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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숲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산새 소리에 새벽잠을 깨우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집 나무와 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내려앉는 집 월든 숲속 소로의 오두막 법정 스님의 오두막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 초의 선사의 일지암 다산 초당 초가집과 막사발과 박꽃 그곳에서 나뭇가지 줏어 모아 불을 때서 밥 해먹고 입던 옷 기워 입고 침묵으로 밭을 일궈 진리의 씨앗 한 알 품고서 없는 듯 있는 바람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오두막에서 맞이하는 저녁 그 이상을 꿈꾸어 본 적 없이 어른이 되었는데 지금 내 둘레엔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 2021. 7. 13.
새총까무리 아프기 잘하는 박종석 성도가 또 감기에 걸렸다. 해수병이라 말하는, 늘 바튼 기침을 하는 터에 감기가 걸렸으니 연신 된 기침이다. ‘크렁크렁’ 속에서부터 나오는 숨소리가 더욱 거칠다. 지난번처럼 또 혼자 누워 계셨다. 좁다란 방안 가득 산수유를 말리며 아랫목에 좁다랗게 누워 계셨다. 기도하고 마주 잡은 꺼칠한 손, 놀랍게도 그분의 엄지손톱은 V자 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산수유 씨 빼느라 손톱이 닳은 것이다. 새총 까무리, 깊게 패인 손톱을 보며 떠오른 건 어릴 적 새총까무리였다. 아기 기저귀 할 때 쓰던 노란 고무줄을 양쪽으로 묶어 만든 새총. 힘껏 고무줄을 잡아 당겨도 나무가 휘거나 부러지지 않아야 되는 Y자 모양의 튼튼한 나뭇가지를 우리는 새총 까무리라 불렀다. 새총 감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 2021. 7. 12.
거룩한 모습 그 분은 늘 그곳에 있었습니다. 원주 A도로와 B도로 사이 중앙시장 골목, 해가 한 중간에 떠올라야 잠시 햇빛이 건물사이로 비집듯 비취는 곳입니다. 몇 가지 과일을 상자에 담아 펼쳐 놓고 장사를 하는, 주름이 많은 아주머니입니다. 가끔 나는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골목을 지날 때마다 멈칫 발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아주머니는 과일을 팔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모습입니다. 조그만 좌판 위 그분은 정갈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읽곤 했습니다. 낡은 성경책입니다. 표면의 붉은색이 허옇게 변해버린, 아주 낡은 성경책이었습니다. 읽던 곳 바람이 덮지 못하도록 성경 귀퉁이엔 빨래집개를 꽂아 두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오가는 사람들 마다하지 않고 틈틈이 성경을 읽는 그분의 모습은 내겐 성스러움입니다... 2021. 7. 11.
버스 개통 작실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드디어 개통됐다. 선거 때마다 들어온다 했다가 선거 끝나면 조용했던, 그때마다 길을 닦았던 온 마을사람들의 수고가 헛수고가 됐던 버스가 지난 6월10일 개통을 한 것이다. 이번에 한 번 더 속아보자 하며 개통식을 준비했던 작실 주민들에겐 정말 버스가 들어오고, 테이프를 끊고, 고사를 지내고 하는 것이 여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듯싶었다. 작실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신작로에서 윗작실까진 걸어서 30분 내지 40분 거리, 누구보다도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버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몇몇 기관장들의 축사를 듣고, 박수를 치고, 떡과 돼지머리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고, 돌아가며 절을 하고, 버스에 술을 붓고, 푸짐히 .. 2021. 7. 9.
삼 세 번의 평화 진입로로 끼어드는 찰라 측방 거울을 스친다 속도를 늦추는 차가 보이면 얼른 진입을 한 후 삼 세 번 비상등으로 뒷차에게 보내는 신호 속도를 늦추어줘서 고맙다는 뜻 그러면 신기하게도 뒷차는 알아들었다는 듯 우리는 사이좋게 달린다 그리고 가끔은 횡단보도 중간에서 보행 신호등을 놓친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때도 비상등으로 삼 세 번 이 순간 도로가 멈추고 뒷차가 고요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걸음 속도에 삼 세 번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러면 또 삼 세 번 또 삼 세 번 삼 세 번 한 점이 되어 숨을 고르면 인도에 올라서서 평화의 숨을 고르신다 하늘 땅 사람 가슴에는 늘 삼 세 번의 숨이 머문다 2021. 7. 9.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 되어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사 25:4)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소서 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는 지난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켰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탈출공동체가 땅에 파종하여 거둔 첫 번째 열매를 하나님께 바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여름에 수확하는 곡물이 보리라 하여 맥추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래저래 7월은 농부들에게 분주하고 힘든 달입니다. 보리, 밀, 귀리를 베어내고, 가을 농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가월령가는 이맘 때의 풍경을 이렇게 그립니다. “大雨도 時行하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2021. 7. 8.
죽은 제비 이속장님이 갖다 준 고추모종을 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에 놀러 온 종순, 은옥이와 함께 교회 뒤에 있는 작은 밭으로 올랐다. 전에 살던 반장님 댁이 담배모종을 위해 뒷산 한쪽을 깎아 만든 비닐하우스가 있던 자리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곳에 S자 모양의 계단을 만들고선 그 밭에다 토마토, 빨간 호박, 참외, 도라지 등을 조금씩 심었다. 마른날이 계속되면 물도 주고 가끔씩 풀을 뽑기도 한다. 우리끼리 아기 이름을 따서 ‘소리농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밭으로 오르는데 보니 제비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어디 잘못 벽에 부딪쳤지 싶다. 작은 몸뚱이, 저 작은 몸뚱이에서 그 힘찬 날개 짓이 나오다니. 언제 죽었는지 한쪽 날개를 집어 드니 등짝엔 벌써 개미들이 제법 꼬여있었다. 죽은 제비를 들자 종순.. 2021. 7. 8.
빗속을 달리는 저녁밥을 시켰다 빗속에 망설임도 잠시 배고프다 보채는 아들의 성화를 못 이긴다 음식을 내려놓으신 후 달아나시려는 기사님에게 시원한 거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살풋 웃으시면서 마음만 받겠다고 하신다 다른 기사님들은 테이프를 붙여서라도 음료를 가져가신다고 했더니 그러면 시원한 거 말고 따뜻한 물 한 잔만 주세요, 하신다 온종일 비 맞고... 말씀이 뚝뚝 끊겨도 더 묻지 않는다 얼른 뜨거운 물 반 찬물 반 담아서 커피와 설탕을 조금만 탔다 잠시라도 나무 의자에 앉아서 드시고 가시랬더니 고맙다고 하시며 문을 나가신다 온종일 그칠 줄 모르는 늦은 장맛비가 어스름 저녁 하늘을 짙게 물들이는데 비옷 안으로 삐쩍 마른 나무처럼 오토바이 옆에 서서 떨리던 몸을 녹이는지 걷기에도 미끄러운 빗길을 또 달려야만 집으로 돌아.. 2021. 7. 8.
어린왕자의 의자 서재, 책상의 위치를 바꿨다. 날씨는 덥고 무료하기에 책상 위 책꽂이를 한쪽 옆으로 내려놓고 벽 쪽을 마주했던 것을 서쪽 창가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높이가 잘 맞는 건 아니지만 의자에 앉으면 창문을 통해 많은 것이 내다보인다. 교회 앞 허술한 방앗간 지붕, 아이 뒷머리 기계로 민 듯 나무 모두 잘라내고 잣나무를 심은 신작로 건너편 산, 그리고 그 너머 하늘과 맞닿은 강 건너 산, 그러니까 책상 앞에 앉으면 강원도에 앉아 충청북도의 산을 마주하는 셈이다. 의자를 조금 움직여야 하지만 학교 쪽으로 난 길을 통해서는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이들을 볼 수도 있다. 해질녘의 노을과 밤늦게까지 지워지지 않는 어둠속 산과 하늘의 경계선, 막 깨어나는 별들. 몹시 슬플 때에는 해 지는 모습 보기를 좋아했다는 어린왕자,.. 2021.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