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5)


몇 가지 다짐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다. 걸으면서 지킬 몇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첫째, 잠은 허름한 곳에서 잔다.

둘째, 밥은 최소한의 것을 먹는다.

셋째, 꽃 한 송이, 풀잎 하나 꺾지 않는다.

넷째,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킨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지키기 쉬웠던 것은 네 번째 다짐이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다니면서 내가 버리지는 말아야지 했다. 배낭 밖에 있는 주머니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 담았다가 숙소에 들어가면 봉지를 비웠다. 당연한 일인데도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또 하나 잘 지킨 것이 세 번째 다짐이다. 사실은 그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야생 더덕을 만나도 캐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었는데 마음이 슬쩍 슬쩍 흔들리던 순간들이 있었다.


강원도 외진 곳에는 먹을 것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도 잘 익은 오디가 곳곳에 흔했다. 어릴 적만 해도 오디가 익을 철이 되면 동네 어린 우리들의 입은 누구 따로 예외 없이 먹물 묻은 듯 시커멓게 변하곤 했다. 오디가 까맣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차례가 돌아오질 않으니 아직 덜 익어 신맛을 내는 붉고 푸른 오디를 따먹곤 했다.


그런 시절을 두고 이제는 오디를 딸 사람이 없어 그냥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골마다 아이들은 없고 노인들은 손이 미치지 못하고, 커다랗게 잘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 그냥 지나갔다.


곳곳에 산딸기도 많았다.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가 보이면 침이 고였다. 특히 목이 마를 때 딸기가 눈에 띄면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폐가지 싶은 돌담에 잘 익은 앵두가 올망졸망 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개량 보리수이지 싶은 붉은 열매가 눈에 띌 때에도 얼마든지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몇 번인가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띄었지만 그 또한 뜯지 않았다. 그냥 두면 나중에 누군가가 행운처럼 만나지 않을까.


세 번째 원칙을 지킨 것이 준 도움이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가 있었다. 로드맵에는 하루 평균 걸어야 할 거리가 30km 정도라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차량 내비게이션 거리, 실제 걸어보니 35km 정도가 되었다. 오디를 따거나 산딸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날그날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도움 받은 것도 소화와 관련이 있다. 일정 내내 배낭에 넣은 휴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평소에 먹고 마시던 음식과 물이 다르기에 소화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써야지 싶어 비상용 휴지를 챙겼는데,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빨래를 했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숙소는 그래도 좋은 숙소였다.


허름한 집에서 자겠다는 첫 번째 다짐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숙소는 허름한 모텔이었다. 묵는 곳이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하룻밤 잠만 자고 다음날 일찍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굳이 좋은 곳을 택할 이유도 없었다. 샤워를 할 때 따뜻한 물이 나오고, 빨래를 한 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곳이면 매우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하루는 할머니가 하시는 민박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자기도 했다. 큰 회관에서 혼자 잠을 자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눕기만 하면 이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묵었던 옥계리 마을회관.다음날 아침 부녀회장님 댁에서 먹은 아침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가족 5명과 한 식탁에 앉았으니까.


이틀 밤은 생각지도 않게 편한 숙소에서 잤다. 화천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큰 훈련을 마친 때라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았고, 덕분에 숙소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망설이다가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하여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후배는 아예 교우가 하는 펜션을 잡아주었다. 일정 중 마지막 밤은 일부러 먼 길을 달려온 이 장로님의 배려로 편안하고 조용한 펜션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밥을 최소한의 것으로 먹어야지 했던 두 번째 다짐도 첫 번째와 비슷했다. 혼자 다녀보니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식사였다. 밥은 모두 식당에서 사 먹었는데(두 끼는 식당을 만나지 못해 비상용 간식으로 대신했지만),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 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안 받는다고 하여 도로 나온 식당도 있다. 받아준다고 해도 혼자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많지도 않았다. 백반과 김치찌개, 콩국수가 그 중 무난한 메뉴였다.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메뉴 선택도 제한이 되었다.


열하루 동안 땡볕 아래를 걷는 일정,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쓰러진다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 분들이 있었다. 정 장로님 내외분, 이 장로님 내외분, 화천의 박 장로님 내외분,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단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고마운 격려를 듬뿍 전해 받는 시간이었다.


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길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지 싶다.

인생의 길과 믿음의 길도 그러면 어떨까 싶다.

사소해 보여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며 걸어간다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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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4)


행복한 육군


자주 혹은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기회가 될 때면 함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다. 로드맵을 만들어주신 뒤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난 건 아닌지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들어 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무시면서 꾀를 내세요. 응원군을 불러 물도 간식도 챙기고 잠자리를 구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꾑니다. 걷는 것 이상으로 그런 일이 더 힘든 겁니다. 


육군 행군 훈련은 먹고 자는 것은 지원부대가 따로 해주기 때문에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해병대는 그것까지 스스로 해결합니다.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소속변경하시는 것을 강추!! 저만 알고 있을게요. 


‘하나님 우리 목사님 흉흉한 이 세상에 당신의 종이 된 저 깊은 속을 위로하세요. 아멘.’


요일 별로 담긴 비타민과 영양제. 그것을 먹을 때마다 우린 당신을 응원합니다 하는, 따뜻한 격려로 와닿았다.


다음날 소똥령 마을을 향해 오르다 잠시 도로 옆 나무 그늘에 들어 쉬는 시간, 장로님께 답장을 드렸다.


“진부령으로 가는 길, 잠시 그늘 아래에 앉았습니다. 전해주신 로드맵이 큰 도움이 됩니다. 군 생활은 육군에서 했지만, 걷기는 해병대를 택하고 싶습니다.


그렇잖아도 지원군을 자청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필요하면 이야기 하겠노라 했습니다.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다 싶습니다.


아침에 대대리를 지나며 대대교회에 들렀습니다. 먼저 소천한 친구 목사가 목회하던 교회였지요.


저 멀리 병풍 같은 산이 보입니다. 어서 오라 팔을 벌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걸어야겠어요.”


막 일어서려는데 장로님이 답장을 보내왔다.


“대대리를 지났으면 오늘 길은 헷갈릴 데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숙박이 문제, 진부령에 감리교회 기억하시죠? 원래 해병대가 멋있지요. 멋지세요.”


해병대와 육군, 재미난 표현이었다. 단어 하나에 내가 갖는 시간의 의미와 성격과 빛깔이 오롯이 담긴다 싶었다. 군더더기를 버린다면 짧은 말 한 마디에도 충분한 의미가 담길 수 있는 법이다.


먹는 것이 부실하면 쓰러진다며 먼 길을 찾아와 토종닭 백숙을 사주신 분도 있었다.


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고마운 제안들이 있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 같이 길을 걷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다. 행여 부담을 끼치거나 번거롭게 할까 싶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같이 걷자고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먼저 동행자가 되겠다는 말은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었다.


얼마든지 그러자고 했지만 결국은 혼자 걷게 되었다. 마음과는 달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이도 있었고, 생각지 않은 일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혼자 걷기로 한 내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물러선 이도 있었다.


동행하겠다는 말도, 동행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포기하는 모습도 모두가 고마웠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언제든지 한걸음에 달려가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떠난 길이었기에 모든 일정을 ‘해병대’로 마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고마운 만남, 고마운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거미줄에 걸린 이슬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이듯 걷는 기도의 시간을 의미 있게 해 준 소중한 사람들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병대’에서 벗어나 ‘행복한 육군’이 되고는 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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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왕조사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의 왕조적인 모습을 이렇게 풀어간다. “우리의 공화정 도입이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행위와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순식간에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와 세월호 참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저자는 “개신교는 ‘자영업’에 가깝다. 한국 개신교회는 사회적으로 공적 조직과 연 닿아있지 않다. 그래서 운영에 관한 일체를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자영업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전형적인 외국계 지사의 모습을 보인다. 천주교는 개신교처럼 자영업 마인드가 아니다. 뒤에 바티칸이라는 든든한 언덕이 있기 때문일까? 국내에서 영업이 좀 시원찮아도 자금력 두둑한 본사 덕분에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한국 천주교의 경우 신자들에 대한 독려 행위가 개신교보다는 약하다. 반면 불교는 전형적인 공기업 마인드이다. 업무의 효율이나 생산성에 목매지 않아도 꼬박꼬박 때만 되면 계좌에 입금되는 월급의 유혹은 달콤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종교의 상황은 그 종교가 기득권화되어 있고 그걸 지켜내고 확대하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이며 정작 해야 할 종교 수련의 길보다는 손쉬운(?) 세속적 영향력 확대의 길을 택하게 되고, 힘(權力)으로, 돈으로, 수(數)의 힘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밀어 붙인다.

 

이러한 종교에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성찰,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 대중의 욕망에 대해 질타한다. 결국 종교는 기득권을 움켜쥐는 과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종교의 사망선고가 내려진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유교의 흔적을 살피면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는 저자는 그때마다 서슴없이 “유교!”라고 답한다. 결혼을 고리로 이어진 가족주의에 기초한 유교란 종교의 가치관은 지금도 강력하다. 명절 때마다, 집안의 대소사 때마다 발길을 원적(原籍)으로 돌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토스는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닌 바로 유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교는 이를 사회적 제도 속에 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그뿐인가? 설날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가문의 영생을 축하하는 의례, 그것이 바로 제사이다. 이러한 유교의 에토스는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우 강력한 힘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러니 유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라고 할 수 밖에.

 

이에 덧붙여 한국종교가 민족주의와 어떻게 결부되어있는지, 각 종교의 경전읽기는 연애편지를 읽는 것과 유사한 성질의 것인지, 역사 속에서 종교는 어떤 행태로 파렴치하게 친일 행각을 벌였는지, 우리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정도로 왜 ‘공부는 구도행위’가 되었는지 등등을 풀어가면서 보통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나쁜 종교’이고 ‘좋은 종교’일까? 이 물음에 대해 보통 사람이 생활세계에서 대하는 종교가 어떤가에 대해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한다.

 

“야 니 어떤 기 참말로 좋은 종굔지 아나?”
“뭔데?”
“통일교 아이가!”
“우째서?”
“통일교는 교인이 되믄 장가보내준다 아이가!”
“참말로?”
“하모. 그라고 장가가믄 집도 준다 카더라!”
“집도??!! …야야, 그 참말로 좋은 종교네.”


“그럼 개신교는?”
“음… 그건 쪼매 애매하다. 교회 가믄 장가는 보내주는데… 뭘 쫌 마
이 내야 된다 카더라~”
“뭐를?”
“헌금! 헌금내야 된다 아이가! 교회는 기본으로 드는 돈이 장난이 아
니라 카더라.”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나?”
“하모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니까 괜찮다 아이가!”

“집은?”
“… 집은 없다드라.”


“천주교는?”
“그거도 개신교랑 쪼매 비슷하다 카더라.”
“근데 문제는 신부하고 수녀는 결혼을 안 한다 안카나~”
“내는 그기 쫌 맘에 걸린다.”
“결혼을 안해보믄 사람 속을 잘 모른다 아이가.”


“그래 그람 다른 종교는 없나?”
“느그 대순진리회는 가지 마래이~”
“와?”
“거기는 장가도 엄꼬, 집도 엄꼬, 대신 들어갈 때부터 돈만 진탕 낸다 
아이가!”
“참말이가?”
“하모!”
“음… 그람 거는 안 되겠네!”

한국 사회는 왕조사회다

 

5년제 비정규직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이 제왕적 군주가 되어 백성 위에 군림하고, 그의 임명을 받은 고위직 공무원들은 공복이 아니라 지배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런 심정적 정황 가운데 정작 주권자요 납세자인 시민은 계몽적 군주만 손꼽아 기다리는 왕조의 백성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96쪽)

 

왕조 사회 속 갑질 문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여전히 사회적 에토스가 왕조적 마인드에 묶여 있다 보니 갑의 언사는 임금의 그것이 되어 어명처럼 서민의 심부를 찔러댄다. 이런 현상은 세월호 참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폄하하면서, 간단히 돈으로 해결하려고만 한다. 갑의 온정으로 두둑이 챙겨 줄 테니 이쯤에서 목소리를 낮추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투의 훈계이다.(104, 106쪽)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왕조국가’적 성격이 강하다. 교종과 추기경에 대해 보여준 한국 사회의 반응은 왕의 즉위를 환영하거나, 혹은 왕의 승하를 슬퍼하는 왕조 사회 신민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112쪽)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중세인들이 페스트의 공포를 유대인 죽이기로 상쇄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메르스가 가져온 불안을 누군가를 공격함으로 무마시키려 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공격의 대상들은 사회의 약자들이다. 안 그래도 소외되고, 배척받으며, 그 때문에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사회의 다수는 날카로운 침과 바늘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의 폭력을 만나니, 중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희생양 찾기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감염병의 문제는 의학과 그에 기반을 둔 정책과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이를 신앙으로 섣불리 ‘해석’하려 드는 것 자체가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 다른 감염병일 수 있다.(117쪽)

 

공부는 구도행위

우리는 공부를 종교적 구도행위의 하나로 각인하며 살아왔다. 이미 오래도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집안 누군가가 똘똘한 머리를 지녔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데 전혀 거리낌 없는 에토스 속에 살아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생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유교 사회에서 공부는 일종의 구도 행위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가 공부로 성공해야 가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라는 국가시험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사회는 공부에 대한 공동체적 신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공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개인의 신앙적 책무가 된다. 왜? 그래야 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은 한국에서는 신앙의 문제이다. 매번 입시철만 되면 이 땅위의 모든 종교를 대동단결하는 힘이 신앙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우리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 지경이다.(157, 159쪽)

  

한국 교회와 샤머니즘

한국 교회는 편한 마음으로 샤머니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혹은 희생타로 이용해 왔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개화되고, 문명화되고, 심지어 정보화에도 앞서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오히려 샤머니즘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는 이 엄연한 현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한국 교회에 웅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 앞에 오히려 한국의 샤머니즘은 한국 교회로서는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타산지석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것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샤머니즘이 보이는 부정적 장면이 아니라 긍정의 그림들이다. 그것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이해의 자세가 문제를 푸는 고갱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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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3)


아, 진부령!


소똥령 마을에서 어렵게 점심을 먹고 다시 진부령으로 오르는 길,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발은 제법 굵었지만 성근 빗줄기, 그러다가 그치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산 전체는 비로 가득했고, 비와 함께 천둥과 번개가 하늘과 계곡을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지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샌가 달리는 차들은 라이트를 켜기 시작하더니 그래도 더욱 빗발이 거세지자 내남없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얼른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 입으며 메고 있는 배낭을 덮개로 덮었지만 거센 빗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몸은 금방 비에 다 젖고 말았고, 신발은 구멍 난 장화처럼 물이 흥건했다.


위아래로도 좌우로도 제법 경사가 진 진부령의 도로가 빗물로 가득했다. 그만한 경사라면 당연히 빗물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야 할 터인데, 쏟아 붓듯 비가 오니 흘러내릴 새가 없었던 것이다.


개울처럼 변한 도로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자 도로 위에는 아름다운 비꽃이 피어났다. 마치 판화를 찍은 것처럼 아름다운 문양이 피어났다.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문양을 보며 왜 하필 먹지도 못하는 닭발이 떠올랐을까만, 아름다운 문양이 비로 가득한 도로 위에 가득 피어났다.


황무지에 꽃이 피듯, 그 모습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도 도로 가득 피어나는 빗줄기의 문양은 대책 없이 아름다웠다.


저 멀리 진부령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이름이 왜 그리 반갑던지. 먼 길을 걸은 자는 모든 이름이 반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어느 순간부터 우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깨를 때려대는 우박이 제법 따가웠다. 하늘의 안마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깐, 모래 알갱이만 하던 것이 어느새 공깃돌만큼이나 커졌다.


위험하다 여겨져 주변을 살폈더니 마침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물 이동로이지 싶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얼른 그 안으로 뛰어가 우박을 피하는데, 바로 앞 수풀 사이에는 금세 우박 알갱이가 소복이 쌓였다.


계곡을 가득 채운 장한 빗줄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천둥과 번개, 거기에 더해 느닷없이 쏟아지는 우박,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날씨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런 악천후를 만난 적은 없었다. 폭우, 천둥과 번개, 우박, 길을 걷는 내겐 어느 것 하나 쉬울 것이 없는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몸은 다 젖었지만 그래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도로 옆으로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걷기를 중단하고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안전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진부령을 넘을까 싶기도 했는데, 비에 다 젖은 나를 태워줄 이가 누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정했다.


그냥 걷자!


그냥 걷기로 했다. 이런 시간이 내 생애 언제 또 찾아오겠는가 싶었다. 어쩌면 내 생애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악천후, 그것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맞으며 그 속을 걸어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악천후가 그렇듯이 그 속을 걷는 일 또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울려대는 계곡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아주 모르지 않기에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인가는 바로 머리 위에서 비단 천을 찢듯 번개가 갈라지고, 잠깐 멍해 있는 사이 고막이 찢어질 듯 천둥이 울려대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계곡 어디선가 우르르 쾅쾅 요란한 굉음을 내며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굴러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나는 손엔 스틱을 잡고 있었고, 다 젖은 바지 호주머니 속엔 핸드폰과 보조배터리가 있었다. 서툰 지식에도 번개에게 좋은 표적일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지금 너무 무식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막무가내로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을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더없이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빗속을 그냥 걷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비를 만난 그 날은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날씨를 이유로 걷기를 중단한다면 길을 걸을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 마음속으로 했던 대답도 떠올랐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거냐고,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을 두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맞겠다고, 비를 맞을 터이니 대신 이 땅의 가뭄을 끝내 달라고 대답했었다. 이 땅에 이어지고 있는 가뭄이 지독한 가뭄이라면 장한 비를 맞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마침 그날은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날이었다. 걸으면서 떠올렸던 사람들, 누구의 삶도 쉬운 삶이 없었다. 힘겨운 삶을 떠올리며 기도를 바치기엔 오히려 그런 악천후가 제격이다 싶었다.


진부령에서 만난 시간은 내 생애 가장 심한 악천후였다. 그 시간을 통과하듯 지나자 다른 날씨는 얼마든지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차를 운전하며 폭우 속을 달리는 이들은 폭우 속에 진부령을 오르는 내 모습을 보며 필시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상해도 여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비도 아니고 우박과 천둥과 번개가 온통 난리인데 그 속을 걸어 진부령을 넘다니, 세상에는 참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니!


빗속을 걸어가며 마음속에 찾아든 엉뚱한 생각이 있었다. 혹시 지나가는 어떤 이가 차를 세우고 타겠느냐 묻지 않을까 싶었다. 폭우 속 진부령을 걸어 오르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재난상황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누가 물으면 대답해야지, “저는 괜찮아요, 저는 됐으니 그냥 가세요, 하지만 그렇게 물어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환하게 웃으면서 얼마든지 그렇게 대답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차는 없었다. 단 한 대도 없었다. 돌발적으로 닥친 위험한 상황을 속히 벗어나려는 듯 비상등을 켠 채 빗속을 내달릴 뿐이었다. 비의 양을 감당하기 힘든 와이퍼만 미친 듯이 돌아가며 차들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다.


만약 내가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나처럼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라면 차를 세웠을까 생각을 하다가, 누가 목사 아니랄까, 이어진 생각은 이랬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차를 세우고 거센 빗줄기가 안으로 들이치는 데도 차에 타지 않겠느냐 물을 때, 문득 열려진 차창을 통해 룸미러나 대시보드에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면, 그 십자가의 의미는 얼마나 절실하게 와 닿을까, 싶었다.


이 다음 언제라도 폭우 속을 운전하다가 나처럼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이렇게 말을 건네야지, 빗속을 걸어가며 다짐을 한다.


“혹시라도 내가 도와드릴 일이 없나요?”


마침내 진부령 정상, 두 시간 이상 이어지던 악천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산 아랫동네의 일이라는 듯 진부령 정상은 내가 걸어온 시간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 젖은 몸과 배낭,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야 하나, 그런 걱정을 해야 했지만 내게는 그런 생각을 할 기운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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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2)


소똥령 마을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적인 기대와는 달리 소똥령 마을로 향하는 길은 매우 단조롭고 밋밋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46번 국도를 걸어 올라야 했다.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열기가 담겨 숨을 마음대로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길 어디에도 소들은 보이지 않았고, 소똥 냄새는 물론 소 모는 아이들 소리나,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길을 걸어보니 알겠다. 급경사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급경사는 얼마 동안만 참고 견디면 된다. 오히려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완만한 경사 길을 계속해서 걷는 일이었다. 완만한 경사는 당장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언젠지도 모르게 체력과 정신력을 바닥나게 만들고는 했다.


이름부터 정겨운 소똥령 마을. 어디선가 풀을 뜯는 소떼들과 소를 모는 소년들의 모습이 보일 것도 같았고,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올 것 같았다.


소똥령 마을까지가 오전 일정,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 오후를 위해서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소똥령 마을에 이르렀을 때쯤엔 온통 땀범벅, 몸이 축 처지고 말았다.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니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흔할 것으로 짐작했던 식당은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경사진 길을 가리키며 계곡 아래로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일러준다.


계곡 아래엔 넓은 캠핑장이 있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식당을 찾아가니 마침 단체 손님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 무슨 거창한 모임인지 축사와 인사말이 계속 이어졌고, 순서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누구에게 주문을 해야 하나 기웃거리는데도 누가 따로 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갖는 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식당 주방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마을 부녀회 대표가 식당을 맡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단체 손님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 손님은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인근에 다른 식당이 있는 지를 물었지만, 없단다.


난감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도 진부령은 만만치가 않을 터인데 점심을 굶고 큰 고개를 넘게 생겼으니, 기가 막혔다. 소똥령 마을에 오면 말린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건가 했던 것은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낭만적인 기대였다.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점심을 안 먹으면 나도 안 돼요.”


단체손님 때문에 손이 바쁜 아주머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걸어서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밥하고 김치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소똥령 마을에 가면 말린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나 싶었는데, 너무 낭만적인 기대였다.


걸어서 진부령을 넘겠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딱했는지 기특했는지 주방 한쪽 구석에 의자를 갖다 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쟁반에 밥과 반찬 두어 가지를 담아왔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펄펄 끓는 탕 한 그릇을 가져다준다.


염소탕이라고 했다. 아마 단체 손님들의 주 메뉴가 염소탕인 모양이었다. 한 그릇을 잠깐 사이에 비우자 이번에는 수박과 토마토도 가져다주었다.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얼마를 드리면 되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값을 물었다. 걸식하듯 밥을 먹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운영하는 식당,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었다.


“만원만 주세요.”


묻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배려를 가벼운 호의로만 받았다면 아주머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지 않은 곳에서 점심을, 그것도 염소탕을, 그것도 만원에 먹었으니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주방 밖으로 나서며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도 인사를 한다.


“염소탕을 먹었으니 진부령도 염소처럼 가볍게 넘으세요!”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야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진부령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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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다보니 위험한 길들이 참 많았다. 지뢰나 낭떠러지, 무서운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길이 의외로 많았다. 도로에 차도만 있지 인도가 따로 없었다. 인도가 없는 길은 자동차를 타고서만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인지, 차가 없다면 돌아서 혹은 날아서 가라는 것인지, 도로를 만들 당시의 규정을 따른 것이겠지만 길을 만든 이들의 심사가 무심하게 여겨졌다.


어쩔 수 없이 도로 가장자리를 걷는 수밖에 없었다. 차들이 달리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고, 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니 기도를 드리거나 마음을 집중하기에도 좋을 것이 없었다.



길을 걸어보니 위험한 길이 의외로 많았다. 무엇보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들이 위험했다.


대개는 마주 오는 차를 마주보며 걸었다. 하나를 가지고 떠난 스틱을 오른손에 잡았던 것은 그래도 위험을 줄이려는 생각이었다. 뭐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운전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도로 위를 걷고 있는 나를 두고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얼마간 거리를 두고 지나가면 좋겠는데 마치 왜 도로 위를 걷고 있느냐는 투로 바싹 가까이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실은 대부분의 차들이 그랬는데, 덩치가 큰 트럭이 그렇게 지나갈 때는 아찔하곤 했다.


길을 걷는 나를 보고는 속도를 줄여 다가오고, 나와 간격을 두고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차들도 있었는데 그 잠깐의 순간이 참 고마웠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따뜻하고 충분한 배려로 전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도 다를 것이 없겠다 싶었다. 누군가의 곁을 함부로 지나가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 곁을 지나간다 해도 내가 지나치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며 지나가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시인 이성선은 <다리>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그러고 보면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리를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태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었다.



오천 터널을 빠져나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훈련 중인 군인 트럭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프 차량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군인들을 태운 여러 대의 트럭이 줄을 지어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군인 트럭 사이에 있던 승합차 한 대가 느닷없이 트럭을 추월한 것인데, 승합차는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한적한 길이라 괜찮다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하필이면 커브 길에 추월을 나왔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급히 피한 것인데, 황급히 핸들을 돌려 다시 트럭 사이로 끼어든다는 것이 내 곁을 스치듯이 지나간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아뜩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승합차 운전자는 저도 놀랐는지 나머지 트럭들도 추월을 하더니 꽁지가 빠져라 내달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돌아서서는 “이런! 이런! 이런!” 달려가는 승합차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놀라기도 했거니와 화도 났다. 하긴, 종일 혼자 길을 걸으며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터에 모처럼 말을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도망을 치듯 내달리는 승합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무례한 것은 난폭한 것이구나! 무례한 것은 그냥 무례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무례하게 행한 이는 짐작을 못하거나 자신이 한 일을 가볍게 여길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난폭함이 되는 것이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또 하나 이어지는 생각이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나를 그냥 지나친 모든 차들이 새삼 고마웠다. 방금 전 아찔하게 스쳐간 승합차처럼 얼마든지 나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내 곁을 지나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를 지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든지 나를 공격하고 쓰러뜨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지나간 많은 사람들, 그들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었다.


맞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 중에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도 있고, 다리를 위태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다리 지날 때마다 우리는 다리를 다리답게 해야 할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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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이야기 5


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무엘상 28:3-7


사울 이야기의 숨은 주인공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어 ‘인간’(人間)은 사람 ‘인’ 자에 사이 ‘간’ 자를 씁니다. 사람은 곧 사람 ‘사이’ 곧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뜻이겠습니다. 사람은 그가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사울이 누구인지 알려면 그의 외모나 특기나 취미나 취향, 그가 좋아하는 음식 등이 뭔지 아는 걸로는 부족하고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사울이 누군지 알려면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어땠고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네 번에 걸쳐서 사울 이야기라는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울이 맺은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이 시리즈를 마감하는 마지막 글로서 하느님이라는 등장인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로서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의 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숨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정도이지만 하느님은 연극을 이끌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늘은 숨은 주인공인 하느님을 살펴볼 터인데 다시 한 번 얘기하면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은 사울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곧 ‘캐릭터’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입니다. 사람이 알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깊고 너무 넓고 신비한 분이기에 하느님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하느님은 당신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성서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됩니다. 물론 성서가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서 이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성서가 하느님은 아는 유일한 길은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길임에는 분명합니다.


성서가 하느님을 보여주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하느님은 이러저런 분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사건’이나 ‘이야기’, 또는 시적인 ‘은유’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줍니다. 이렇듯 성서는 직설적으로 하느님을 보여주진 않으므로 우리는 성서를 ‘해석’이라는 작업을 해가며 읽어야 합니다. 예컨대 성서가 하느님을 ‘질투’하는 분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을 글자 그대로 하느님이 사람처럼 질투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하느님의 특정한 성격을 가리키는 ‘시어’로 알아듣고 뭘 지시하는지를 해석해야 합니다. 또 성서가 하느님이 ‘오른팔을 펼쳐서 구원했다’고 말하면 ‘그럼 왼팔은 뭐에 쓰나?’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지 말고 그 행위가 뭘 가리키는 ‘지시어’인지를 해석해야 합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만 바라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사울 이야기에서 보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하느님은 그 이야기를 만들어서 후대에 전한 사람들에 의해 ‘해석된’ 하느님입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으며 새롭게 해석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울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사울 이야기에 드러난 하느님에 대해 질문하거나 문제제기할 때 우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문제제기라는 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회하시는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을 통해서 하느님께 왕을 요구한 이유는 첫째로 외국, 특히 블레셋과의 전쟁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고, 둘째로 전쟁이 없을 때도 지속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리더가 필요했다는 데 있습니다. 백성의 이러한 요구는 이해할만 합니다.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야훼의 궤를 갖고 나갔지만 패배했습니다. 게다가 야훼의 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사무엘과 하느님은 이와 같은 백성의 요구를 각각 자신을 버린 걸로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백성이 자기를 버린 걸로 이해하고 마음 상한 사무엘에게 그들은 사무엘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을 버린 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느님은 백성들이 당신을 버렸다고 여겼으면서도 그들을 벌하기는커녕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는지 궁금합니다. 왕을 달라는 요구가 다른 신을 섬기겠다는 뜻은 아니므로 용납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걸까요? 왕을 달라는 요구가 다른 신을 섬기겠다거나 우상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느님은 사울을 택한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셨습니다. 성서는 그 얘기를 두 번이나 하는데 그래서 ‘하느님도 후회라는 걸 하는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겁니다. 성서에는 여기 말고도 하느님의 후회에 대해 말하는 구절이 여럿 더 있습니다. 십계명에 따르면 하느님은 ‘질투’도 하신다는데 그에 비하면 ‘후회’ 정도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느님이 후회하신다는 데 충격 받을 사람도 있겠지요.


이에 못지않게 곤혹스러운 점은 하느님의 후회가 정당한가, 사울은 하느님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 못된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제사를 집전한 행위로 하느님을 후회하게 만들었고, 헤렘의 규율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한 번 하느님을 후회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이레 동안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기에 스스로 제사를 집전했습니다. 이게 문제였다고 해도 그 책임은 두 사람이 나눠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헤렘의 규율을 어긴 것도 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지난 번에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울의 책임이라고 해도 거기에 대한 징벌의 강도가 적절한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잘못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징벌이 과중하다는 겁니다. 물론 사울의 불행에는 그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걸 부인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이 자기를 대신해서 다윗을 선택하셨음을 알게 된 후로 다윗을 죽이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광기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는 뭔가에 쫓기듯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거란 얘기입니다.


성서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느님은 사울을 버렸을까요? 왜 하느님은 자신의 선택을 물러가면서 사울을 버려야 했을까요? 사울 이야기는 두 가지 이유를 들지만 그것만으로는 얼른 수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서도 답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만족스런 답을 찾아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성서도 답을 찾느라고 고민했다거나 성서도 답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에 어리둥절할 사람이 있을 겁니다. 성서를 모독한다고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서는 사람의 책입니다. 그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써서 사람이 전달한 사람의 책입니다. 문서로서의 성서는 사람이 써서 사람이 후대에 물려준 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사람의 책인 성서는 우리처럼 하느님이 누군지, 하느님의 뜻이 뭔지 알려고 갖은 고민과 온갖 실험을 하는 책입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찾아내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 눈에는 왜 하느님이 사울을 버렸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성서가 확실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자기가 찾아낸 답의 실마리를 후대에게 남겨놓는 데 만족했던 걸로 보입니다.


제사와 관련된 두 가지 ‘불순종’이 그의 버림받음에 대한 만족스런 답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성서도 동의한다고 보입니다. 그게 정답이라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해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불법적으로 먹은 다윗도 거기에 맞는 벌을 받았어야 했는데 안 그랬으니 말입니다. 다윗이 벌을 받아 불행해지기는커녕 그에게 속아서 빵을 내준 놉의 제사장들만 사울의 손에 죽지 않았습니까. 사울과 다윗 중에 누구 잘못이 더 위중한지는 판단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쪽은 하느님에게 버림을 받고 다른 쪽은 그냥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울 이야기에 드러난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사울이야기에서 하느님의 두 가지 면이 드러나는데 둘 다 사울이 왜 하느님에게 버림 받았나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첫째, 사울은 ‘희생양’(scapegoat)이었다는 것이고 둘째, 하느님은 사울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희생양’ 제도는 이스라엘에게 익숙합니다. 제사제도, 특히 속죄제가 여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그 벌은 죄지은 당사자가 받아야 하지만 대신 제물로 양을 죽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가 속죄양 제도입니다. 이 이론은 르네 지라르(Rene Girard)라는 프랑스 사상가가 발전시켰고 성서학자들도 제사제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울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이 싫어서 왕을 요구했고 그것은 하느님을 버린 행위라도 이해합니다. 백성의 요구는 하느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므로 하느님 입장에서는 중대한 일탈이요 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변상황은 인간인 왕을 필요로 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가 현실 이치에 맞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도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과 처벌을 누군가에게 부과했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사울이라는 겁니다. 사울이 이른바 ‘속죄양’이 됐던 겁니다.


속죄양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처벌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속죄양은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저지른 집단적인 죄에 대해서 공동체를 대신해서 벌을 받습니다. 사울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은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에 대한 처벌을 그가 받았던 겁니다. 사울 이야기를 전한 사람들이 속죄양 이론을 의식적으로 그에게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벌어집니다.


둘째는, 하느님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점이 사울의 불행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고 여기는데 사실 저는 이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윗과 관련해서 여러 번 인용한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야훼는 다윗과 사랑에 빠진 신이다.”(Yahweh is the God who fell in love with David). 물론 이 말도 비유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집니다. 그처럼 야훼가 일방적으로 다윗 편을 든 것은 그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란 겁니다. 곧 야훼가 다윗을 선호하고 일방적으로 그의 편을 든 것은 사랑에 빠져서 한 것이므로 합리적으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느님이 사울을 버린 것도 그에게 결격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윗을 사랑해서 그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울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정말 하느님이 이런 분일까요? 누군가를 사랑해서 다른 누군가를 버리는 분일까요? 아무도 모르지요.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이니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사울 이야기가 하느님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에 대해 이런 느낌이 가진 적 없습니까? 하느님이 나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해서 내가 소외된다는 느낌 말입니다.


남을 사랑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습니까? 다윗처럼 여러분이 하느님의 사랑을 남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믿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가 쯧쯧…’ 하면서 혀를 찰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하느님의 사랑을 남달리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딱 남들만큼만 그렇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이 제게 남보다 더 큰 사랑을 베푸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자기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저처럼 다른 사람만큼만 사랑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그도 아니면 하느님의 사랑을 남보다 덜 받거나 전혀 못 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여러분 각자가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사울의 관점에서 이 얘기를 읽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분명 세 부류 중에 첫 번째는 아니었습니다. 둘째나 셋째였겠지요. 그러면 거기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울처럼 살아야 할까요? 사울처럼 다윗을 질투하면서 그를 죽이는 데 일생을 허비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자족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자기보다 덜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살면 안 되는 겁니까. 이게 기독교인들의 바른 삶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산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은총을 나누면서 그들이 겪는 고민과 고난을 떠안으면서 살아가는 게 올바른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 아닌가 말입니다.


저는 사울에게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 반비례해서 하느님의 편애를 받았던 다윗에게는 반감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그의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울의 삶의 태도도 긍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버려진 데서 오는 좌절감과 대신 선택된 다윗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는 인생을 망쳤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영영 버리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의 생에는 굴곡이 있습니다. 그게 하느님의 섭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사울이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왕좌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데 불과합니다.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버림받은 자리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울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닫는 점이 바로 이겁니다. 사울이 택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길도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길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누구를 영영 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지라도 우리가 받은 은총을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정도로는 넉넉하게 받고 있습니다. 남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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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소똥령 마을, 이름부터가 정겹다. 그곳이 어디든 고개를 넘는 소떼들이 보이고, 그러느라 소들이 싸댄 똥들이 여기저기 멋대로 나뒹굴고 있을 것만 같다. 냄새조차도 역겹지 않아 바람은 여전히 구수하게 불어올 것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어디선가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도 같다.


소똥령을 향해 가는 길에 대대리를 지나게 되었다. 문득 대대리 삼거리가 눈에 익다. 같이 신학을 공부하고 대대리 이 외진 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찍 주님 품에 안긴 친구가 있다. 최경철 목사, 눈매와 웃음이 참으로 선한 친구였다. 그 때만 해도 대대리는 땅 끝처럼 여겨졌다. 그가 대대리에서 목회를 할 때 친구들과 함께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고찰 건봉사를 찾던 기억도 여전히 새롭다.


        최경철 목사가 섬기던 대대교회.


대대삼거리에서 보니 저만치 대대교회가 보였다. 아무리 갈 길이 멀다 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른 시간, 예배당엔 아무도 없었는데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예배당으로 들어서다가 입구 벽에 부착된 명판을 보았다. ‘최경철 목사 기념예배당’이라 쓰인 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1988년 3월 대대교회에 오셔서 교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1996년 2월 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최경철 목사님의 삶과 뜻을 기리며…

-1997년 2월 5일 대대교회 교우일동>


예배당 입구에 새겨진 명판. 교우들의 마음이 따뜻했고 미더웠다.


마음이 뭉클했다. 무엇보다 고마웠다.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 했던 모리 교수 이야기대로 하자면, 친구 최목사는 여전히 교우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었다.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교우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미덥게 느껴졌다.


예배당 안의 분위기도 여느 예배당과는 달랐다. 수도원에 들어온 것 같은 차분함과 고즈넉함이 물씬 전해졌다. 제단이 낮은 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설교 또한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모든 것 또한 친구가 남긴 흔적이지 싶었다. 최 목사는 성품이 맑고 조용했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최 목사와 대대교회를 생각하며 기도를 바쳤다.


대대교회 예배당 안. 조용한 수도원 같았다.


수수한 풍경, 대대삼거리에 문을 연 식당이 보였다. 기사식당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던 것은 소똥령을 아침을 거르고 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식당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는데도 반찬을 푸짐하게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식당주인은 대대교회의 집사님, 최 목사가 목회할 때에도 신앙생활을 하던 분이어서 최 목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최 목사와 같이 신학을 공부한 친구 목사라고, 최 목사가 목회를 할 때 대대리를 찾은 적도 몇 번 있다고, 길을 걷다 대대교회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라고 하자 더없이 반가워한다.


식당 주인에게 벽화 이야기를 했다. 대대교회 마당에 있는 화장실 벽에는 벽화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인사를 하고 있는 재미난 그림이었다.


친구의 목소리처럼 다가왔던 그림. 사람은 가도 남는 것이 있다.


이모티콘을 닮은 모습이 정겨웠다. 얼굴은 네모 모양, 한쪽 눈은 윙크, 가슴엔 작지만 붉은 하트, 그림을 보는 사람을 덩달아 빙긋 웃게 만들었다. 그림 옆에는 그림 속의 사람이 건네듯 “안녕”이라는 인사말이 네모 칸 안에 담겨 있었다.


화장실 벽에 그려진 그림과 “안녕”이라는 말을 보는 순간 마치 최 목사가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고 하자, 식당 주인이 울컥한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날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두 눈을 훔친다.


오래 전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어딘가 가만 숨죽이고 있던 시간이 그 어떤 것을 계기로 다시 숨을 쉬며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친구는 여전히 젊은 시절 그 해맑은 웃음으로 식당 주인과 나 사이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었다.


사람은 가도 남는 것이 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가슴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흘러가는 세월 속 여전히 함께 숨을 쉬고 있는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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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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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이야기 4


어쩌다 두 용사가 쓰러졌는가!

사무엘하 1:17-27


사울은 실패한 삶을 살았을까?

지난 번 글에서 다윗이 등장한 후 사울의 생을 개략적으로나 살펴봤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고 대신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을 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후로 하느님이 보낸 악한 영에 시달려 강박증 비슷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수금을 잘 타는 다윗을 소개해서 다윗은 사울의 신하가 됐는데 바로 이 다윗이 사울 대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였습니다. 사울을 괴롭힌 강박증의 원인이 다윗이었는데 수금을 연주해서 그를 강박증에서 치료해준 사람도 다윗이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입니까.


그 이후 얘기는 지난 글에서 얘기했으니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누가 누구를 쫓는지 헛갈릴 정도로 서로 쫓고 쫓기는 삶을 살다가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과 전투를 벌이다가 자기 아들들이 죽고 자신도 부상당하자 사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무엘하 1장 19-27절은 사울과 요나단이 전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지어 부른 조가(弔歌)입니다.


이스라엘아, 우리의 지도자들이 산 위에서 죽었다.

가장 용감한 우리의 군인들이 언덕에서 쓰러졌다.

이 소식이 가드에 전해지지 않게 하여라.

이 소식이 아스글론의 모든 거리에도 전해지지 않게 하여라.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듣고서 기뻐할라.

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딸들이 환호성을 올릴라.

길보아의 산들아, 너희 위에는 이제부터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고

비도 내리지 아니할 것이다.

밭에서는 제물에 쓸 곡식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길보아의 산에서 용사들의 방패가 치욕을 당하였고

사울의 방패가 녹슨 채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원수들을 치고 적들을 무찌를 때에 요나단의 활이 빗나간 일이 없고

사울의 칼이 허공을 친 적이 없다.

사울과 요나단은 살아 있을 때에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떨어지지 않았구나!

독수리보다도 더 재빠르고 사자보다도 더 힘이 세더니!

이스라엘의 딸들아, 너희에게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혀 주고

너희의 옷에 금장식을 달아 주던 사울을 애도하며 울어라!

아, 용사들이 전쟁에서 쓰러져 죽었구나!

요나단, 어쩌다가 산 위에서 죽어 있는가?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프오.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 주더니

나를 끔찍이 아껴 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

어쩌다가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무기들이 버려져서 쓸모없이 되었는가?


이번에는 사울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얘기하고 다음번에는 사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여기서 하느님을 얘기할 때 그 하느님은 사울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character)로서의 하느님이라는 점입니다. 교리에서 말하는 하느님, 예컨대 전지전능하고(omnipotent) 무소부재한(omnipresent) 하느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연극에 비유하면 하느님은 사울 이야기를 그리는 연극의 등장인물 중 하나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이란 등장인물은 실제로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하지요. 하지만 연극 등장인물과 관객 모두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하느님이 등장인물 중 하나이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란 사실을 압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리를 통해서 아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연극을 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하느님은 사울을 선택한 걸 후회하는 분입니다.


사울의 삶은 실패한 삶일까요? 질문이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사울은 실패한 사람입니까? 그의 삶을 성공한 삶으로 볼 수는 없겠습니다. 한 개인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는 없겠습니다. 또 성공한 삶은 무엇이고 실패한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서가 그와 대립했던 다윗에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서술되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사울의 삶을 성공적이고 본받을만한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분명히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는 왜 실패했을까요? 그는 한 개인으로 하느님에게 부여받은 왕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기에 실패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가 처한 환경이나 외부에서 가해진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패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스로의 결함 때문입니까, 아니면 외적 요인 때문입니까? 둘 다 틀렸다는 양비론이나 둘 다 옳다는 양시론 모두 비겁하긴 하지만 사울의 경우에는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어떤 학자는 “사무엘서를 읽어보면 다윗에게는 ‘섭리’(providence)였던 야훼가 사울에게는 운명(fate)이었다.”라고 말했는데 이 짧은 문장은 얽히고설킨 두 사람의 생을 잘 요약했다고 보입니다.



그게 모두 사울 탓일까?

사람은 누구나 객관적이기 어렵습니다. ‘나’라는 이성을 가진 주체가 사고하고 평가하고 행동하는데 어떻게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객관적’이라는 말이 당사자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평가한다는 뜻이라면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저는 사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읽을 생각도 의도도 없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사울 편에 서서, 곧 가급적이면 사울에게 우호적인 입장에서 읽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사울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왔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서는 다윗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인 관점에서 쓰였습니다. 이 입장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감암하고 사울 이야기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잘못된 일의 책임을 모두 사울에게 전가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을 가급적 공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사울 편을 들려고 애를 써도 이미 사무엘과 다윗 편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1등인 다윗만 기억하고 추앙하는 현실에서 1등 아닌 사람도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울이 하느님에게 드리는 제사에 소홀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무엘, 또는 그가 대리한 하느님의 명령을 두 번 어겼는데 둘 다 제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에 사울만 탓하는 것은 공정치 않아 보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내가 갈 때까지 이레 동안’ 기다리라고 했는데 정작 그는 이레가 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인들이 속속 탈영하므로 스스로 제사를 집전했는데 그걸 사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무엘은 이렛날에는 왔어야 하지 않았나 말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 몰살하라는 ‘헤렘의 규율’을 어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원해서 그랬다는 사울의 말이 거짓핑계가 아니라면 왕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리품을 챙겨가자는 백성들의 요구를 사울이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이 사울에게 ‘헤렘의 규율’을 지키라고 명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모든 일이 사울의 잘못이고 책임이라고 해도 그가 저지른 잘못과 그에게 부과된 처벌에 균형이 맞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하다가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해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제사장도 아니면서, 그것도 부정한 몸으로 먹었습니다. 이 역시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행위였지만 그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게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말씀의 예로 이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다윗의 행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윗 시대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먹는 행위는 명백히 계명 위반으로서 무거운 처벌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헤렘의 규율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 규율은 영구히 지켜진 ‘철칙’이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전리품을 챙겨서 부하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규율이 사울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하게 적용됐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사울에게 너무 관대한 걸까요? 다윗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합니까?


사울의 질투와 하느님의 편애

사울의 생을 비극으로 몰아간 결정적인 요인은 다윗에 대한 그의 ‘질투’였습니다. 자기 대신 다윗이 왕으로 선택됐음을 알게 된 후부터 사울은 다윗에 대한 질투심의 포로가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윗은 사울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사울이 보기에도 그랬습니다. 우선 능력은 사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윗이 월등했습니다. 사울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대중적 인기도 다윗에 비하면 사울이 크게 뒤처졌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였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면서 여인들이 환호했을 때 사울은 질투심에 불타서 다윗을 죽일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사울보다 능력도 뛰어나고 대중적인 인기도 높았던 겁니다. 사울이 질투심을 품지 않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실은 하느님이 다윗을 편애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 아닌 하느님이 궁극적인 원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다윗을 더 사랑해서 자기를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질투했던 겁니다. 그러니 그는 다윗과 다투지 말고 다윗을 편애해서 자기를 버린 하느님에게 따졌어야 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레 동안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니 스스로 제사를 집전한 후 사울은 사무엘에게 심하게 꾸중 들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다는 얘기를 사무엘에게 듣습니다. 그 말은 들은 사울은 기분이 어땠을까요? 그 말이 이후 그의 생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여러 가능성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 사울이 사무엘의 말을 믿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을 리 없다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선언을 들은 다음에도 블레셋 군대를 무찌르고 승리했으니 말입니다. 요나단의 기습공격이 효과적이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블레셋 군대가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했는데 하느님이 전투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일로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있습니까. 그러니 사울은 자기가 버림받았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헤렘의 규율을 어기고도 그는 한 동안 살아있었습니다. 사무엘의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을 정도로 간절했지만 그 후로도 한 동안 그는 왕좌를 지킬 수 있었으니 확신과 의심 사이를 오갔을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후로 사울은 다윗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를 추격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처음에는 인기 높은 부하에 대한 질투심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점점 더 집요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대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가 누군지 모르다가 다윗임을 차차 알게 되면서 그는 어떻게 처신했어야 할까요? “이제는 네가 나대신 왕 노릇해라.”라고 선뜻 왕위를 넘겨줬어야 할까요?


만일 내가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자기가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사울은 다른 종류의 생을 살았을까? 자기가 버림받았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실패자가 됐던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해 각자 나름의 답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에게 버림은 경험이 있습니까? 엉뚱한 질문인가요?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면 왜 하느님을 예배하겠느냐고요? 그럼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각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느님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습니다. 뭐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을 바랬는데, 그걸 들어주신다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것까지도 외면하실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을 끓이고 실망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깨달았습니다. ‘아하,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하느님이 내 소원을 다 들어주실 리도 없지만 반대로 내 관심과 기도에 관심도 없는 분도 아니라고 믿게 됐습니다. 다만 인생은 그런 거다, 나는 바라고 기도하지만, 그리고 하느님도 내가 뭘 바라는지 기도를 들어 아시지만 언제나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응답하시지는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거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냥 그런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마음을 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사울이 소유한 왕권은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입니다. 그의 의지나 능력과 무관하게 하느님에게서 주어진 것이라는 뜻에서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왕이 되는 걸 원치 않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왕권에 대한 사울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집착이 생겼습니다. 그럴 놓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대신 선택된 다윗을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사울이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에게서 왕권을 빼앗겠다는 뜻이 아니었겠습니까. 왕권은 본래 사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원치도 않았고요. 그럼 그는 왜 본래 자기 것도 아닌 왕권을 그토록 내놓지 않으려 했을까요? 그게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본래 자기 것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사울은 본래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붙잡고 있으려다가 강박증에 시달렸습니다. 반면 다윗은 어땠습니까? 그는 사무엘에게서 자기가 사울을 대신해서 왕위에 오르리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가 사무엘의 말을 어느 정도 신뢰했는지는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윗은 자기에게 선물로 주어진 왕위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실현해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다윗의 성품을 별로 좋게 보지 않지만 그와는 별도로 이런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권은 사울에게도 다윗에게도 하나의 권리요 축복이자 동시에 의무요 미션이었습니다. 사울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왕의 의무와 미션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물론 그걸 모두 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하느님은 사울 이야기라는 연극에서 무대 위에 등장하지는 않고 기껏해야 목소리로만 존재하지만 그 어떤 배우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사울의 실패는 이런 하느님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사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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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잠깐 기도를 드렸다. 지금은 남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초등학교, 하지만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나라 중심에 있는 학교가 되기를,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내가 서 있는 이 운동장에서 맘껏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잠깐의 기도에도 간절함이 담겼다.


기도 끝에 짧게 보고를 드리고는 첫 걸음을 옮긴다.

‘저 이제 떠나요!’


대지를 적시는 비가 먼 길 나서는 걸음을 기억하고 격려하는 하늘의 손길처럼 여겨졌다. 첫날 일정은 거진항까지다. 로드맵에 적힌 거리는 15.5km, 앞으로 걸을 길이 만만치 않으니 첫날은 가볍게 몸을 풀라는 배려 같았다.


걷는 길에는 대부분 아무도 없었다. 한적한 곳이라 그랬을 것이다, 사람도 표지판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열하루 길을 걸으며 나처럼 길을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를 못했다. 앞에도 사람이 없었고, 뒤에도 사람이 없었다.


길을 걷다 만난 장승.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길, 사람처럼 반가웠다.


혼자 걷는 것이 너무 외로워서 뒤로 돌아 자기 발자국을 보며 거꾸로 걸었다는, 문득 사막을 걷던 사람 이야기가 생각이 나 몇 번은 몸을 돌려 거꾸로 걸어보기도 했다.


“반갑소이다!”


사람 대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길가 장승의 웃음이 반가웠다.


따로 지도 없이 로드맵만 가지고 걷는 길, 대신 자주 길을 물어야 했다. 중요한 길일수록 거듭 묻고는 했는데, 그러면서 성경의 의미 하나를 공감했다.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같을 때에만 그 증언이 인정 되었다.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서로의 대답이 같을 때 그 길을 택했다. 설명이 불분명하거나 서로의 이야기가 다를 때면 최종 결정을 보류해야 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일 것이다. 한 과학자가 한 그 말을 나는 설교와 연관시켜 기억을 한다. 진리는 난해함보다는 평범함에,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에 가까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니 길을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는 이가 있고,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는 이가 있었다. 길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 인생에 있어서나 믿음에 있어서나 중요한 일이구나 싶다.


누구의 손길이었을까, 외진 곳에서 생각지 못한 인사를 받는다.


버스를 타고 명파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대진보건소를 간다시며 내리는 곳이 어딘지를 내게 물었다. 처음 오는 곳이라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잠시 곤란해 하시던 할머니는 이번에는 두어 자리 앞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초로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저도 지금 그 보건소에 가는 길이거든요.”


나도 그리로 가니 나만 따라오라니, 그보다 고맙고 확실한 설명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바른 표지판을 만날 때마다 반가움과 고마움이 컸다. 길 경계에서는 더욱.


거진항을 떠나 대대리를 향할 때였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데 사람이 보이질 않아 난감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길을 물을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가다보면 문을 연 식당을 만나겠지 하며 나선 길이었는데, 아무리 가도 식당은 보이질 않았고 식당이 나올만한 풍경도 아니었다. 바다 옆에 있는 솔밭으로 들어가 배낭 안에 있는 비상용 간식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있는데, 저만치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길을 물었다. 길을 정해야 하는 내 절실함에 비해 농부의 대답은 너무 단순했고 짧았다. 바로 앞 수초가 자라고 있는 작은 개울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개울만 쭉 따라가면 되요.”


설명은 더없이 간단했지만 걸어보니 정말로 개울은 대대리를 향해 흐르고 있었고, 몇 번의 갈림길을 만났을 때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둘째날 아침, 거진항을 떠날 때 막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거진항에 거반 다 왔다 싶을 때였다. 아직 오후 해가 제법 남아 있어 여유가 있었는데, 때마침 길가에 깨끗한 찻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찻집 이름도 ‘다온’, 정겨웠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찻집으로 들어갔다.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커피라떼를 주문했는데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마시는 커피였기 때문일까, 커피가 참 맛있고 그 시간과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싶었다.


걸어오며 있었던 일들, 들었던 생각들, 커피를 마시면서 배낭에 있던 노트를 꺼내 몇 가지 메모를 했다. 먼저 와 있던 단체 손님들이 빠져나가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묻는 주인에게 거진항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물었더니 거의 다 왔다며 30분 정도만 가면 될 것이라 했다. 나는 조금 더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런 망외의 느긋함도 여행의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호사를 누린 뒤 다시 길을 나섰는데 이게 웬일, 거진항은 가도 가도 나오지를 않았다. 30분이면 간다는 거진항이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분명 거진 다 왔다고 했는데… 그래서 거진항인 거야?’ 속으로 툴툴거리다가 혼자 웃었다.


괜한 여유를 부리다가 결국은 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거진항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로드맵을 전해준 장로님이 첫날 일정을 걱정하실 것 같아 잘 도착을 했다고, 그런데 거진항에 거진 다 왔다고 해서 느긋해하다가 뒤늦게 먼 길을 걸었다고, 아마도 커피집 아주머니는 내가 축지법이라도 쓰는 줄 알았던 모양이라고 장로님께 문자를 보냈더니 장로님이 답장을 보내왔다.


“영동사람들 거리감 과장은 유명합니다. ‘요기’가 엄청 먼 거립니다.”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쉽고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길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길을 걷고 돌아와 마음에 담아두는 것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다짐도 있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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