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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

왜 걸어요?

by 한종호 2017. 7. 31.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8)


왜 걸어요?


이 또한 드문 경험이었다. 그곳이 식당이든, 길가 평상이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면 누군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드물기도 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행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겠다 싶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나는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한 나절이 아니라 여러 날 걷는 사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배낭 때문이었다. 배낭이 유별났던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만난 이들 중에는 배낭의 무게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따로 재어보질 않았으니 나도 몰랐다. 일정 중에서 도피안사를 찾아갈 때였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이라니, 그 오랜 세월을 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불과 몇 백 미터를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표지판을 잘못 이해를 하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필이면 도피안사(到彼岸寺)로 가는 길에 길을 잘못 접어들다니,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긴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나는 법이니까.


농로를 걸어가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길을 확인하며 보니 제법 큰 저울 위에 블루베리가 담긴 광주리가 올라 있었다. 저울에 배낭 무게를 재보아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얼마든지 그러라 했다. 배낭 무게는 11kg 정도였다.


그러니 배낭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배낭보다는 배낭 뒤에 걸려 있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배낭 뒤에는 대개 덜 마른 양말이 걸려 있었다. 다른 빨래와는 달리 아침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 양말을 옷핀으로 배낭에 매달고 걷다보면 어느 샌지 잘 마르고는 했다. 혹시나 싶어 챙긴 옷핀은 의외의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양말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은 신발이었을 것이다. 폭우 속에 진부령을 넘은 것을 안 이 장로님은 먼 길을 신발을 사가지고 달려오셨다. 내미는 신발을 대하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따뜻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낭 무게를 줄인다며 떠나올 때 여벌 신발을 챙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신발이 한 켤레밖에 없으니 젖은 신을 신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길을 걷는 중간 중간 신발을 벗어 햇볕에 말리곤 했다.


장로님 마음에는 젖은 신발로 걷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을 것이다. 하긴 젖은 신을 신고 먼 길을 걷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물집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일이었다.


배낭 안에는 짐이 더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다행히 장로님이 신발과 함께 전해준 물품 중에는 간단한 고리도 있어서, 신발을 배낭에 매달 수가 있었다. 덜렁덜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낭에 매달린 신발이 춤을 췄다.


이따금씩은 신발이 잘 매달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배낭 뒤에 매달려 있어 눈에 보이질 않으니 손을 돌려 만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오른쪽으로 한 번은 왼쪽으로, 신발을 차례로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굳이 두 짝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두 짝 중에서 하나만 없어져도 나머지 하나는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 속에는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남은 하나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발이었다.


막 떠나기 시작한 기차에 오르는 순간 구두 한 짝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굴러 떨어지자 얼른 나머지 한 짝을 기차 밖으로 벗어던졌다는, 간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러냐고 수행원들이 놀라 물었을 때 간디는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누군가 내 구두를 신는다면 두 짝이 다 있어야 신지 않겠나?”


길을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걷느냐는 질문이었다. '하늘 꼬리'라는 '천미리'를 지날 때, 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까마득하다.


무더위 속 양말과 신발을 배낭 뒤에 매달고 다니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이들은 뭔가 궁금한 것이 있어 내게 다가와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이었다.


열하루를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은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왜 걸어요?

-어디까지 가요?

-혼자서 걷는단 말이예요?


도대체 왜 걷는 걸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길을 걷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제주도 올레길이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는 이유는 뭘까, 대뜸 짐작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허리가 잘린 이 땅에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분단의 땅 DMZ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대답을 하면 대개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까지 가요?”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로 바뀌었다. 일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루에 30km 이상씩 열하루 동안을 걷는다는 것도 그렇고, 열하루를 걸으면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를 걸을 수 있다는 것도 평상시엔 떠올리지 못한 생각이지 싶었다.


세 번째 질문도 많이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혼자 걸으면 너무 외롭지 않느냐, 위험하지 않느냐, 대개는 그랬다. 걸어보니 외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대답을 하면 나를 성격이 별다른 사람인양 바라보고는 했다.


연배가 나와 비슷한 이들은 세 가지 질문 외에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이곤 했다. 물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지금 나이가…?”


내 모습을 보니 나이가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젊어 보이는 나이도 아니었을 터, 내가 나이를 말하면 반응은 비슷했다.


“대단하네요!”

“나도 한 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십이선녀탕으로 가던 중에 만난 한 남자 분은 특히 관심이 많아 햇볕에 널어 말리던 내 신발이 나무 그늘 안으로 들자 얼른 햇볕 밖으로 옮겨주면서까지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걷고 있는 로드맵을 궁금해 하여 메일 주소를 받았고, 다녀온 뒤에 보내드렸다. 언젠가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가만히 보면 오르막 같기도 하고 내리막 같기도 하다. 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김화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중년의 남자 분이 있다. 점심을 먹고 이어갈 길을 확인하느라 길을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그는 DMZ를 따라 걷는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식사를 다 마쳤음에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던 그가 내 나이를 물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나이를 확인한 뒤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 그런 일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에 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꼭 걸어봐야겠네요.”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된 자극이 고마웠던 것일까,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고 싶었을까, 그 분은 이야기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점심값을 계산했다. “모든 일정을 건강하게 잘 마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행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정체, 차림새만 보고도 먼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엄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과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만한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살아가는 모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 모습만 보면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는 믿음의 표지와 표식이 과연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문득 떠오르는 말씀(베드로전서 3:15)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우리를 향한 권면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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