는 일, 이것이 자유의 확대과정인 역사일 것이다. 어디 작대기 하나 없나?

 

5.

 

최전방 부대의 군목으로 근무할 때, 내가 있던 교회는 산등성이에 있었다.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언제라도 십자가 탑을 바라보며 마음에 위안을 얻으라는 설립자의 마음씀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군종병들만 죽어났다. 교회 청소를 한번 하려면 근 7-80미터는 떨어진, 병사들이 소위 ‘사이다 장’이라고 부르는 냇가의 집수장까지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차라리 그건 고행이었다. 어느 날 전방에 다녀왔더니 군종병 둘이 교회 마당가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다가가 뭘 하냐고 물었더니 우물을 판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곳은 산줄기로 보아 도저히 물이 날 수 없는 곳이었다. 물을 긷는 어려운 사정이야 알겠지만 이렇게 어리석어서 행복하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두고 보라면서 계속 땅을 팠다. 물론 물이 나올 리가 없지. 그런데도 군종병들은 태평이었다.

 

어느 날 전방 부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큰 비가 내렸다. 진창으로 변한 산길을 간신히 올라 교회에 들어서니 군종병들이 마당가에 서서 춤을 추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들이 기다린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산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물이 그 마른 샘에 가득 차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군종병들은 흙이 곱게 가라앉은 자기들의 우물에서 맑은 물을 퍼다가 교회당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았다. 갈멜산에서 제단 위에 물을 붓는 엘리야가 그런 모습이었을까?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우물은 고갈되었고 그들은 다시 지게를 지고 사이다 장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외부에서 흘러드는 기쁨은 지속성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미약할지라도 속에서 솟아나는 물이 있어야 샘이 샘일 수 있는 것처럼, 기쁨은 내 속에서 발원할 때 기쁨인 것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분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하셨다.

 

6.

 

고은 선생의 아름다운 구도소설 《화엄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구도 여행 중에 있는 선재는 사공 바시라를 만난다. 바시라는 어린 선재에게 말한다.

 

“선남자여, 어린 선재여. 나는 저 멀리 먼 벵갈 바다, 짙푸른 바다를 다 안단다. 어느 곳에서는 바다의 짠물을 뚫고 민물이 솟아나온단다. 뱃사람들은 먼 바닷길에서 물이 떨어지면 그곳으로 가서 물을 마시게 된단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그 물을 도솔천의 물이라고도 하고, 생명의 물이라고도 한단다….”(《화엄경》, 민음사, 1991, 201쪽)

 

짠 물을 뚫고 솟아나는 민물, 이 이미지는 너무나 강력해서 세상사에 시달려 낙심될 때마다 샛별처럼 내 가슴에 떠오르곤 한다. 그곳에 가고 싶다. 세상이, 아니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유다서13절)이라 해도 어딘가에는 맑은 샘으로 솟아나는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절망은 불신앙이고 사치이다.

 

7.

이제 나는 안다. 사람도 샘이라는 것을. 게으른 일상을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때 나는 ‘루쉰’의 샘에 가곤 했다.

 

지극히 진실한 소리를 내어 우리를 선과 미와 강건으로 이끌 사람이 있는가? 따뜻한 소리를 내어 우리를 황폐와 혹한으로부터 구출해줄 사람이 있는가? 국가가 황폐해졌는데 최후의 애가를 지어 천하에 호소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예레미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루쉰, 《투창과 비수》, 솔, 1997, 61쪽)

 

그런 이가 없어 중국이 적막해졌다고 말하는 루쉰의 강건하고 절제된 언어는 나의 느른한 일상을 깨우는 샘물이었다. 얼굴에 거미줄을 뒤집어쓴 듯 현실에 포박 당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샘물을 찾곤 했다.

 

“나는 당신의 명령을 밤낮으로 들었다. 나는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나는 이것을 내 의무로 삼았다. 내가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당신이 판단해야 한다. 나는 당신 앞에 꼿꼿이 서서 기다린다. 장군이여, 전투가 끝나가니 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싸웠노라. 나는 부상을 당해 쓰러졌고, 용기를 잃었지만, 싸움터를 버리지 않았다.”(《희랍인에게 이 말을》, 고려원, 1979, 19쪽)

 

그의 샘에서 목을 축이고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아, 내가 거쳐 온 샘물은 수없이 많다. 호메로스로부터 최근의 아룬다티 로이까지. 그 샘물들을 마시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모든 샘물들이 만나는 큰 정신의 지하 수맥,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8.

 

쌩 떽쥐베리는 어린왕자의 입을 통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적 오래된 집에 살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왔었단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또 어쩌면 찾아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보물로 인해 그 집은 매력이 있었다. 그 속 깊숙이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분은 세상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 한다. 내가 처한 삶의 시간이 언제이든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아름답다. 그의 속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으니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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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1)

 

영혼의 둔감을 경계하며 기다릴 뿐

 

 

교회 종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도 기독교를, 아니 기독교인들을 싫어했던 내가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다니. 그날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세상 밖으로 떠밀린 자의 고적감에 짓눌려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저녁 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근원으로부터의 부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유수지에 얼비치고 있었던 석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물결 위에 드리운 부드러운 햇살은 비현실적인 평안함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때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고, 마침 어머니가 내 곁을 지나가고 계셨다. 문득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기독교와 맺은 인연의 시작이다.

 

나름대로 꽤 많은 월급을 받던 직장 생활을 그만둔 것은 모멸감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사직서를 던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나의 무책임함과 성급함을 꾸짖으셨다. 할 말이 없었다. ‘이제는 뭐 할 거냐’는 질책에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했다. “대학에 들어갈 거예요.” 언간생심,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고, 보기 좋게 낙방했다. 자존심 때문에 차마 후기 시험은 볼 수 없었다.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갈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소속이 사라지자 돌연 세상은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까지도 총천연색으로 보였던 세상이 갑자기 흑백 화면으로 바뀐 것 같았다. 내 앞에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던 문들이 일시에 닫혀 버린 것 같아 막막했다. 그때 그 종소리를 듣게 듣게 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나간 교회에서 나는 ‘설 땅’을 되찾았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그가 내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들의 ‘있음’이 내게는 힘이었다. 장자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기 위해서는 불과 몇 촌(寸)의 땅만 있으면 되지만, 실제로 딛고 있지 않은 주위의 땅을 모두 파 없애면 바로 서 있을 수 없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움임을 나는 외로움을 통해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기독교인은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아도 남을 도울 처지가 아닌데 어떻게든 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사람들,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사람들, 삶의 곤고함을 누구보다 많이 경험했으면서도 영혼에 미움과 원망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내게 낯선 이들이었다.

 

"대체 저분들 속에 무엇이 있길래 저리도 아름다운가?” 공통점은 예수였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위해 평생을 걸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회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내 눈에는 추한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적인 부실함을 권위의 의상으로 가리는 사람들, 관심의 화살표가 오로지 자신만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특히 더 그랬다. 그들 속에서 나는 사랑의 능력도, 인간적 진실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예수의 핵심과 만나기도 전에 나는 개혁되어야 할 교회 현실에 먼저 눈을 뜨게 되었다. 뜨거운 소명이 아니라 기존의 교회에 대한 분노가 나로 하여금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었다. 때로는 내가 길을 택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길이 나를 택할 때가 많다. 지금은 내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다.

 

신학교에 입학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내게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나는 막내아들이 주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14년 동안이나 기도했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장병으로 죽음을 선고받았던 어머니는 1960년 대 초에 나의 고향 마을에서 열렸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셨다. 그 이후 어머니는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이다. 한 번도 내게 교회 가자는 말씀을 하진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부실한 당신의 아들을 하늘 아버지께 맡겨놓고 그렇게 홀가분하게 지내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신학교 시절은 참담했다. 신학의 언어는 진부했고, 시대의 짐을 지기에는 실존의 무게가 너무 컸다.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주변인이었다. 채플을 빼먹는 것이 다반사였고, 도서관보다는 다방에 틀어박혀 전공과 무관한 책을 읽느라 하루해를 다 보내곤 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 가운데서 내가 목회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까지 왔다. 바다에 던져졌던 요나가 마침내 니느웨 바닷가에 당도했던 것처럼. “절망의 파도에 떠밀려도 희망의 해안에 당도한다”는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목사 안수를 받은 지 6년이 지난 1990년 초 나는 일터였던 학교를 떠난 후 임지를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부과한 휴식의 시간은 내게 두 가지 선물을 안겨주었다. 시간은 남아돌아가고, 정신은 치열했다. 뭔가 방향을 정해야 할 때였다. 스스로에게 부과한 휴가가 내게 준 첫 번째 선물은 글쓰기였다. 그 무렵 창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잡지에서 내게 소설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글의 연재를 부탁해왔다. 잡다한 독서 편력이 글쓰기의 형태로 수렴되는 순간이었다. 글쓰기는 나 자신을 응시하는 기회가 되었다. 무형의 형태로 내 속에 들어있던 지난 세월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텅 빈 원고지를 앞에 두고 글을 기다릴 때의 그 긴장감은 오히려 내 정신을 각성시키곤 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여행처럼 글은 나를 늘 예기치 않은 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은 늘 부담스럽지만,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설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부과한 휴가의 두 번째 선물은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1회 ‘정의․평화․창조질서의 보전’(JPIC) 대회였다. 마땅히 할 일도 없던 차에 나는 그 대회에 참여했고, 그 대회는 나와 나의 목회가 지향해야 할 이정표가 되었다. “홍수와 무지개 사이”라는 대회의 초안 문서는 나로 하여금 평화가 깨진 현실 세계의 아픔에 눈뜨게 만들었고, 생태계의 파괴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부터 나의 신학과 목회의 주제는 ‘평화와 생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목회에 결합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평화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오랜 분단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 평화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평화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로 환원되곤 했다. 교회 안에 있는 회중들의 정치적인 스펙트럼은 참으로 다양했고, 진실을 선포하면서도 그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영적인 넓이와 깊이가 내게는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평화와 생명’이라고 명토 박아 놓았다.

 

생태계의 문제를 교인들의 가슴에 각인시키는 데도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죽어가는 생태계를 회복시킬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공감했지만, 그것을 촌각을 다투는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지구가 한 몸 공동체라는 생각에 내 마음은 급하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는 시적인 수사가 아니라, 실상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하지만 창조 세계의 보전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가 심어놓은 풍요의 환상과 늘 대립된다. 생명을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풍요를 찬미하는 이들의 음성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물론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자연 재해가 사실은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변혁으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생태학적으로 개종시킬 수 있다면 나는 기쁘게 그 길을 갈 것이다.

 

문제는 나의 길이 그분이 가리키는 길과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의 모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혼의 성숙임을 깨달았던 시간부터 나는 교우들을 일사분란한 교리의 체계 속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만물은 흔들리면서/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는다”는 오규원 시인의 시구를 성구처럼 암송하며 교우들 스스로가 삶에 대한 신앙적 성찰을 하며 살기를 요구했다. 노자는 “하늘 그물은 성기어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다”(天網恢匯 疎而不失)고 말했다. 나의 스승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요6:39)이라 하셨다. 하지만 나의 그물은 성기기만 할 뿐이어서 많은 이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 죄를 어찌할 것인가?

 

예수의 중심을 잡고 싶었고, 예수 정신이 질식하고 있던 교회를 바로잡고 싶었던 젊은 날의 내 꿈은 오그라들었다. 바로잡아야 할 것은 나의 마음이고 태도임을 절감할 뿐이다. 기세 좋게 배낭에 많은 짐을 챙겨 넣었다가, 산을 오르면서 이것저것 내던져버리고 숨이 턱에 찬 채 허위허위 오르는 초보 산꾼처럼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내던지며 여기까지 왔다. 내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중심을 향한 순례의 여정이 되기를 꿈꾼다. 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 길을 만들며 걷기보다는 이미 남들이 다져놓은 길로만 걸어온 나날이었다. 이제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걷고 싶다. 새벽이슬이 맺힌 풀밭을 앞서 걸어가며 길을 여는 이슬떨이처럼. 하지만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그분이 지금까지 나를 이끄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이끄실 것이다. 하여 나는 영혼의 둔감을 경계하며 기다릴 뿐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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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10)

 

대지에서 솟아나는 영성의 향기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의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기적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원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종교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이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풀들을 밀어 올리고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자각하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속적인 기적에, 그 생명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39-40쪽)

 

경계인의 운명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은 늘 이곳과 저곳 사이를 떠돈다.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현실이 자기 동일성에 대한 내적 확신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 참과 거짓, 희망과 절망 사이를 갈마들면서 우리는 자기 나름의 서사를 구성한다. 삶은 만남이고, 만남은 우리 삶의 무늬를 다채롭게 구성한다. 그러므로 나만의 정체성이란 허구이다. 그것은 공동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인간을 가리켜 ‘세계-내-존재’, ‘서로-함께-존재’라 말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 속에 낯설음 혹은 두려움의 감정을 자아내는 타자들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다. 타자가 없다면 정체성에 대한 물음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타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현존한다. 그들은 가족일 수도, 가까운 친구일 수도, 사회일 수도, 아주 낯선 문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도 주목해야 한다. 시간과 장소는 강한 규정력으로 우리 삶을 조건 짓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과 오지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상해보자. 사막에서 태어나 도시 문명을 경험하고 다시 오지로 돌아간 사람은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저널리스트이며 르포르타주 작가인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 부부가 유럽과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환경 운동가 피에르 라비와 한 주간을 함께 보낸 후에 마치 그의 말을 받아 적듯 저술한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우리의 이런 물음에 답을 주고 있다. 피에르 라비는 1939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남부의 케낫사 오아시스에서 태어났다. 사막 한복판에 섬처럼 떠있는 그 오아시스야말로 피에르 라비라는 존재의 뿌리이자 고향이었다. 어머니는 네 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대장장이였던 아버지는 강한 근육과 강철보다 단단한 의지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눈길을 사로잡던 사막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의 연속이지만, 그 허허로움은 오히려 내면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사람을 깊은 침묵에 빠뜨리는 사막의 광대함은 종교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지평선, 낙타를 몰고 느릿느릿 걷는 대상들의 모습, 마치 신전의 기둥처럼 수직으로 솟아오른 종려나무,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무늬였다. 절제된 열정과 빈틈없는 논리의 사람인 그는 동시에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에 감동할 줄 아는 드문 감성을 갖게 된 것은 그 단조롭지만 굳건한 삶의 리듬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유년 시기는 프랑스인 교사 부부에 입양되어 오랑으로 떠나면서 끝이 난다. 그의 삶은 두 세계로 분리되었다. 그는 원주민도 아니었고 프랑스인도 아니었다. 도시와 오아시스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경계인일 수밖에 없었다. 옛 세계로부터 벗어나면서 느끼는 상실감, 새로운 관습에 적응해가며 느끼는 고단함을 그는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양부모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이슬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피에르 라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삶은 그에게 정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1954년 알제리 독립 전쟁이 벌어지면서 그의 삶은 풍랑에 휩싸인다. 열렬한 드골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아주 사소한 일로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사막의 아이였던 피에르 라비는 아무런 보호막조차 없이 파리 인근에서 고단한 생존을 이어가야 했다.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하면서 그는 점점 도시적 삶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식비, 차비, 방세를 내기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조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시의 삶은 인간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를 그나마 지탱해주었던 것은 위대한 저자들의 책이었다. 그는 레옹 블루아, 베르나노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테이아르 드 샤르댕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저서를 탐독했고, 대중을 위한 철학 강연회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도시 탈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에 자칫하면 공격적인 사람으로 변할 위기로부터 그를 구원해준 것은 같은 직장의 상사였던 미셸이었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채 살고 있던 미셸의 눈에 피에르 라비는 시인이고, 사색가이고, 문학 천재였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또 다른 자기(alter ego)를 본 것이다. 결혼하던 날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의식의 성장이라는 데 동의한 둘은, 도시를 떠나 고요와 아름다움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피에르와 미셸은 풍요의 환상에 빠진 세계, 덫에 걸린 세계가 의식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피에르는 제도화된 종교에 매이지 않게 되었다. 그에게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이 기적임을 자각하는 것이며, 영원이 지금 이 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에게 신은 “풀들을 밀어 올리고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40쪽)이었다. 밀알 한 알 속에 대지 전체에게 양분이 될 모든 에너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일까?

 

시골에 정착하기 위한 자금을 융자 받기 위해서는 농업 관련 학위가 필요했기에 피에르 라비는 농업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대지를 수탈하는 농법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에 절망하고 만다. 농부들조차 산업화의 물결 속으로 몰아넣어 자신들의 뿌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세상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농촌 인구를 흡수해 가면서, 남아 있는 농부들에게 화학 비료, 살충제, 우량종자, 기계 농업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땅은 오히려 황폐해지고 말았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에겐 그것을 오염시킬 권리가 없다. 동물들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51쪽) 그가 자연을 존중하는 농사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꿈을 이룰 자신만의 장소를 찾던 피에르와 미셸은 허물어진 농가가 딸린 불모의 땅을 구입하면서 마침내 아르데슈에 정착하게 되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땀방울이 스며들면서 밭은 살아나기 시작했고 오두막집은 인간미를 띠게 되었다. 흙을 만지며 일을 하는 동안 그들은 밭과 자연 그리고 계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56)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그들 곁에 역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피에르는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지구의 신성함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고, 몇 가지 혁명을 역설했다. “지구를 수익성이라는 단 한 가지 관점으로 보는 것을 중단하고, 기적으로 이해”하는 의식의 혁명이 그 첫째이고, 대지가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지에게 속해 있음을 자각하는 영적 혁명이 그 둘째이고, “조화로움 속에서 땅을 경작할 다른 방법”을 찾는 기술 혁명이 그 셋째이다(60-61쪽).

 

생태친화적 영성

 

피에르 라비는 서양인들이 1칼로리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 12에서 15칼로리에 이르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3톤의 비료를 만들어 내기 우해서 3톤의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등의 값비싼 농업을 창조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피에르는 수익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농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약탈농업과 가축들의 집단적 사육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는 결국 생명의 아름다움을 찬탄할 줄 아는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잠식할 것임이 분명했다. 이런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그가 꼭 붙든 가치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자각뿐이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모두 신성합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은 우리의 심금을 울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행복입니다.”(76쪽)

 

환경론자인 피에르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환경 보호론자들을 거부한다. 그들은 일쑤 합리성을 강조하지만 세계의 신성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생명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일”이라는 시몬스 목사의 말은 피에르 라비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의 환경 농업 혹은 환경 운동은 생명 운동이고 영성 운동이다.

 

피에르 라비는 홀로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향해 치닫는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몽상가이다. 하지만 이런 몽상가가 많을수록 세상은 건강해진다. 피에르는 시골에 정착해 살며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정에 1헥타르 운동’을 제시한다. 사방 100m의 땅만 있으면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농업의 열쇠는 퇴비 만들기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만을 이용해 만든 퇴비는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인류, 겸손함이라는 단어의 뿌리가 부식토를 뜻하는 ‘humus’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르데슈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에 대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나누어주기 위해 ‘대지와 인간애’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기 밭을 일구는 방법, 퇴비를 만들고 장소에 맞는 품종을 고르는 방법, 그리고 농사 달력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피에르는 ‘모든 곳에 오아시스’ 운동도 시작했다. 삶의 안전이 보장되던 오아시스, 거주자들에게 늘 풍부한 생명을 공급해주고 거주자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던 오아시스를 되살리는 것이 그의 꿈이 되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 채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는 곳, 노인이 소외되지 않고 아이들이 병들거나 부모가 없을 때 공동체가 돌봐주는 곳, 오아시스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피에르 라비의 ‘오아시스 운동’은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와도 통한다. 둘 다 도시의 산업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 끝에 얻은 결론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산업사회는 경쟁과 착취를 구조화하게 마련이고, 그 속에서 인간성은 더욱 황폐화할 수밖에 없다. 공을 이룬 후에는 머물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처럼 피에르 라비는 늘 새로운 변화를 향해 투신한다. 그는 이후에도 ‘교육과 실천을 위한 국제 모임(CIEPAD)’, 재래종 씨앗들을 보존하기 위해 조직된 ‘피에르 라비의 친구들’을 통해 생명 농업 전문가들과 환경 운동가들을 연대해내는 역할도 했다.

 

세계화의 덫에서 벗어나는 법

 

그의 활동 영역은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가 부르키나파소의 농부들과 함께 이룬 생명 농업은 가히 아프리카의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키나파소인들은 백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크든 작든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백인들의 소유에의 욕망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서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주입되면서 그들의 삶은 황폐하게 변해갔다. 농부들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그런 작물들은 비료와 살충제 없이는 재배될 수 없었다. 세계화된 시스템은 약탈과 비료와 살충제 값을 제하고 나면 그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피에르 라비는 농부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전통적 삶을 배우는 것으로 생명 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을 설득해 작은 댐을 쌓아 빗물이 흙에 스며들게 하자 말랐던 우물이 되살아났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고, 퇴비를 만들어 땅에 뿌리자 땅이 비옥해졌다. 부르키나파소의 농부들의 가슴에 심어진 희망의 씨앗은 민들레 홀씨처럼 국경을 넘어 모리타니, 튀니지, 나이지리아, 말리까지 번져갔다.

 

튀니지 동쪽 가베스 만에 인접한 오아시스를 되살린 일은 특히 인상적이다.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고, 인산염을 생산하기 위해 화학 공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하수는 바닥이 나고 오폐수는 지중해 연안으로 흘러들고 있는 상황을 목도한 피에르 라비는 오아시스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만성적인 유기물 부족에 시달리던 오아시스 주변의 땅은 잘게 부순 종려나무에 염소 똥을 섞어 발효시킨 퇴비를 뿌려주자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퇴비를 머금은 흙이 습기를 더 오래 간직하게 되자 물줄기도 되살아나게 되었다. 피에르는 그런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현지 농부들과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진척시켜 나갔다. 문제의 해결책은 발전된 기술이 아니라 대지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영성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우리들도 경청할만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영성이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몸과 손은 내 영혼이 하고자 하는 일에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172쪽)

 

피에르 라비가 우리 시대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소박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소박한 삶은 그가 유목민들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습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마음이야말로 유목민의 생존을 위한 지혜였다. 사막의 순례자였던 테오도르 모노는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하루 2.5ℓ의 물, 간소한 음식, 몇 권의 책,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저녁은 전설, 이야기, 웃음 가득한 밤샘으로 이어진다. 나머지 시간은 명상과 정신 수양으로 보낸다. 두뇌는 오직 한 곳을 향하고, 드디어 우리는 하찮은 일, 쓸데없는 것들, 수다스러움에서 벗어난다.”(테오도르 모노, 《사막의 순례자》, 2003, 현암사, 71-71쪽) 성서의 인물들이 생의 고빗사위를 만날 때마다 광야를 찾았던 것은 어쩌면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잃어버렸던 생명에 대한 직관을 얻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184쪽)

 

이것은 피에르 라비를 가장 화나게 하는 슬로건이다. 세계가 조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현인인 노자는 “내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면서 자비심과 검소한 삶과 중뿔나게 세상 앞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 했다. 검소한 삶, 혹은 소박한 삶은 단순히 물자에 대한 절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物)의 근본이 우주의 중심과 이어져 있음을 자각하는 마음과 관련된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피에르 라비는 ‘농부 철학자’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땅에 깃든 신성함을 일깨우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의 문제는 물이나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그것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정신의 타락이라고 지적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써 먹을 지식이 아니라, 경외감이다. 만물 속에 깃든 생명의 신비에 눈을 뜬 사람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종교인들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조심해요! 살아 있는 것들을 건드려선 안 돼요. 흙과 숲, 그리고 물론 물도.’”(192쪽)

 

“우리는 이 행성을 착취하고 동물들을 지배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지와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199쪽)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한다. 이것이 이 단어의 본래 뜻과 관계없이 욕심의 크기를 일컫는 표현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영장靈長’의 말 뜻 그대로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라면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카르티에 부부가 들려주는 피에르 라비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계-내-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새겨진 오아시스의 기억이 어떻게 새로운 오아시스를 향한 꿈으로 진화해 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에덴의 동쪽에서 방황하던 가인은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시는 수많은 가인들을 빚어냈다. 그들이 이루어내는 일상의 풍경은 폭력과 부패이다. 피에르 라비는 새로운 시작이 가능함을 삶으로 증언해 보이고 있다. 책장을 덮기 전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찬탄이나 하고 있다니…”라고 써넣었다. 피에르 라비는 새로운 세상의 이정표로 우뚝 서있다. 그를 가리켜 “이 남자는 성자와 같다. 그는 분명하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이며,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시적 아름다움은 저마다의 삶에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던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지휘자인 예후디 메뉴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피에르 라비, 그의 이름은 이제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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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9)

 

영혼은 날고 싶다

-파커 J. 파머의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온전함의 의미를 깨닫게 된 후 나는 우리가 참화를 새로운 생명의 온상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나의, 당신의, 우리의—온전성이 헛된 꿈은 아니라는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다.” (파커 J. 파머)

 

“무대 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하는 동안 내 참자아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가치와 믿음, 그 부서지기 쉬운 희망과 열망을 세상이 부숴버릴까 두려워 무대 뒤에 숨어 있었다.”(파커 J. 파머)

 

 

 

 

분리된 삶

 

구름이 짙게 드리운 도시의 뒷골목을 걷노라면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의 주인공인 꽁스땅스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내면의 리듬에 맞추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경쾌하고 시원하다. 마치 세상의 중력을 거부하는 것 같은 그의 걸음걸이는 기쁨을 환기시킨다. 꽁스땅스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뭐가 그리 심각하냐고, 울 때는 울더라도 생은 경축할만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생활의 편의를 위한 도구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가슴의 헛헛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무덤덤할 뿐 좀처럼 경탄할 줄 모르는 정신의 혼수상태에 빠진 이들이 의외로 많다. 도로테 죌레는 이런 이들을 가리켜 ‘고장난 존재’라 했다. 그들은 근원적인 신뢰와 선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결속감정이 없을뿐더러, 피조세계를 보며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물을 사소하게 만드는 그의 능력은 놀라는 능력보다 훨씬 크다.”

 

지향조차 분명치 않은 길 위에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달려간다. 사과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내달리는 토끼 뒤를 따르는 우화 속의 동물들처럼. 삶이 우화라면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나 긁적이면 그만이지만, 그런 내달리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에 트라우마를 남긴다. 열정 뒤에 가려졌던 비애와 상실감 그리고 공허함이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낯선 존재를 발견한다. 존재의 불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울증과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사람들이 ‘푸른색의 악마’라고 일컫는 우울증이 이 화려한 도시 상공을 구름처럼 뒤덮고 있다. 유명 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그들은 대개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들이다. 종교인들은 자살은 죄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자살에 이르는 이들의 절망감은 헤아리지 않는다. 유전적인 원인이나 뇌의 불균형한 화학 작용에서 비롯된 우울증은 약물로 치료해야 하지만, 다른 요인에서 비롯된 우울증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산사 체험에 동참하려는 이들이 늘고, 선(禪)이나 명상을 가르치는 모임에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은 더 이상 자기와의 불화를 간과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존경받는 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을 통해 파편화된 삶에 지친 우리를 온전한 삶의 길로 초대하고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와 《삶이 내게 말 걸어올 때》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미 친숙한 저자는 1997년 전미 교육관계자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고등교육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퀘이커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파머는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을 통해 그의 필생의 네 가지 주제라 할 수 있는, 온전한 삶의 형태, 커뮤니티의 의미, 삶의 변모를 위한 가르침과 배움, 비폭력적인 사회변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파커는 현대인의 실상을 ‘분리된 삶’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사람들은 안팎으로 다가오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공적인 ‘역할’의 세계와 감춰진 ‘영혼’의 세계를 분리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또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사람들은 일쑤 영혼과의 접촉을 끊고 역할의 세계에 침잠한다. 중심부에 접속하려는 욕망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때 자기 소외는 저절로 깊어간다. 분리된 삶은 실은 상처 입은 삶이다. 파커는 “영혼의 소리를 무시하면 술과 약물, 일과 쇼핑, 분별없는 대중매체 같은 마취제에 중독되어 고통을 마비시키고 있는 자신을 보게”(36쪽)된다고 말한다. 파커는 우리를 분리된 삶으로 이끄는 경우를 다양하게 예시한다.

 

․ 맡은 일에 온힘을 다하지 않고, 그 일로 도움을 받게 될 사람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때

 

․ 꼭 그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기본적인 가치를 거스르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영위할 때

 

․ 영혼을 파괴하는 상황 ․ 관계에 계속 머물러 있을 때

 

․ 진실을 감추고서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득을 얻으려 할 때

 

․ 갈등 ․ 도전 ․ 변화를 피하기 위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숨길 때

 

․ 비판받고, 따돌림 당하고, 공격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감추려 할 때(19쪽)

 

커뮤니티의 필요성

 

‘분리된 삶’, ‘상처 입은 삶’은 치유될 수 있는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다. 파커는 치유된 삶의 내용을 ‘온전함’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온전함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이다. 이것은 신학자 폴 틸리히가 말하는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와도 통하는 개념이다. 틸리히는 실존의 모호함과 참혹함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는 존재에의 용기를 믿음이라 했다. 존재에의 용기를 가지고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을 떠날 때 우리를 인도해줄 안내자는 누구인가?

 

파커는 우리 속에 있는 내면의 교사, 즉 영혼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간성의 중심으로 문화나 전통에 따라 참 자아, 본성, 대아, 신성의 불꽃 등으로 다양하게 지칭되지만, 역할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파커는 영혼의 무관심에 기여한 우리 문화의 두 흐름을 예시한다. 하나는 자아를 어떤 창조적 핵심도 없는 사회적 구조로 여기는 세속주의(Secularism)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의 모든 관심을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도덕주의(Moralism)이다(54쪽). 세속주의에 의해 납작해지고, 도덕주의에 의해 주눅이 든 영혼의 소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가면과 갑옷 속에 갇혀 숨죽이고 있는 영혼과 접속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지배해왔던 ‘역할’의 주도권에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은 사람들에게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주입함으로써 영혼의 소리가 그들의 가슴에까지 들려오지 않도록 만든다.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지지해주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파커는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내면의 진실로 향하는 길은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 험해서 만약 동반자가 없다면 여행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길은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여럿이 대화를 나누며 통찰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어려운 난관 앞에서 주저할 때 내면의 교사가 속삭이는 낯선 땅으로 과감히 나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43쪽). 파커는 이런 모임을 가리켜 ‘신뢰의 서클’이라 명명한다. 한국인들은 일상적인 불안과 삶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설 땅을 확보하기 위해서 동창회, 향우회, 전우회, 동호회 등 많은 모임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런 모임들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위계질서를 내면화하도록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교나 종교 단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신뢰의 서클’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홀로 그리고 함께

 

어떤 모임에 자발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동참하려는 이들은 어떠한 형태이든 실존의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하는 ‘어둔 밤’의 체험이든,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하는 ‘한계상황’의 체험이든, 틸리히가 말하는 ‘터전이 흔들리는 체험’이든, 그들은 자기 삶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에 공감한다. 파커는 공립학교 교사들을 돕기 위해 만든 신뢰의 서클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함께 홀로되기’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더 큰 세상에서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아는 참자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홀로됨에서 생기는 내적인 친밀성과 커뮤니티에서 생기는 다름에 대한 인식이 모두 필요하다.”(79쪽)

 

‘홀로’와 ‘함께’는 양자택일(either or)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함께’(both and)의 문제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홀로됨’은 다른 이들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충실한 현존과 관련된 것이다. ‘함께’는 다른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80-81쪽). 함께 홀로되기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모임에서 한사코 피해야 할 것은 설교하고 가르치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요구하고 선언하고, 훈계하고 충고하려는 태도이다. 간섭하고 대결하고 밀어붙이려는 순간 영혼은 뒷걸음질 쳐 달아나기 때문이다. 파커는 신뢰의 서클이 지켜야 할 규칙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고치지 않고, 구하려 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고, 서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기”(156쪽)가 그것이다. 인간관계에 도덕주의가 끼어들게 될 때 그 관계는 파탄에 이르기 쉽다. 고쳐주고 싶어하는 욕구에 저항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그런 욕구에 저항할 때 신뢰의 서클은 형성되기 시작한다.

 

신뢰의 서클 규칙

 

파커는 신뢰의 서클에 꼭 필요한 요소 다섯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는 정해진 기간이다.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모임은 구성원 사이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종료 시점이 정해져야 참여자들은 자유로움을 느낀다. 의미가 없다고 느끼면 죄책감 없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에 대한 강박이 굴레가 되는 순간 내면의 소리는 잦아들게 마련이다.

 

둘째는 유능한 리더십이다. 신뢰의 서클을 이끄는 사람은 그 서클의 참여자여야 한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모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모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영혼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고 보호하는”(109쪽) 것이다. 권위를 뜻하는 헬라어 엑수시아(exousia)는 권위의 뿌리가 ‘본질’(ousia)에 잇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유능한 리더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는 강요하지 않는 초대이다. ‘역할’의 세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거나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다.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존재로 전락한 ‘세인’(世人, das Man)의 특징으로 잡담과 호기심을 들고 있다. 잡담이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대화에 자기의 인격이나 존재를 투입하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잡담은 천박함을 낳게 된다. 호기심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진정한 관심도 경탄할 능력도 없으면서 그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정신의 경향성이다. 이처럼 ‘세인’으로서의 삶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임이 낯설 수밖에 없다. 리더는 참여자들이 말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하지만, 가끔은 솔직하고 열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파커는 솔직하고 열린 질문을 위한 지침으로 “한 걸음이라도 말하는 이의 말보다 앞서 나아가지”(180-182쪽) 말라고 권한다.

 

넷째는 공동의 근거이다. 신뢰의 서클은 다양한 견해가 개진될 수 있는 열린 모임이어야 하지만, 그 지향점 혹은 초점은 영혼의 문제이어야야 한다. 커뮤니티 속에서 각자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공동체 앞에 제시된 어떤 이야기는 참여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사건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이야기 속에 내재한 사건적 요소들(행위, 사건)과 사물적 요소들(등장인물, 배경)을 살피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이야기 속에 자기의 경험과 문제를 투사한다. 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각자가 그 이야기와 자신의 인생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자신의 진실이기도 한 어떤 진실의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대화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확장과 소통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다섯째는 정중한 분위기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너무 넓거나 협소해서도 안 되고, 장식이 지나쳐서도 안 되고, 조명이 너무 어둡거나 차가워도 안 된다.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파커는 영혼이 야생동물처럼 재빠르고, 직감적이라고 말한다. 야생동물과 만나기 위해서는 주위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야 하듯이,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이드거니 앉아서 내면을 살필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비폭력적 삶을 향하여

 

파커는 신뢰의 서클에서 고양된 정신이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 곤두박질칠 수 있음에 주목한다. ‘현실’에서 감당해야 할 다양한 요구에 직면했을 때 찾았다고 생각했던 참자아는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현실 세계는 영혼에 대한 폭력이 무차별하게 자행되는 현장이다. 아이들을 모욕하는 부모, 학생들을 무시하는 교사, 노동자들을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다루는 사업자, 환자들을 의료 행위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의사, 교인들을 영적인 미성숙아인양 취급하는 목사….

 

“영적인 폭력은 자아감의 상실이라는 죽음, 다른 이들에 대한 신뢰감의 죽음,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모험심의 죽음, 공동선을 이루는 데 필요한 헌신의 죽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223족)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흔히 폭력에 맞서 싸우거나, 달아난다. 하지만 파커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비폭력의 길이다. 그가 말하는 비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든 영혼을 존중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것”(225쪽)을 일컫는다. 비폭력적인 삶을 실천하려는 이들은 폭력적인 현실과 역사의 꿈 사이의 긴장을 해소시켜버리지 않으면서 그 사이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영적, 정신적 폭력은 그것을 허용하고 부추기는 제도적인 질서에 의해 힘을 얻는다. 폭력의 문화에 협력하기를 거절할 때, 또한 굴복하기를 거부할 때 폭력의 지배력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거대한 문화적, 정신적, 영적, 물리적 폭력이 행사되는 현장에서 침묵하는 것은 곧 폭력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파커는 뫼비우스의 띠를 예로 들어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가 세상을 이루고, 바깥의 것이 안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 삶을 형성한다고 말한다(70쪽). 인간의 삶에 있어서 안과 밖은 구별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경험한 사람들, 내면에 있는 신성한 불꽃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비폭력적 삶을 실천할 수 있다. 사티아그라하(진리 꼭 붙들기)라는 개념을 인류에게 선사한 마하트마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사전에 적이란 없다. 사티아그라하는 ‘적’이라 불리는 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온 세상을 시장으로 바꾸고 있다. 문명의 불빛이 휘황할수록 내면의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동굴에 갇혀 벽면만을 바라보던 수인들은 벽에 비치는 영상만이 현실인 줄 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림자일 뿐임을 자각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창조적인 연대와 소통이야말로 평화 세상을 여는 열쇠가 아닐까?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은 교사들의 교사로 살아왔던 저자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매우 구체적이다. 구체적 사례를 적시하는 과정에서 논의의 초점이 분산되는 경향이 다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목마른 영혼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겪었던 우울증과 자살 충동까지 숨기지 않는 것은 상처 입은 영혼들, 분리된 영혼들에 대한 애태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 크기와 자신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희떠운 직업적 종교인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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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8)

 

이카로스를 그리며

 

 

석양에 비낀 해가 유난히 쓸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올해도 역시 엄벙덤벙 설미지근하게 살아왔다는 자책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알차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마치 버릇인양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 세상은 요란한데, 마음은 고적하기만 하다.

 

16세기의 벨기에 화가인 브뤼겔의 <이카로스의 추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화가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 삼아서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를 화폭에 담고 있다. 미노스 왕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이어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다가갔다가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그만 바다로 추락하고 만 인물이다. 어쩌면 신화는 신의 세계를 넘보는 인간의 욕망이, 그 과도한 열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뤼겔의 <이카로스의 추락>

 

그림 속의 이카로스는 바다에 처박힌 채 두 다리만 버둥거리고 있다. 그런데 세상 참 무심하지. 이카로스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어부는 낚시질에 여념 없고, 목동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에 떠 있는 범선조차 물살 위를 미끄러지며 태평이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해의 위치이다. 마땅히 화면의 중앙 높은 곳에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어야 할 해가, 한 사람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까무룩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림 전체의 톤은 밝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신산스런 삶의 무게가 절로 체감된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했던 코헬렛의 마음이 절로 느꺼워진다. 누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이다.

 

역사란 친밀함을 향한 다가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은 점점 낯선 곳으로 변해간다. 실존주의자들의 느꼈던 고향상실은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부릴 곳이 없어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여 보아도 마음의 정처를 잃은 발걸음은 허둥댈 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명품으로 치장해 보아도 마음의 스산함은 가릴 수 없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 짐짓 명랑하게 말해보아도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는 좀처럼 스러지지 않는다. 육체가 아닌 정신에도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일까?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안보. 어디를 보아도 상서로운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

 

일전에 텔레비전을 통해 몽골의 차탕 마을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그들은 커다란 뿔을 가진 순록을 좇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의 리듬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해 뜨면 일어나 순록을 몰고 나가 일하다가, 해 지면 누워 잠을 잔다. 풀과 이끼류를 따라 순록이 이동하면 그들도 게르를 걷어 순록의 뒤를 따른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제 더 이상 순록을 따라 이동하지 않는다. 차강노루 호수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자기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순록의 등에 관광객들을 태워주면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순록은 이제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차강노루 호숫가의 순록들은 달리지 못한다. 엉금엉금 걸을 뿐이다. 하늘을 보거나, 질주하지 못하도록 뿔과 앞다리를 끈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순록의 눈이 참 슬퍼보였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순록, 이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끈을 자르지 않는 한 자유로운 질주는 불가능하다. 하늘을 볼 수도 없다. 하늘을 잃는 순간 삶은 엄청난 중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겨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이카로스처럼 비상을 꿈꾸는 불온한 사람이 그리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가? 창공이 아닌 다른 하늘은 고통 받는 이들 곁에 다가섬을 통해 열린다는 사실을. 비록 무거리 같은 존재라 해도 하늘을 여는 기쁨을 맛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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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7)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삶이 암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흐르는 모래 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아득한 무력감, 마치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아스라한 공포가 밀려오면 세상은 아연 잿빛으로 변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호기롭게 지내던 시절은 가뭇없이 스러지고 늪과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그 계기는 다양하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 이별의 쓰라림이나 실패가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전혀 계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게오르그 잠자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자기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늪과 같은 시간을 거쳐 온 한 젊은이의 고백을 들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밤마다 찾아오는 고통과 처절하게 맞서야 했다. 어쩌면 평생 다리를 절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고통은 줄어들었지만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찾아왔다. 어쩌면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곳에서 찾아와 영혼을 거덜내는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할 때 댕돌같던 젊은이의 눈에 물기가 서렸다.

 

 

 

 

어느 정도 회복되어 휠체어를 타고 복도를 지날 때면 자기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런데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과 달랐다. 시선이 낮아지자 크고 높은 것들이 그 존재 자체로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는 친구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느릿느릿 그들 뒤를 따라가는 동안 이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을 늦추자 침묵하고 있던 세상이 그에게 말을 건네 오기 시작했다. 주위의 사물들과 사람들을 다정하게 바라보자 어느 순간 무력감과 공포가 물러갔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는 그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해주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생을 원망이나 투덜거림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무겁고 전망 또한 불투명했다. 이야기를 마친 젊은이는 망연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시련이 닥쳐올 때 믿음은 우리의 버팀목이고, 우리에게 버틸 힘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문제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말라고, 큰 바위를 옮길 힘이 없거든 그것을 잘게 부수는 연습을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삶은 성심을 다해 내딛는 한 걸음으로 이루어진다고도 말한 것 같다. 우리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은 우리가 시간 속에 새겨놓은 흔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징표라는 말과 함께. 지금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바로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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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6)

 

마음에 핀 꽃

 

 

삶의 특색은 ‘마주함’에 있다. 마주함의 양상을 일러 관계라 한다.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은 배려에 있다. 배려는 마주 선 이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 곧 제멋대로 하지 않음이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은 평화롭다. 반면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은 불화를 일으킨다. 세월이 가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영혼이 미성숙한 이들이다. 세월이 가도 자아의 한계에 갇혀 이웃을 향해 한 걸음도 내닫지 않는 이들을 보며 ‘원판 불변의 법칙’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의 본바탕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만 씁쓸하다. 막무가내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 앞뒤 가리지 않고 뼛성을 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정말 그런 거라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종교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은 변화될 수 있다. 인간 존재는 인간 되어감이라지 않던가. 인간의 인간다움은 변화를 향해 열려 있을 때 발현된다.

 

 

 

 

변화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자기 마음과 행동을 살피고 또 살펴 몸과 마음에 더께로 앉은 때를 닦고, 어지럽게 흩어 진 마음을 가지런히 하려고 노력할 때 변화의 단초가 마련된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일러 마음공부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마음의 버릇 들이기라 한다. 수신 혹은 수양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른 하나는 외부의 도움이나 충격이다. 실존의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은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죄책, 투쟁, 고난, 죽음 등은 안온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켜 우리 삶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한계상황은 때로 우리 삶을 본래적인 자리로 밀어 올리는 도약대가 되기도 한다. 그 아스라한 허공에서 경험하는 것이 은총이다. 이때 본을 보여주고 감화를 일으키는 스승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러 해 전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았던 교우 한 분은 수술에서 깨어난 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절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병에서 회복되고 나서야 인생이 고마움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후에 그는 유머러스하지만 말 수는 적은 사람이 되었고, 그의 주변에는 늘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던 그가 또 쓰러졌다. 다들 이번에는 어렵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또 다시 깨어났다. 아직 언어가 회복되지 않아 의사소통이 임의롭지는 않다. 병실에 찾아가 펜을 손에 쥐어드리자 그는 알파벳으로 CHRIST크라이스트라고 쓰고 또 썼다. 그리스도는 그의 가슴에 핀 꽃이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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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톺아보기(5)

 

지금은 고수의 얼굴을 살필 때

 

 

말은 겸손한데 어깨가 뻣뻣한 사람을 만나면 참 불편하다. 유대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이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사가 그의 머리를 살짝 쳤다. 당황한 왕은 “나는 지금 주님을 예배하려는 것인데 왜 나를 칩니까?” 하고 항의하자 천사가 대답했다. “왕관을 쓴 채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누구도 ‘왕관’을 쓴 채 예배드릴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독교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문제는 그런 고백에 부합하는 결단의 엄정함이나 자기 부정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룩한 말은 일쑤 자기 욕망을 가리거나 치장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하는 목소리가 다양하게 터져 나온다. 참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대개는 참회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을 얼버무리고 만다. 참회의 몸짓조차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일 때가 많다.

 

덕수궁 앞을 지나가는데 외국인들이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상기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수문장 교대식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얼마 후 돌담길 저편에서 조선시대 무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열 지어 걸어왔다. 낙엽을 밟으며 느긋한 발걸음이 어느새 빨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수가 두드리는 북소리에 발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북소리에 반응을 한 것이다. 북소리의 마력이다. 문득 “모든 사람이 열 지어 걸어가고 있을 때 홀로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라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는 어느 북소리에 맞춰 걷고 있는가? 풍요의 환상을 심어주며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자본의 북소리인가? 아니면 섬김과 나눔과 돌봄이야말로 평화로운 세상의 초석이라고 말하는 주님의 북소리인가? 입술의 고백을 삶으로 부정하는 이들 때문에 교회는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English civil war drummer bronze statue by John McKenna, Wikimedia>


 

지금이야말로 고수의 얼굴을 다시 살펴야 할 때이다. 길 잃은 혹은 지친 동료를 외면한 채 홀로 내달려 얻는 승리는 사실은 패배이다. 스스로를 비인간의 자리에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세상, 모든 사람이 우정을 나누며 사는 벗들의 나라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현실의 어둠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검질기게 발걸음을 옮기는 '바보'들을 통해 온다. 종말론적인 희망에 사로잡혀 우줄우줄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된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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