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49

무소유욕 지방 교역자들의 살림살이가 담긴 회계 보고서가 나눠졌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이없는 표정들, 뭘 계산했고 뭣 때문에 놀랐는지 말 안 해도 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놀란 건 우리 모두, 우리 자신들이다. 액수의 차이일 뿐, 그리고 그 차이란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것일 뿐 다른 게 뭐 있나. 뭘 믿고 살라고 전대 가지지 말라고, 옷 두벌 갖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했을까. 그렇게 말한 당신은 정말로 그랬을까. 삶의 근거. 버릴 것 버리고 남을, 마지막으로 남을 근거, 그게 과연 우리들에게 하나님일까. 진리를 들먹이며 내 배를 채우는 짓거리야 말로 가장 우스운 짓일 텐데. 마지막 한 개 남은 빵을 떨림 없이 나누기까진 우린 얼마나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할까. .. 2021. 6. 9.
하나님의 뜻, 사랑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 사랑 - 전집 3권 『성서 개요』 호세아 편 - “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저 사람이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나의 짝이 맞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요?” 지방에서 열린 한 청년 모임에서 받은 질문이다. ‘교회를 교회되게’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특강 시간 말미에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 내 특강 논지를 열심히 들은 뒤의 질문인 것은 맞았다.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이룬 가정이라면 가정도 ‘교회의 최소단위’이기에 이미 교회의 작동 원리나 관계 방식이 그 안에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진지하고 순수한 청년에게 되물었다. 가장 이상적인 두 사람의 만남의 조건이 무엇이냐고 생각하는지. 그녀는 ‘서로 사랑하.. 2021. 6. 8.
늦게 끈 등 작실 마을 올라가는 길 쪽으로 등을 하나 달았습니다. 집 지을 때 부탁해서 사택 옥상에 등을 달았습니다. 밤이면 등을 켭니다. 둥근 달이 걸리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지만 달이 없으면 길도 없습니다. 더듬더듬 발걸음이 더디고 산을 끼고 도는 길, 오싹 오싹 합니다. 사랑의 빛 되었음 싶은 마음으로 불을 켭니다. 작실로 오르는 길, 밤이면 불을 켭니다. 그러나 가끔씩 실수를 합니다. 불을 켜는 걸 잊기도 하고 끄는 걸 잊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가르쳐 줘 날 밝은 한참 뒤 뒤늦게 끄기도 합니다. 사람 발길 끊긴 빈 길을 밤새워 밝힌 걸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날 밝도록 켜져 있던 불을 뒤늦게 끄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 그 어느 곳에도 뜻도 없이 켜져 있는 불은 없는.. 2021. 6. 8.
멀리 사는 자식들 “월급은 12만원 받는데, 엄마, 저녁이면 코피가 나와.” 얼마 전 순림이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중학교를 마치곤 곧바로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가 낮엔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순림이.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엄마 김 집사님은 그렇게 말했다지만, 마른침 삼키며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래 순림아, 삶이란 때론 터무니없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나 보다. 천근만근 저녁마다 두 눈이 무거워도, 선생님 뭔가를 쓰는 칠판에 낮에 일한 실올이 바둑판처럼 아릿하게 깔려도 두 눈을 크게 뜨렴. 네가 마주한 것, 배우는 것, 단순한 공부가 아닌 엄연한 삶이기에.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얼마 전 자식을 떠나보내고 남은 텅 빈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며 할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2021. 6. 7.
교우들의 새벽기도 오늘 새벽에도 교회로 들어서는 현관문 앞에는 작은 막대기 하나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오늘도 오셨구나.’ 김천복 할머니, 75세 되신 허리가 굽은 할머니시다. 현관에 서 있는 막대기는 할머니가 짚고 다니시는 지팡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새벽예배에 참석하신다. 할머니 사는 아랫 작실까지 재게 걸어도 내 걸음으로 10여분, 할머니는 훨씬 더 걸리리라. 머리 곱게 빗고 맨 앞에 앉으신 할머니, 오늘은 또 무얼 기도하실까. 얼마 전 서울로 떠난 철없는 막내아들 위해 기도하실까. 우리 전도사 좋은 목사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까. 이는 할머니의 기도 제목 중 하나다. 당신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곳 떠날 생각 아예 말라는 분이다. 교회 출석한지 얼마 안 되는 변정림 성도도 작실에서 내려온다. .. 2021. 6. 6.
똥줄 타는 전도사 비가 안 와 걱정입니다. 땅 갈고 씨 뿌렸지만 비가 안 와 걱정입니다. 아직은 갈 땅이 많아 우선 갈고 씨 뿌릴 뿐입니다. 전경환인가, 대통령 동생이 어제 잡혀 갔답니다. 몇 해 전 소 때문에 빚진 사람 이곳에도 많은데 그걸로 입은 피해 크고 깊은데 어제 잡혀 갔답니다. 거기다가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죠. 그동안 말 못했던 백성들의 손이요, 어쩜 하나님 손이었다 생각하지만 꼭 남의 일 같습니다. 오늘도 강가 밭에선 사람들이 일 합니다. 당근 씨를 뿌립니다. 땅거미를 밟고 돌아오는 경운기, 오늘도 저녁놀이 붉습니다. 이번 주일이 부활절 생명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무얼 딛고 오는지 설교거리 찾는 전도사 똥줄이 탑니다. 시간을 잊고 책상에 앉아서. 1988년 2021. 6. 4.
충실한 삶을 위하여 “좋으신 주님, 제 인생의 배를 저어 아늑한 당신 항구로 이끄소서. 거기라면 죄와 갈등의 풍랑을 피하여 안전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취해야 할 항로를 보여주소서. 제 안의 분별력을 새롭게 하시어, 저로 하여금 가야할 방향을 바로 찾게 하소서. 비록 바다가 거칠고 물결이 높다 하여도, 당신 이름으로 수고와 위험을 뚫고 나가면 마침내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 줄 아오니, 저에게 바른 항로를 선택할 힘과 용기를 주소서.”(카에사리아의 바실리우스, 이현주가 옮기고 엮은 중에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내에 넘치시기를 빕니다. 벌써 6월입니다. 망종(芒種) 절기가 다가옵니다. 왠지 햇보리밥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빨갛게 익은 앵두를 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이른 아침 공원에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앵두를.. 2021. 6. 3.
눈물로 얼싸안기 “제가 잘못했습니다.” 편히 앉으라는 말에도 무릎을 꿇고 앉은 집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집사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작은 일로 다른 교우와 감정이 얽혀 두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이 속회예배 드리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찾아온 것이다. 사이다 두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전에도 몇 번 서로 감정이 얽힌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찾아가 권면하고 했었지만 이번엔 된 맘먹고 모른 채 있었다. 잘못 버릇 드는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 볼 때마다 마음은 아팠지만 스스로 뉘우치고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만큼 기도할 땐 집사님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나오지 않는데도 심방해 주지 않는 전도사님이 처음에는 꽤나 원망스러웠지만 나중엔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2021. 6. 3.
골마다 언덕마다 이곳 단강엔 4개의 마을이 있다. 끽경자라고도 하는 단정, 흔히들 조부랭이라 부르는 조귀농, 사면에 물이어서 생긴 섬뜰, 그리고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인 작실이다. 작실 마을엔 다음과 같은 여러 이름이 있다.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이 있다. 들은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골, 자작나무골, 느티나무뒷골, 배나무골, 바우봉골, 넓적골, 안골, 움북골, 절너메, 절골, 옻나무고개, 아래턱골, 작은논골, 큰논골, 섬바우골, 터골, 서낭댕이골, 춤춘골, 장방터골, 작은고개, 큰죽마골, 작은죽마골, 구라골, 작은 능골, 큰능골, 댕댕이골…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을 붙인 조상들이 좋다. 그 이름 아직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 또한 좋다. 모두가 참 좋다. 1988년 2021.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