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8)


왜 걸어요?


이 또한 드문 경험이었다. 그곳이 식당이든, 길가 평상이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면 누군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드물기도 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행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겠다 싶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나는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한 나절이 아니라 여러 날 걷는 사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배낭 때문이었다. 배낭이 유별났던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만난 이들 중에는 배낭의 무게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따로 재어보질 않았으니 나도 몰랐다. 일정 중에서 도피안사를 찾아갈 때였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이라니, 그 오랜 세월을 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불과 몇 백 미터를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표지판을 잘못 이해를 하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필이면 도피안사(到彼岸寺)로 가는 길에 길을 잘못 접어들다니,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긴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나는 법이니까.


농로를 걸어가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길을 확인하며 보니 제법 큰 저울 위에 블루베리가 담긴 광주리가 올라 있었다. 저울에 배낭 무게를 재보아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얼마든지 그러라 했다. 배낭 무게는 11kg 정도였다.


그러니 배낭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배낭보다는 배낭 뒤에 걸려 있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배낭 뒤에는 대개 덜 마른 양말이 걸려 있었다. 다른 빨래와는 달리 아침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 양말을 옷핀으로 배낭에 매달고 걷다보면 어느 샌지 잘 마르고는 했다. 혹시나 싶어 챙긴 옷핀은 의외의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양말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은 신발이었을 것이다. 폭우 속에 진부령을 넘은 것을 안 이 장로님은 먼 길을 신발을 사가지고 달려오셨다. 내미는 신발을 대하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따뜻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낭 무게를 줄인다며 떠나올 때 여벌 신발을 챙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신발이 한 켤레밖에 없으니 젖은 신을 신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길을 걷는 중간 중간 신발을 벗어 햇볕에 말리곤 했다.


장로님 마음에는 젖은 신발로 걷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을 것이다. 하긴 젖은 신을 신고 먼 길을 걷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물집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일이었다.


배낭 안에는 짐이 더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다행히 장로님이 신발과 함께 전해준 물품 중에는 간단한 고리도 있어서, 신발을 배낭에 매달 수가 있었다. 덜렁덜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낭에 매달린 신발이 춤을 췄다.


이따금씩은 신발이 잘 매달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배낭 뒤에 매달려 있어 눈에 보이질 않으니 손을 돌려 만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오른쪽으로 한 번은 왼쪽으로, 신발을 차례로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굳이 두 짝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두 짝 중에서 하나만 없어져도 나머지 하나는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 속에는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남은 하나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발이었다.


막 떠나기 시작한 기차에 오르는 순간 구두 한 짝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굴러 떨어지자 얼른 나머지 한 짝을 기차 밖으로 벗어던졌다는, 간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러냐고 수행원들이 놀라 물었을 때 간디는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누군가 내 구두를 신는다면 두 짝이 다 있어야 신지 않겠나?”


길을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걷느냐는 질문이었다. '하늘 꼬리'라는 '천미리'를 지날 때, 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까마득하다.


무더위 속 양말과 신발을 배낭 뒤에 매달고 다니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이들은 뭔가 궁금한 것이 있어 내게 다가와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이었다.


열하루를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은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왜 걸어요?

-어디까지 가요?

-혼자서 걷는단 말이예요?


도대체 왜 걷는 걸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길을 걷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제주도 올레길이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는 이유는 뭘까, 대뜸 짐작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허리가 잘린 이 땅에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분단의 땅 DMZ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대답을 하면 대개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까지 가요?”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로 바뀌었다. 일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루에 30km 이상씩 열하루 동안을 걷는다는 것도 그렇고, 열하루를 걸으면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를 걸을 수 있다는 것도 평상시엔 떠올리지 못한 생각이지 싶었다.


세 번째 질문도 많이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혼자 걸으면 너무 외롭지 않느냐, 위험하지 않느냐, 대개는 그랬다. 걸어보니 외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대답을 하면 나를 성격이 별다른 사람인양 바라보고는 했다.


연배가 나와 비슷한 이들은 세 가지 질문 외에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이곤 했다. 물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지금 나이가…?”


내 모습을 보니 나이가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젊어 보이는 나이도 아니었을 터, 내가 나이를 말하면 반응은 비슷했다.


“대단하네요!”

“나도 한 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십이선녀탕으로 가던 중에 만난 한 남자 분은 특히 관심이 많아 햇볕에 널어 말리던 내 신발이 나무 그늘 안으로 들자 얼른 햇볕 밖으로 옮겨주면서까지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걷고 있는 로드맵을 궁금해 하여 메일 주소를 받았고, 다녀온 뒤에 보내드렸다. 언젠가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가만히 보면 오르막 같기도 하고 내리막 같기도 하다. 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김화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중년의 남자 분이 있다. 점심을 먹고 이어갈 길을 확인하느라 길을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그는 DMZ를 따라 걷는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식사를 다 마쳤음에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던 그가 내 나이를 물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나이를 확인한 뒤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 그런 일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에 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꼭 걸어봐야겠네요.”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된 자극이 고마웠던 것일까,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고 싶었을까, 그 분은 이야기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점심값을 계산했다. “모든 일정을 건강하게 잘 마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행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정체, 차림새만 보고도 먼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엄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과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만한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살아가는 모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 모습만 보면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는 믿음의 표지와 표식이 과연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문득 떠오르는 말씀(베드로전서 3:15)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우리를 향한 권면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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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7)


오래 걸으니


오래 걸으니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걷기 전에는 몰랐고, 알았다 해도 희미한 것들이었다.

 

내 발이 비로소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발이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느낌은, 그동안 내 땅에 발 딛고 살면서도 내 발이 충분히 현실에 닿지 못했다는, 허공을 딛듯 현실과 거리감을 두고 살아왔다는,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어설프고 어색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낯설고 새로웠다. 오래 걸으니 어느 순간부터 땅이 내 발을 붙잡는 것 같았다


속도에 대한 느낌도 새로웠다. 걸어보니 이게 맞는 속도구나 싶었다. 풀이 자라는 속도, 꽃이 피어나는 속도, 바람이 지나가는 속도, 곡식이 자라는 속도, 나비와 잠자리가 나는 속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속도, 냇물과 강물이 흘러가는 속도, 농부가 논둑을 따라 걸어가는 속도…, 걸어보니 그게 맞는 속도라 여겨졌다.


잠자리 한마리가 길 위에 앉아있다. 어릴적 왕잠자리라 불렀던 잠자리를 오랜만에 보았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질주하는 것, 비행기를 타고 나라와 대륙을 건너는 것, 우리가 점점 익숙해져 가는 기계의 속도는 본래의 속도가 아니었다. 그러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참으로 많았고, 우리가 놓치는 것들은 우리 삶에 더없이 소중한 본질적인 것들이었다. 엉뚱한 것들을 쫓느라, 엉뚱한 것을 쫓는다는 것을 잊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분주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주하다는 것을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하면서.


이른 아침 진부령을 떠나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폭우가 내린 다음날 이른 시간이라 그랬을까 아침 공기가 더없이 신선했다. 계곡을 따라 마음껏 피어나고 있는 산안개는 계곡 전체를 한 폭의 수묵화로 만들었고, 나는 마치 그림 속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얼마든지 풍경 속으로 사라져도 좋을, 우주 속 먹물 한 방울 같은 존재였다.


산안개가 퍼져가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산 중턱에 선 늠름한 소나무였다. 때로는 부는 바람을 따라 산안개가 걷히며 나타나기도 했다. 은은하면서도 위엄이 서린 붉은빛이 감도는 장대한 소나무가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을 것 같은 산 중턱에 의젓하게 서 있었다. 막 퍼져가는 산안개를 바라보다가, 그러다가 슬쩍 걷히는 산안개를 바라보다가 거기 말없이 서 있는 소나무들을 보았다. 굵은 소나무가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슬며시 제 몸속에 긋고 있는 나이테, 그 속도를 생각했다.


밤꽃이 피고 장미가 피고. 그것이 집을 다 덮어도 동네 사람들이야 그곳이 가게임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길을 걷고 있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전봇대 전선 위에 앉아 노래를 한다. 왜 그럴까, 작은 새일수록 노래가 더욱 해맑게 들린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새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분다. 주거니 받거니, 한동안 노래가 이어졌다. 살아 있는 매 순간을 노래하는 새, 그 또한 맞는 속도겠다 싶었다. 노래와 시를 잃은 삶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작은 새를 지나오니 이번에는 까마귀가 반긴다. 전봇대 꼭대기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뭐라고 뭐라고 지껄이기 시작한다. 떠들어대는 투가 제법 사람의 말투를 닮았다. 말을 마치자 앞쪽에 있는 전봇대 위에서 다른 까마귀 한 마리가 대꾸를 한다. 방금 지껄인 까마귀와는 사뭇 다른, 낮은 목소리로 말을 받는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보면 앞쪽의 까마귀가 상관 같은데, 내 짐작에는 이런 말을 나누지 싶다.


-여기 이상한 사람 하나가 지나가고 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수상한 가방 하나를 메고 있다. 이처럼 이른 시간에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어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뭔가 수상하다, 오버!


-알았다. 나도 보고 있으니 계속 감시하고 수시로 보고하라, 오버!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소임을 다하며 사는 삶, 그것 또한 지당한 속도일 것이다.


숭의전 입구 어수정에 들렀을 때이다. 어수정(御水井)은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과 철원(당시 태봉)을 왕래하면서 마시던 물이라 한다. 샘이 얼마나 맑고 시원한지 한 바가지 가득 물을 떠선 꿀꺽꿀꺽 물병에 물을 채우듯 단숨에 다 마셨다. 시원함을 넘어 물이 달기까지 했다.


하지를 맞아 어수정에서 감자를   씻고 있는 동네 할머니. 때를 따르는 삶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마침 어수정에는 한 할머니가 나와 감자를 씻고 있었다. 어수정에서 솟은 샘물로 씻는 감자, 그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햇감자를 캐셨나 봐요?”


할머니께 여쭸더니 할머니가 나직이 웃으며 대답을 하신다.


“예, 오늘이 하지여서 하지감자 쪄 먹으려고 좀 캤어요. 날이 가물어서 그런지 감자알이 생각보다는 작네요.”


할머니는 ‘하지’(夏至)를 ‘하지’로 보내고 있었다. 무심하게 보내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날이 일 년 중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지를 하지답게 보내기 위해 그동안 자란 감자를 캔 것이었다. 시간만 된다면 할머니를 따라가 하지감자를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자연 속에서 살며 자연의 흐름을 순연히 따르는 삶, 저보다 순박하고 그윽하고 아름다운 삶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절기는 물론 언제 계절이 지나간 줄도 모르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시간의 흐름을 따르며 즐거워하며 사는 삶, 그것이 맞는 속도였던 것이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내 발이 내 땅에 닿았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속도가 보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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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6)


할머니 민박


폭우가 쏟아지는 진부령을 걸어 오르다 만난 두 사람의 웃음이 선하다. 부부지 싶은 두 사람은 우비를 입은 채로 버스 정류장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 서 있는 두 대의 자전거, 필시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서 길을 나섰다가 생각지 않았던 폭우를 만나 버스 정류장으로 피한 것이리라.


여전히 비를 맞으며 그 앞을 지나가자 두 사람은 빙긋 나를 보고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 나도 두 사람을 향해 빙긋 웃었다. 두 사람도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았으리라. 때로는 말로 하지 않아도 웃음 하나로도 나눌 수 있는 고마운 마음들이 있다.


다녀보니 숨어 있는 아름다운 곳들이 많았다. 모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마침내 진부령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폭우 속을 걸었으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젖어 있었다.


잠을 어디서 자야 할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로드맵에도 진부령에서는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그곳에 감리교회가 있다니, 마지막 기댈 곳 하나는 있는 셈이다 싶었다.


진부령미술관 맞은편으로 식당 몇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마침 식당 밖에 나와 있던 한 아주머니가 어서 들어오라며 나를 맞는다. 내게 급한 것은 저녁을 먹는 것보다도 숙박할 곳을 정하는 것이었다.


인근에 잠을 잘 곳이 있는지를 묻자 아주머니는 펜션이 한 곳 있긴 한데 문을 열었는지를 모르겠다면서 전화로 확인을 했다. 잠시 서서 결과를 기다렸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것을 보니 영업을 안 하는 것 같단다. 비수기에는 문을 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난감해하고 있는 내게 아주머니는 저만치 아래를 가리키며 할머니가 하는 민박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보라고 알려준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걸음을 옮기려 하자 아주머니는 내게 저녁부터 먹고 가라고 한다. 세상에나, 온몸이 다 젖은 것을 보면서도 저녁부터 먹고 가라니. 아마도 아주머니는 내가 다시 당신네 식당을 찾아올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먹겠다며 걸음을 옮겼는데, 나중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 있는 곳으로 올라가자 아주머니는 나를 예약손님처럼 반겼다. 눈에 들어오는 메뉴를 가진 식당이 그 옆에 있는데도 나는 무슨 의무감 혹은 부채감 비슷한 것으로 아주머니네 식당으로 들어갔다. 묘한 기분이었다.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나오는 내게 아주머니는 저녁을 맛있게 먹었는지가 아니라 내일 아침은 몇 시에 먹을 것인지를 물었는데, 아주머니는 그렇게 식당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분이지 싶었다. 어설프게 대답을 하면 내일 아침 아주머니가 민박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내일은 새벽 같이 길을 나설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실제로도 새벽에 길을 나섰다.


길가에 접해 있는 할머니 민박집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누가 계시냐고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을 더 큰 소리로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 숙소를 못 구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 마침 전화번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화를 드리니 할머니가 받으신다. “오늘 민박 안 하나요?” 여쭸더니, “아니요, 내가 지금 안에 있는데요.” 하신다. 잠시 후 창문이 열리는데 할머니였다. 잠깐이긴 했지만 우리는 얼떨결에 핸드폰을 들고서 영상통화를 한 셈이었다.


진부령 정상의 할머니 만박집. 할머니가 켜준 보일러 덕분에 젖은 빨래들을 모두 말릴 수가 있었다.


밖으로 나온 할머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대뜸 “보일러를 켜드려야겠네.” 하며 집 뒤편으로 가신다. 더운 여름 날씨라 해도 비에 다 젖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한눈에 알아보신 것이었다. 어디선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방바닥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배낭을 열어보니 배낭 안의 옷들도 다 젖어 있었다. 챙겨간 세 권의 노트도 마찬가지였다. 배낭에 덮개를 씌웠지만 폭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배낭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죄 꺼내 방바닥에 폈다.


내게는 꼭 필요한 숙소였다. 보일러를 켠 숙소 덕분에 빨래를 말릴 수가 있었다. 물론 신발은 다 마르지가 않아 어쩔 수 없었지만, 다른 빨래들을 말릴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더할 나위없는 다행이었다.


모든 숙소는 선불이었다. 하긴 잠을 자다 말고 어디론가 사라지면 숙박료를 받을 방법이 없을 터이니. 할머니께 숙박료를 물으니 2만원이라 했다. 생각 없이 2만원을 드렸는데, 다음날 길을 걷다 생각하니 2만원이면 보일러 기름 값도 안 되었겠다 싶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느라 할머니를 뵙질 못했다. 언제라도 진부령을 지날 일이 있으면 하루 묵었던 할머니 민박집을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지 싶다. 보일러를 틀어주신 할머니의 배려에 비하면 머리맡에 놓고 온 천 원짜리 두 장은 너무 형식적인 인사였다 싶기 때문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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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5)


몇 가지 다짐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다. 걸으면서 지킬 몇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첫째, 잠은 허름한 곳에서 잔다.

둘째, 밥은 최소한의 것을 먹는다.

셋째, 꽃 한 송이, 풀잎 하나 꺾지 않는다.

넷째,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킨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지키기 쉬웠던 것은 네 번째 다짐이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다니면서 내가 버리지는 말아야지 했다. 배낭 밖에 있는 주머니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 담았다가 숙소에 들어가면 봉지를 비웠다. 당연한 일인데도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또 하나 잘 지킨 것이 세 번째 다짐이다. 사실은 그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야생 더덕을 만나도 캐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었는데 마음이 슬쩍 슬쩍 흔들리던 순간들이 있었다.


강원도 외진 곳에는 먹을 것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도 잘 익은 오디가 곳곳에 흔했다. 어릴 적만 해도 오디가 익을 철이 되면 동네 어린 우리들의 입은 누구 따로 예외 없이 먹물 묻은 듯 시커멓게 변하곤 했다. 오디가 까맣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차례가 돌아오질 않으니 아직 덜 익어 신맛을 내는 붉고 푸른 오디를 따먹곤 했다.


그런 시절을 두고 이제는 오디를 딸 사람이 없어 그냥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골마다 아이들은 없고 노인들은 손이 미치지 못하고, 커다랗게 잘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 그냥 지나갔다.


곳곳에 산딸기도 많았다.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가 보이면 침이 고였다. 특히 목이 마를 때 딸기가 눈에 띄면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폐가지 싶은 돌담에 잘 익은 앵두가 올망졸망 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개량 보리수이지 싶은 붉은 열매가 눈에 띌 때에도 얼마든지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몇 번인가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띄었지만 그 또한 뜯지 않았다. 그냥 두면 나중에 누군가가 행운처럼 만나지 않을까.


세 번째 원칙을 지킨 것이 준 도움이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가 있었다. 로드맵에는 하루 평균 걸어야 할 거리가 30km 정도라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차량 내비게이션 거리, 실제 걸어보니 35km 정도가 되었다. 오디를 따거나 산딸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날그날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도움 받은 것도 소화와 관련이 있다. 일정 내내 배낭에 넣은 휴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평소에 먹고 마시던 음식과 물이 다르기에 소화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써야지 싶어 비상용 휴지를 챙겼는데,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빨래를 했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숙소는 그래도 좋은 숙소였다.


허름한 집에서 자겠다는 첫 번째 다짐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숙소는 허름한 모텔이었다. 묵는 곳이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하룻밤 잠만 자고 다음날 일찍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굳이 좋은 곳을 택할 이유도 없었다. 샤워를 할 때 따뜻한 물이 나오고, 빨래를 한 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곳이면 매우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하루는 할머니가 하시는 민박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자기도 했다. 큰 회관에서 혼자 잠을 자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눕기만 하면 이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묵었던 옥계리 마을회관.다음날 아침 부녀회장님 댁에서 먹은 아침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가족 5명과 한 식탁에 앉았으니까.


이틀 밤은 생각지도 않게 편한 숙소에서 잤다. 화천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큰 훈련을 마친 때라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았고, 덕분에 숙소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망설이다가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하여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후배는 아예 교우가 하는 펜션을 잡아주었다. 일정 중 마지막 밤은 일부러 먼 길을 달려온 이 장로님의 배려로 편안하고 조용한 펜션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밥을 최소한의 것으로 먹어야지 했던 두 번째 다짐도 첫 번째와 비슷했다. 혼자 다녀보니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식사였다. 밥은 모두 식당에서 사 먹었는데(두 끼는 식당을 만나지 못해 비상용 간식으로 대신했지만),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 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안 받는다고 하여 도로 나온 식당도 있다. 받아준다고 해도 혼자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많지도 않았다. 백반과 김치찌개, 콩국수가 그 중 무난한 메뉴였다.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메뉴 선택도 제한이 되었다.


열하루 동안 땡볕 아래를 걷는 일정,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쓰러진다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 분들이 있었다. 정 장로님 내외분, 이 장로님 내외분, 화천의 박 장로님 내외분,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단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고마운 격려를 듬뿍 전해 받는 시간이었다.


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길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지 싶다.

인생의 길과 믿음의 길도 그러면 어떨까 싶다.

사소해 보여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며 걸어간다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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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4)


행복한 육군


자주 혹은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기회가 될 때면 함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다. 로드맵을 만들어주신 뒤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난 건 아닌지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들어 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무시면서 꾀를 내세요. 응원군을 불러 물도 간식도 챙기고 잠자리를 구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꾑니다. 걷는 것 이상으로 그런 일이 더 힘든 겁니다. 


육군 행군 훈련은 먹고 자는 것은 지원부대가 따로 해주기 때문에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해병대는 그것까지 스스로 해결합니다.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소속변경하시는 것을 강추!! 저만 알고 있을게요. 


‘하나님 우리 목사님 흉흉한 이 세상에 당신의 종이 된 저 깊은 속을 위로하세요. 아멘.’


요일 별로 담긴 비타민과 영양제. 그것을 먹을 때마다 우린 당신을 응원합니다 하는, 따뜻한 격려로 와닿았다.


다음날 소똥령 마을을 향해 오르다 잠시 도로 옆 나무 그늘에 들어 쉬는 시간, 장로님께 답장을 드렸다.


“진부령으로 가는 길, 잠시 그늘 아래에 앉았습니다. 전해주신 로드맵이 큰 도움이 됩니다. 군 생활은 육군에서 했지만, 걷기는 해병대를 택하고 싶습니다.


그렇잖아도 지원군을 자청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필요하면 이야기 하겠노라 했습니다.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다 싶습니다.


아침에 대대리를 지나며 대대교회에 들렀습니다. 먼저 소천한 친구 목사가 목회하던 교회였지요.


저 멀리 병풍 같은 산이 보입니다. 어서 오라 팔을 벌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걸어야겠어요.”


막 일어서려는데 장로님이 답장을 보내왔다.


“대대리를 지났으면 오늘 길은 헷갈릴 데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숙박이 문제, 진부령에 감리교회 기억하시죠? 원래 해병대가 멋있지요. 멋지세요.”


해병대와 육군, 재미난 표현이었다. 단어 하나에 내가 갖는 시간의 의미와 성격과 빛깔이 오롯이 담긴다 싶었다. 군더더기를 버린다면 짧은 말 한 마디에도 충분한 의미가 담길 수 있는 법이다.


먹는 것이 부실하면 쓰러진다며 먼 길을 찾아와 토종닭 백숙을 사주신 분도 있었다.


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고마운 제안들이 있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 같이 길을 걷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다. 행여 부담을 끼치거나 번거롭게 할까 싶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같이 걷자고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먼저 동행자가 되겠다는 말은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었다.


얼마든지 그러자고 했지만 결국은 혼자 걷게 되었다. 마음과는 달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이도 있었고, 생각지 않은 일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혼자 걷기로 한 내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물러선 이도 있었다.


동행하겠다는 말도, 동행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포기하는 모습도 모두가 고마웠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언제든지 한걸음에 달려가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떠난 길이었기에 모든 일정을 ‘해병대’로 마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고마운 만남, 고마운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거미줄에 걸린 이슬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이듯 걷는 기도의 시간을 의미 있게 해 준 소중한 사람들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병대’에서 벗어나 ‘행복한 육군’이 되고는 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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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왕조사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의 왕조적인 모습을 이렇게 풀어간다. “우리의 공화정 도입이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행위와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순식간에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와 세월호 참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저자는 “개신교는 ‘자영업’에 가깝다. 한국 개신교회는 사회적으로 공적 조직과 연 닿아있지 않다. 그래서 운영에 관한 일체를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자영업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전형적인 외국계 지사의 모습을 보인다. 천주교는 개신교처럼 자영업 마인드가 아니다. 뒤에 바티칸이라는 든든한 언덕이 있기 때문일까? 국내에서 영업이 좀 시원찮아도 자금력 두둑한 본사 덕분에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한국 천주교의 경우 신자들에 대한 독려 행위가 개신교보다는 약하다. 반면 불교는 전형적인 공기업 마인드이다. 업무의 효율이나 생산성에 목매지 않아도 꼬박꼬박 때만 되면 계좌에 입금되는 월급의 유혹은 달콤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종교의 상황은 그 종교가 기득권화되어 있고 그걸 지켜내고 확대하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이며 정작 해야 할 종교 수련의 길보다는 손쉬운(?) 세속적 영향력 확대의 길을 택하게 되고, 힘(權力)으로, 돈으로, 수(數)의 힘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밀어 붙인다.

 

이러한 종교에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성찰,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 대중의 욕망에 대해 질타한다. 결국 종교는 기득권을 움켜쥐는 과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종교의 사망선고가 내려진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유교의 흔적을 살피면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는 저자는 그때마다 서슴없이 “유교!”라고 답한다. 결혼을 고리로 이어진 가족주의에 기초한 유교란 종교의 가치관은 지금도 강력하다. 명절 때마다, 집안의 대소사 때마다 발길을 원적(原籍)으로 돌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토스는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닌 바로 유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교는 이를 사회적 제도 속에 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그뿐인가? 설날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가문의 영생을 축하하는 의례, 그것이 바로 제사이다. 이러한 유교의 에토스는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우 강력한 힘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러니 유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라고 할 수 밖에.

 

이에 덧붙여 한국종교가 민족주의와 어떻게 결부되어있는지, 각 종교의 경전읽기는 연애편지를 읽는 것과 유사한 성질의 것인지, 역사 속에서 종교는 어떤 행태로 파렴치하게 친일 행각을 벌였는지, 우리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정도로 왜 ‘공부는 구도행위’가 되었는지 등등을 풀어가면서 보통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나쁜 종교’이고 ‘좋은 종교’일까? 이 물음에 대해 보통 사람이 생활세계에서 대하는 종교가 어떤가에 대해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한다.

 

“야 니 어떤 기 참말로 좋은 종굔지 아나?”
“뭔데?”
“통일교 아이가!”
“우째서?”
“통일교는 교인이 되믄 장가보내준다 아이가!”
“참말로?”
“하모. 그라고 장가가믄 집도 준다 카더라!”
“집도??!! …야야, 그 참말로 좋은 종교네.”


“그럼 개신교는?”
“음… 그건 쪼매 애매하다. 교회 가믄 장가는 보내주는데… 뭘 쫌 마
이 내야 된다 카더라~”
“뭐를?”
“헌금! 헌금내야 된다 아이가! 교회는 기본으로 드는 돈이 장난이 아
니라 카더라.”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나?”
“하모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니까 괜찮다 아이가!”

“집은?”
“… 집은 없다드라.”


“천주교는?”
“그거도 개신교랑 쪼매 비슷하다 카더라.”
“근데 문제는 신부하고 수녀는 결혼을 안 한다 안카나~”
“내는 그기 쫌 맘에 걸린다.”
“결혼을 안해보믄 사람 속을 잘 모른다 아이가.”


“그래 그람 다른 종교는 없나?”
“느그 대순진리회는 가지 마래이~”
“와?”
“거기는 장가도 엄꼬, 집도 엄꼬, 대신 들어갈 때부터 돈만 진탕 낸다 
아이가!”
“참말이가?”
“하모!”
“음… 그람 거는 안 되겠네!”

한국 사회는 왕조사회다

 

5년제 비정규직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이 제왕적 군주가 되어 백성 위에 군림하고, 그의 임명을 받은 고위직 공무원들은 공복이 아니라 지배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런 심정적 정황 가운데 정작 주권자요 납세자인 시민은 계몽적 군주만 손꼽아 기다리는 왕조의 백성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96쪽)

 

왕조 사회 속 갑질 문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여전히 사회적 에토스가 왕조적 마인드에 묶여 있다 보니 갑의 언사는 임금의 그것이 되어 어명처럼 서민의 심부를 찔러댄다. 이런 현상은 세월호 참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폄하하면서, 간단히 돈으로 해결하려고만 한다. 갑의 온정으로 두둑이 챙겨 줄 테니 이쯤에서 목소리를 낮추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투의 훈계이다.(104, 106쪽)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왕조국가’적 성격이 강하다. 교종과 추기경에 대해 보여준 한국 사회의 반응은 왕의 즉위를 환영하거나, 혹은 왕의 승하를 슬퍼하는 왕조 사회 신민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112쪽)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중세인들이 페스트의 공포를 유대인 죽이기로 상쇄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메르스가 가져온 불안을 누군가를 공격함으로 무마시키려 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공격의 대상들은 사회의 약자들이다. 안 그래도 소외되고, 배척받으며, 그 때문에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사회의 다수는 날카로운 침과 바늘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의 폭력을 만나니, 중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희생양 찾기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감염병의 문제는 의학과 그에 기반을 둔 정책과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이를 신앙으로 섣불리 ‘해석’하려 드는 것 자체가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 다른 감염병일 수 있다.(117쪽)

 

공부는 구도행위

우리는 공부를 종교적 구도행위의 하나로 각인하며 살아왔다. 이미 오래도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집안 누군가가 똘똘한 머리를 지녔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데 전혀 거리낌 없는 에토스 속에 살아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생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유교 사회에서 공부는 일종의 구도 행위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가 공부로 성공해야 가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라는 국가시험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사회는 공부에 대한 공동체적 신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공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개인의 신앙적 책무가 된다. 왜? 그래야 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은 한국에서는 신앙의 문제이다. 매번 입시철만 되면 이 땅위의 모든 종교를 대동단결하는 힘이 신앙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우리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 지경이다.(157, 159쪽)

  

한국 교회와 샤머니즘

한국 교회는 편한 마음으로 샤머니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혹은 희생타로 이용해 왔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개화되고, 문명화되고, 심지어 정보화에도 앞서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오히려 샤머니즘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는 이 엄연한 현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한국 교회에 웅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 앞에 오히려 한국의 샤머니즘은 한국 교회로서는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타산지석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것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샤머니즘이 보이는 부정적 장면이 아니라 긍정의 그림들이다. 그것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이해의 자세가 문제를 푸는 고갱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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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3)


아, 진부령!


소똥령 마을에서 어렵게 점심을 먹고 다시 진부령으로 오르는 길,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발은 제법 굵었지만 성근 빗줄기, 그러다가 그치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산 전체는 비로 가득했고, 비와 함께 천둥과 번개가 하늘과 계곡을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지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샌가 달리는 차들은 라이트를 켜기 시작하더니 그래도 더욱 빗발이 거세지자 내남없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얼른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 입으며 메고 있는 배낭을 덮개로 덮었지만 거센 빗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몸은 금방 비에 다 젖고 말았고, 신발은 구멍 난 장화처럼 물이 흥건했다.


위아래로도 좌우로도 제법 경사가 진 진부령의 도로가 빗물로 가득했다. 그만한 경사라면 당연히 빗물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야 할 터인데, 쏟아 붓듯 비가 오니 흘러내릴 새가 없었던 것이다.


개울처럼 변한 도로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자 도로 위에는 아름다운 비꽃이 피어났다. 마치 판화를 찍은 것처럼 아름다운 문양이 피어났다.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문양을 보며 왜 하필 먹지도 못하는 닭발이 떠올랐을까만, 아름다운 문양이 비로 가득한 도로 위에 가득 피어났다.


황무지에 꽃이 피듯, 그 모습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도 도로 가득 피어나는 빗줄기의 문양은 대책 없이 아름다웠다.


저 멀리 진부령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이름이 왜 그리 반갑던지. 먼 길을 걸은 자는 모든 이름이 반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어느 순간부터 우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깨를 때려대는 우박이 제법 따가웠다. 하늘의 안마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깐, 모래 알갱이만 하던 것이 어느새 공깃돌만큼이나 커졌다.


위험하다 여겨져 주변을 살폈더니 마침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물 이동로이지 싶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얼른 그 안으로 뛰어가 우박을 피하는데, 바로 앞 수풀 사이에는 금세 우박 알갱이가 소복이 쌓였다.


계곡을 가득 채운 장한 빗줄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천둥과 번개, 거기에 더해 느닷없이 쏟아지는 우박,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날씨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런 악천후를 만난 적은 없었다. 폭우, 천둥과 번개, 우박, 길을 걷는 내겐 어느 것 하나 쉬울 것이 없는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몸은 다 젖었지만 그래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도로 옆으로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걷기를 중단하고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안전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진부령을 넘을까 싶기도 했는데, 비에 다 젖은 나를 태워줄 이가 누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정했다.


그냥 걷자!


그냥 걷기로 했다. 이런 시간이 내 생애 언제 또 찾아오겠는가 싶었다. 어쩌면 내 생애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악천후, 그것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맞으며 그 속을 걸어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악천후가 그렇듯이 그 속을 걷는 일 또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울려대는 계곡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아주 모르지 않기에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인가는 바로 머리 위에서 비단 천을 찢듯 번개가 갈라지고, 잠깐 멍해 있는 사이 고막이 찢어질 듯 천둥이 울려대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계곡 어디선가 우르르 쾅쾅 요란한 굉음을 내며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굴러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나는 손엔 스틱을 잡고 있었고, 다 젖은 바지 호주머니 속엔 핸드폰과 보조배터리가 있었다. 서툰 지식에도 번개에게 좋은 표적일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지금 너무 무식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막무가내로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을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더없이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빗속을 그냥 걷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비를 만난 그 날은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날씨를 이유로 걷기를 중단한다면 길을 걸을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 마음속으로 했던 대답도 떠올랐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거냐고,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을 두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맞겠다고, 비를 맞을 터이니 대신 이 땅의 가뭄을 끝내 달라고 대답했었다. 이 땅에 이어지고 있는 가뭄이 지독한 가뭄이라면 장한 비를 맞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마침 그날은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날이었다. 걸으면서 떠올렸던 사람들, 누구의 삶도 쉬운 삶이 없었다. 힘겨운 삶을 떠올리며 기도를 바치기엔 오히려 그런 악천후가 제격이다 싶었다.


진부령에서 만난 시간은 내 생애 가장 심한 악천후였다. 그 시간을 통과하듯 지나자 다른 날씨는 얼마든지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차를 운전하며 폭우 속을 달리는 이들은 폭우 속에 진부령을 오르는 내 모습을 보며 필시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상해도 여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비도 아니고 우박과 천둥과 번개가 온통 난리인데 그 속을 걸어 진부령을 넘다니, 세상에는 참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니!


빗속을 걸어가며 마음속에 찾아든 엉뚱한 생각이 있었다. 혹시 지나가는 어떤 이가 차를 세우고 타겠느냐 묻지 않을까 싶었다. 폭우 속 진부령을 걸어 오르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재난상황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누가 물으면 대답해야지, “저는 괜찮아요, 저는 됐으니 그냥 가세요, 하지만 그렇게 물어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환하게 웃으면서 얼마든지 그렇게 대답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차는 없었다. 단 한 대도 없었다. 돌발적으로 닥친 위험한 상황을 속히 벗어나려는 듯 비상등을 켠 채 빗속을 내달릴 뿐이었다. 비의 양을 감당하기 힘든 와이퍼만 미친 듯이 돌아가며 차들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다.


만약 내가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나처럼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라면 차를 세웠을까 생각을 하다가, 누가 목사 아니랄까, 이어진 생각은 이랬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차를 세우고 거센 빗줄기가 안으로 들이치는 데도 차에 타지 않겠느냐 물을 때, 문득 열려진 차창을 통해 룸미러나 대시보드에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면, 그 십자가의 의미는 얼마나 절실하게 와 닿을까, 싶었다.


이 다음 언제라도 폭우 속을 운전하다가 나처럼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이렇게 말을 건네야지, 빗속을 걸어가며 다짐을 한다.


“혹시라도 내가 도와드릴 일이 없나요?”


마침내 진부령 정상, 두 시간 이상 이어지던 악천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산 아랫동네의 일이라는 듯 진부령 정상은 내가 걸어온 시간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 젖은 몸과 배낭,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야 하나, 그런 걱정을 해야 했지만 내게는 그런 생각을 할 기운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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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2)


소똥령 마을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적인 기대와는 달리 소똥령 마을로 향하는 길은 매우 단조롭고 밋밋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46번 국도를 걸어 올라야 했다.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열기가 담겨 숨을 마음대로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길 어디에도 소들은 보이지 않았고, 소똥 냄새는 물론 소 모는 아이들 소리나,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길을 걸어보니 알겠다. 급경사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급경사는 얼마 동안만 참고 견디면 된다. 오히려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완만한 경사 길을 계속해서 걷는 일이었다. 완만한 경사는 당장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언젠지도 모르게 체력과 정신력을 바닥나게 만들고는 했다.


이름부터 정겨운 소똥령 마을. 어디선가 풀을 뜯는 소떼들과 소를 모는 소년들의 모습이 보일 것도 같았고,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올 것 같았다.


소똥령 마을까지가 오전 일정,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 오후를 위해서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소똥령 마을에 이르렀을 때쯤엔 온통 땀범벅, 몸이 축 처지고 말았다.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니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흔할 것으로 짐작했던 식당은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경사진 길을 가리키며 계곡 아래로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일러준다.


계곡 아래엔 넓은 캠핑장이 있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식당을 찾아가니 마침 단체 손님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 무슨 거창한 모임인지 축사와 인사말이 계속 이어졌고, 순서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누구에게 주문을 해야 하나 기웃거리는데도 누가 따로 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갖는 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식당 주방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마을 부녀회 대표가 식당을 맡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단체 손님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 손님은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인근에 다른 식당이 있는 지를 물었지만, 없단다.


난감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도 진부령은 만만치가 않을 터인데 점심을 굶고 큰 고개를 넘게 생겼으니, 기가 막혔다. 소똥령 마을에 오면 말린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건가 했던 것은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낭만적인 기대였다.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점심을 안 먹으면 나도 안 돼요.”


단체손님 때문에 손이 바쁜 아주머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걸어서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밥하고 김치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소똥령 마을에 가면 말린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나 싶었는데, 너무 낭만적인 기대였다.


걸어서 진부령을 넘겠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딱했는지 기특했는지 주방 한쪽 구석에 의자를 갖다 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쟁반에 밥과 반찬 두어 가지를 담아왔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펄펄 끓는 탕 한 그릇을 가져다준다.


염소탕이라고 했다. 아마 단체 손님들의 주 메뉴가 염소탕인 모양이었다. 한 그릇을 잠깐 사이에 비우자 이번에는 수박과 토마토도 가져다주었다.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얼마를 드리면 되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값을 물었다. 걸식하듯 밥을 먹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운영하는 식당,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었다.


“만원만 주세요.”


묻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배려를 가벼운 호의로만 받았다면 아주머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지 않은 곳에서 점심을, 그것도 염소탕을, 그것도 만원에 먹었으니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주방 밖으로 나서며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도 인사를 한다.


“염소탕을 먹었으니 진부령도 염소처럼 가볍게 넘으세요!”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야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진부령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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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다보니 위험한 길들이 참 많았다. 지뢰나 낭떠러지, 무서운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길이 의외로 많았다. 도로에 차도만 있지 인도가 따로 없었다. 인도가 없는 길은 자동차를 타고서만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인지, 차가 없다면 돌아서 혹은 날아서 가라는 것인지, 도로를 만들 당시의 규정을 따른 것이겠지만 길을 만든 이들의 심사가 무심하게 여겨졌다.


어쩔 수 없이 도로 가장자리를 걷는 수밖에 없었다. 차들이 달리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고, 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니 기도를 드리거나 마음을 집중하기에도 좋을 것이 없었다.



길을 걸어보니 위험한 길이 의외로 많았다. 무엇보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들이 위험했다.


대개는 마주 오는 차를 마주보며 걸었다. 하나를 가지고 떠난 스틱을 오른손에 잡았던 것은 그래도 위험을 줄이려는 생각이었다. 뭐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운전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도로 위를 걷고 있는 나를 두고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얼마간 거리를 두고 지나가면 좋겠는데 마치 왜 도로 위를 걷고 있느냐는 투로 바싹 가까이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실은 대부분의 차들이 그랬는데, 덩치가 큰 트럭이 그렇게 지나갈 때는 아찔하곤 했다.


길을 걷는 나를 보고는 속도를 줄여 다가오고, 나와 간격을 두고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차들도 있었는데 그 잠깐의 순간이 참 고마웠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따뜻하고 충분한 배려로 전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도 다를 것이 없겠다 싶었다. 누군가의 곁을 함부로 지나가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 곁을 지나간다 해도 내가 지나치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며 지나가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시인 이성선은 <다리>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그러고 보면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리를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태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었다.



오천 터널을 빠져나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훈련 중인 군인 트럭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프 차량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군인들을 태운 여러 대의 트럭이 줄을 지어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군인 트럭 사이에 있던 승합차 한 대가 느닷없이 트럭을 추월한 것인데, 승합차는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한적한 길이라 괜찮다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하필이면 커브 길에 추월을 나왔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급히 피한 것인데, 황급히 핸들을 돌려 다시 트럭 사이로 끼어든다는 것이 내 곁을 스치듯이 지나간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아뜩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승합차 운전자는 저도 놀랐는지 나머지 트럭들도 추월을 하더니 꽁지가 빠져라 내달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돌아서서는 “이런! 이런! 이런!” 달려가는 승합차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놀라기도 했거니와 화도 났다. 하긴, 종일 혼자 길을 걸으며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터에 모처럼 말을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도망을 치듯 내달리는 승합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무례한 것은 난폭한 것이구나! 무례한 것은 그냥 무례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무례하게 행한 이는 짐작을 못하거나 자신이 한 일을 가볍게 여길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난폭함이 되는 것이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또 하나 이어지는 생각이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나를 그냥 지나친 모든 차들이 새삼 고마웠다. 방금 전 아찔하게 스쳐간 승합차처럼 얼마든지 나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내 곁을 지나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를 지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든지 나를 공격하고 쓰러뜨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지나간 많은 사람들, 그들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었다.


맞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 중에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도 있고, 다리를 위태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다리 지날 때마다 우리는 다리를 다리답게 해야 할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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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이야기 5


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무엘상 28:3-7


사울 이야기의 숨은 주인공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어 ‘인간’(人間)은 사람 ‘인’ 자에 사이 ‘간’ 자를 씁니다. 사람은 곧 사람 ‘사이’ 곧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뜻이겠습니다. 사람은 그가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사울이 누구인지 알려면 그의 외모나 특기나 취미나 취향, 그가 좋아하는 음식 등이 뭔지 아는 걸로는 부족하고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사울이 누군지 알려면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어땠고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네 번에 걸쳐서 사울 이야기라는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울이 맺은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이 시리즈를 마감하는 마지막 글로서 하느님이라는 등장인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로서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의 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숨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정도이지만 하느님은 연극을 이끌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늘은 숨은 주인공인 하느님을 살펴볼 터인데 다시 한 번 얘기하면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은 사울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곧 ‘캐릭터’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입니다. 사람이 알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깊고 너무 넓고 신비한 분이기에 하느님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하느님은 당신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성서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됩니다. 물론 성서가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서 이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성서가 하느님은 아는 유일한 길은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길임에는 분명합니다.


성서가 하느님을 보여주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하느님은 이러저런 분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사건’이나 ‘이야기’, 또는 시적인 ‘은유’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줍니다. 이렇듯 성서는 직설적으로 하느님을 보여주진 않으므로 우리는 성서를 ‘해석’이라는 작업을 해가며 읽어야 합니다. 예컨대 성서가 하느님을 ‘질투’하는 분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을 글자 그대로 하느님이 사람처럼 질투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하느님의 특정한 성격을 가리키는 ‘시어’로 알아듣고 뭘 지시하는지를 해석해야 합니다. 또 성서가 하느님이 ‘오른팔을 펼쳐서 구원했다’고 말하면 ‘그럼 왼팔은 뭐에 쓰나?’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지 말고 그 행위가 뭘 가리키는 ‘지시어’인지를 해석해야 합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만 바라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사울 이야기에서 보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하느님은 그 이야기를 만들어서 후대에 전한 사람들에 의해 ‘해석된’ 하느님입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으며 새롭게 해석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울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사울 이야기에 드러난 하느님에 대해 질문하거나 문제제기할 때 우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문제제기라는 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회하시는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을 통해서 하느님께 왕을 요구한 이유는 첫째로 외국, 특히 블레셋과의 전쟁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고, 둘째로 전쟁이 없을 때도 지속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리더가 필요했다는 데 있습니다. 백성의 이러한 요구는 이해할만 합니다.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야훼의 궤를 갖고 나갔지만 패배했습니다. 게다가 야훼의 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사무엘과 하느님은 이와 같은 백성의 요구를 각각 자신을 버린 걸로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백성이 자기를 버린 걸로 이해하고 마음 상한 사무엘에게 그들은 사무엘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을 버린 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느님은 백성들이 당신을 버렸다고 여겼으면서도 그들을 벌하기는커녕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는지 궁금합니다. 왕을 달라는 요구가 다른 신을 섬기겠다는 뜻은 아니므로 용납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걸까요? 왕을 달라는 요구가 다른 신을 섬기겠다거나 우상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느님은 사울을 택한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셨습니다. 성서는 그 얘기를 두 번이나 하는데 그래서 ‘하느님도 후회라는 걸 하는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겁니다. 성서에는 여기 말고도 하느님의 후회에 대해 말하는 구절이 여럿 더 있습니다. 십계명에 따르면 하느님은 ‘질투’도 하신다는데 그에 비하면 ‘후회’ 정도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느님이 후회하신다는 데 충격 받을 사람도 있겠지요.


이에 못지않게 곤혹스러운 점은 하느님의 후회가 정당한가, 사울은 하느님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 못된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제사를 집전한 행위로 하느님을 후회하게 만들었고, 헤렘의 규율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한 번 하느님을 후회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이레 동안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기에 스스로 제사를 집전했습니다. 이게 문제였다고 해도 그 책임은 두 사람이 나눠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헤렘의 규율을 어긴 것도 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지난 번에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울의 책임이라고 해도 거기에 대한 징벌의 강도가 적절한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잘못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징벌이 과중하다는 겁니다. 물론 사울의 불행에는 그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걸 부인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이 자기를 대신해서 다윗을 선택하셨음을 알게 된 후로 다윗을 죽이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광기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는 뭔가에 쫓기듯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거란 얘기입니다.


성서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느님은 사울을 버렸을까요? 왜 하느님은 자신의 선택을 물러가면서 사울을 버려야 했을까요? 사울 이야기는 두 가지 이유를 들지만 그것만으로는 얼른 수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서도 답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만족스런 답을 찾아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성서도 답을 찾느라고 고민했다거나 성서도 답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에 어리둥절할 사람이 있을 겁니다. 성서를 모독한다고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서는 사람의 책입니다. 그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써서 사람이 전달한 사람의 책입니다. 문서로서의 성서는 사람이 써서 사람이 후대에 물려준 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사람의 책인 성서는 우리처럼 하느님이 누군지, 하느님의 뜻이 뭔지 알려고 갖은 고민과 온갖 실험을 하는 책입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찾아내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 눈에는 왜 하느님이 사울을 버렸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성서가 확실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자기가 찾아낸 답의 실마리를 후대에게 남겨놓는 데 만족했던 걸로 보입니다.


제사와 관련된 두 가지 ‘불순종’이 그의 버림받음에 대한 만족스런 답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성서도 동의한다고 보입니다. 그게 정답이라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해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불법적으로 먹은 다윗도 거기에 맞는 벌을 받았어야 했는데 안 그랬으니 말입니다. 다윗이 벌을 받아 불행해지기는커녕 그에게 속아서 빵을 내준 놉의 제사장들만 사울의 손에 죽지 않았습니까. 사울과 다윗 중에 누구 잘못이 더 위중한지는 판단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쪽은 하느님에게 버림을 받고 다른 쪽은 그냥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울 이야기에 드러난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사울이야기에서 하느님의 두 가지 면이 드러나는데 둘 다 사울이 왜 하느님에게 버림 받았나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첫째, 사울은 ‘희생양’(scapegoat)이었다는 것이고 둘째, 하느님은 사울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희생양’ 제도는 이스라엘에게 익숙합니다. 제사제도, 특히 속죄제가 여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그 벌은 죄지은 당사자가 받아야 하지만 대신 제물로 양을 죽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가 속죄양 제도입니다. 이 이론은 르네 지라르(Rene Girard)라는 프랑스 사상가가 발전시켰고 성서학자들도 제사제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울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이 싫어서 왕을 요구했고 그것은 하느님을 버린 행위라도 이해합니다. 백성의 요구는 하느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므로 하느님 입장에서는 중대한 일탈이요 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변상황은 인간인 왕을 필요로 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가 현실 이치에 맞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도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과 처벌을 누군가에게 부과했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사울이라는 겁니다. 사울이 이른바 ‘속죄양’이 됐던 겁니다.


속죄양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처벌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속죄양은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저지른 집단적인 죄에 대해서 공동체를 대신해서 벌을 받습니다. 사울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은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에 대한 처벌을 그가 받았던 겁니다. 사울 이야기를 전한 사람들이 속죄양 이론을 의식적으로 그에게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벌어집니다.


둘째는, 하느님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점이 사울의 불행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고 여기는데 사실 저는 이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윗과 관련해서 여러 번 인용한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야훼는 다윗과 사랑에 빠진 신이다.”(Yahweh is the God who fell in love with David). 물론 이 말도 비유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집니다. 그처럼 야훼가 일방적으로 다윗 편을 든 것은 그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란 겁니다. 곧 야훼가 다윗을 선호하고 일방적으로 그의 편을 든 것은 사랑에 빠져서 한 것이므로 합리적으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느님이 사울을 버린 것도 그에게 결격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윗을 사랑해서 그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울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정말 하느님이 이런 분일까요? 누군가를 사랑해서 다른 누군가를 버리는 분일까요? 아무도 모르지요.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이니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사울 이야기가 하느님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에 대해 이런 느낌이 가진 적 없습니까? 하느님이 나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해서 내가 소외된다는 느낌 말입니다.


남을 사랑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습니까? 다윗처럼 여러분이 하느님의 사랑을 남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믿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가 쯧쯧…’ 하면서 혀를 찰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하느님의 사랑을 남달리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딱 남들만큼만 그렇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이 제게 남보다 더 큰 사랑을 베푸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자기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저처럼 다른 사람만큼만 사랑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그도 아니면 하느님의 사랑을 남보다 덜 받거나 전혀 못 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여러분 각자가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사울의 관점에서 이 얘기를 읽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분명 세 부류 중에 첫 번째는 아니었습니다. 둘째나 셋째였겠지요. 그러면 거기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울처럼 살아야 할까요? 사울처럼 다윗을 질투하면서 그를 죽이는 데 일생을 허비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자족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자기보다 덜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살면 안 되는 겁니까. 이게 기독교인들의 바른 삶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산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은총을 나누면서 그들이 겪는 고민과 고난을 떠안으면서 살아가는 게 올바른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 아닌가 말입니다.


저는 사울에게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 반비례해서 하느님의 편애를 받았던 다윗에게는 반감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그의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울의 삶의 태도도 긍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버려진 데서 오는 좌절감과 대신 선택된 다윗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는 인생을 망쳤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영영 버리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의 생에는 굴곡이 있습니다. 그게 하느님의 섭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사울이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왕좌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데 불과합니다.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버림받은 자리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울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닫는 점이 바로 이겁니다. 사울이 택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길도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길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누구를 영영 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지라도 우리가 받은 은총을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정도로는 넉넉하게 받고 있습니다. 남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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